[이지상의 세계문화 기행]''야생동물 천국'' 케냐
[세계일보 2005-02-04 13:33]

케냐와 에티오피아의 국경 부근에 투르카나 호수가 있다. 1960년대 인류고고학자 리키가 약 250만년 전의 인간의 해골 화석을 발견함으로써 인류의 탄생지라고 여겨지는 곳이다.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투르카나 호수로 가는 길은 동부 코스와 서부 코스가 있다. 동부 코스는 대중교통수단이 끊긴 황무지만 펼쳐 있어서 차를 대절한 사람들만이 갈 수 있고, 서부 코스는 버스가 다니지만 2∼3일 걸리는 힘든 코스다.

우선 서북부의 도시 키탈레란 곳까지 가서 1박을 하고, 다음날 미니버스를 탔는데 북쪽으로 올라가는 몇 시간 동안 삼림이 우거지다가 갑자기 황량한 풍경이 펼쳐졌다. 풀 몇 포기 보일락말락한 물기 한점 없는 메마른 벌판이었고, 아스팔트 길은 있었으나 전신주가 끊겨 있었다. 가도 가도 반대편에서 오는 차도 없었고 이쪽에서 가는 차도 없는 텅빈 길이었다.

그러다 홀연히 카이눅이란 마을이 나타났다. 그곳에 살고 있는 이들은 투르카나족이었다. 원래 우간다의 동북쪽 부근에 살다가 현재 이곳으로 옮아온 투르카나족은 유목민으로, 현재 투르카나 호수 근처와 근방의 사막 지방에 살고 있다. 이들은 케냐의 중부지역에서 살아가는 삼부루족, 마사이마라 국립공원과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평원에서 살아가는 마사이족과 함께 케냐에서 가장 현대화되지 않은 호전적인 부족이다.

이곳의 사내들은 모두 뾰족한 막대기를 들고 다녔는데 무뚝뚝한 표정으로 나를 경계했다. 그때부터 살벌한 인심만큼이나 황량한 벌판이 펼쳐졌고 태양은 무섭게 이글거렸다. 불타는 대지 위를 야생 낙타와 타조가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으며, 가끔 높이가 1∼2m 정도 되는 흙기둥이 보였는데 흰개미 집이었다. 그리고 벌판 위에서 미친 듯이 돌고 있는 돌개바람도 보였다.

◇높이 1~2m 정도 되는 흰개미집.

중간에 로드와란 곳에서 다시 한번 차를 갈아타고 투르카나 호수 근처의 칼레콜이란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마치 세상의 끝에 다다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도로는 뚝 끊기고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 양쪽으로 집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도 호텔은 있었다. 말이 호텔이지 맨 흙바닥에 침대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감방 같은 곳이었다.

투르카나 호수는 마을에서 6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걸어 가는 길에 야자나무 수십그루가 보였고 그 밑에는 도토리를 엎어 놓은 것 같은 초가집이 10여채씩 모여 있었다.

이곳은 매우 더웠다. 땀도 증발시킬 정도였는데 한창 더울 때는 섭씨 50도까지도 올라간다는 곳이다.

◇투르카나 호수의 전경.

힘들게 투르카나 호수를 찾아가니 투르카나족들이 지는 해를 바라보며 배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었다. 남북 250km, 동서 55km인 투르카나 호수는 평화로운 곳으로 현지인에게는 소중한 삶의 터전이다.

이곳은 현재 사막기후지만 1500만년 전에는 푸른 숲이었다. 화산 폭발 후 거대하게 솟아오른 용암이 케냐 북부와 에티오피아를 덮쳐 현재의 지형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때 우거진 삼림이 소멸되어 현재 케냐의 대초원지대가 형성되었고 그 여파로 숲 속을 나와 걸어다닌 인류가 빠른 속도로 진화되었을 가능성을 인류고고학자들은 제기하고 있다.(물론, 인류의 탄생에 대한 학설에서 이것은 절대적이 아니고 창조론처럼 다른 설도 있다.)

◇지나가는 차에서 물을 얻는 투르카나족의 어린이들

현재 투르카나족은 대가족제도며 일부다처제다. 보통 한 남자가 서너 부인을 갖는데 부자는 열 명 정도를 거느린다고 한다. 그러니, 많은 집은 한 아버지의 자손이 50명 정도가 될 때도 있다. 열악한 환경 때문일까?

투르카나족은 오히려 종족 번식을 위해 자손들을 많이 낳고 있었는데, 이곳의 기후와 환경은 너무도 열악했다. 우연히 만난 학생의 얘기를 들어보니 그들은 물을 긷기 위해, 양들을 몰고 목초지에 가기 위해 보통 하루에 20∼30km를 걷는다고 한다.

밤이 되자 칼레콜 마을은 푹푹 쪄서 도저히 잠을 못 이룰 정도였고 재래식 화장실에는 풍뎅이만한 바퀴벌레 수십마리가 변기 주위를 기어다니기도 했다. 물론, 몸을 씻을 물도 얻기에 힘들었으니 이런 곳에서 살아가는 투르카나족의 끈질긴 생명력이 경이롭게 보일 정도였다.

여행작가

by 100명 2007. 4. 13. 1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