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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상의 세계문화 기행]탄자니아 잔지바르섬 | ||||
[세계일보 2005-03-10 17:15] | ||||
아프리카를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도시에서는 온갖 종류의 음식뿐 아니라 야생동물 고기도 맛볼 수 있지만, 조금만 시골로 들어가면 현지인 식당의 음식은 열악하다. 동부 아프리카의 경우 옥수수와 소맥을 섞어 만든 백설기 맛의 우갈리 정도는 괜찮지만, 입맛에 맞지 않는 양고기는 먹기 힘들고 야채도 흔하지 않다. 교통은 어떠한가. 예외는 있지만 대개 정해진 출발 시각은 소용없다. 사람이 다 차야 출발하므로 버스 안에 우두커니 앉아 한두 시간 정도 기다리는 것은 기본. 가끔 염소나 닭 그리고 엄청난 짐을 갖고 탄 사람들로 인해 혼잡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데도 이들은 우리가 근대화되기 전에 그랬듯이 급하지 않다. 몇 시간을 기다려도 ‘아쿠나마타타’다. ‘아쿠나마타타’는 스와힐리어로 ‘괜찮아’라는 뜻이다. 스와힐리어는 동부 아프리카 흑인들 말에 아랍어가 결합하여 생긴 언어로, 이들이 잘 쓰는 말 중에 또 하나는 ‘폴레폴레’(천천히 천천히)다. 물론 문명화된 대도시 사람들은 빨리빨리 행동했지만, 그들조차 일이 잘 안 될 때는 ‘어이쿠 죽겠네’보다는 ‘아쿠나마타타’를 외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프리카에서 이 말이 가장 어울리는 곳은 잔지바르 섬인 것 같다. 이 섬에는 풍요와 느긋함이 넘쳐 흐른다. 탄자니아의 동남부 해안에 있는 수도이자 해안도시인 다르에스살람에서 배로 3시간 정도 가면 잔지바르 섬이 나온다. 잔지바르는 1964년까지 잔지바르 공화국이라는 독립국가였으나 탕가니카 공화국과 병합하여 국호가 탄자니아연방공화국이 됐다. ◇잔지바르 섬의 야자나무 숲, 아랍시대의 유적들.(왼쪽부터) ◇팅가팅가 그림, 토속 기념품들(왼쪽부터) 이 섬은 아프리카 대륙보다는 아랍이나 인도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파란 바다, 하늘, 산호초와 녹음이 우거진 아름다운 섬으로, 옛날 아랍 지배자의 궁전과 노예 무역 시대의 유적이 섬 전체에 널려 있는 평화로운 곳이다. 또 무더위 속에서 시간이 엿가락처럼 축 늘어져 세상이 정지한 것만 같은 고요가 섬 전체에 몽롱하게 깔려 있다. 이 섬의 중심은 19세기 초반 지배자인 아랍인들이 만든 ‘올드스톤타운’. 돌집들 사이로 골목길이 미로처럼 퍼져 있고, 사이사이 수많은 가옥, 모스크, 상점들이 들어서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이곳에는 끔찍한 노예시장이 있었다. 백인들은 동부 아프리카 전역에서 생포한 아프리카인을 잔지바르 섬으로 데려와 팔았다. 노예시장은 가로 46m, 세로 27m의 공간에 있었는데 여기서 거래된 노예들은 아랍, 유럽, 미국 대륙 등으로 팔려나갔다. 15세기 중반에서 19세기 중반까지 약 400년간 아프리카에서 잡혀간 노예 수는 최소 1000만명이었다. 그들은 총 몇 자루, 단검이나 거울 몇 개, 럼주 몇 병, 손수건 몇 십장의 가치로 교환되었는데, 이런 아픈 상처의 현장에 지금은 대성당이 서 있다. 잔지바르 섬의 매력은 밤에 있다. 어둠이 깔리고 기온이 떨어지면 거리는 활기를 띤다. 아랍 성채 밖의 해안가에 있는 야시장에는 해산물과 과일 등을 파는 수많은 노점상들이 불을 밝히고 현지인과 여행자들이 얽혀서 인산인해를 이룬다. 잔지바르 섬 거리에는 화가들도 눈에 띈다. 그들이 주로 그리는 그림은 강렬한 원색과 코믹한 동물들의 표정을 담은 ‘팅가팅가’라는 그림인데, 관광객들에게 최고의 인기상품이다. 그리고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스파이스 투어(spice tour)다. 잔지바르의 정취와 맛을 즐기는 여행인데, 잔지바르 출신인 미투라는 노인이 창안한 1일 투어로 인기가 매우 좋다. 안내인은 관광객들을 데리고 잔지바르의 숲을 다니며 온갖 종류의 코코넛 나무, 말라리아 예방약에 쓰이는 클로로킨, 씨가 물기에 닿으면 팝콘처럼 퍽퍽 튀는 식물, 잭 프루트, 과일의 왕 두리안, 라임, 수많은 종류의 바나나, 상처를 치료해주는 진액이 있는 나무 등 숲 속의 온갖 보물들을 소개해 준다. 잔지바르 섬은 이처럼 아프리카를 여행하다 열악한 환경에 지친 여행자들이 ‘폴레폴레’ 쉴 수 있고, 세상만사 ‘아쿠나마타타’할 수 있는 휴식의 섬이다. 여행작가 ■ 여행정보
■ 여행 에피소드 말라리아 증세로 앓은 적이 있다. 골은 빠개질 듯 아프고 식은땀이 흘렀다. 덜덜 떨리다가 구토까지 했다. 갖고 다니던 여행의학 팸플릿을 보니 ‘말라리아는 두통 피로감 미열로 시작해 오한과 고열이 발생하고, 심한 고열이 두세 시간 지속한 뒤 전신에 땀이 심하게 난다. 이런 증상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데, 즉시 치료하지 않으면 죽을 가능성이 높다’고 나와 있었다. 딱 나의 증상이었다. 1주일에 한 번씩 말라리아약을 먹었지만, 그것도 확실한 것은 아니라고 들었다. 말라리아에 걸려서 며칠 앓다가 쉽게 죽어버리는 예를 많이 들어서 눈앞이 캄캄해졌다. 병원도 멀리 떨어진 오지였다. ‘아, 이렇게 길에서 죽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며 가족들 얼굴이 눈앞을 스쳐갔다. 다행히 아침에 일어나니 좀 괜찮았다. 하지만 주기적으로 증상이 반복된다니 안심이 안 되었다. 병원에 가느라 먼길을 가느니 차라리 푹 쉬면서 잘 먹자고 생각했는데 차차 회복이 되었다. 충분한 영양과 복용한 말라리아약 덕을 보아서 그런지, 아니면 단순한 감기 증세였는지 아직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때 날씨가 감기가 들 날씨는 전혀 아니었으니 아마도 말라리아였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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