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 기행]실크로드 출발지 중국 시안
[세계일보 2005-04-21 18:42]
중국의 시안(西安)은 웅숭깊은 고도(古都)다. 약 3000년 전부터 한족이 살면서 명나라 전까지 장안으로 불렸고, 주 진 전한 수 당 등 11개 왕조를 거치며 1100년간 한족 문화의 중심지로 번성했다. 또 로마까지 이어지는 실크로드의 출발지로 수많은 유적지와 유물을 간직한 도시다.

우선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2200년 전의 거대한 진시왕릉이다. “에이, 능도 없는데 입장료만 비싸게 받고….” 어떤 한국인 관광객은 진시왕릉에 오른 후 그렇게 불평했는데, 높이 79m에 동서 폭이 475m, 남북으로 약 384m인 그 산 같은 능에 올라가 다시 능을 찾았으니 그런 말이 나올 법하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이런 기록이 나온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왕은 죄인 70만여명을 동원해 자신의 묘와 지하궁전을 만들었다. 지하수가 세 번이나 나올 정도로 깊이 판 후 동판을 깔고 자기의 관을 안치했다. 묘에는 궁전, 망루를 만들고 문무백관의 자리를 만들었고, 묘에 접근하는 자는 자동발사되는 활을 장치해 죽게 했다.”

이 얘기는 한동안 전설로 여겨지다 1974년 5월, 한 농민이 우물을 파다 지하 4m에서 우연히 무엇인가를 발견하면서 사실로 증명되었다.

그렇게 해서 2200년 만에 지하궁전 일부분이 발견되었는데, 진시왕릉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병마용갱의 전시실이 있다. 약 4.5m 깊이의 지하에서 발굴된 거대한 보병·전차대·포대의 지하군단이 전시되어 있는데, 흙으로 만든 인물상(토용·土俑)들은 크기나 모양이 실물과 같다. 복장과 표정이 모두 다른 6000여명의 병사들은 방금 잠에서 깨어나 두리번거리는 것처럼 표정이 생생하다.

시안에는 양귀비가 노닐던 화청지도 있다. 아름다운 연못과 정자와 도교 사원들을 거닐며 관광객들은 양귀비를 그리워하지만, 사실 그녀는 추악한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다. 56세의 시아버지 현종이 22세의 며느리를 빼앗아 자신의 비로 삼았던 것이다.

그 후 양귀비는 온갖 영화를 누렸으나 안사의 난을 맞아 도망치던 중 대들보에 목매달아 죽는다. 이렇게 불운하게 죽어간 양귀비지만 이제 그녀는 식당에서, 관광 기념품에서, 연못가에서, 그림으로, 조각으로 부활하고 있다.

◇대안탑 7층 전망대에서 바라본 시안의 주작대로. 대안탑은 현장이 번역한 불경을 보관하던 곳이다.

시안 시내의 남쪽에 자리 잡은 자은사와 대안탑도 옛 모습 그대로다. 구법의 길을 떠났던 당승 현장은 험한 서역을 거쳐 인도로 가서 18년 만에 불경 657부를 갖고 장안으로 돌아온다. 그 후 그가 평생을 머물며 불경을 번역했던 곳이 자은사고, 번역한 불경을 보관했던 곳이 대안탑이었다.

대안탑의 7층 전망대에 오르면 남북으로 뻗친 넓은 주작대로가 보인다. 당나라 때는 대로를 중심으로 동쪽에는 한족들이 살았고, 서쪽에는 페르시아 티베트 인도 이란 등지의 서역에서 온 사람들이 살았다.

특히 호희들의 인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호희(胡姬)는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오랑캐 여자다. 원래 호인(胡人)은 처음에 흉노족을 가리켰으나, 훗날 돌궐족(투르크족)·위구르족·이란계 사람들을 일컬었고 특히 당나라 때는 이란인들을 지칭했다.

온 장안의 한량들은 호인들의 옷과 노래와 음식 등 호풍(胡風)을 즐겼고, 이태백도 가는 봄날을 아쉬워하며 빛나는 야광 술잔에 호희가 따라주는 포도주를 마셨다. 이태백이 즐기던 호선무(胡旋舞·호희들의 춤)를 지금은 볼 수 없다. 대신 거리의 옷가게 앞에서 한국 가수 이정현의 ‘바꿔, 바꿔, 모든 걸 다 바꿔’라는 노래를 부르며 호객하는 청년을 볼 수는 있다. 이제 그 옛날의 호풍이 한류로 변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서기 660년 백제가 멸망한 후 이 도시로 끌려왔던 의자왕과 백제 유민들을 생각했다. 지금 이곳에서 그들의 흔적을 찾을 수는 없다. 다만 지나치는 행인들의 표정 속에서 그들의 자손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볼 뿐. 그 모든 것을 뒤섞으며 어디론가 흘러가는 세상을 노인처럼 물끄러미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곳이 바로 시안이란 고도다.

여행 작가

■여행 에피소드

하루 1500원 왕복 시내버스 표사면 편리

1991년도에 베이징에서부터 중국 서역을 횡단해 실크로드 여행을 했었는데, 공원의 공중 화장실에 갔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화장실에 문이 없었던 것이다. 아주 좋은 호텔은 모르겠지만 허름한 호텔의 공중 화장실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일을 처리한 적이 많았다. 서역의 변방은 더 열악해서 2박3일 정도 버스를 타고 가다 묵는 초대소 같은 곳이나 버스터미널의 공중 화장실은 도저히 발을 디딜 곳이 없을 정도로 더러워서 사람들은 근처의 옥수수밭에서 부스럭거리며 일을 해결하고 있었다.

그 후 10년 후에 가보니 상황은 많이 변해 있었다. 현대식 건물이 치솟고 화장실 문화도 깨끗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 후 몇 차례 중국에 더 가는 동안 매년 달라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음식문화가 세계 최고지만 배설문화는 신경을 안 쓰던 중국이 이제 근대화되기 시작하면서 화장실 문화도 탈바꿈한 것이다.

■여행정보

▷숙소:시안은 관광지답게 싼 숙소에서 고급 호텔까지 다양하다. 가장 편리한 곳은 역 바로 앞에 있는 해방반점. 더블베드에 한국돈으로 약 7만원 정도.(비수기에는 흥정하면 반값도 가능)

▷교통:시안 근교의 유적지인 화청지, 진시왕릉, 병마용갱을 가장 손쉽고 자유롭게 갈 수 있는 방법은 역 앞 터미널에서 20분마다 세 곳을 왕복하는 306번 시내버스를 타는 것이다. 한국 돈으로 약 1500원짜리 표를 끊으면 세 군데를 다 돌아볼 수 있는데, 하루 관광으로는 최고다. 이 밖에 역 앞에서 지도를 사면 시내버스 노선이 자세하게 나와 있어서 시내 관광에 좋다.

by 100명 2007. 4. 13. 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