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 기행]사막속의 박물관 중국 둔황
[세계일보 2005-05-05 16:51]
시안(西安)에서 기차를 타고 서쪽으로 가면 란저우(蘭州)가 나오고, 그곳을 지나면서부터 작은 동산만한 바위들이 불쑥불쑥 나타나는 황량한 벌판이 펼쳐진다. 바퀴 소리조차 흔적을 남기지 못하는 적막함 속에서 아득한 지평선 너머에서 손오공과 저팔계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올 것만 같은 풍경이다.

이 길을 허시(河西)회랑이라 부르는데, 황허 서쪽에서 둔황에 이르기까지 북쪽의 고비 사막과 남쪽의 치롄(祁連)산맥 사이의 동서 800에 이르는 긴 띠 모양의 지대를 말한다. 즉 황허 서쪽의 긴 복도라는 뜻으로 동서를 잇는 동맥이었다.

당승 현장은 이 길을 가며 이렇게 외쳤다. “길이 없다. 다만 사막을 헤매다 죽은 사람의 뼈를 보고 표적을 삼는다.”

그 험한 길을 지금은 쉽게 갈 수 있다. 시안에서 저녁 기차를 타면 두 밤을 보낸 후 새벽 네시쯤 둔황역에 도착한다. 현재 둔황은 둔황역에서 약 130km 떨어져 있다. 날이 밝은 후 합승 택시를 타고 황사 바람을 헤치고 사막 가운데 난 외줄기 길을 따라 2시간을 달리니 둔황이 나왔다.

둔황이 유명한 것은 막고굴(莫高窟) 때문이다. 둔황 시내를 벗어나 버스를 타고 사막 길을 30분 정도 달리면 벌집처럼 구멍이 뻥뻥 뚫린 산이 보이는데, 바로 그곳이 막고굴이다.

중국의 3대 석굴 중 하나인 막고굴은 서기 366년부터 만들어졌다.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모두 1000여개가 조성됐지만 현재 발굴된 것은 492개다. 1300년간 사막에서 잠자던 막고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영국의 지리학자 오렐 스타인과 프랑스의 동양학자 폴 펠리오에 의해서였다. 이들은 막고굴에서 발견된 문서가 중요한 것을 알고 중국 관리 왕원록을 꾀어서 많은 문서를 몰래 빼돌렸다.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곳은 17굴로 장경동이라고도 하는데, 16굴로 들어가는 통로의 오른쪽에 따로 있는 조그만 굴이다.

원래 흙벽으로 가려진 이곳에 수많은 불서가 보관된 연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그 중에 가장 타당성이 있는 것은 10세기 말 카슈가르(카스·喀什)에서 일어난 이슬람의 카라한 왕조가 서역 남도에 있는 호탄(허톈)을 점령한 후 불서를 깡그리 파괴했다. 그 후 둔황을 지배하고 있던 서하를 공격하려 하자, 서하는 불서를 장경동에 넣고 봉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왕오천축국전’이 이곳에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일지만 자세한 내력은 알 길이 없다.

혜초 스님은 신라에서 태어나 719년 16세의 어린 나이로 당나라로 간다. 그곳에서 스승의 권유로 인도 순례 길을 떠났는데, 중국 광저우(廣州)에서 배를 타고 인도의 콜카타로 들어가 성지를 순례했다. 그리고 현재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지방을 거쳐 파미르 고원을 넘어 중국의 신장 지방으로 온다. 그의 나이 23세 때였고, 그가 4년간의 인도 순례에 관해 쓴 책이 ‘왕오천축국전’으로 그 당시 인도, 중앙아시아 등의 풍습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혜초 스님은 신라로 돌아가지 않고 중국 오대산 보리사에서 입적했다고 한다.

수많은 막고굴 안에는 불교에 관련된 수많은 벽화와 아름다운 불상조각들이 있는데, 237굴과 335굴의 벽화에는 깃털 달린 모자를 쓴 신라인이 그려져 우린 민족의 흔적으로 알려져 있다.

아쉬운 점은 건조한 기후와 관광객들이 내뿜는 이산화탄소에 의해 벽화와 조각들이 점점 손상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제는 10여개 정도만 개방하고 있는데, 중요한 굴은 바로 밖의 박물관에 그대로 본떠 만들어져 있다.

둔황의 즐거움은 막고굴 못지않게 명사산(鳴沙山)에도 있다. 시내에서 4km 정도 떨어진 명사산에는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같은 데서나 볼 수 있는 거대하고 환상적인 모래 바다가 펼쳐진다. 칼날 능선을 따라 사막길을 걸어가다 사막 속으로 들어가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도 있고, 낙타를 타고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도 있으며, 모래 썰매를 타며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도 있다. 짧은 시간 사막을 느끼고 즐기려는 이들에게는 둔황의 명사산이 가장 가기 쉬운 사막이 아닐까 한다.

여행작가

◇둔황 시내의 거리

◇둔황 시내에서 시시케밥(양고기 꼬치구이)을 만드는 소년.

◇한번도 마른 적이 없다는 초승달 모양의 오아시스 월아천(月牙泉).

◇둔황 시내에서 4㎞ 정도 떨어진 명사산의 모래 바다.

◇비천녀(飛天女)상 기념품 조각

■여행 에피소드

1991년에 처음 둔황에 갔을 때는 한국인을 보기가 매우 힘들었다. 10여년 만에 다시 가보니 한국인 여행자의 흔적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둔황 버스터미널 앞에는 카페가 많다. 그 중의 한 곳에 들르니 여행자들을 위한 노트가 있었다. 여행자들이 얻은 정보, 도움말 등을 빼곡히 적혀져 있었는데 한글도 꽤 자주 보여 반가웠다.

그 중에 눈에 띈 글은 예순 살이 넘은 노인이 실크로드와 티베트를 배낭을 메고 두 달째 여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패키지 여행도 많이 해보았지만 역시 몸으로 부딪치며 헤쳐나가는 배낭여행이 최고라며 모두의 건투를 빈다는 내용이었다. 그 체력과 의지 그리고 열정이 감동스러웠다. 노인이 이런 험한 길을 가는 이유는 바로 ‘살아있음의 환희’를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 험한 길을 가며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노인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여행정보

둔황 시내에 있는 고급 호텔인 둔황빈관의 트윈베드가 8만∼9만원, 저렴한 숙소인 페이톈빈관의 트윈베드가 2만∼3만원 정도다. 여럿이 같이 묵는 다인방은 5000원 정도여서 배낭 여행자들이 많이 묵는데, 요즘 들어 도난 사건이 많이 생겨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둔황역 바로 옆에도 숙소가 있으므로 늦은 밤 혹은 새벽에 도착하면 임시로 묵을 수 있다.

시안에서 둔황까지는 기차로 약 32시간 걸린다. 둔황역에서 내려 둔황 시내까지 택시를 합승하면 1인당 약 5000원 정도 들며, 미니버스 요금은 약 2000원 정도다.

명사산은 시내에서 6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성수기에는 미니버스가 많아서 편리하다. 왕복 2500원 정도면 된다. 막고굴까지는 일반버스도 있고 미니버스를 이용할 수도 있으므로 현지에서 선택하면 된다.

by 100명 2007. 4. 13. 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