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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상의 세계문화 기행]실크로드 요충 중국 카슈가르 | ||||
[세계일보 2005-06-16 18:15] | ||||
몽골어로 ‘한번 들어가면 빠져 나올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의 타클라마칸 사막. 예전에는 말이나 낙타를 타고 목숨 걸고 갔던 길을 지금은 기차가 24시간 만에 가볍게 돌파하고 있다. 황량한 사막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전신주와 가끔씩 보이는 대형 간판을 보면 사막보다, 황사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간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서서히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추는 메마른 대지와 희미해져가는 지평선, 어디론가 끝없이 뻗어가는 도로…. 그렇게 거친 곡선과 직선으로 분할된 세상 속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해가는 그대로의 세상에 몰입하는 순간, 자연의 위대함에 감탄하기도 한다. 우루무치에서 떠난 기차는 타클라마칸 사막을 밤새도록 달렸고, 창틈으로 스며 들어온 황사 바람에 입이 텁텁해지는 오후 무렵 드디어 카슈가르에 도착했다. 역사 주변은 황량하지만, 차를 타고 시내에 들어오는 순간 잠시 어리둥절한 풍경이 펼쳐졌다. 카슈가르는 오아시스다. 오아시스라면 언뜻 호수 주변에 야자나무가 서 있는 낭만적인 풍경을 연상할 테지만, 서역 최대의 오아시스는 번화한 도시로 변해 있었다. 넓게 뚫린 대로에는 멋진 현대식 빌딩들이 들어서 마치 종로 한복판에 온듯한 느낌이 들고 말았다. 카슈가르의 중국어 명칭은 카스(喀什)이나, 위구르족은 모두 카슈가르라 부른다. 이곳 인구는 약 230만명이다. 원래는 그 중 90%가 위구르족이고 나머지 10%가 우즈베크족 등 소수민족이었으나, 이젠 정책적인 이주로 거리에 한족들이 매우 많이 눈에 띈다. 그러나 카슈가르는 여전히 위구르족의 도시고, 시내에 있는 에이티갈 모스크와 근교에 있는 아바흐 호자의 묘는 위구르족의 정신적 의지처다. 이슬람교의 시조 무함마드의 직계 자손인 아바흐 호자는 17세기 이곳에 와 이슬람교를 전파했다. 녹색 타일로 뒤덮인 아름다운 모스크 안에 아바흐 호자와 그 일족의 묘가 안치되어 있다. 향비의 묘도 이곳에 있다. 서역을 평정한 청의 건륭제에게 시집간 호자 일족의 여인인 향비는 끝까지 건륭제를 거부하다 죽고 마는데, 그의 유체가 베이징에서 이곳까지 오는 데 3년이 걸렸다고 한다. 카슈가르의 가장 큰 볼거리는 일요시장이다. ‘한서’의 서역전에도 시열이 유명하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시열은 시장을 말한다. 카슈가르는 톈산남로를 거쳐온 상인들과 파미르 고원을 넘어 온 서쪽의 상인들이 만나는 곳이어서 자연히 시장이 크게 열렸었다. 지금도 아침이면 사람들은 팔 물건들을 당나귀 수레와 마차 그리고 자동차에 싣고 꾸역꾸역 장으로 몰려든다. 비록 예전과는 달리 시장이 정비되고 상설화되어서 북적거리는 재래시장의 열기를 느낄 수는 없지만, 여전히 외부에서 오는 이들은 낯선 이국적인 장 풍경에서 흥분을 금하지 못한다. 카슈가르에서 전통적인 위구르인들의 생활 모습을 보려면 구시가지로 가야 한다. 돌담길에는 크고 작은 위구르족의 상점과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고, 거리에서는 양의 창자로 만든 한국의 순대와 맛이 비슷한 ‘웹갸이습’을 맛볼 수 있다. 또 에이티갈 모스크 근처의 뒷길은 저녁 때가 되면 수많은 거리의 음식점들이 들어선다. 양고기 꼬치구이인 시시케밥을 굽는 연기가 거리에 자욱하고, 사람들의 물결로 흥청거린다. 카슈가르에 와선 좋은 호텔의 음식점에 가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저녁 나절 구시가지 거리를 어슬렁거리다 좌판에 앉아 이들의 주식인 난(밀개떡)에 매콤한 양념에 버무린 시시케밥을 넣어 먹고, 주인의 순박한 웃음과 현지인들의 호기심 어린 눈초리를 접하는 순간, 그제서야 여행자들은 자신이 멀고 먼 서역 땅에 앉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돌담으로 쌓인 미로 같은 골목길을 터벅터벅 걷다가 마주친 아이들이 문 뒤에서 몰래 훔쳐볼 때, 마주 오던 아름다운 전통 복장의 위구르 여인이 살짝 낯을 붉히며 고개를 숙일 때, 온몸에는 짜릿한 희열이 흐른다. 카슈가르는 그런 곳이다. 대단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세상의 변경에 와 있는 듯한 희열을 맛볼 수 있는 낯설고도 즐거운 세상이다. 여행작가 ■여행 에피소드 위구르족을 보면 나는 왠지 모르게 정이 갔는데, 어느 청년이 이런 얘기를 해주었다. “우리 위구르족은 매운 것을 잘 먹지요. 그리고 젓가락보다는 숟가락을 많이 써요. 또 박치기를 잘합니다. 여러 말 할 필요 없어요. 그냥 한번 받아 버리면 끝나는 거지요.” 우리 또한 그렇지 않았던가. 프로레슬러 김일의 박치기는 얼마나 유명했으며 일본인이나 중국인에 비해 숟가락을 얼마나 많이 사용하는가, 또 매운 것도 그렇고. 이렇듯이 위구르족은 우리와도 공통점이 꽤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터키의 조상인 돌궐족(투르크족)은 한때 서역 지방을 지배했었고, 동돌궐은 우리 고구려와 접경을 이루기도 했다. 그렇다면 수많은 교류가 있었을 것이고, 돌궐족의 사촌쯤 되는 위구르족이 우리와 비슷한 점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 것같다. ■여행정보
기차역에서 시내의 에이티갈 모스크 앞까지 버스가 다닌다. 택시를 타면 대개 10분가량 걸리고 요금은 1500원 정도. 파미르 고원을 넘어 파키스탄 국경 도시 서스트까지 가는 버스표는 지니바허 빈관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국제버스정류장(international bus terminal)에서 판다. 5월 1일부터 10월 30일까지 공식적으로 길이 열리나, 대개 11월 말까지 다니고 기상 상태에 따라 약간씩 변동이 있다. 중간에 타슈가르칸에서 1박을 하고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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