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기행]환상의 카라코람 하이웨이
[세계일보 2005-06-30 20:33]

세상에서 가장 높고 장엄한 길이 세계의 지붕인 파미르 고원을 넘어 중국과 파키스탄을 잇고 있다. 중국 서역 지방의 카슈가르에서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까지 이어지는 약 1200㎞의 길로, 중국 측에서는 중파공로(中巴公路), 파키스탄 측에서는 카라코람 하이웨이(Karakoram Highway)라 부른다. 이 길은 현재 버스를 타고 1박2일이 걸리지만 예전에는 대상들 혹은 불법을 구하러 인도로 가던 구도자들이 낙타나 야크(티베트 등 고원에서 주로 사는 소과의 포유류)를 이용해 몇 달씩 가던 길이었다.

지금 이 길을 오가는 이들은 파키스탄의 비단장수들과 소수의 여행자들이다. 카슈가르에서 승객과 비단을 잔뜩 실은 버스는 황량한 벌판을 달리다 몇 번의 중국 측 검문소를 거친 후 약 여덟 시간 만에 타슈쿠르간(Tashkurgan)에 섰다. 그곳에서 1박을 해야 했다.

타슈쿠르간은 조그만 촌락으로 해발 3600m지만 파미르 고원의 6000, 7000m급의 높은 산에 둘러싸여 있어서 포근한 골짜기 마을 같았다.

타슈쿠르간이란 ‘돌의 성’ 또는 ‘돌의 탑’이란 뜻이다. 그리스의 물리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마케도니아의 상인에게서 들은 이야기라며 “비단의 나라 세리카(서역지방의 한 나라)로 가려면 ‘투리스 라피데아’ 즉 돌의 탑을 거쳐서 간다”고 그의 저서 ‘지리학’에 적었는데, 투리스 라피데아는 바로 타슈쿠르간을 말했다.

◇파키스탄 학생들.

또 중국 측 기록을 보면 당 승 현장도 인도에서 카슈가르로 오다가 타슈쿠르간에서 20일간 머물렀고, 고구려계의 고선지 장군도 이곳을 거쳐 소발륙국(현재 파키스탄의 길기트 지방)을 원정했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인 길이지만 지금 이곳에는 유물이 남아 있지 않고, 다만 타지크 유목민들이 야크를 기르며 살고 있을 뿐이다.

다음날 아침, 버스는 드디어 해발 약 5000m의 파미르고원을 향해 올랐고, 한 시간 반 정도가 지나자 중국 측 이민국이 있는 피랄리(Pirali)가 나왔다. 그곳에서 출국 수속을 밟은 후 드디어 쿤제라브 고개(Khunjerab Pass)를 오르기 시작했다. 쿤제라브 고개는 그 지역 말로 ‘피의 계곡’이란 뜻이다. 예전에 산적들이 이 길을 넘던 대상과 수도승들을 상대로 약탈과 살인을 자행하여 늘 피가 계곡에 흘렀다고 붙인 이름인데, 양쪽으로 높게 치솟은 산들이 고갯길을 에워싸고 있었다. 위를 쳐다보니 바위들이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아 아찔했다.

◇카라코람 하이웨이에 있는 도시 길기트(Gilgit)에서 본 석불.

예전의 실크로드는 정확히 이 길이 아니었다. 타슈쿠르간에서 80㎞ 정도 오다가 서쪽으로 약간 비껴 난 민타카 고개를 넘어 파키스탄 쪽으로 가거나, 와크지르 고개를 넘어 아프가니스탄 쪽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혜초 스님은 아마도 인도를 여행한 후 와크지르 고개를 통해 파미르 고원을 넘어 카슈가르에 왔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는 이 고개를 넘으며 느꼈던 암담한 심정을 ‘왕오천축국전’에서 이렇게 읊었다.

“그대는 서번(西蕃·서쪽의 변방)이 먼 것을 한탄하나

나는 동방으로 가는 길이 먼 것을 한탄하노라

길은 거칠고 눈은 산마루에 수북이 쌓였는데

험한 골짜기에는 도적이 들끓는구나.

새는 날다 깎아지른 산 위에서 놀라고

사람은 좁은 다리를 건너며 어려워한다.

평생에 눈물 흘린 일이 없었는데 오늘만은 천 줄이나 뿌리도다.”

◇타슈쿠르간에 사는 유목민 타지크족. 소와 생김새가 비슷한 야크를 기르며 산다.

그렇게 험했던 길이건만 지금은 넓은 도로를 버스가 달리고 있었다. 드디어 중국과 파키스탄 국경 사이에 선 경계비가 보였다. 해발 4943m의 꼭대기에 서 있는 경계비를 지나는 순간, 파키스탄 대상들은 모두 손을 들고 카운트 다운을 하기 시작했다.

“셋, 둘, 하나, 파키스탄!”

그들은 서로 악수하며 껴안았고, 버스는 이내 깎아지른 계곡을 향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중국 쪽은 평평한 고원이었지만 파키스탄쪽에는 기암절벽 밑으로 시퍼런 물이 콸콸 흘렀다.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위의 길을 달리며 계곡 건너편 산허리를 보니 옛길이 희미한 실처럼 보였다. 옛사람들은 저런 아찔한 길을 걸어서 파미르 고원을 넘었던 것이다.

◇파키스탄 국경쪽 서스트에서 짐을 내리는 파키스탄 대상들.

카라코람 하이웨이는 이처럼 상품·종교·문화가 교류한 역사적인 길이고,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열정이 서린 길이다. 또한 장엄한 풍경 앞에서 짜릿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여행작가

■여행 에피소드

파키스탄쪽의 국경 마을은 서스트(Sust)다. 이곳의 이민국에 도착하자 파키스탄 대상들은 긴장하다 못해 초조한 빛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대상들의 말에 의하면 이민국 관리들이 매우 깐깐하고 뇌물을 바란다는 것이었다. 버스 위에서 짐을 내린 사람들은 한쪽으로 가 줄을 서는데 모두 주눅 든 표정이었다. 나는 외국인이라 쓰인 책상 앞으로 갔다. 이민국 직원은 뭐가 못마땅한지 다짜고짜 비자가 없다며 신경질을 냈다. 파키스탄은 그 당시 관광의 경우에 비자가 필요없었다.

아무리 설명해도 막무가내였고 “규정을 확인해보라”고 해도 “규정집이 없다”고 하고, “이슬라마바드에 확인해보라”고 해도 “전화가 안 된다”고 했다. 72시간의 통과비자밖에 줄 수가 없다고 해서 옥신각신하는데 관리의 최후 통첩은 ‘싫으면 중국으로 돌아가라’는 것이었다. 이런 경우 참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결국 72시간의 통과비자를 얻어 이슬라마바드에 가서 연장했었다. 그 당시 드나드는 한국인들이 거의 없는 오지의 이민국이다 보니 규정을 잘 모르고 있던 것 같았다.

■여행정보

5월 1일부터 11월 30일까지 공식적으로 길이 열리나 기상 상태에 따라 약간씩 변동된다. 5월에는 해빙기라 산사태가 날 염려가 있어 주의해야 한다. 파키스탄은 예전에는 3개월간은 관광비자를 얻을 필요가 없었지만 현재는 비자면제협정이 파기되어 비자를 얻어야 한다. 타슈쿠르간에는 조그만 호텔이 있고, 서스트에는 허름하지만 여러 개의 호텔이 있어 숙박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단 봄이나 늦가을의 경우 매우 추워서 침낭이 필요하다. 또 이동하다 보면 끼니를 놓치기 쉬우므로 물과 식량을 준비해가는 것이 좋다.

by 100명 2007. 4. 13. 1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