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 기행]뉴질랜드 남섬 퀸스타운
[세계일보 2005-08-18 16:48]

퀸스타운(Queens Town) 은 19세기 중엽 금광이 발견되어 급속히 발전했지만 현재는 뉴질랜드의 대표적인 관광 도시다. 크라이스트처치에서 퀸스타운까지는 차로 약 8시간 걸리는데, 테카포(Tekapo) 호수를 지나면서부터 멀리 서던 알프스 산맥의 눈 덮인 연봉과 그 최고봉인 마운트 쿡(Mount Cook·3754m)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오리족들은 마운트쿡을 아오라키(Aoraki)라 부르는데, ‘구름을 뚫은 산’이란 뜻이다.

구름은 퀸스타운을 향해 달리는 동안 산맥의 중간에 길게 깔려 있었다. 서서히 산맥 따라 이어지는 긴 호수 위에 어둠이 내라앉았고, 희미하게 보이는 긴 띠 모양의 구름과 그 너머 눈 덮인 산맥을 바라보니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의 무대인 중간계로 들어온 것만 같았다.

퀸스타운의 인구는 7500명이고 중심부는 걸어서 한 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지만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장소가 많다. 마오리족 언어로 ‘비취 호수’라는 아름다운 와카티푸 호수, 그 수면 아래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인공 수족관, 곤돌라를 타고 올라가 주변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산 정상의 스카이 콤플렉스 등이 있다.

◇퀸스타운의 레지 번지점프대

그러나 퀸스타운의 가장 큰 매력은 레포츠다. 겨울철에는 스키, 여름철에는 래프팅 제트보트 등을 즐길 수 있는데, 가장 인기 있는 것은 아무때나 할 수 있는 번지점프다. 번지점프는 원래 남태평양의 팬타코스트섬 원주민들이 치르던 성인식의 통과의례였는데, 뉴질랜드인 해켓(A J Hackett)이 고향인 퀸스타운의 카와라우(Kawarau) 다리에서 최초로 상업적으로 시도했다고 한다. 다리에서 강으로 뛰어내리는 47m의 카와라우 번지점프는 물론, 가장 경치가 좋은 43m짜리의 레지 번지(Ledge Bungy), 134m짜리의 네비스 하이와이어 번지(Nevis Highwire Bungy) 등이 있다.

근교의 볼 만한 곳으로는 스노 팜(Snow Farm)이 있다. 퀸스타운에서 카드로나(Cardrona)를 거쳐 산길을 따라 차로 한 시간 반 정도 올라가면 정상에 눈에 뒤덮인 고원지대가 나오는데, 바로 이곳이 한국 영화 ‘남극일기’의 촬영장소였다.

퀸스타운에 오면 밀퍼드 사운드(Milford Sound)를 꼭 가야만 한다. 차를 타고 티 아나우(Te Anau)를 거쳐 서쪽의 해안까지 약 5시간 정도 걸리는데, 특히 티 아나우에서 밀퍼드 사운드에 이르는 120km의 구간은 장관이다. 중간에 호수, 산책길, 폭포 등의 구경거리가 있는데 특히 미러(Mirror) 호수가 눈길을 끈다. 물이 잔잔하고 맑아서 거울처럼 주변 풍경을 수면에 비쳐주고, 거꾸로 된 ‘Mirror Lakes’ 팻말이 수면 속에서 바르게 보인다. 그곳을 지나면 눈 덮인 거대한 산이 정면을 가로막고 1219m의 어두컴컴한 터널을 지나 급경사 길을 미끄러져 내려가면 비로소 밀퍼드 사운드가 나온다.

밀퍼드 사운드는 피오르드랜드 국립공원의 중심지다. 피오르드랜드는 14개의 사운드(sound), 즉 협곡으로 이루어진 뉴질랜드 최대의 국립공원으로 1만2000년 전 빙하의 무게에 의해 산이 파이면서 V자 형태의 계곡을 이룬 후 이곳에 바닷물이 들어와서 형성된 해안이다. 노르웨이의 송네 피오르드와 함께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2시간짜리 크루즈 배를 타고 밀퍼드 사운드로 들어섰을 때 서늘하고 무서운 느낌이 온몸을 덮쳐왔다. 같은 침식 해안이라도 땅이 물속으로 꺼지고 바닷물이 들어온 리아스식 해안, 즉 한국의 다도해 등은 아기자기하고 평온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빙하에 의해 절벽처럼 깎여진 해안과 차갑고 맑은 물, 160m나 되는 보웬 폭포를 비롯한 크고 작은 장엄한 폭포로 이루어진 피오르드 해안은 경외감을 느끼게 했다.

북섬의 오클랜드에서 남섬의 밀퍼드 사운드까지 뉴질랜드의 자연은 평화롭고 낭만적이며 동시에 경이롭기 그지없다.

여행작가

43m 번지점프대 올라서니 다리 후들후들… 끝내 실패

■여행 에피소드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43m짜리 레지 번지를 하기로 했다. 번지점프대에 서기 전까지도 자신 있었다. 그러나 점프대에 서서 까마득한 허공과 밑으로 펼쳐진 거대한 침엽수림을 보는 순간 힘이 쪽 빠져왔다.

공포감은 상상 밖이었다. 머뭇거리자 직원이 뒤에서 달려가며 뛰어내리라고 했다. 그러나 웬걸 겁은 더 났고 찬바람이 온몸을 휘감아 왔다. 심호흡을 하며 허공을 노려보았지만 도저히 뛰어내릴 수가 없었다.

그러자 직원은 줄을 풀며 뒤로 가라 했다. 실패였다. 창피하고 스스로 화가 났다. 그래도 ‘왕년’에는 겁없이 살았던 나였는데 이게 무슨 꼴인가. 내 앞에서 실패했던 서양 여자는 울고 있었다.

후일 집에 와서 나의 실패담을 들은 아내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당신 나이가 오십이 다 되어가는데 무슨 번지점프를….” 하긴 젊다거나 혹은 평소에 그런 운동이나 레포츠를 즐겼다면 모를까, 갑자기 그 나이에 그런 걸 하려 하다니. 그렇게 스스로 위로했지만 여전히 기분이 씁쓸했다. 동시에 번지점프를 하는 이들이 대단해보였다.

■여행정보

번지점프는 시내 인포메이션 센터나 숙소에서 미리 신청한다. 예약한 후에 가야지 아무때나 가서 하는 게 아니다. 하기 전에 간단하게 몸무게만 재는데, 그 외의 건강 상태는 따로 측정하지 않고 순전히 자신의 책임이므로 한국에서 미리 확인하는 게 좋다. 요금은 140뉴질랜드 달러(NZD·약 10만4000원)

렌터카로 갈 경우 밀퍼드 사운드까지 당일치기로 갔다올 수 있다. 퀸스타운에서 교통편과 크루즈까지 모두 엮은 밀퍼드 사운드 일일 투어도 있다. 퀸스타운에서 오클랜드까지의 항공료는 세금을 포함해서 166NZD다. 이곳에서 호주의 시드니로 가는 비행기도 있다. 오클랜드에서 일단 퀸스타운까지 차로 왔다면 시드니로 가든, 오클랜드로 돌아가든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이 시간적·경제적으로 낫다.

◇퀸스타운 시내 모습

by 100명 2007. 4. 13. 1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