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기행] 캄보디아 앙코르 문명
[세계일보 2005-09-01 17:39]

캄보디아 북서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거대한 톤레삽 호수 인근의 정글에 위대한 앙코르 왕국이 있었다. 9세기에 나타난 왕국은 약 600년간 존재했고, 한때 리오스 태국 베트남의 일부까지 다스리다가 15세기에 갑자기 소멸했다.

그 후 잊혀졌던 왕국을 방문했던 이들이 종종 있었는데, 앙코르 문명을 전 세계에 크게 알린 이는 1860년 프랑스의 동식물학자 앙리 무오였다.

앙코르(Angkor)란 말의 유래에 대해서는 설이 많다. 동남아시아 미술사를 연구하는 ‘돈 루니(Dawn Rooney)’ 같은 학자는 “원래 크메르인들은 앙코르 왕국을 ‘캄부자(Kambuja)’왕국이라 불렀고 자신들의 도시를 인도 산스크리트어의 나가라(Nagara·도시)에서 유래한 나크혼(Nakhon)이라 불렀는데, 서양인들이 나크혼을 잘못 들어서 앙코르라 부르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앙코르 문명의 대표적인 사원은 앙코르 와트다. 와트는 사원이란 뜻이니 앙코르 와트란 ‘도시 사원’을 의미한다. 이 힌두교 사원은 수리야바르만 2세 때인 12세기 중엽, 약 30년간에 걸쳐서 완성되었다. 다른 사원들과 달리 입구가 죽음을 의미하는 서쪽에 있어서 아마 수리야바르만 2세의 무덤으로 쓰였거나 천문대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러나 이 사원에는 그 외에도 수많은 의미와 상징이 담겨져 있다. 사원을 둘러싸고 있는 호수 같은 해자는 우주의 대양을 뜻하고 해자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는 것은 인간의 속세, 상대성의 세계에서 신들의 세계, 절대성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원 안에 우뚝 솟은 중압탑의 지성소는 우주의 중심이고 절대자가 살고 있는 메루산(수미산)의 상징이다.

◇앙코르 톰으로 들어가기 전에 있는 54개 악마의 조각들.

본전의 제3회랑에는 힌두교의 대서사시인 마하바라타에 나오는 ‘쿠루 평야의 전투’, 라마야나에 나오는 ‘랑카의 전투’ 그리고 대홍수에 의해 파멸된 세상에서 암리타라는 영생불사약을 얻기 위해 뱀의 몸통을 잡고 뒤흔드는 신들과 악마들, 그 물결 속에서 탄생하는 천상의 무용수들인 압사라 등 풍부한 인도 힌두교 신화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앙코르 와트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치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힌두교의 마누법전에 의하면 우주는 네 개의 흥망성쇠를 겪고 순환한다. 이걸 유가(Yuga)라는 단위로 계산하는데 크리타 유가는 우주의 정법이 모두 지켜지는 시기로, 인간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172만 8000년, 트레타 유가는 우주의 정법이 4분의 3만큼만 지켜지는 시기로 129만 6000년, 드바파라 유가는 우주의 정법이 4분의 2만 지켜지며 86만 4000년이 유지되고, 칼리 유가는 말세의 시기로 43만 2000년이 유지된다. 우리는 현재 말세를 살고 있는데 이 흥망성쇠를 다 합하면 432만년이 되며, 이것이 2000번 되풀이되는 것이 창조주의 하루고, 이것을 1칼파(겁)라 한다.

그런데 베네수엘라의 여성학자 엘리노 마니카(Eleanor Mannika)가 앙코르 왕국시대에 쓰던 큐빗(1Qubit=0.43545m)이란 단위로 사원의 구석구석을 재보니 약간의 오차는 있지만 대략 다리길이는 432큐빗, 다리를 건넌 후부터 참배로가 끝나는 곳까지가 864큐빗, 다리 중간에서부터 제3회랑까지가 1296큐빗, 그리고 다리 시작되는 곳부터 제2회랑까지가 1728큐빗이 나왔는데, 바로 각 유가 주기를 1000분의 1로 축소한 것과 같았다. 이것은 앙코르 와트의 건설자 수리야바르만 2세가 말세와 같은 세상을 우주의 정법이 실현되는 크리타 유가의 시대로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국경에서 시엠리엡까지 다니는 픽업(Pick-up) 트럭.

그 외에도 태양이 움직이는 황도대의 별자리, 달이 차고 이지러지는 시기, 동지, 하지 때 비추는 햇빛의 양 등을 계산해서 우주의 시간을 일정한 공간에 구현해 놓은 사원이 바로 앙코르 와트다.

앙코르 와트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 ‘앙코르 톰(위대한 도시)’의 성벽이 있다. 입구에는 54명의 신(Deva)과 54명의 악마(Asura)가 뱀의 몸통을 잡고 뒤흔드는 모습으로 양편에 늘어서 있고, 성벽에는 거대한 바위로 만들어진 사면 얼굴상이 있어 방문자들을 오싹하게 만든다.

도성 안에는 폐허가 된 왕궁이 있고 중심에는 바이욘 사원이 있다. 집채만한 아발로기데스바라(관음상)의 사면 얼굴상이 가득 찬 기괴스러운 사원인데, 앙코르 왕국의 번성기를 열었던 자야바르만 7세가 만든 불교 사원으로 그는 스스로 관세음보살이라 일컬었다. 그 외에 거대한 문어발 같은 무화과나무 뿌리가 사원의 담장을 움켜쥐고 있는 폐허의 프레아 칸 사원과 타 프롬 사원은 경이롭고 충격적이다. 이처럼 앙코르 문명은 거대하고, 기괴하고, 아름다우며 수많은 상징과 의미를 간직한 독특한 인류의 문명이다.

관광객 급증… 조악한 기념품 파는 아이들 안쓰러워

■여행 에피소드

앙코르 유적지에는 1997년부터 2005년도까지 네 차례에 걸쳐 가보았는데, 7년 동안 관광객은 급증했고 그에 따라 인심도 변해갔다. 2005년도에 갔을 때는 가짜 배표를 파는 이까지 등장했으며 발마사지 업소가 성행하고 나이트 클럽에서는 매춘도 공공연히 이루어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티셔츠, 조잡한 기념품을 팔며 한푼이라도 더 벌려고 달려드는 아이들은 여전했다. 아이들의 눈망울이 맑고 깨끗해서 더욱 마음이 안쓰러운데, 프놈 바켕처럼 산에 있는 사원에서는 음료수 등을 조금 비싸게 팔기도 한다. 가끔 이들에게 야박하게 대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그런데 이들은 이곳 경찰들에게도 돈을 바쳐야 한단다. 내막을 알고 보면 매우 불쌍한 아이들이니 너무 야박하게 대하는 것은 피하는 게 좋을 듯하다.

■여행정보

여행자들은 앙코르 유적지에서 약 6㎞ 떨어진 시엠리엡에서 머물러야 한다. 시엠리엡까지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프놈펜에서 비행기(약 1시간), 배(5시간), 혹은 버스(7시간)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다. 태국 방콕에서 버스를 타고 국경 도시 아란야프라텟까지 간 후, 그곳에서 국경을 통과해 시엠리엡까지 가는 택시 미니버스 픽업 트럭(소형 트럭을 개조해 만든 것)을 이용한다. 4∼7시간 소요되고 길이 안 좋다. 앙코르 유적지 입장료는 1일은 20달러, 3일은 40달러, 일주일은 60달러다. 시엠리엡의 숙소에서 모토바이크(오토바이)를 빌리면 하루에 보통 5∼6달러, 2·3인용 삼륜차를 타면 10달러, 택시를 타면 20달러 정도. 반테이 스레이 사원이나 초기 유적지가 있는 롤루오스 지역을 가면 추가 요금을 요구한다.


by 100명 2007. 4. 13. 1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