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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상의 세계문화 기행]<46>파키스탄 훈자 | ||||
[세계일보 2005-10-06 16:51] | ||||
파키스탄 북부, 히말라야산맥 언저리에 길기트란 도시가 있다.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에는 소발률(小勃律)이란 나라로, 가난한 사람이 많고 산천이 협소하며 논밭이 많지 않은 곳이라 했다. 지금도 역시 이곳 풍경은 삭막하기 짝이 없는데, 시에서 북쪽으로 두 시간 정도 더 달리면 장수마을로 유명한 훈자(Hunza)가 나온다. 일단 가네시라는 곳에서 내려 언덕길을 오르자 포플러나무와 살구나무가 풍성한 산골 마을이 나왔다. 세계의 지붕인 파미르 고원 밑에 있는 해발 2500m의 훈자 마을은 속이 시릴 정도로 공기가 싸늘하고 맑았다. 깎아지른 듯한 벼랑 밑으로는 시퍼런 훈자 강이 도도히 흘렀고, 멀리 해발 7788m의 눈 덮인 라카포시 봉이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살면 장수하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한때 이곳에는 90세 이상이 주민의 3%였고, 80세 이상이 15% 정도였다고 한다. 1978년에 이곳을 방문한 NHK의 보도에 따르면 가장 나이 많은 이가 108세 정도였다. ◇길기트의 비단가게 최고령이라는 나이보다 이들 노인이 건강하다는 점이 더 인상적이었다는데, 100세 넘는 노인들이 수두룩하고 70, 80세 된 노인들은 청년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장수의 비결은 무엇일까. 야채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고, 석회질이 섞인 빙하 녹은 물도 식수로서는 좋지 않았다. 자꾸 음식에서 원인을 찾으려는 이들은 발효시킨 살구씨가 효능이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했었다. 살구씨는 기침과 천식에 효능이 있고 피부를 매끄럽게 하지만, 과연 그것이 장수의 비결이 될 수 있을까. 장수 비결은 맑은 공기와 스트레스 없는 삶, 소식하는 습관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NHK의 인터뷰에서 최고령 노인은 자신의 건강비결은 “하늘의 뜻에 따르며, 식사는 감자나 시금치 등 땅에서 나는 거친 음식을 조금씩 먹는 것”이라고 말한다. ◇길기트의 산에 새겨진 불상 이슬람교를 믿는 이들은 모든 것을 ‘알라’의 뜻에 맡기고 세상일에 신경 안 쓰며 무심하게 살았다. 해가 뜨면 일하고 배고프면 밥 먹는 자연적인 리듬에 따른 생활이었다. 실제로 이곳에서 며칠 있다 보면 세상을 잊게 된다. 간단한 식사를 한 뒤 하루 종일 주변을 산책하거나 바위에 걸터앉아 일광욕을 즐겼는데, 공기가 맑으니 걷는 동안에도 몸이 둥둥 떠가는 것만 같았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늦게 흘렀다. 생체 리듬이 늦게 흐르니 그만큼 주어진 수명도 천천히 소모되어 더 오래 살 수 있는 것은 아닐까. 1933년에 이곳을 방문했던 어느 서양 여행자의 기록에 따르면 훈자 마을에 장이 서기는 했는데 훈자 미르(소왕국의 왕)가 시끄러워서 금지했다고 한다. 또 우체국도 하나 있었는데 이용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을 닫았을 정도로 훈자 사람들은 한적한 삶을 살았다. ◇훈자의 아이들 그러나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이 몰려든 것이다. 관광객들은 이곳저곳에 돈을 떨어뜨리며 바쁘게 돌아다녔고, 훈자 주민들의 마음과 삶도 같이 바빠졌다. 그래서 그럴까, 이들의 평균 수명도 점점 떨어지기 시작해서 지금은 100세 넘는 노인들이 별로 없다고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오히려 평균 수명이 연장돼 초고령사회를 걱정하는데 훈자에서는 반대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거대한 세계화 흐름은 온갖 신화와 전설을 무자비하게 흡수하며 모든 생활을 획일화시키고 있었다. 훈자 사람들이 어디서 왔는지는 불명확하다. 이들이 쓰는 말을 부루샤스키어라 부르는데, 바로 산밑의 가네시 마을 사람들이 쓰는 말과도 달라 이들의 기원에 대해서는 설이 많다. 그들 말로 ‘훈스(Huns)’는 화살이란 뜻인데, 화을 잘 쏘아서 그렇게 불린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있지만 불명확하다. ◇훈자에서 길기트 가는 길 재미있는 가설은 기원전 4세기경 알렉산드로스가 이곳을 점령했을 때 그의 부하 장수인 가와자 아랄이 귀국을 거부하고 이곳에 머물며 자손을 퍼뜨렸거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직접 퍼뜨렸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리스인 비슷한 파란 눈과 곱슬머리가 있는 사람들도 종종 눈에 띈다. 이제 장수마을의 명성은 점점 빛이 바라고 있지만 그래도 길 가는 여행자들에게는 매력적인 곳임에 틀림없다. 저녁이면 히말라야산맥 너머로 태양이 넘어가고 붉은 놀 속에서 기도를 하러 오라는 ‘알라 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도다)’의 스피커 소리가 하늘 높이 울려 퍼진다. 그 저녁 풍경 속에 앉아 있으면 종교와 철학을 떠나, 대자연의 위대함 속에서 마음은 한없이 겸손해지고 평화로워진다. 마음의 여유란 그렇게 자신을 끝없이 낮추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여행작가 ◇기도를 하는 이슬람교도들 ■여행 에피소드 잡담하고 차 마시고… 급할 게 없는 버스운전사 길기트에서 중부의 라왈 핀디까지 국영 버스를 탔다. 오후 1시에 떠난 버스는 세월아 네월아 노래를 부르며 천천히 달렸다. 30분 정도 가다가 버스가 섰는데, 이유는 운전사가 차를 한잔 마시기 위해서였다. 약 30분쯤 더 가다 또 섰다. 이번에는 운전사가 벌판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소변을 보느라 선 것이다. 그러고는 조금 더 가다 마주 오는 버스 운전사를 만나자 한참 동안 잡담을 했다. 정말 운전사 마음대로였다. 그리고 수많은 검문소에서 검문을 받았는데 해가 질 무렵에는 모두 내려 메카 쪽을 바라보고 절하며 예배를 드리느라 20분 정도가 또 소요되었다. 그런데 얼마 안 가다 고장 난 차의 승객들을 태웠다. 승객들은 닭, 개, 염소들을 품에 안고 있어서 버스는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 저녁을 먹느라 또 쉬고…. 그렇게 17시간을 달려 새벽에 라왈 핀디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급할 것 없는, 그러나 너무도 느린 파키스탄의 버스 여행이었다. ◇훈자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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