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기행]<47>파키스탄 페샤와르
[세계일보 2005-10-20 16:54]

파키스탄 중부에 페샤와르란 도시가 있다.

북쪽은 중국, 동쪽은 인도, 서쪽은 아프가니스탄으로 뻗은 길이 교차하는 곳이다.

중국에서 온 비단이 여기를 거쳐 서방과 인도로 갔고, 인도에서 발현한 불교가 이곳을 지나 중국으로 넘어갔다.

지금도 페샤와르는 수많은 물건과 여행자들이 오가는 흥겨운 곳이다.

알록달록한 문양을 그린 트럭이 요란한 경적 소리와 함께 질주하고 삼륜차를 개조해 만든 오토릭샤, 자전거, 당나귀 수레들이 어지럽게 얽히는 거리다.

터번과 회색 숄을 걸친 남자들과 검은 차도르로 몸을 숨긴 채 걷는 여인들이 길거리에서 뒤섞이고 토담집 사이의 골목길에서 아이들은 맨발로 뛰어논다. 이런 무질서와 혼란 속에서도 삶의 생기는 넘쳐 흐른다. 또 구 시가지 노천시장 바자르는 온갖 잡화점과 음식점들이 있고, 카세트 테이프에서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가 늘 넘쳐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난민촌

페샤와르 근교에는 아프가니스탄 난민촌이 있다. 구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을 때 피난온 사람들이 모여 사는데, 소련군이 물러난 뒤에도 이곳에 살고 있다. 그들의 고향, 아프가니스탄으로 가려면 카이베르 고개(Khyber Pass·카이바르 Khaibar)를 넘어야 한다. 페샤와르에서 차를 타고 몇 십분 만 가면 커다란 성채가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카이베르 패스가 시작된다. 이 지역은 기원전 1600년경에 아리안족이 살았고, 기원전 6세기에는 페르시아가 점령했던 곳이다.

카이베르 패스는 거기서부터 한국의 속리산 말티고개처럼 구불구불 온몸을 뒤틀며 뱀처럼 정상을 향해 기어오른다. 지금은 평화로운 길이지만 세계 역사의 파동이 크게 칠 때마다 물결이 넘실거리던 현장이었다. 이 고개를 넘으며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군대는 인도로 향하는 부푼 꿈을 키웠고, 칭기즈칸은 세계 정복의 꿈을 불태웠다. 이슬람 세력이 이 고개를 넘어 인도로 들어갔으며, 영국도 이곳을 지난 인도로 왔다. 카이베르 패스는 이 격동의 사건들을 모두 지켜봤다.

◇페샤와르 거리

카이베르 패스를 넘으면 란디코탈이란 국경도시가 나온다. 예전에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있을 때나 알 카에다가 정권을 잡고 있을 때는 그곳까지밖에 갈 수 없었다. 그러나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현재 수많은 여행자들이 이 고개를 넘어 아프가니스탄의 카불로 간다.

최근 카불에 들렀던 여행자들의 입을 통해 들리는 소문은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엄청나게 사회가 변했고 엄격한 이슬람에 의해 통치됐던 그 도시에 웃음과 몸을 파는 외국 여인들까지 등장했다는 것이다. 테러와 교조주의도 무섭지만 이런 자본과 퇴폐의 침투는 더욱 무섭게 공동체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카이베르 패스 입구의 성채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파키스탄에 살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은 페샤와르 근교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부슈카시(bushkashi)’라는 게임을 한다. 삼륜차를 타고 근교로 가보니 흙담에 둘러싸인 운동장이 나왔고, 그곳에는 20여마리의 말과 기수들이 있었다. 게임은 간단했다. 기수들이 말을 탄 채 목이 잘린 양의 사체를 팔이나 발로 거머쥐고 본부석 앞의 원에 갖다 놓으면 상금을 타는 것이다.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힘든 듯했다.

먼저 늠름한 기수가 양을 잡고 멀리 벗어나더니 그곳에서 양의 한 발을 손으로 잡고 오른 다리로 양의 몸통을 감아 말에 밀착시켰다. 준비를 단단히 한 그는 본부석 앞의 원을 향해 질풍처럼 내달렸다. 그러자 나머지 기수들이 그에게 다가들어 양을 뺏으려 했다. 나중에는 양 다리를 잡고 뺏느라 양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결국 양을 뺏겼다. 편도 없고 자기를 제외한 모든 이가 적인 셈이다. 어떤 이는 채찍으로 양을 잡고 있는 이의 말 잔등을 사정없이 후리기도 했다. 이 어려움을 뚫고 어떤 이가 양을 원에 갖다 놓자 즉석에서 100루피의 상금이 수여되었다. 게임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되풀이 되었다.

◇부슈카시

기수와 말이 겪는 고통은 대단해 보였다. 어떤 기수가 모자를 벗자 머리에서 모락모락 김이 솟아오르고 기진맥진한 표정을 지었다. 가끔 낙마해 말발굽에 밟히는 이도 있었다. 여기서는 말이 20∼30마리지만 원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100마리도 넘게 참가한다고 하니 부슈카시는 상당히 격렬하고 위험한 기마민족의 경기로, 세련된 서양의 폴로 게임이나 우리의 격구 게임의 원형처럼 보였다. 페샤와르는 빈곤하지만 이렇게 여러 문화의 원초적인 흔적을 맛볼 수 있는 매력적인 여행지다.

여행작가

■여행 에피소드

무기제조에 능한 파탄족 청년

"호신용 권총사라" 강권에 진땀

페샤와르 남쪽 약 40㎞ 지점에 ‘다라’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파키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에 걸쳐 사는 파탄족(Pathans)의 마을이다. 파탄족은 알렉산드로스 대왕, 영국군, 구 소련군에게 타격을 주었고, 근래에는 미군을 괴롭히고 있는 용맹한 산악 부족이다. 이들은 무기 제조에도 매우 능해 어떤 무기든 한번만 보면 몇시간 내에 뚝딱 만들어내는 재주를 가졌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다라에 가자마자 이쪽저쪽에서 총소리가 들려왔고, M16을 든 청년이 다가와 총을 쏘라고 권했다. 공터에서 약 2000원을 주고 10발 정도 쏘았다. 그 후 청년은 나를 무기공장으로 데려가 소련제 칼라슈니코프, 박격포 등을 보여주다가 볼펜 총을 호신용으로 사라고 자꾸 권했다. 이들은 이런 무기를 만들어 무자헤딘(성전 전사)들에게 파는 것이다.

주변에는 마리화나나 해시시 같은 마약을 만드는 집들도 있었다. 세숫대야만큼 커다란 해시시를 들고 사라는 통에 난감했다.

이 마을은 파키스탄 경찰도 건드리지 못하는 치외법권 지역이라 했다. 내 말을 듣고 이곳에 가려다 잘못해서 ‘바라’라는 곳을 갔다온 후배가 있는데 죽을 뻔했다고 한다. 그곳은 더 험악한 곳이고 웬만한 외국인은 납치당하는지라 파키스탄 사람들도 가지 못하는 곳이니, 다라와 바라를 잘 구별해야 한다.

■여행정보

카이베르 패스는 여러 명이 팀을 만들어 차를 대절해 가는 것이 편리하다. 다라는 개인적으로 갈 수도 있고 투어에 동참할 수도 있다. 아프간 난민의 부슈카시를 보려면 오토릭샤를 타고 펠다우스라는 곳으로 간 뒤 그 근방에서 호나산 캠프로 가는 스즈키(삼륜차)를 타면 된다.

by 100명 2007. 4. 13. 1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