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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상의 세계문화 기행]<48>인도 간다라의 스와트 계곡 | ||
[세계일보 2005-11-17 22:12] | ||
간다라 지방의 중심지는 탁실라(탁샤실라)와 스와트 계곡이다. 인도에서 북상한 불교는 탁실라를 거쳐 스와트 계곡에서 꽃을 피웠다. 스와트 계곡까지 가는 길은 그리 쉽지 않았다. 밤에 미니버스를 타고 달리는데, 컴컴한 어둠 속에서 창밖을 내다보니 절벽 위를 달리고 있었다. 아스라이 내려다보이는 계곡 밑의 노란 불빛들이 마치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세상 같았다. 아차 하면 황천길인데, 버스가 커브를 돌 때마다 바퀴와 절벽 사이의 폭이 한 뼘 정도밖에 안 되어서 간이 콩알만 해졌다. 스와트 계곡의 중심 도시는 유적지가 많이 모여 있는 밍고라(Mingora)와 행정관청이 있는 사이두 샤리프(Saidu Sharif)다. 밍고라는 밝고 번화한 소도시로 파키스탄인들에게는 신혼여행지로도 잘 알려져 있고, 사이두 사리프는 그곳에서 걸어서 30분 정도밖에 안 걸린다. 그리고 조금만 교외로 나가면 들판이 펼쳐지고 산들이 솟구쳤다. 이런 풍경 속에서 그 옛날 불교문화가 크게 번성했던 것이다. 서기 7세기경 스와트 계곡의 불교문화가 이미 내리막길을 걷고 있을 때 이곳을 방문한 당승 현장은 약 1400개의 불교 사원이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그러니 이 당시 스와트 계곡은 염불 외는 소리와 승려들의 수행 열기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그 후 힌두교 세력에 밀리다가 10세기경에 들이닥친 이슬람교에 의해 초토화되었고, 불교 유물은 박물관에 남아 있다. ◇부트카라 지방의 평화로운 풍경 박물관에 들어서니 길이 93㎝, 너비 76㎝의 까만 돌인 스와트의 불족석(佛足石)이 보였다. 전설에 따르면 스와트 강에는 ‘고파’라는 몹쓸 용이 살았는데, 해마다 홍수를 일으켜 많은 희생자를 내었다. 당시 이 지방을 다스리던 왕 아사나진은 부처의 신통력을 빌려 이 악룡을 퇴치하고자 부처를 초빙했고, 부처가 이 악룡을 퇴치한 후 남긴 것이 바로 불족석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는 우상숭배라 하여 부처 상을 만들지 못해 상징적으로 보리수나 연꽃, 수레 바퀴, 불족석 등을 만들었는데, 이 불족석은 믿음에 따라 길게도 보이고 짧게도 보인다고 한다. 박물관에는 여러 종류의 반지, 상아로 만든 목걸이와 함께 바가지, 옹기, 절구 모양의 오일램프, 촛대 등 다양한 것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부처의 사리를 날랐다는 쌍혹낙타상을 비롯해 부처의 생애에 관련된 수많은 부조와 조각들이 보였는데, 특히 불상의 모습이 재미있었다. 콧수염이 난 불상, 곱슬머리의 불상 등 매우 다양한 모습 속에 어떤 것은 그리스의 철학자 같은 느낌도 들었다. 석가모니의 실제 얼굴은 어떻게 생겼을까? 흔히 인도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카필라국의 석가족으로 현재 네팔 지방의 룸비니에서 탄생했다. 그래서 부처는 인도인이 아니라 네팔인을 닮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어쨌든 사람들은 부처의 얼굴을 새기면서 사실은 자신의 얼굴을 새겼던 것이다. ◇부트카라의 아이들 박물관의 유물들은 부트카라(Butkara)에서 출토된 것이 많다. 부트카라는 밍고라와 사이두 샤리프 사이에 나지막한 산에 둘러싸인 마을로 박물관 근처의 산길을 따라 올라가니 나왔다. 스와트의 옛 이름은 우디아나, 즉 ‘아름다운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는 정원’이란 뜻을 갖고 있다. 그 옛 이름에 걸맞게 스와트 계곡의 풍경은 매우 아름다웠다. 멀리 하얀 잔설이 덮인 산들이 보였고 밭에는 파릇파릇한 배추들도 보였다. 길가의 노란 가로수 잎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였고, 시냇물과 돌담장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겼다. 불교 흔적은 부트카라를 관통하는 대로에서 조금 벗어나 있었다. 아이들의 안내를 받아 낮은 언덕을 넘어 들어가 보니 커다란 사원의 터전이 나왔고, 그곳에 흙으로 만든 스투파(Stupa)들의 흔적이 보였다. 스투파는 불탑의 원형으로, 원래는 봉긋한 봉분 모양의 인도 화장묘 양식이었으나 석가모니 입적 후 불사리를 봉안하면서 예배의 대상이 되어 여러 가지 형태의 탑으로 발전하였다. 동남아시아로 전해지며 하늘을 향해 치솟은 파고다로 변했고, 중국으로 와서는 목탑 석탑의 형태로 발전하게 됐다고 한다. 부트카라에 남아 있는 스투파는 원형의 모습에 가까웠다. ◇스투파 유적 그 외에도 스와트 계곡에는 우데그람(Udegram, 옛이름 오라·Ora) 이란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현지인들이 전투를 벌였으며, 한때 이곳을 다스렸던 힌두교 왕의 성채도 산 정상에 남아 있었다. 고대 역사와 문화의 향기를 흠뻑 맛볼 수 있고, 아름다운 전원풍경과 사람들의 따스한 인정을 느낄 수 있는 간다라 지방은 언제나 다시 가보고 싶은 매력적인 곳이다. 여행작가 ■여행 에피소드
저녁 식사를 하고 나니 밍고라 거리에는 이미 컴컴한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거리를 어슬렁거리는데 손수레에 커다란 솥을 올려놓고 죽을 파는 사내가 있었다. 뭐냐고 물어보니 사내는 영어를 하지 못했다. 다만 자기 손으로 머리를 가리키고 팔을 들어 알통을 만들어 보였다. 추측건대 머리가 좋아지고 힘이 세진다는 소리 같았다. 한 그릇 먹어보니 팥죽 맛이었다. 가격은 1루피(약 17원)였다. 주인 사내는 한 그릇 더하지 않겠느냐는 듯 죽을 더 퍼주려고 했다. 그만 먹겠다고 한 후 1루피를 주니 사내는 받지 않으며 이렇게 말했다.“프레센트(선물), 프레센트…” 순간 당혹스러웠다. 이것을 팔아 얼마나 번다고, 나에게 돈을 안 받는단 말인가. 손에 돈을 쥐어주려 했지만 한사코 그는 받지 않았다. 옆에서는 아들로 보이는 열살 남짓 해보이는 비쩍 마른 아이가 애를 쓰며 아버지를 거들고 있었다. 여행길에서 늘 나에게 힘이 된 것은 바로 이런 가난하고 초라한 사람들이 베푸는 소박한 친절과 호의였다. ■여행정보 스와트 계곡에는 1000, 2000원 남짓 하는 배낭족 숙소부터 최고급 호텔까지 다양하다. 관광객이 넘쳐 숙소가 모자랄 경우는 이곳에서 약 50㎞ 떨어진 자연이 매우 아름다운 작은 마을 마디안으로 가면 된다. 이곳에는 저렴하고 쾌적한 숙소가 많다. 페샤와르에서 밍고라까지는 미니버스로 세 시간 반 정도 걸리고, 밍고라에서 계속 한 시간 반 정도 더 가면 마디안이 나온다. ◇간다라 지방의 민속의상(왼쪽), 밍고라 박물관의 간다라 불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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