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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상의 세계문화기행]<49>베트남의 심장 호찌민시 | ||||||||
[세계일보 2005-12-01 17:30] | ||||||||
베트남 남부에는 한때 우리가 ‘월남’이라 부르던 나라가 있었다. 참혹한 내전 속에서 요동치다가 30년 전 소멸한 나라. 그 월남의 수도였던 곳이 사이공이고 현재는 호찌민이라 부른다. 호찌민시에는 예전의 월남 대통령이 살던 통일궁과 미군의 전쟁 범죄를 전시한 전쟁기념관도 있으며 아름다운 노트르담 성당도 있지만, 역시 호찌민시를 호찌민시답게 만드는 것은 오토바이와 시클로 물결이다. 끊이지 않는 그 행렬은 마치 강물처럼 호찌민시에 넘실거리고 있다. 그리고 하얀 아오자이 자락을 휘날리며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학 같은 여학생들의 해맑은 웃음을 보면 ‘과연 이 나라가 20세기의 가장 참혹한 전쟁을 겪었던 나라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화롭다. 1993년 3월부터 지금까지 다섯 차례를 방문하는 동안 이 도시는 급격하게 변했다. 처음에 사람들은 한국을 ‘남주띤(남조선)’이라 불렀고 호찌민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여행허가증을 받아야 했으며 거리 곳곳에는 빈곤과 매춘이 배어 있었다. 개방 정책을 취한 직후였는데 거리의 시클로 운전사들은 “헬로, 맛사(마사지), 맛사”를 외쳤다. 그리고 8년이 지난 후 가보니 모든 게 변해 있었다. 중심지 동코이 거리의 허름했던 건물들은 예쁜 기념품 상점과 카페, 식당가로 탈바꿈해 있었다. 여행자들도 어디든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었며, 남주띤이 아닌 한꿕(한국)의 영화배우 장동껜(장동건)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해서 ‘베트남 대통령 선거에 나오면 될지도 모른다’는 농담이 한국 교포들 사이에 퍼질 정도였다. 그렇게 시작된 한류의 물결은 지금은 더욱 넘실거리고, 베트남과 호찌민시는 해가 갈수록 발전했다. 몇 년 있으면 경전철이 생긴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또 이미 호찌민시의 집값은 서울의 변두리 집값과 맞먹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런 변화 속에서 사라지는 것들이 있다. 시클로다. 자전거를 개량한 앞바퀴 두 개, 뒷바퀴 하나인 시클로는 낭만적이다. 햇빛 가리개가 만들어주는 그늘 속에 몸을 반쯤 뉜 채 느긋한 세상의 방관자가 되어 거리를 바라보노라면 둥둥 떠가는 것만 같다. 시클로는 원래 인력거에서 왔다. 일본에서 ‘진릭샤’라고 불리던 인력거를 자전거와 연결한 것이 사이클 릭샤다. 동남아에 퍼져 나가면서 조금씩 변형되었고 나라마다 이름이 다른데, 베트남에서는 시클로(cyclo)라 부르고 있다. 이제 시클로는 택시의 등장과 오토바이의 증가로 급격하게 줄었고, 거리의 교통을 방해한다고 출입을 제한당하는 곳이 많아졌다. 베트남의 아까운 문화 하나가 그렇게 소멸되는 중이다. 베트남 여행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쌀국수 ‘퍼(Pho)’다. 퍼의 원조는 하노이다. 유래에 대해서는 설이 많은데, 가장 널리 알려진 설은 19세기 하노이를 지배했던 프랑스 귀족들이 소고기만 먹고 뼈를 버리자 가난한 베트남인들이 그 뼈를 고아서 국물을 내고 쌀국수를 말은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점점 남하하면서 베트남 전역에 퍼졌다. 세계 각국에 퍼뜨린 사람들은 월남 패망 후 미국, 호주 등지로 건너간 ‘보트 피플’들이었다. 그것이 미국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크게 인기를 끌다가 체인점이 한국에도 상륙했는데, 서양인들 입맛에 맞게 조금 변형시킨 것이다. 쌀국수 퍼는 북쪽과 남쪽의 맛이 조금 다르다. 북쪽의 것을 퍼박, 남쪽의 것을 퍼남이라고 하는데, 현재 한국에서 먹는 쌀국수는 대개 퍼남의 영향을 받았다. 남쪽은 숙주 나물, 파슬리 등 많은 야채와 생선 발효 소스인 ‘느억맘(nuocmam)’을 넣고 또 향신료 고수(코리앤더)를 넣는다. 북쪽은 느억맘 대신 식초 절임 마늘과 고추장 소스를 타서 새콤하면서 매콤하다. 원래 쌀국수는 소고기가 얹힌 것을 말하는데, 점점 발전하여 소고기 얹힌 것을 퍼보(Pho Bo), 닭고기가 얹힌 퍼가(Pho Ga)로 나누고 점점 여러 종류가 나왔다고 한다. 맛있는 쌀국수를 먹은 후 카페에 앉아 베트남 커피를 마시며 흘러가는 자전거와 오토바이 물결을 바라보노라면, 문득 빈곤해보이는 사이공은 삶의 열기와 여유가 넘쳐 흐르는 풍요한 도시로 다가오게 된다. 여행 작가
■여행 에피소드 호찌민시에 처음 들렀을 때 한나절 동안 시클로를 세내어 돌았었다. 시클로 운전사들은 바가지를 많이 씌우는 편이어서 처음에는 경계했는데, 나이가 55살이라는 그는 간단한 영어를 할 줄 알았고 인상이 좋아 보였다. 이곳저곳을 돌아본 후, 저녁나절 거리의 카페에서 음료를 마셨다. 그는 월남 정부군 병사였는데 통일 후 1년 동안 재교육을 받은 뒤 17년째 시클로를 몰고 있다며 회한이 서린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호찌민을 좋아합니까?” 나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한동안 나를 쳐다보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좋은 사람이라면 좋은 것이고, 그가 나쁜 사람이라면 나쁜 것이지. 내말 알아듣겠어요?” 선문답 같은 그의 말에 어리둥절했는데, 그는 어금니를 꾹 깨물며 허공을 쳐다보았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기구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끼여버려 자신의 삶이 다 뒤틀린 그로서는 호찌민이 좋을 리는 없었을 것이다. 12년 전의 일이니까 지금 그의 나이 67세. 그는 은퇴했을까, 아니면 어디선가 아직도 시클로를 운전하고 있을까.
■여행 정보 동코이 거리에 트윈룸에 20∼30달러짜리 중급 호텔부터 최고급 호텔들이 몰려 있다. 그곳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떨어진 팜응우라오 지역의 데탐 거리에는 3∼4 달러의 도미터리, 싱글룸이 10달러 안팎인 저렴한 호텔들이 많이 있다. 아쉽게도 시클로는 점점 사라지고 있고, 그나마 남은 것들은 바가지가 심하다. 미터기 택시를 타면 저렴하고 안전하게 시내에 다닐 수 있다. 쌀국수 집은 너무나 많은데 여행자들에 인기 있는 곳 중의 하나는 벤탄 마켓 근처에 있는 ‘퍼 2000’. 대중식당인데 2000년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퍼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가는 바람에 유명해졌다. 매우 맛있다. 퍼보가 1만8000동(약 1300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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