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네오섬 사바주의 산다칸이란 도시 근처에는 세계에서 4곳밖에 없는 오랑우탄 재활지가 하나 있다. 상처 입거나 어미 잃는 등 자생력이 없는 오랑우탄들을 보호해주는 ‘세필록 오랑우탄 재활지’다. 오랑우탄들은 숲 속에서 자유롭게 살다가 원시림 가운데 설치해 놓은 연단으로 오전 10시, 오후 2시에 몰려 든다. 먹이를 주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은 열대림 무성한 정글 속으로 들어가 이 광경을 구경할 수 있다. 시간이 되어 관리인이 과일이 든 양동이를 갖고 나타나면 오랑우탄들이 모여드는데, 이때 원숭이들도 함께 나타난다.
원숭이들은 서로 먹이를 뺏으며 방정맞게 싸우지만 먹이가 넉넉하다는 것을 인식한 오랑우탄들은 바쁘지 않다. 가끔 수컷이 먹고 있는 바나나를 암컷이 뺏어도 수컷은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른 것을 집어 먹는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이 가져가면 그냥 내버려두듯이.
말레이시아어로 ‘오랑’은 사람이고 ‘우탄’은 숲이란 뜻이니, 오랑우탄은 ‘숲 속에 사는 인간’을 의미한다. 진화론에 의하면 3000만년 전부터 인류,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들의 공통 조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1000만년 전에 오랑우탄이 분화가 되고 나서 800만년 전에 고릴라, 500만년 전에 침팬지와 인류가 각각 분화되었다고 한다.
인간의 기원에 대해서는 창조론과 진화론이 아직도 논쟁 중이니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겠지만, 오랑우탄은 침팬지·고릴라와 함께 인류와 매우 가까운 존재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이런 자연 친화적인 관광지의 예는 또 있다. 산다칸에서 배를 타고 약 한 시간 정도 가면 플라우 셀링간(셀링간 섬)이 나온다. 이 섬은 거북이들이 알을 낳는 곳이라서 거북이 섬이라고도 불린다. 셀링간 섬뿐만 아니라 근처의 섬에서는 호크스빌거북이, 녹색거북이들이 8월에서 10월 사이에 알을 낳는다. 하지만 한때 쥐, 새, 상어, 도마뱀 그리고 사람들이 거북이 알을 먹어서 멸종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말레이시아 정부가 사바주 앞바다의 셀링간 섬, 바쿵간 케칠 섬, 굴리산 섬들을 특별히 보호하면서 거북이이은 점점 늘어났고, 그 중에서 셀링간 섬이 관광지가 되면서 세상의 이목을 끌게 되었다.
관광객이 오면 많이 훼손될 텐데도 잘 보존되는 이유는 지난 30년간 철저히 보호하고 통제했기 때문이다. 섬의 숙소는 한정되어 있어서 수십명 정도밖에 머물지 못하고 사전 예약제로 운영한다. 또 숙박요금이 높아 자연스럽게 사람을 통제하는 효과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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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인간들과 늘 함께 있던 오랑우탄 암컷, 오랑우탄에게 먹이 주는 것을 구경하는 관광객들, 고독한 오랑우탄, 세필록 오랑우탄 재활지 근처의 펜션.< td> |
거북이 섬은 한 바퀴 도는 데 한 시간 정도밖에 안 걸리는 조그만 섬이다. 낮에 자유롭게 이곳을 돌아볼 수 있지만 산호초가 많아 수영을 하기에는 곤란하다. 백사장에는 조그만 탱크가 지나간 것처럼 거북이들이 지나간 흔적들이 보이는데, 오후 6시 이후부터 오전 6시까지는 개인적으로 해안가에 나갈 수 없어 가이드와 함께 돌아봐야 한다.
이때는 거북이 사진도 찍을 수가 없다. 오후 8시부터 모두 로비에 모여 앉아 가이드로부터 거북이 섬에 대한 설명을 듣다 보면 해안가 경비원에게서 무전기로 연락이 오기 시작한다. “현재 한 마리 상륙, 두 마리 상륙!” 이 말을 듣는 순간, 관광객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기대에 들뜬다. 잠시 후 모두 바닷가로 몰려가 아이 몸집만큼 커다란 거북이가 네 발로 모래 구덩이를 파고 알을 낳는 광경을 보게 된다. 관리인은 거북이가 알을 낳는 대로 열심히 주워서 양동이에 담고, 또 많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구경을 하건만 청각이 약한 거북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알을 다 낳은 후 모래로 빈 구덩이를 덮는다.
탁구공만한 거북이 알은 부화장의 구덩이에 묻혀 사람의 관리에 들어가는데, 지붕을 설치해서 그늘로 지열을 낮춘 곳이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다. 지붕 밑 서늘한 구덩이에서는 수컷이 태어나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암컷이 나오는데, 약 50∼60일 후에 스스로 깨어난 거북이들은 모래를 뚫고 올라온다.
부화장에 알을 파묻는 것을 보고 나면 관광객들의 손바닥 위에는 거북이 새끼들이 한 마리씩 놓인다. 예전에 묻었던 알에서 방금 부화한 거북이 새끼들이다. 사람들은 짜릿한 흥분 속에서 바닷가로 나가 방생하고, 캄캄한 한밤중에 파도 치는 거친 바다를 향해 필사적으로 달리는 거북이 새끼들을 향해 손뼉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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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부터 거북이 부화장, 셀링간 섬 안의 숙소, 아이와 함께 거북이 섬으로 가는 관광객. |
그렇게 그들의 행운을 기원하건만 갈매기, 물고기들에게 먹히고 또 자연사해서 3%만이 어미 거북이로 성장해서 알을 낳으러 이곳에 온다고 한다. 8월 성수기에는 하루에 상륙하는 거북이가 10∼20마리고, 한 마리가 보통 100개 전후의 알을 낳게 되는데, 현재 이곳은 생태 관광지로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
오랑우탄 재활지나 거북이 섬은 관광지화되었으면서도 동시에 동물들이 보호되는 성공적인 정책의 산물로 보이는데, 거기서 얻은 수익금은 멸종해가는 오랑우탄과 거북이 보호에 투자되고 있다 한다.
여행작가(blog.naver.com/roadjisang)
■여행 에피소드
세필록 오랑우탄 재활지에는 특이한 암컷 한 마리가 있었다. 관리인이 먹이를 주는데도 그곳에 가지 않고 사람들과 함께 서서 먹이를 먹는 오랑우탄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또 자신의 사진을 찍는 인간들을 우수에 찬 눈초리로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마치 자신의 정체성과 처지에 대해서 고뇌하고 슬퍼하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도 그 고독해보이던 오랑우탄이 생각난다. 오랑우탄들은 가끔 근처에 있는 숙소의 문을 열고 들어오기도 한다. 어떤 이는 밤에 오랑우탄이 슬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와 책상 위에 있는 미네랄 워터를 마신 후 유유히 사라져서 기가 막혔다는데, 침팬지도 그렇지만 확실히 오랑우탄들도 지능이 높고 자아 의식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행 정보
세필록 오랑우탄 재활지, 거북이 섬 모두 일단 산다칸이란 도시로 가야 한다. 코타키나발루에서 버스를 타면 약 5시간 걸린다. 대개 중간에 키나발루산을 거쳐 산다칸으로 간다. 세필록 오랑우탄 재활지는 산다칸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걸리고, 거북이 섬은 배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산다칸, 세필록 오랑우탄 재활지 근처, 거북이 섬 등에는 다양한 숙소가 있다. 거북이 섬은 거북이가 알을 많이 낳는 8월이 성수기로, 현지 여행사에 신청해야 갈 수가 있다. 깊은 정글로 들어가지 않는 한, 말라리아 문제는 심각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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