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기행] <60>메콩 델타
[세계일보 2006-05-25 21:12]

저 멀리 티베트 고원에서 발원해 중국, 미얀마는 물론 라오스, 태국, 캄보디아를 거쳐서 베트남으로 흘러 들어가는 장장 4500㎞의 메콩강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젖줄로, 그 중에서도 베트남인들에게 가장 많은 축복을 내려 주었다.

베트남은 현재 세계 수출국 2위일 만큼 쌀이 많이 나는데, 대부분이 메콩 델타 지역에서 생산된다. 베트남 국토의 12% 정도지만, 여기서 생산되는 쌀이 수출량의 80%를 차지하니 메콩 델타 지역이 베트남인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이 풍요로운 메콩강 유역을 돌아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개인 여행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법은 저렴한 여행자 숙소가 많이 모여 있는 호찌민시 데탐 거리의 여행사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을 실은 버스가 호찌민 시내를 통과하는 동안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달린다. 호찌민시의 인구 약 750만명 중에 250만명이 오토바이를 탄다. 일본의 혼다와 스즈키는 4000달러지만 중국제 조립품은 400달러로, 특히 개방정책 이후 외국 거주 교포들의 송금 덕택에 오토바이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났다고 한다.

한두 시간 후 버스가 메콩 델타 지역에 들어서면 논이 끝없이 펼쳐지고 간간이 하얀 석조물들로 치장된 무덤들이 보인다. 이 지역은 논이 많다 보니 화장 문화도 영향을 받아 논에 무덤을 쓰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 낯익은 것은 여인들이 쓰고 다니는 논라(Non La)라고 불리는 원뿔형의 모자다. 베트남전 당시 우리에게는 한때 ‘베트콩 모자’라고 알려졌지만 원래 논(Non)은 모자, 라(La)는 잎이라는 뜻으로 얼굴이 타는 것을 막기 위해 여자들이 주로 쓰고 다닌다.

이렇게 낯설면서도 한편으론 익숙한 풍경을 헤치고 가다 보면 미토(My Tho)라는 도시가 나온다. 메콩 델타 입구에 있는 이 도시는 한때 화교들이 많이 살아서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지만, 베트남 공산화 이후 이들이 많이 떠나면서 빈곤한 도시가 됐다.

이 도시의 나루터에서 여행자들을 실은 조그만 배는 황토빛 강물이 출렁거리는 거대한 메콩강을 가로질러 얼마 후 거북이 섬에 들렀다. 잎이 넓적한 활엽수와 바나나나무 등이 우거진 좁은 수로를 따라가자 수많은 베트남전 영화에서 눈에 익은 풍경들이 펼쳐졌다. 숲 그늘 아래서 물은 녹색을 띠고, 가끔 들리는 새소리만이 적막함을 깨뜨린다. 미끄러지듯이 정글 깊숙이 들어가는 동안 불쑥 조그만 다리가 나타나고 그 다리 위로 노인이 유령처럼 천천히 걸어간다.

간신히 다리 밑을 통과한 배는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수로를 따라 깊고 깊은 정글 속으로 들어간 후 외진 곳에 상륙했다. 이곳에서는 베트남 여인들이 코코넛의 하얀 속살을 긁어내 달궈진 솥에 넣어 녹인 후, 여러 재료를 넣어 꾸둑꾸둑하게 말려 코코넛 캔디를 만들었고, 그 후에 들른 다른 섬에서는 벌꿀차와 독한 바나나 술을 대접받았다.

군대 간 남자를 그리워하는 베트남 여인의 슬픈 노래도 들을 수 있었고 커다란 구렁이를 목에 감고 돌아다니는 뱀 쇼도 있었는데, 이렇게 메콩강의 정취를 돌아보고 호찌민시로 귀환하다 보면 어느샌가 붉은 해가 서녘 지평선을 붉게 물들인다.

두 번째로 메콩 델타의 도시 껀터(Can Tho)를 출발하여 메콩강을 돌아보는 방법이 있지만, 이곳은 호객 행위가 너무 심하고 개인적으로 여행하려면 꽤 비싼 비용을 내야 하기에 많은 여행자들은 호찌민시에서 단체 투어를 선호한다.

다만, 껀터에 왔다면 근처의 속짱(Soc Trang)이란 도시에 들러볼 만하다. 한국의 1960, 70년대를 생각나게 하는 낡은 버스를 타고 두어 시간 가면 도착하는데, 이곳에는 캄보디아의 흔적이 서려 있다.

캄보디아계인 크메르족이 약 28% 정도가 살며 그들이 세운 불교 사찰들이 있다. 그 중에서 쭈어 줘이(Chua Doi·박쥐사)란 절은 박쥐로 유명하다. 주택가 근처에 있는 이 절의 커다란 나뭇가지에는 박쥐들이 시커먼 비닐처럼 축축 늘어져 매달려 있는데, 새벽과 해지기 한 시간 전에 먹이를 구하기 위해 일제히 날아오르는 광경이 볼 만하다.

더욱 즐거운 것은 돌아오는 길에 감상하는 메콩 델타의 풍경들이다. 야자나무 아래서 ‘해먹(그물망)’을 치고 누워서 낮잠을 자는 청년, 메콩강변의 수상 가옥들, 버스 안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가야금 소리 비슷한 베트남 악기 연주 소리….

이윽고 메콩강 너머로 해는 넘어가고 숲의 그늘은 길어지며 민가 근처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때 서늘한 바람을 헤치면서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하얀 아오자이 차림의 여학생들은 순결한 학처럼 보인다.

삶이든, 여행이든 목적지보다는 과정에서 만나는 이런 소박한 풍경들이 더욱 감동을 준다.

여행작가(blog.naver.com/roadjisang)

■여행정보

메콩 델타 투어는 호찌민시 데탐 거리의 수많은 여행사에서 다루고 있다. 해마다 오르기는 하지만 왕복 교통비, 보트비, 식사비, 가이드비가 다 포함된 여행 가격이 7달러 정도로 저렴하다. 껀터에서 속짱까지는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간다. 사람들이 짐을 많이 갖고 타서 마치 피난민 버스 같고, 천천히 달려서 약 2시간30분 걸린다.

■여행 에피소드

버스 안에서 졸면서 달리고 있을 때였다. 비몽사몽간에 창밖을 내다보았는데 ‘증산교, 현대APT―홍제 지하철’이라는 노선판 붙인 버스가 스쳐가는 게 아닌가.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한국의 어딘가를 달리고 있다는 착각 속에 빠졌다. 베트남뿐만 아니라 동남아 여러 곳, 그리고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이런 중고 버스를 본 적이 있다.

베트남 도로를 달리다 보면 한글이 종종 눈에 띈다. ‘○○ 스포츠센터’ ‘○○ 백화점’ 등의 한글이 적힌 버스들이다. 버스가 낡아 한국에서 운행이 금지되자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 등지에 헐값에 팔렸다고 한다. 이런 버스에 새로 페인트칠을 해서 깨끗하게 단장할 수도 있지만 페인트 비용도 부담스럽고, 또 베트남에서는 한글을 지우면 오히려 값이 안 나가서 일부러 안 지우고 다닌다는 얘기도 있다. 그만큼 한국의 국가 이미지가 좋고 한글이 대접을 받기에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데, 우리는 베트남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생각하면 안타까울 때가 많다.

by 100명 2007. 4. 13. 1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