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기행]<61>베트남 국경도시 쩌우 독
[세계일보 2006-06-08 21:54]

캄보디아에서 베트남으로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예전에는 프놈펜에서 버스를 타고 호찌민까지 갔는데, 12시간이 걸리는 매우 불편한 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여행자들이 수로를 이용하고, 시간도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 버스를 타고 두 시간 정도 달리니 허장강의 선착장이 나왔다. 라오스에서 내려온 메콩강과 톤레삽 호수에서 내려온 허장강은 프놈펜 부근에서 만난다.

베트남의 국경도시 쩌우 독(Chau Doc)으로 가는 배 역시 허장강을 따라 내려간다. 대기하고 있던 배 안에는 좌석이 있건만 여행자들은 거의 다 지붕 위로 올라가 적막한 강을 바라보았고, 남국의 따스한 바람이 한 시간 정도 볼을 스치자 캄보디아 영토의 끝이 나왔다. 육지로 내려가 입국 수속을 밟은 후, 다시 배를 타고 5분 정도 가자 베트남 국기가 달린 이민국이 나왔다.

입국 수속을 마친 후 들어선 베트남 쪽의 허장강에는 적막한 캄보디아 쪽과는 달리 활기 찬 삶의 기운이 서려 있었다. 원래 이 지역은 한때 캄보디아의 영토였고 아직도 크메르족들이 많이 살고 있다. 하지만 뾰족한 고깔 모자 ‘논라’를 쓰고 배를 젓는 여인들의 모습에서 여기는 베트남 땅이란 것을 강하게 깨닫게 된다.

그런 길을 2시간 정도 달린 후에 배는 쩌우 독에 도착했다. 국경 도시 쩌우 독은 많은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관광객에 의해 덜 오염되었고 현지인들의 꾸밈없는 삶이 펼쳐지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그리 크지 않은 도시의 중심지에는 온갖 과일과 꽃, 건어물이 들어선 시장이 있었고, 강변에는 허름한 목조 가옥들이 다닥다닥 붙은 채 강 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곳에서 뱃삯을 흥정해 나룻배를 타고 강 한가운데 떠 있는 수상가옥촌을 찾아갔다.

중간에 커다란 그물이 쳐진 물고기 양식장이 보였다. 쩌우 독은 물고기 양식으로 유명하고, 여기서 생산한 물고기들을 외국에 수출한다고 한다.

누런 황토빛 메콩강 위에 드문드문 떠 있는 수상가옥들의 마루에 중년 여인들이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옆집 노인은 책을 보고 있었는데, 마침 눈이 마주쳐서 들어가도 되겠냐고 묻자 흔쾌히 허락했다. 말은 안 통했지만 한국에서 온 손님을 반기며 노인은 차를 대접했다.

수상가옥에서 제일 궁금했던 것은 가옥 안에 설치한 양식장이었다. 이 지역의 수상가옥에 사는 사람들은 마루 중간에 구멍을 뚫고, 밑에는 그물을 쳐서 남은 음식을 주어 물고기를 기른다는 것이다. 그림을 그려 물어보니 이내 알아차린 노인은 마루 한가운데 있는 가로세로 30㎝ 정도의 뚜껑을 열었고, 그 밑으로 출렁거리는 물이 보였다. 그러니까 구멍을 통해서 먹이를 주다가 필요하면 그물로 떠서 잡아먹는데, 노인은 아이가 빠질 염려가 있어서 지금은 안 기르고 폐쇄했다는 식의 몸짓을 보였다.

수상가옥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었고 그 중의 하나에는 향과 꽃이 놓인 제단이 있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이처럼 가옥 안에 조상을 모시는 제단을 설치해 놓는다. 또 인상적인 것은 집집에 매달려 있는 화분들이었다. 마루에 앉아 메콩강의 풍경을 바라보며 차도 마시고 음악도 듣고 화분도 가꾸고 얘기도 나누는 이들의 삶이 잠시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의 눈에는 꽤 낭만적으로 보였다.

알고 보면 이들에게도 삶의 애환과 고뇌가 서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세상에 발붙이고 사는 모든 생물이 겪어야만 하는 것 아닌가. 다만 나이가 들면 은퇴하고 초조하게 살아야만 하는 한국에서 온 나그네의 눈에는 저녁나절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그 노인이 풍요롭게만 보였다.

돌아오는 길,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서늘한 바람은 옷깃 속을 파고 들었다. 멀리 강으로 가라앉는 붉은 햇빛에 어리는 고깔모자 쓴 여인의 휘날리는 바지 자락은 서글프면서도 아름다운 한 폭의 풍경이었다. 쩌우 독은 이런 곳이다.

마음을 내려놓고 나룻배 타고 강 한가운데를 휘휘 돌며 풍경을 구경하고 사람들의 체취를 맡는 것, 그것만큼 풍요로운 여행이 어디 있겠는가.

여행작가(blog.naver.com/roadjisang)

◇왼쪽부터 쩌우 독의 수상가옥, 캄보디아에서 베트남으로 가는 배 위의 여행자들, 허장강의 일몰 풍경

>> 여행 정보

프놈펜에서 허장강을 타고 오는 코스는 교통편이 많지 않다. 현재 많은 여행자들은 프놈펜의 ‘까삐똘(Capitol)’ 게스트 하우스에서 제공하는 교통편을 이용하고 있다. 프놈펜에서 베트남의 쩌우 독까지 버스, 보트비를 다 합해서 6달러 정도다. 오전 8시에 출발해서 오후 2시30분 정도에 도착한다. 쩌우 독에서 메콩 델타 유역의 도시인 껀터로도 갈 수 있고 호찌민시까지 곧바로 갈 경우 약 6시간 걸린다. 이곳 호텔들은 TV, 선풍기, 깨끗한 침대, 욕실 등이 딸린 방이 5달러 정도밖에 안 할 정도로 저렴하다. 수상가옥을 방문하고 싶으면 강변에 나와 나룻배를 직접 흥정하면 된다. 뱃사공이 딸린 배를 혼자서 이용하는 데 1시간에 1달러 정도면 가능하다. 상품화된 배보다 현지인들과 접촉해 타는 배에서 여행의 낭만을 느낄 수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공산주의 국가였던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가 잇따라 개방되자 여행자들은 방콕에서 시작해서 캄보디아의 앙코르 유적지, 프놈펜, 쩌우 독, 호찌민을 거쳐 하노이까지 올라가 베트남 여행을 마친 후, 라오스쪽으로 꺾어져 다시 방콕으로 돌아오는 루트를 많이 이용하고 있다. 국경을 넘나들며 많은 문화 체험을 할 수 있는 흥미로운 코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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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 되면 쩌우 독은 더욱 활기를 띠었다. 학교가 파한 후 귀가하는 아오자이 차림의 여학생들이 눈에 띄었고 거리 곳곳의 식당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돼지갈비 냄새가 몹시 풍겨왔고 냄새를 따라가니 연기가 자욱해서 식욕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돼지갈비 덮밥, ‘껌스응’이 아닌가. 베트남 사람들과 함께 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먹는 달짝지근한 돼지갈비는 입에 착착 감겨왔다. 한국에서 먹는 돼지갈비보다 훨씬 맛있었다. 뚝딱 해치우고 돈을 치르니 3000동. 한국돈으로 약 240원이었다. 그 전에 호찌민시에서 먹었을 때는 8000동 정도이었으니 이곳은 물가가 더 쌌고 인심도 여유 있어 보였다. 쩌우 독은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어서 그런 것 같았는데, 맛도 맛이지만 길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베트남 서민들과 어울려 먹는 분위기가 더욱 좋았다.

by 100명 2007. 4. 13. 1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