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롱베이는 6월에서 9월까지 날씨가 쾌청하다. 4월에는 비가 종종 오는데 할롱베이로 향하던 그날도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하노이에서 차로 세 시간 반 정도를 달리자 항구가 나타났고 수많은 목선과 관광객들로 혼잡했다.
할롱베이, 즉 할롱만은 1500㎢의 넓이에 약 3000개의 암석이 떠 있으며, 1994년에 유네스코가 보존해야 할 인류의 자연유산으로 선정됐다. 영화 ‘인도차이나’의 배경으로 유명해졌고, 한국에서도 어느 항공사 CF의 배경이 되어 더욱 익숙해졌다.
할롱은 하룡(下龍)의 베트남식 발음으로 용이 내려왔다는 뜻이다. 전설에 따르면 용이 바다로 내려와 해안을 달리면서 꼬리를 휘저어 계곡과 협곡이 파이면서 현재의 풍경이 만들어졌다는데, 역사적으로 보면 쩐흥다오(Tran Hung Dao)라는 민족 영웅이 몽골군을 격퇴한 곳이기도 하다. 1225년부터 1400년까지 베트남 북부를 지배한 쩐 왕조는 13세기 몽골의 침략을 받았다. 1285년에 처음 침략받았을 때 수도였던 탕롱(현재의 하노이)이 점령당했으나 쩐흥다오의 지휘로 사방에서 원군을 공격해 몇 개월 후 탈환했다. 이에 원군은 2년 후 다시 30만 대군을 이끌고 베트남을 침략해서 탕롱을 점령하고 도시를 파괴했으나 바다에서 패한다. 원군은 식량 부족으로 후퇴하는데, 이때 그들을 맞아 대승을 거둔 곳이 바로 할롱베이였다. 쩐흥다오는 강에 말뚝을 박아 놓고 밀물 때 원의 선박을 유인한 후 썰물 때 공격했으니, 그는 베트남 역사에서 한국의 이순신 장군 같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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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롱베이 항구의 목선들(왼쪽), 하노이 거리 |
할롱베이는 신비스럽기도 하고 음산한 기운도 서려 있었는데 아마 비가 오는 우기여서 더 그렇게 보였는지도 모른다. 배는 섬을 향해 서서히 미끄러져 갔고 사람들은 갑판에 올라와 그림 같은 풍경에 넋을 잃었다. 석회암 바위들은 물에 닿는 부분이 녹아서 버섯, 코끼리, 닭, 개, 낙타 등을 닮기도 했는데, 바다 한가운데로 들어가던 배는 바다 속에 나무를 박아 만든 양식장 앞에 섰다. 그곳 사람들은 바다 한가운데서 물고기를 키워서 팔고 있었다.
할롱베이 여행에서 꼭 들르는 곳은 섬에 있는 자연 동굴들이다. ‘더우 고’ 덩굴은 말뚝 동굴이라는 뜻으로, 쩐흥다오 장군이 몽골군을 물리치기 위해 바다에 박은 말뚝을 숨겨 놓았다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유래했다. 이 동굴과 이어진 띠엔꿍 동굴은 원래 해적들의 동굴이었으나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는 베트남 독립운동가들의 은신처로 사용되었다. 현재 관광객들의 눈길을 잡아 끄는 것은 동굴들에 있는 각종 아름다운 종유석들이다.
할롱베이는 이제 더 이상 은둔의 세계가 아니다. 몽골군이 쳐들어왔던 시절이나 베트남 독립투사들이 프랑스군을 피해 숨어들었던 시절에 찾아왔더라면 그야말로 세상 밖의 세상이었겠지만 이제는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서 다소 번잡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흩어지고 나면 자취조차 흐릿해질 만큼 할롱베이는 넓고 넓다. 각박하고 분리된 세상 속에서 시달리던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묘한 해방감을 느끼는 것은 아마도 바다와 하늘과 바위들의 경계가 흐릿한 회색 속에서 허물어지는 그 풍경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 또한 그렇게 스스로의 경계를 얼마나 허물고 싶어하는가? 그 흐릿한 풍경 속에서 잠시나마 그런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곳이 할롱베이다.
여행작가
(blog.naver.com/roadjisang)
# 여행 에피소드
베트남의 다른 지역도 그렇지만 특히 하노이는 외국인에 대한 바가지 혹은 이중 가격제가 심한 편이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미니버스는 베트남인은 2만동(1.3달러 정도)지만 외국인인 나에게는 3만동, 즉 2달러를 내라고 했다. 물론 공식 가격이 아니라 ‘관습 가격’이다. 비슷한 사건은 계속 이어졌다. 미니버스가 시내의 종점에 와서 서자 다른 승객들은 다 내렸지만, 인상 좋은 운전사는 내가 가는 호텔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선심을 베풀었다. 그러나 그가 내려준 곳은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이 아니었다. 나를 내려놓은 운전사가 사라지자 그 호텔에서 나온 종업원이 서둘러 내 배낭을 낚아채려 했고, 금방 사태를 파악한 나는 그들을 물리칠 수밖에 없었다. 운전사가 호텔로부터 알선료를 챙기기 위해 이런 짓을 하는 것 같았다. 음식점, 교통수단 등 여행자를 상대하는 모든 부문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공산주의 체제에서 인간은 평등하다고 배웠는데 어느 순간 이데올로기가 무너지자 처참하게 빈곤이 드러났고 외국 관광객들이 갑자기 들어와 돈을 물 쓰듯 하자, ‘인간은 평등한데 있는 놈들의 것 좀 바가지 씌워서 나눠 먹자는 게 뭐 어떤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바가지와 이중가격제는 이런 심리 속에서 나타나는 것 같았는데 아마도 외국인들이 함부로 돈을 뿌리지 못할 정도로 베트남이 발전하면, 자연스럽게 정상적인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 여행정보
개별적으로 직접 할롱베이 근처인 할롱까지 가서 배를 타고 돌아보는 방법이 있다지만 거의 모든 여행자들은 하노이의 호텔이나 구 시가지에 있는 여행사의 투어를 이용한다. 당일치기는 인원 수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는데 대개 버스, 선박, 점심식사를 다 포함해 15∼18달러 정도면 된다. 1박2일짜리도 있다. 중간에 자유시간을 갖고 선상에서 밤시간을 즐기며 천천히 할롱베이의 구석구석을 돌아보기도 한다. 사람들의 경험에 따라 당일치기가 좋다, 1박2일이 좋다 등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하노이 구시가지 항박 거리와 주변이 여행자 거리로, 1박에 3∼4달러짜리의 도미토리와 싱글 룸에 7∼8달러 하는 저렴한 숙소부터 20달러 전후의 중급 호텔들이 몰려 있다. 고급 숙소들은 하노이 중심지에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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