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카이 섬을 표현할 때 흔히 ‘천국에 가까운’이란 수식어를 쓴다. 그만큼 필리핀의 이 작은 섬은 환상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1970년대 중반, 독일과 스위스의 어느 여행자들이 이 섬의 환상적인 경치를 유럽에 처음으로 알리리면서 관광객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한국에는 해외여행 자유화 초기인 1980년대 후반부터 배낭여행자들이 방문하다가 서서히 일반 관광객들이 몰려들었고, 지금은 보라카이 관광객의 약 60% 정도가 한국인일 정도다.
이 섬은 지도를 보면 ‘뼈다귀’처럼 양끝의 동서 폭이 2㎞ 정도로 두툼하고 중간 폭은 1㎞ 정도여서 걸어서 15분이면 섬 다른 편으로 갈 수 있는 특이한 형태다. 남북의 길이는 약 9㎞인데 서쪽 해변 중간에 약 7㎞의 화이트 비치가 있다. 이곳의 모래는 너무도 고와서 살에 닿는 순간 고운 밀가루처럼 느껴진다. 하늘 높이 치솟은 코코넛나무 그늘 아래 누워 끝없이 펼쳐진 파란 하늘을 보며 게으름을 피우다가 코코넛 오일 마사지를 받아 가며 살갗을 스치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느끼는 순간, 왜 이곳이 ‘천국에 가까운 섬’이라 불리는지를 알게 된다.
그 바닷가에 누워 뒹굴다 보면 그동안 무엇을 위해 그토록 바쁘게 살아왔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더 바쁘게, 더 많이를 외치며 살아가지만 호흡은 점점 가빠지고 스트레스는 더 쌓인다. 최소한의 먹을 것만 확보하기 위해 땀 흘리고, 나머지 시간에는 마시고 춤추고 사랑하면서 살 수는 없는 것일까? 그렇게 자신의 삶과 현대 문명에 회의하다가 조국도 잊고 모국어도 잊은 채 이 섬에 숨어버리는 서양인들도 있었고, 한국인 중에도 보금자리를 틀고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벗 삼아 한가로운 삶을 살아간 이들이 있었다.
이곳은 해양 레포츠의 천국이기도 하다. 보트를 타고 섬 구석구석을 구경하고, 스노클링과 스킨 스쿠버 다이빙을 통해 아름다운 바다 속을 구경한다. 또 작은 돛단배를 타고 뱃놀이를 하거나 보트로 윈드서핑을 즐길 수도 있다. 보라카이 해변의 즐거움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곳에 오면 낙조를 꼭 봐야 한다. 저물녘 온 바다를 핏빛으로 물들이는 낙조 앞에서 사람들은 말을 잃고 넋을 잃으며, 다만 떨리는 가슴으로 위대한 대자연을 찬미한다. 밤이 되면 보라카이는 더욱 흥청거린다. 바닷가를 따라 이어진 수많은 레스토랑과 카페에서는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고, 값싸고 푸짐한 해산물 요리에 맥주를 마시면서 라이브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필리핀인들의 노래 솜씨는 대단한데, 표정이 딱딱한 필리핀 남자들에게서 나오는 노랫소리는 신기할 정도로 감미롭다.
또 디스코텍에서 밤새도록 술 마시고 몸을 흔들다가 흥에 겨워 밤바다로 나와 하늘을 보는 순간, 탄성을 터뜨리지 않는 이가 없다. 보석처럼 빛나는 밤하늘의 별들은 너무도 낮아 보여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을 것 같고, 하늘로 치솟은 코코넛나무를 타고 오르면 하늘에 다다를 것만 같다. 가끔 그 환상적인 풍경에 취해 옷을 다 벗고 바닷가를 스트리킹하는 이들도 있다.
보라카이 섬에 해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섬에는 약 1만명 정도의 주민이 살아서 마을도 있고 학교도 있고 시장도 있어서 해변의 휴식이 지루해질 때쯤 마을이나 시장을 돌아다니며 현지인들을 사귀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다. 이렇게 즐거운 보라카이 섬이지만 예전의 한적한 해변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관광지화로 변한 번잡한 모습에 실망하기도 한다. 밤이 되면 손님을 찾는 성매매 여성들 혹은 게이들도 보이고, 경쟁이 붙은 스킨스쿠버 업소 사이에서 당황하는 여행자들도 보인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세계의 어느 관광지에서나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보라카이 섬은 여전히 ‘천국에 가까운’이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환상적인 휴양지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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