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기행]<73> 이집트 텔 엘 아마르나
[세계일보 2006-09-22 08:48]

이집트인들은 여러 신을 믿었다. 그 중에서도 신왕국 시대(기원전 1570∼기원전 1069년)에는 나일강 상류 테베(현재의 룩소르) 지방에서 믿던 ‘아몬’ 신이 세력을 떨쳤다.

후일 아몬 신은 나일강 하류 지방에서 믿던 태양신 ‘라’와 합쳐지면서 강력한 국가 신 ‘아몬 라’ 신이 되었다. 그런데 아몬 라 신과 다른 신들을 부정하면서 유일신을 믿던 시절이 있었다. 카이로와 룩소르 중간쯤에 있는 텔 엘 아마르나(Tell el-Amarna)라는 폐허 유적지에 가면 그 흔적을 볼 수가 있다.

말라위(Malawi)라는 중소도시에서 선착장까지는 야자나무가 보이는 한적한 전원 풍경이 펼쳐지고, 선착장에서 허름한 페리를 타고 나일강을 건너는 순간 황량하고 메마른 사막이 나타난다. 그곳에서 조그만 미니버스 혹은 트랙터가 연결된 운송수단을 타고 벌판을 가로질러 봉곳하게 솟아 오른 암산으로 접근하면, 지름이 약 10㎞ 되는 구역에 폐허 유적이 산재해 있다.

한때 이집트 왕국의 수도로 왕궁과 아톤 신(혹은 아텐 신)을 모시던 신전이 있었지만, 지금은 굴 안에 새겨진 희미한 부조들만 남아 있을 뿐이다. 테베에서 텔 엘 아마르나로 수도를 옮긴 파라오는 아멘호테프 4세로, 그는 그때까지 믿던 신들을 부정하고 새로운 유일신을 섬겼다.

그는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현실 정치 속에서 찾아야 한다. 아멘호테프 4세의 아버지 아멘호테프 3세는 외국 여성으로 보이는 평민 출신의 여자 티티를 비로 맞아들였는데, 술과 여자 그리고 사냥에 빠져 국정을 게을리 했다. 50세 무렵에는 이민족 출신인 15세 소녀 네페르티티를 왕비로 맞아들였으나 잇몸에서 고름이 나오는 병으로 2년 후 죽고 만다. 이런 과정에서 파라오의 권력은 약해졌고 정치는 아몬 라 신의 사제들이 좌지우지했다. 또한 아들 아멘호테프 4세는 이런 아버지를 싫어해서 외국으로 떠돌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죽은 뒤 파라오가 된 아멘호테프 4세는 아버지의 어린 왕비였던 네페르티티와 결혼하고, 권력이 비대해진 아몬 라 신의 사제들을 몰아내기 위해 그 당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새로운 신 아톤을 내세운다. 아톤은 태양을 상징하며 우주의 탄생과 자연의 힘을 관장하는 신이었다. 아멘호테프 4세는 자신의 이름도 아크나톤(아톤신을 섬기는 사람)으로 바꾼 후, 왕국의 수도를 테베에서 북쪽으로 약 280㎞ 떨어진 지금의 텔 엘 아마르나로 옮겼다.

◇왕비 네페르티티(왼쪽), 유적지의 부조

그는 ‘이 땅은 어떤 신과 여신, 왕과 왕비에게도 속하지 않는다. 소유자로서 이 땅을 지배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고 할 만큼 이상 사회에 대한 열정이 컸지만, 기득권층을 너무 배척하는 등 현실을 무시했다. 또 국방을 소홀히 해 외적의 침입을 받았다. 그 과정에서 점점 민심을 잃었고, 결국 죽고 만다. 그는 자신의 열두 살 난 셋째딸 안케세파텐과 결혼했다(아버지와 딸, 형제자매의 결혼은 혈통을 보존한다는 명분으로 이집트 파라오 집안에서 종종 이뤄졌던 일이다).

그후 근대에 무덤이 발굴되어 유명해진 어린 투탕카문은 숙부인 아크나톤의 셋째딸이자 왕비였던 안케세파텐과 결혼하면서 새로운 파라오로 등극하고, 아몬 라 신 사제들의 영향 하에 수도를 다시 테베로 옮기게 되니 아크나톤의 종교개혁은 15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유일신 종교가 그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다. 기원전 1360년경에 일어난 아크나톤의 종교개혁이 실패한 후, 정확한 근거는 없지만 그 추종자들이 이집트와 시나이 반도 쪽에 유일신 사상을 전파했고, 그로부터 130년 후쯤 유대인인 모세라는 인물이 나타나 유일신 사상을 꽃피운 것은 아닌가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다.

15년간 잠시 꽃피었던 종교개혁의 이상은 지금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현대인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다. 아크나톤의 왕비였던 네페르티티의 아름다운 조상이 근대에 발견되면서 현재 이집트 곳곳에서 그녀의 얼굴이 새겨진 기념품 등을 볼 수가 있고, 아크나톤의 조카사위인 투탕카문의 미라는 박물관에서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집트에는 피라미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폐허지만 신화와 역사 속에서 빛을 발하는 유적지들이 곳곳에 숨어 있는 매력적인 나라가 이집트다.

여행작가(blog.naver.com/roadji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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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 엘 아마르나는 폐허 유적지이므로 숙소나 음식점이 없다. 일단 말라위까지 간 뒤 그곳에서 텔 엘 아마르나로 가는 미니버스를 타거나, 오전 8시쯤에 떠나는 완행열차를 타고 10분 정도 가다 데이르 마와스(Deir Mawas)에서 내린다. 여기서 나일강 페리 선착장까지 걸어가면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우연히 지나가는 미니버스를 탈 수도 있다. 강을 건너가면 트랙터가 연결된 운송수단이나 미니버스를 타고 유적지로 이동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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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 하나 못 판 아이들 그래도 웃으며 "굿바이”

이집트 여행은 쉬운 편이 아니었다. 4월의 날씨는 몹시 더웠고 유명 관광지에서는 호객꾼들이 괴롭혔으며, 기차나 버스 출발 시각도 정확하지 않아서 짜증날 때가 많았다.

그러나 도와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말라위에서 텔 엘 아마르나에 갈 때도 그랬다. 오전 8시에 출발한다는 완행열차는 8시40분이 되어서 왔고, 기차에 타니 승객들이 ‘어디서 왔느냐, 어디로 가느냐, 이집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등의 질문을 했다. 일일이 질문에 답하느라 조금 피곤했지만, 내가 내려야 할 정거장이 다가오자 모두 내리라고 가르쳐 주어 고마웠다. 기차에서 내려 선착장까지 걸어가는데 또 젊은 사내들이 쫓아오며 온갖 질문을 했지만, 행선지를 잘 안내해 주었다.

선착장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바구니나 기념품을 팔려고 달려들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경찰관이 아이들을 멀리 쫓아버렸다. 그런데 관광객들이 사막의 유적지로 이동하는 차를 타자 아이들은 일제히 손을 흔들며 ‘굿바이’라고 외쳐댔다. 물건 하나 못 팔았는데도 멀리서 손을 흔드는 아이들의 모습이 불쌍했다. 이집트 여행에서는 짜증 나는 일도 많았지만 종종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고마웠고, 가난한 아이들의 밝은 웃음을 보며 안쓰러운 생각도 많이 들었다.

by 100명 2007. 4. 13. 1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