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기행]<77>이집트 아스완 아부심벨
[세계일보 2006-10-27 09:54]

람세스 2세는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이집트를 통치한 파라오다. 신왕국 18왕조 말기의 유약한 투탕카멘(기원전 1340∼1331)이 죽고, 늙은 대신 ‘아이’와 호렘헵 장군이 짧게 통치하다가 전차 지휘관이었던 람세스 1세가 제19왕조를 연다.

그의 아들 세티 1세(기원전 1294∼1279)가 19왕조의 초석을 다진 후, 이집트의 영광을 크게 떨친 이가 바로 그의 젊은 아들 람세스 2세(기원전 1279∼1212)로, 약 67년간이나 나라를 다스리며 자신의 흔적을 온 이집트 신전에 남겼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곳은 아부심벨 신전이다. 카이로에서 나일강을 따라 남쪽으로 약 890㎞ 가면 아스완이란 도시가 나온다. 예전에는 누비아 광산에서 캐낸 엄청난 금과 아프리카에서 생산된 목재, 동물의 가죽, 상아 등 진귀한 물품들이 집결되던 곳이었지만 오늘날은 거대한 아스완 댐으로 유명하다. 여기서 차를 타고 나일강 상류를 향해 사막 길을 서너 시간 달리면 아부심벨이 나온다. 이곳의 황량한 돌산에 람세스 2세가 세운 아부심벨 대신전과 소신전이 있다. 아부심벨 대신전 앞에는 높이가 약 20m인 거대한 람세스 2세의 조각 4개가 있어, 이미 피라미드를 본 사람들도 그 장엄함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안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기둥들과 람세스 2세의 입상 8점이 늘어서 있으며, 벽에는 수많은 부조가 새겨져 있다.

이 부조들은 람세스 2세가 주도한 카데쉬 전투의 승리를 묘사한 것이다. 카데시 전투는 현재 시리아 영토에서 벌어진 이집트와 히타이트 왕국 간의 대규모 전투다. 이집트는 기원전 13세기쯤 아나톨리아 반도의 하투샤(현재 터키 중부의 보아즈칼레)를 중심으로 세력을 떨치던 히타이트 왕국과 근동 지방을 중간에 두고 다투고 있었는데, 람세스 2세는 기원전 1274년 4월 카데쉬를 향해 약 50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원정을 떠난다.

◇아부심벨 대신전

람세스 2세는 한 달 뒤 적군의 속임수에 걸려 위기에 처한다. 히타이트군의 공격에 이집트 병사들은 모두 달아나고 홀로 싸운 람세스 2세는 아문신의 도움을 받아 승리했다고 이집트의 기록은 전한다. 그러나 후일 밝혀진 히타이트 측의 기록과 객관적인 정세로 볼 때 람세스 2세는 필사적으로 탈출했을지언정 승리하지는 못했고, 카데시도 여전히 히타이트 왕국의 땅으로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람세스 2세는 룩소르의 카르나크 신전, 아부심벨 신전 등에 자신의 승리를 대대적으로 기념하는 부조들을 새겨 놓았다. 후대 학자들은 이런 람세스 2세를 자기현시욕이 매우 강하고 진실을 왜곡하면서까지 기록을 이용해 현실을 지배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시기적으로 보아 람세스 2세 치하에서 모세가 유대인들을 이끌고 대탈출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약 66년간 고대 이집트를 연구해 온 크리스티안 데로슈 노블쿠르에 의하면, 이집트의 역사 기록에서 그 같은 흔적은 전혀 발견할 수 없다고 한다. 그 시절 많은 유대인들이 왕릉이나 신전을 건설하는 데 동원되었는데, 아마도 이집트인들에게는 사소한 사건을 나중에 유대인들이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탈바꿈시켰다고 그는 추측하기도 한다.

◇나일강의 펠루카(돛단배)

아부심벨 대신전 제일 안쪽의 지성소에는 오른쪽에서부터 떠오르는 태양의 신인 라 하라크티신, 신격화한 람세스 2세, 테베의 주신이며 땅의 생식 본능을 지배하는 아몬신, 어둠을 솟아나게 하는 프타 신의 좌상이 나란히 서 있다. 동굴 안의 신상들은 매우 정교하게 배치되어 2월 20일쯤에는 동굴 깊숙이 들어온 햇살이 약 20분 동안 오른쪽으로 이동하며 아몬신, 람세스 2세, 라 하라크티신을 차례로 비췄다. 10월 20일쯤에는 반대로 햇살이 가장 오른쪽의 라 하라크티신을 비춘 후 차차 왼쪽으로 옮겨졌는데, 어둠의 신인 프타신 상은 왼쪽 어깨에만 살짝 햇살이 머물다 간다고 한다.

대신전 옆에는 아부심벨 소신전이 있다. 사랑과 음악과 춤의 여신인 하토르 여신(호루스신의 아내)과 람세스 2세의 부인 네페르타리 왕비를 기리는 작은 신전인데, 이 신전들의 원래 위치는 이곳이 아니다. 1950년대 후반, 이집트의 지도자 나세르가 나일강을 막아 아스완에 댐을 건설하려 하자, 아부심벨 신전이 수몰될 것을 염려한 유네스코의 도움으로 1963년부터 약 10년 동안 해체해 원래 위치보다 약 210m 뒤쪽, 650m 더 높은 지역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펠루카를 타고 나일강을 유람하는 이집트 관광객들.

한 인간의 집요한 욕망과 의지가 실현된 거대한 신전 앞에서 현재 카이로 국립 박물관에 안치되어 있는 초라한 람세스 2세의 미라를 떠올리면 묘한 느낌에 휩싸인다. 미라로 남은 그는 환생하지 못했고 그의 욕망은 신전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런데 람세스가 남긴 100여명의 자식들에게서 퍼져 나간 자손들은 얼마나 되며, 현재 그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여행작가(blog.naver.com/roadjisang)

기차표 예매 새치기 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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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에서 아스완까지 갈 때는 버스를 타고 중간의 유적지와 도시들을 구경하며 천천히 내려갔는데, 아스완에서 아부심벨을 구경한 후 카이로까지 가는 길은 기차를 타기로 했다. 기차표 예매를 위해 역으로 가니 새치기가 심했다. 줄을 섰어도 슬그머니 새치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표를 사러 온 나이 든 경찰이 왔다 갔다 하면서 새치기를 막다가, 그 역시 앞쪽에 가서 슬그머니 줄에 끼어드는 게 아닌가. 기가 막혔다. 어떤 서양인의 부탁을 받은 이집트인이 앞쪽에서 새치기하는 것을 지켜보다 마침내 참고 있던 화가 폭발하고 말았다.

내가 나서서 항의하자 가만히 서있던 이집트인들이 내 편을 들어주기 시작했고 결국 새치기했던 사람은 슬그머니 뒤로 가버렸다. 그렇게 표를 사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우리도 예전에 새치기가 성행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집트에서도 종종 그런 풍경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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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완에서 아부심벨까지는 미니버스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아스완의 숙소에 신청하면 된다. 새벽 4시에 출발해 오전 7시 30분에 도착. 9시까지 구경한 후 돌아오다 아스완 댐을 구경한다. 대중 버스도 있다는데 매우 불편하고 시간이 걸린다. 아부심벨 마을에도 호텔은 있지만 대개 여행자들은 아스완에서 묵는다. 아스완에는 싼 게스트 하우스부터 고급호텔까지 다양하게 있다. 아부심벨 신전 근처에는 매점이나 식당이 없으므로 각자 빵과 음료수를 준비해 가야 한다.

by 100명 2007. 4. 13. 1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