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기행]<78> 이집트 시와 오아시스
[세계일보 2006-11-03 12:51]

리비아와 이집트의 국경 사이에 끝없이 펼쳐진 리비아 사막이 있고, 그 한가운데 시와 오아시스(Siwa Oasis)란 곳이 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약 590㎞ 떨어져 있는데, 버스를 타고 4∼5 시간을 달리면 마르사 마트르(Marsa Matruh)를 지난다. 바닷가 휴양지로,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나치 독일 롬멜 장군의 본부가 있던 곳이다. 여기서부터 단조롭고 끝없는 사막 길을 다섯 시간 정도 달리면 드디어 시와 오아시스가 나타난다.

시와 오아시스는 동서 길이 약 82㎞, 서쪽의 폭은 9㎞, 동쪽의 폭은 28㎞로 물고기가 누워 있는 형상의 거대한 오아시스로, 비가 거의 오지 않지만 300개가 넘는 샘물에서는 물이 계속 솟구치고 있다. 대다수가 베르베르족인 주민 약 5000명이 살고 있으며, 약 24만그루의 대추야자나무, 2만5000그루의 올리브나무가 자라며 곡식과 야채, 과일 등이 풍성한 땅이다. 평균 해발은 200m이고 해발 -18m인 낮은 곳도 있는데, 여기에 고인 호수물이 한여름에 증발하고 나면 천연 소금이 생길 정도로 물에는 소금기가 가득하다.

이곳에는 기원전 6세기 전후에 만들어진 아몬 신전 터가 있다. 현재는 부조가 새겨진 기둥 몇 개만 남아 있지만, 고대에는 이집트는 물론 그리스에까지 그 명성이 알려져 있었다. 아몬 신은 테베(현재의 룩소르)의 지방신이었지만 점차 이집트 전역에서 인기를 끌며 훗날 파라오의 수호신이 되었다. 이 신은 그리스 제우스 신의 형성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아몬 신전 부근의 낮은 언덕에는 또 다른 아몬 신전이 있다. 이곳은 알렉산드로스가 방문한 후부터 ‘알렉산드로스 신탁의 신전’이라고 불린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시아의 통치를 받고 있던 이집트를 정복한 후, 기원전 331년 1월 말에서 2월 초 사이에 시와 오아시스를 방문한다. 약 5만명의 병력을 이끌고 사막을 횡단한다는 것이 무모했지만, 어머니로부터 아버지가 꾼 신비한 태몽을 듣고 자란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을 아몬 신의 아들이라 믿었고 그것을 아몬 신전에서 확인하고 싶어했다. 그와 동행했던 그리스의 사관 칼리스테네스(Callisthenes)의 기록에 따르면, 나흘째 되던 날 물을 담은 가죽 부대의 상당수가 뜨거운 햇볕에 의해 터져 버렸다. 샘 하나 없는 사막 한가운데서 만난 위기였는데, 갑자기 몰려온 먹구름이 소낙비를 뿌려 병사들은 새 가죽 부대에 물을 담을 수 있었다. 또 무서운 모래 바람이 불어와 길을 잃었으나 갑자기 나타난 까마귀 두 마리가 길 안내를 했다고 한다. 알렉산드로스 군대는 이같이 하늘의 도움으로 마르사 마트르를 떠난 지 8일 만에 시와 오아시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몬 신전의 벽(왼쪽), 당나귀를 탄 아이들

도착하자마자 알렉산드로스는 예언자를 만나기 위해 홀로 아몬 신전 안으로 들어갔고, 한참 후에 나와서 ‘무엇을 들었느냐’는 부하 장수들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 미소만 지었다고 한다. 어머니 올림피아에게 보내는 편지에 나중에 예언자로부터 들은 얘기를 전하겠다고 했으나, 알렉산드로스는 어머니를 만나지 못한 채 8년 후인 기원전 323년 바빌론에서 죽고 만다. 그러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보면 아몬 신전의 예언자는 알렉산드로스에게 “당신의 아버지 아몬 신은 죽지 않는 불멸의 존재이고, 필리포스 왕(인간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의 암살자들은 모두 처벌받았으며, 알렉산드로스는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고 예언했다고 한다.

이에 알렉산드로스는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사제들에게 많은 선물을 주었는데, 그는 훗날 바빌론 근교에서 숨을 거두며 시와 오아시스에 매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의 시신을 모심으로써 자신의 정통성을 확보하려고 했던 어느 왕이 장례 행렬을 자신이 지배했던 알렉산드리아로 돌렸다고 한다. 현재까지 그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고 몇 년 전에 이집트 고고학자가 시와 오아시스에서 알렉산드로스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발표했으나, 신뢰성에 의심을 받아 크게 주목받지는 못하고 있다.

이곳에는 클레오파트라의 샘도 있다. 크고 깊은 우물 형태로 아직까지 보존되고 있는 이 샘에서 이집트의 마지막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목욕을 했다고 전해진다. 벌집처럼 구멍이 뚫린 낮은 언덕에는 ‘죽은 자의 산’이라고 알려진 고대 공동묘지가 있는데, 구덩이에 직접 들어가 보면 미라를 감쌌던 천 조각들이 보인다. 또한 시내 중심지에는 녹아 버린 촉농처럼 허물어진 고대 도시 유적이 남아 있고, 외곽에는 수심은 낮지만 바다처럼 드넓게 펼쳐진 호수들이 있으며 서쪽 호수의 판타지 섬에는 온천도 있다. 그리고 더 외곽으로 나가면 거대한 모래 바다가 펼쳐진다. 자전거를 타고 마을에서 빠져나온 후 모래 바람을 맞으며 끝없는 사막 깊숙이 걸어 들어가다 보면 오아시스가 지평선 너머에서 가물가물거린다. 그 순간 방향감각이 사라지면서 다시는 세상 속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 공포감과 함께 절대자를 대면하는 듯한 묘한 느낌이 온몸을 덮쳐온다.

이렇게 고대 역사와 문화의 흔적 그리고 종교와 자연의 신비감을 맛볼 수 있는 시와 오아시스는 기자 피라미드, 왕들의 무덤이 있는 룩소르와 함께 이집트의 대표적인 문화유적지로 손꼽힌다.

여행작가(blog.naver.com/roadjisang)

>>여행 에피소드

알렉산드리아에서 늦은 오전에 출발한 버스가 약 9시간 후에 시와 오아시스에 도착하니 캄캄했다. 그때 웬 소년이 다가와 자신의 호텔로 가자고 해서 따라가보니, 말이 호텔이지 허름한 방 몇 개가 있는 단층 벽돌집이었다. 그런데 리셉션에 걸린 영어 팻말이 인상적이었다.

‘오직 부부만이 같은 방을 쓸 수 있으며, 그외의 남녀는 철저히 다른 방을 써야 한다.’ 즉 미혼 남녀가 같이 묵기 위해서는 결혼 증명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얘기를 해 보니 이 집 주인은 외부인들, 특히 미혼의 서양 커플들이 같은 방에 자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철저한 이슬람교도였다. 주민들은 외부인들로 인해 자신들의 관습과 문화가 훼손받는 것을 매우 꺼리고 있었다. 특히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외국 여성들에게 현지 여성들이 영향을 받으며 사회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데, 관광객이 많이 들어가고 있는 요즘에도 그 팻말이 붙어 있을까?

>>여행 정보

배낭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는 1박에 2달러 정도다. 중급 호텔들도 있고 고급 호텔도 생기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카이로에서 버스를 타면 약 12시간 정도, 알렉산드리아에서 타면 약 9시간 정도 걸린다. 오전, 오후 각각 한대가 있다.

by 100명 2007. 4. 13. 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