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사는 이스탄불만큼 매력적이지만, 우리에겐 낯선 도시다. 부르사는 한때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수도였다.
기원전 2세기경 로마가 이곳에 성벽을 구축했고, 이후 제정 로마가 동서로 분리되면서 동로마 제국 하에서 번영했는데,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1326년 부르사를 점령한 후 수도로 삼았다. 그때부터 오스만투르크가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키고 이스탄불로 천도한 1453년까지 127년간 제국의 수도였던 곳이 부르사다.
이곳에는 오스만투르크의 초기 유적지가 많이 있다. 우선 초대 황제인 오스만과 그의 아들 오르한의 묘가 있다. 높은 언덕에 지붕이 모스크처럼 둥근 돔으로 만들어진 건물이 있는데, 안에는 오스만의 관이 안치되어 있고 맞은편에는 아들 오르한의 관이 있다. 이 관을 뒤덮은 천은 비단이다.
부르사는 원래 실크로드의 요충지로서 중요한 비단 생산지였다. 현지에서 생산되는 비단 제품은 물론 페르시아, 시리아 등지에서 수많은 낙타와 말에 실려온 견직물로 시장이 흥청거렸다. 베네치아나 피렌체의 상인들도 비단을 사러 모여들어 도시 전체가 언제나 북새통을 이뤘다.
그 상인들이 묵던 곳이 코자한이었다. 터키어로 ‘코자’는 누에고치, ‘한’은 집을 말하니 ‘누에고치의 집’이란 뜻이다. 1491년 만들어진 정방형의 2층 석조건물로, 한가운데 넓은 뜰이 있고 중앙에 팔각형 탑 모양을 한 모스크가 있다. 건물 1층은 낙타나 말의 휴식처 또는 상품 창고로 쓰였고 2층은 상인들 숙소로 쓰였다. 근래까지 6월 한 달간 누에고치 거래소로 번성했지만, 현재는 각종 비단 제품을 파는 고급 상점들이 들어서 있고 안뜰에는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노천 카페가 성업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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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코자한 안뜰의 노천 카페, 터키의 빵 ‘시미트’를 팔러 다니는 소년, 코자한 건물 2층의 비단 가게 |
부르사에는 또 ‘녹색 모스크’란 뜻의 ‘예실 자미’가 있다. 15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지붕이 녹색인데 원래 터키의 모스크는 페르시아 양식이었으나, 이 모스크부터 터키 양식으로 바뀌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 외에도 근처에 오스만투르크 5대 황제 메흐메트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녹색 묘’란 뜻의 ‘예실 튀르베’가 있다.
건물 안의 메흐메트 관은 조금 특이하다. 가로 약 2.5m, 세로 4.5m, 높이 1m 정도이며, 그 위에 다시 사람 몸의 두배 정도 되는 크기의 관이 얹혀 있다. 그리고 관의 맨 앞에는 돔 형태로 솟아오른 돌기에 하얀 천이 감겨 있어 마치 모자처럼 보이며, 관에는 파란색, 노란색, 빨간색 꽃·이파리 무늬가 현란하게 새겨져 있어 매우 특이하고 아름답다.
또 부르사에는 19세기 초에 만들어진 멋진 에미르 술탄 자미라는 모스크도 있고, 무기 카펫 의상 등이 전시된 박물관도 있다.
이렇게 많은 모스크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14세기 말에 세워진 ‘울루자미’다. 울루자미는 부르사의 대표적인 모스크로, 양파를 얹어 놓은 듯한 돔이 스무 개나 솟아 있어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의 풍경은 자못 환상적이다.
부르사의 분위기도 이런 유적지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원래 ‘예실 부르사(녹색의 부르사)’로 불릴 만큼 여름에는 푸른 나무로 뒤덮이고, 겨울에는 자욱한 지중해의 안개가 온 도시를 감싼다. 이스탄불과 마찬가지로 언덕이 많은 이 도시 곳곳에는 예쁜 돌이 깔린 고즈넉한 골목길들이 뻗어 있고, 골목길마다 고풍스러운 목조 하맘(증기탕)들과 오스만투르크풍의 예쁜 건물, 현대식 레스토랑, 찻집들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부르사는 아름다운 여인이 많기로 소문난 곳이며, 사람들의 인심도 좋고 예의도 바르다. 길거리나 상점에서 길을 물어보면 매우 친절한데, 이스탄불처럼 외국 관광객이 흔치 않아서인지 대개 얼굴을 살짝 붉히며 수줍어한다. 유적지나 모스크보다도 이렇게 수줍은 미소를 띤 사람들의 모습이 더욱 여행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부르사는 현란하지는 않지만 중년 여인의 품처럼 아늑하고 넉넉해서 언제나 다시 가고 싶은 사랑스러운 도시다.
여행작가(blog.naver.com/roadji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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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부르사에 갔을 때, 미용실에 들렀다. 서로 말이 안 통해 아내는 머리 모양 사진이 실린 잡지에서 하나를 골라야만 했다. 그런데 미용사는 머리를 다듬다가 5분쯤 지나자 ‘차이(차)?’ 하면서 물어보았다. 내가 다른 도시의 이발소에서 겪은 상황과 비슷했다. 그때도 이발을 하다가 중간에 차를 배달시킨 후 월드컵, 이을용 선수 등 축구 얘기를 한동안 한 후 다시 머리를 깎은 적이 있었다. 남자 종업원이 차를 배달해 왔고 미용실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이런 과정에서 맛보는 터키인들의 푸근한 인심과 여유가 무척이나 정겨웠다.
또 부르사에서 기억나는 사람은 1991년 우연히 만났던 어느 책방 주인이다. 60대 노인이었는데, 내가 한국에서 온 것을 알자 ‘남산, 밥산, 보이다, 찹찹, 이리와’ 등 어색한 한국어를 나열하며 흥분했고, 전화로 차를 배달시키며 내 손을 꼭 잡았다. 노인은 영어를 못했지만 나는 그가 한국전에 참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950년대 그 비참한 나라에서 청춘을 바쳤던 노인은 마치 잃어버린 자식을 만난 듯 눈물을 글썽거려 내 가슴까지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터키에서는 이런 사람을 종종 만날 수 있었는데, 10년 후 다시 갔을 때 나는 그 서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지금 그 노인은 살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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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에서 부르사까지는 버스가 자주 다니는데, 육로로 가는 버스가 있고 페리를 이용해 바다를 건너는 버스가 있다. 페리를 이용하는 것이 훨씬 시간이 단축된다. 약 3시간 소요. 6달러 정도. 배낭 여행자들의 숙소는 공동 욕실을 사용하는 더블 룸이 13달러 정도. 관광지답게 고급부터 중급까지 숙소는 다양한데, 관광안내소는 코자한에 있으므로 여길 이용하면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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