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 기행]<81>터키 안타키아·타르수스
[세계일보 2006-11-24 09:03]

예전에 소아시아로 불렸던 터키 땅에는 기독교 초기 유적지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 중에서도 지중해와 접한 남부 해안의 안디옥이란 마을은 기독교 초대교회가 있던 곳이다. 현재는 안타키아라고 불리는데, 이곳에 가려면 우선 아다나로 가야 한다.

아다나는 터키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로, 여기서 버스를 타고 지중해를 따라 동쪽으로 달리다 보면 이스켄데룬이란 도시가 나온다. 구약 성서에 큰 물고기가 요나를 토해냈다고 전해지는 바로 그곳이다. 예언자 요나는 여호와로부터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로 가서 그곳이 멸망할 것임을 경고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이 사명을 회피하고 배를 타고 바다로 달아나다 태풍을 만나고 사공들에 의해 바다 속으로 던져진다. 요나는 큰 물고기에 먹혀 뱃속에서 3일을 지내다 육지로 토해진 후에야 여호와의 계시를 실행한다. 기사회생한 요나의 전설이 서려 있는 이스켄데룬은 현재 평화롭고 아름다운 해변 도시다.

거기서 한두 시간 더 동쪽으로 달리면 안타키아가 나온다. 전체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인데, 기독교 초대교회인 성 베드로 교회는 시내에서 약 2㎞ 떨어진 바위산 밑에 있다. 너비 9.5m, 길이 7m인 그리 크지 않은 동굴에는 나무 벤치 대여섯 개가 놓여 있으며, 앞에는 돌제단이 있고 정면에는 베드로의 조각이 있다. 초창기 기독교 신자들은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로 세례를 받았고, 집회를 진행하다 로마 병정들이 들이닥치면 위로 파인 작은 굴을 통해 바위산으로 피신했다고 한다. 동굴 교회 주변에는 집들과 밭, 목초지가 평화롭게 펼쳐지고, 위쪽으로는 험준한 바위산이 하늘 중간까지 치솟아 있다.

베드로는 이 동굴에 와서 신도들을 만났는데, 그 당시까지 종교와 모임의 이름이 없던 그들은 여기서 비로소 자신들을 크리스천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 후 7, 8세기에 동굴 앞부분을 신축해서 교회로 사용했다. 지금 이 동굴 교회에서는 매년 성 베드로 축제일인 6월29일 안타키아 고고학박물관에서 주최하는 의식이 열린다.

◇(왼쪽부터)타르수스의 바울의 집, 동부 지방의 양 시장, 타르수스의 인심 좋은 배추장수

터키 남부 해안에는 기독교를 이방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전파한 사도 바울의 고향인 타르수스도 있다. 신약 성서에 나오는 닷소가 바로 이곳으로, 아다나에서 서쪽으로 약 40㎞ 정도 떨어져 있다. 도시 한가운데에 하반신은 뱀이고 상반신은 사람인 뱀의 왕 ‘샤흐메란’의 동상과 못이 있다. 옛날 이곳을 통치하던 왕이 병들자 샤흐메란을 잡아 먹었는데, 아직도 그들의 왕이 죽었는지 모르는 이곳의 뱀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모두 타르수스를 공격하게 되며, 지금도 샤흐메란의 피가 욕조의 대리석 밑으로 흐른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이곳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는 클레오파트라의 문도 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후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 왕국을 살리기 위해 소아시아(터키)와 이집트를 지배하던 안토니우스 편에 붙는다. 기원전 31년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를 지원하기 위해 클레오파트라가 군대를 이끌고 온 곳이 바로 타르수스였는데, 전쟁에서 패한 클레오파트라는 자신의 가슴을 독사가 물게 하여 자살하고 만다. 이 클레오파트라의 문은 바울의 고향에 있다고 해서 언제부턴가 ‘바울의 문’으로 불려 왔다고 한다.

바울의 집은 그곳에서 걸어서 십분 거리인 ‘예니 자미’란 모스크 근처에 있다. 철문 안에 매표소가 있고 40∼50평쯤 되어 보이는 정원이 깔끔하게 가꿔져 있는데, 집 안에는 바울이 사용했다는 조그만 우물과 하얀 수염이 그려진 바울의 초상화도 보인다. 지름이 1m도 안 되는 우물은 깊이가 35m로, 수천 년 동안 마르지 않고 있다. 바울은 유대인이었으나 태어날 때부터 로마 시민이었다. 그의 원래 이름은 사울이었다. 사울은 유대교 바리새파에 속해 있었는데, 예수가 바리새파를 가혹하게 비판했다. 사울은 자신들을 공격하는 예수와 그 신도들을 잡는 데 앞장섰는데, 어느 날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3일 동안 눈이 멀고, “사울아, 사울아, 네가 나를 왜 핍박하느냐”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 후 바울로 이름을 바꾼 그는 로마에서 순교하기까지 약 20년 동안 적극적으로 선교를 하게 된다. 그러나 처음에 베드로와 신자들은 바울이 자신들을 잡아넣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고 판단해 그를 쫓아냈다. 결국 그는 고향 타르수스로 돌아와 기도하고 사색하며 10년 동안을 외톨이로 지내다가 안타키아(안디옥)로 가서 일년을 머물렀고, 마침내 교회 지도자들로부터 이방인 선교사역을 인정받게 된다.

젊은 바울은 한때 자신의 세계가 무너진 상태에서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지 못한 채 십 년이란 세월을 고향 타르수스에서 보냈다. 그 고독한 세월을 그는 무슨 생각을 하며 보냈을까? 타르수스의 거리를 걷다 보면 어딘가에 바울의 발걸음과 숨소리가 배어 있는 것 같아 문득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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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키아의 기독교 초대교회를 보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허름한 토담집 안에서 웬 아줌마가 난(밀개떡)을 화덕에 굽고 있어, 우두커니 구경을 했다.

한동안 구경을 해도 경계심을 품지 않는 것 같아 카메라를 빼어 들자 여인은 “노” 하며 몸을 돌렸다. 매우 놀라거나 불쾌한 기색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내 사과하고 카메라를 집어넣었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 있던 초등학교 1, 2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아들이 황급한 표정으로 어디론가 뛰어가는 게 아닌가. 분명히, 누가 와서 자기 엄마를 괴롭힌다고 알리러 가는 것 같았다. 동네 사람들에게 봉변당할까 봐 잰걸음으로 버스터미널로 걸어가는데, 이 같은 나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터키는 서부 쪽은 개방적이지만, 동부 쪽은 매우 보수적이어서 조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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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키아와 타르수스를 모두 돌아보려면 아다나에 숙소를 잡고 2일 정도를 예상하면 된다. 소풍 가듯이 하루는 타르수스, 하루는 아다나를 갔다 올 수 있다. 버스로 타르수스까지는 40분 정도 걸리고, 안타키아까지는 서너 시간 걸리는데 중간에 이스켄데룬을 들를 수 있다.

by 100명 2007. 4. 13. 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