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히말라야의 장엄한 자태 앞에 서면 경건해진다.
산스크리트어로 ‘히마(Hima)’는 눈, ‘알라야(Alaya)’는 보금자리라는 뜻이니 히말라야는 ‘눈이 머무는 곳’을 의미한다. 히말라야는 인도 중국 네팔 파키스탄 부탄 등 5개 국 영토에 걸쳐 있는데, 세계 최고봉에 속하는 14개 봉우리 중 9개가 네팔 땅에 있다.
널리 알려진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 마나슬루 등의 봉우리는 일반인들도 산 중턱까지는 트레킹하며 자연을 즐기고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코스 중 하나는 왕복 8∼9일 정도 소요되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으로, 먼저 아름다운 페와 호수가 있는 포카라까지 가야 한다. 트레킹 코스는 약간씩 다르지만 대개는 차를 타고 트레킹을 시작할 수 있는 지점까지 간 후 본격적으로 산을 오른다. 산비탈에는 다랑논이 펼쳐지는데, 이런 곳에서는 경치보다도 네팔인들의 생활에 더욱 눈길이 간다. 네팔 젊은이들은 ‘남로’라고 하는 커다란 광주리를 등에 메고 끈을 이어서 이마에 대고 나르는데, 이 광주리는 보통 30㎏에 달한다. 대개 산속 산장에서 쓸 식량, 배추, 무, 휴지 등을 운반하며, 이들의 하루 일당은 한국 돈으로 1000∼2000원 정도다.
네팔에서는 관광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궁핍하기 그지없는 그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약 180달러인 이 나라 전체 인구의 90%가 농업에 종사하지만 자급자족이 안 되며, 관광산업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가난한 사람들은 보통 하루에 두 끼를 먹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차 한 잔 마시고 오전 10시쯤에 아침 겸 점심을 먹으며 오후 5, 6시가 되면 저녁을 일찍 먹고 배가 꺼지기 전에 일찍 잔다. 이같이 경제난이 심각하다 보니 공산주의가 광범위하게 세력을 떨쳐 중국에서도 사라진 ‘마오쩌둥주의자’들 역시 적지 않다. 정정(政情)도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런 상태에서 가이드나 짐꾼을 데리고 유유자적하며 트레킹을 즐기고 히말라야의 아름다움을 칭송하는 여행자의 마음은 늘 미안하고 불편하지만, 그래도 대자연의 아름다움 앞에 서면 잠시 현실을 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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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논(왼쪽), 트레킹 중의 풍경 |
간드룽이나 란드룽을 거쳐 촘롱까지 가는 동안 점점 고도가 높아지자 발걸음도 늦어진다. 40분 정도 걷고 20분 정도 쉬면서 걷는데, 네팔인들은 “비스타레(천천히)”, “알리알리(조금씩, 조금씩)”라고 속삭이며 급하게 가는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늦춘다. 점차 하얀 눈으로 뒤덮인 안나푸르나의 봉들과 지나가던 구름이 산 중턱에 걸린 멋진 풍경에 심취하게 된다. 새카만 밤하늘에는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별들이 입으로 “후” 불면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낮게 떠 있다.
트레킹 3일째 여행자들은 해발 2050m인 촘롱이란 곳에 도착해서 멀리 안나푸르나봉과 마차푸차르봉을 바라보며 느긋한 휴식을 즐긴다. 이 마을에는 토담집으로 지어진 학교가 있는데 학생 수는 50명 정도, 교실 5개. 칠판이 없어 벽에다 판서를 하는 열악한 상태다. 이런 가난한 상황에서도 네팔 국민의 절대 다수인 힌두교인들은 자연을 경배한다. 아침에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지붕에 올라가 절을 하고 꽃을 뿌리며 기도하는 노인을 보는 순간, 여행자들도 경건해질 수밖에 없다.
데우랄리(해발 3000m)라는 곳을 지나며 서서히 고산증이 나타나고 숨이 가빠지며 머리가 쿡쿡 쑤신다. 이런 상태에서 천천히 오르다 보면 드디어 5일째 마차푸차르 베이스 캠프(해발 3700m)에 도달한다. 여기에 짐을 풀고 한두 시간을 더 걸으면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해발 4130m)에 도달하고 거대한 절벽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절벽 건너편에는 하얀 눈으로 뒤덮인 거대한 설산이 치솟아 있다. 어디선가 쩍쩍거리며 얼음 부서지는 소리, 또는 우르릉거리는 천둥 소리가 들려와 온몸에 공포감이 밀려든다. 그리고 산 정상에서 몰려오는 구름 속에 파묻히면 잠시 신선이 된 듯한 묘한 기분도 느끼게 된다.
안나푸르나는 봉우리 하나가 아닌 연봉이다. 해발 7000∼8000m 정도인 안나푸르나 1봉부터 4봉 그리고 안나푸르나 남봉이 계속 이어져 있고, 오른쪽 옆에는 마차푸차르봉이 보인다. 마차푸차르(Machhapuchhare)는 물고기(machha) 꼬리(puchhare)라는 뜻인데, 실제로 물고기가 거꾸로 서서 꼬리를 세운 모습이다. 예전에 인간과 동물의 중간인 설인(雪人) ‘예티’가 안나푸르나 1봉에 살다가 워낙 사람들이 많이 등반해서 요즘은 마차푸차르로 도망갔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믿기 힘든 얘기지만, 하얗고 거대한 산 앞에서 휘몰아치는 광풍과 구름 속에 파묻혀 신비감을 느끼는 여행자는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자연 속에서 현실과 환상이 모호해지는 그 순간이야말로 안나푸르나 트레킹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소중한 선물인 것 같다.
여행작가(blog.naver.com/roadjisang)
>>여행 에피소드
트레킹을 하다 촘롱의 산장에서 묵는데, 어디선가 본 듯한 일본인 젊은 커플이 눈에 띄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2년 전, 방콕의 어느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났던 사람들이었다. 내가 알은 체하자, 그때 한국인을 만난 기억은 있지만 당신이 아니라 매우 젊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게 바로 납니다”라고 강조했지만, 그들은 수염이 텁수룩하게 자란 나를 쉽게 알아보지 못했다. 무척이나 반가웠는데 그들은 홋카이도에서 유스호스텔을 운영하고 있었고, 눈이 많이 오는 겨울에는 문을 닫고 동남아, 네팔, 인도 등지를 여행한다고 했다. 그들은 애 키우기가 힘들다며 애 낳기를 포기하고 여행하는 낙으로 살고 있었는데, 그때가 벌써 16년 전이다. 이제 한국에서도 애 없는 가족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보니 그만큼 살기가 힘들어진 것 같다.
>>여행 정보
트레킹에 좋은 시기는 10, 11월. 낮은 가을 날씨고 밤은 초겨울 날씨다. 12월에는 눈이 많이 와 부분적으로 폐쇄되는 곳이 있지만 트레킹은 할 수 있다. 코스마다 산장들이 있어 숙식이 가능하므로 버너나 텐트가 꼭 필요하지는 않다. 한국 겨울 산행처럼 준비해야 하고, 자외선이 강하므로 선글라스와 선크림 등이 필요하다. 트레킹에 필요한 허가증과 가이드, 짐꾼 등은 포카라의 현지 여행사를 이용하면 쉽게 해결된다. 고산병은 두통이나 구토증을 동반하는데, 300∼400m만 내려와도 금세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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