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 기행]<83>온천과 영화가 어우러진 도시
[세계일보 2006-12-08 09:48]

프라하에서 서쪽으로 약 125㎞ 떨어진 이곳은 프라하 출신으로 신성 로마제국 황제가 된 카를 4세가 14세기에 개발한 도시로, ‘카를 온천’이라는 뜻이다. 16세기 들어서 200개가 넘은 온천이 개발됐고, 19세기에는 유럽 각국의 황후와 귀족이 방문했다. 베토벤, 비스마르크, 괴테, 리스트, 톨스토이, 마르크스 등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이 마을의 중심지 양쪽에는 산이 솟아 있고, 그 중간에는 폭이 좁은 테플라강이 흐른다. 강 주변에는 중세풍의 아름다운 집과 벤치들이 있는데, 연간 900만명 정도가 이곳을 다녀간다. 관광객 못지않게 온천에서 병을 치료하는 환자나 휴양객들도 눈에 많이 띈다. 온천탕이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 최초로 개발된 브리들로(Vridlo)는 섭씨 73도의 온천수가 매분 2000ℓ 분출된다. 카를로비 바리의 온천수는 위장병이나 간질환, 당뇨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

카를로비 바리는 영화제로도 유명하다. 1948년부터 시작된 영화제는 매년 7월에 열리는데, 동유럽을 넘어서 이제 유럽의 대표적인 영화제로 자리를 잡았다. 7월이면 수많은 영화 포스터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영화인과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이 도시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이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고,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이 경쟁부문에 초청됐으며, 홍상수 감독의 특별전 등이 열렸다. 또 올해는 이윤기 감독의 ‘러브 토크’가 경쟁부분에 진출했고, 김기덕 감독의 ‘타임’이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카를로비 바리는 온천과 영화가 어우러진 독특한 도시로 세계인의 시선을 끌고 있다.

프라하에 왔다면 체코 제2의 도시인 브르노도 빼놓기 아깝다. 프라하에서 열차를 타고 서남쪽으로 약 3시간30분 정도 달리면 도착하는 이 도시는 일찍이 모라비아 공국의 수도였다. 예전에 이 일대는 서부의 보헤미아(중심지 프라하), 중부의 모라비아(〃 브르노), 동부의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 등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모라비아와 슬로바키아는 1차 대전 전까지 헝가리와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배 하에 있었다.

반면 10세기 초부터 강대한 중앙집권 국가를 건설했던 보헤미아 왕국은 카를 4세 때 크게 융성했다가 합스부르크 제국에 편입되었다. 1918년부터 이 3개 지역이 연합하여 체코 공화국을 탄생했으나, 공산주의 체제가 패망하면서 다시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됐다.

◇온천수(왼쪽), 연주하는 학생들

모라비아 왕국의 중심지였던 브르노는 현재도 체코에 속해 있다. 브르노에서는 14세기에 창건된 성 베드로와 바울 교회, 성 야곱 교회 그리고 13세기에 건립된 슈필베르크 성과 그 안의 지하실, 고문실 등이 대표적인 볼거리다. 그러나 브르노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곳은 역시 멘델의 법칙으로 유명한 멘델 수도원이다.

멘들로보 나메스티(멘델 광장) 근처에 있는 멘델 수도원에 들어가면 넓은 뜰이 있고 멘델의 동상도 보인다. 조그만 정원에는 완두콩들이 심어져 있으며 앞에 p1, f1, f2, f3라고 쓰인 팻말들이 보인다. 바로 우리가 중·고등학교 시절 푸른색, 노란색 등등의 완두콩 색깔을 따져 가며 배웠던 유전법칙이 여기서 발견된 것이다. 멘델은 원래 과학자가 아니었다. 오스트리아 수도사인 그는 수도원 한구석에서 완두콩을 심어 놓고 홀로 연구를 시작했는데, 비전공자의 연구 결과가 처음에는 세상의 주목을 끌지 못했다. 옆의 전시관에는 멘델의 유전법칙을 설명해 놓은 글과 실험기구, 의자와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멘델이 유전법칙을 발견한 것은 약 130년 전의 일인데, 지금은 생명을 복제할 수준이 되었다. 현기증 나는 과학의 발전 속도다. 과학도가 아닌 평범한 여행자이지만 이런 곳을 돌아보면 감회가 없을 수 없다. 위대한 인물의 자취, 거대한 사건의 현장도 실제로 직접 접해 보면 너무도 평범하다. 이때 큰 기대가 깨지는 실망감도 있지만, 동시에 모든 위대한 것은 기실 평범함과 사소함 속에서 시작된다는 작은 진리를 깨닫게 된다. 이 작은 정원에 앉아 싹이 돋아나는 완두콩을 지켜보던 수도사 멘델의 가슴속은 생명의 신비를 발견해 가는 희열로 가득 찼을 것이다.

여행작가 (blog.naver.com/roadji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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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비 바리 거리를 걷다 보니 사람들이 납작한 컵을 하나씩 들고 다니며 주전자 주둥이처럼 생긴 컵의 끝에서 뭔가를 홀짝홀짝 빨아 마시고 있었다. 저게 뭘까? 호기심이 발동한 나도 가겟집에서 똑같은 것을 샀는데, 알고 보니 온천 물을 받아 마시는 그릇이었다.

카를로비 바리에는 거리 곳곳마다 따스한 온천수가 나오는 수도가 설치되어 있고, 사람들은 그걸 받아서 마치 차 마시듯이 계속 마셨다. 온천수를 마시면 당뇨나 소화기 질환에 좋다는데, 미지근한 온천수 맛은 짭짤했다.

또 사람들은 모두 상자를 하나씩 들고 다녔다. 호기심에 또 사서 뭐가 들었나 열어보니 커다랗고 둥근 웨하스 과자였다. 아마도 천안의 ‘호두과자’처럼 카를로비 바리의 특산물 같았다. 벤치에 앉아 짭짤한 온천 물에 단 웨하스 과자를 먹는 맛은 묘했지만 건강에 좋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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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플로렌스 터미널에서 카를로비 바리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터미널의 관광 안내소에서 시내 지도와 온천에 관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브르노의 멘델 수도원은 멘들로보 나메스티 근처에 있으며, 중심지에서 걸어서 갈 수 있다.

by 100명 2007. 4. 13. 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