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 기행]<85>동방 박사들이 큰 별을 따라 온 곳
[세계일보 2006-12-22 08:51]

2000년 전 예수가 탄생한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동남쪽으로 약 10㎞ 떨어져 있다.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은 버스로 20분도 채 안 되는데, 차창 밖으로는 황량한 사막 풍경이 펼쳐진다. 베들레헴은 예전부터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연결하는 길목에 있는 마을이었다.

구약성경에도 종종 등장하는 이 도시의 중요성은 이스라엘 역사를 알아야만 이해가 된다. 유대 민족의 시조인 아브라함은 기원전 1900년경 우르라는 곳에서 현재 이스라엘 땅인 가나안 지방으로 떠난다. 우르는 현재 터키 동부의 우르파라는 설도 있고, 이라크 남부에 있었다는 설도 있다. 가나안 지방에 터를 잡고 살던 아브라함의 자손은 기근 때문에 이집트로 이주했고, 그 후 이집트의 노예로 전락한 이들을 기원전 13세기경에 탈출시킨 이가 모세였다. 이들은 시나이 반도를 거쳐 예전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그곳에 살고 있던 이민족들을 몰아내고 기원전 1000년경에 사울을 최초의 왕으로 삼는다. 사울 다음에 왕이 된 이가 다윗이었다.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돌팔매질로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린 그는 최초로 여러 지파를 통합한 통일 왕국을 세웠고,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유대인들에게 다윗은 지금까지도 존경의 대상이다.

◇베들레헴 탄생교회

◇예루살렘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유대인들.

이 베들레헴이 다윗의 고향이어서 예전부터 ‘다윗의 도시’로 불려 왔다. 그의 아들 솔로몬왕 때 이스라엘은 크게 번성했으나 그후 남쪽의 유다 왕국과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으로 분열되었다. 두 왕국은 기원전 8세기에서 7세기에 걸쳐 모두 아수르(아시리아)에 멸망했고, 유대인들은 바빌론 등지로 끌려간다. 약 100년 후 고향 땅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은 나라 없는 민족으로 설움을 받다가 초강대국인 로마의 지배를 받는다. 그들은 그 지배 속에서 ‘메시아(구세주)’가 다윗 왕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를 기대하며 해방을 갈망하였다. 이럴 때 선지자 미가는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나올 것이라고 예언했고, 기원전 7년경 베들레헴에서 예수가 탄생했다.

예수의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는 원래 나사렛에 살고 있었다. 그 당시 로마 황제는 유대인들에게 자신의 고향에서 호적을 등록하라고 명령했고, 다윗의 자손인 요셉은 고향이 베들레헴이었기에 그곳으로 갔다가 숙소를 정하지 못해 마구간에서 아기를 낳는다. 기독교 신약성경 마태복음 1장에는 유대민족의 족보가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하는 식으로 계속 열거되다 마지막에 “그런즉 모든 대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빌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네 대요, 바빌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라고 끝을 맺는다. 이같이 예수를 따르던 이들은 그가 다윗의 자손이고 메시아며, 선지자의 예언대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고 믿는다. 그러나 현재의 베들레헴에 유대인들은 눈길을 주지 않고 있으며, 고립과 빈곤 속에서 사는 팔레스타인 현지 주민들도 강한 반유대, 반기독교 정서를 보인다. 다만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성지’로 찾고 있으며, 특히 크리스마스 때면 예수 탄생을 기리는 순례객들이 몰린다.

◇베들레헴 탄생교회 내의 예수 탄생지.

◇이스라엘의 이슬람교도들.

이곳에는 ‘탄생교회’가 있다. 예수 탄생 약 330년 후인 서기 325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세웠고 200년 후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개축했다. 현재의 모습은 12세기 초 십자군이 탈환한 후 요새형으로 수리했는데, 교회 정문으로 들어가면 제단이 보이고 그 밑의 동굴로 들어가는 계단이 있다. 어둠침침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동굴 한 구석에 바위가 있고 그 바위 위에 큰 별 표시가 있는데, 이곳이 예수의 탄생지라고 알려져 있다. 그 시절에는 가축 우리가 대부분 동굴에 있었는데, 마리아가 바로 이런 지하 동굴의 마구간에서 예수를 낳았다고 전해진다. 많은 순례자들은 이 앞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예배를 보며 눈물을 닦는다.

꼭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세상의 빛이 되어 역사를 바꾼 현장 앞에 서면 경건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그 당시와 별로 달라지지 않은 채 분열과 갈등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우선 이 교회부터 분열되어 있다. 교회 오른쪽은 그리스 정교회에서, 왼쪽은 아르메니아 정교회에서 관리하며 그 옆에 따로 있는 로마 가톨릭 교회당에서 크리스마스 미사가 생중계된다.

이스라엘 땅에 평화가 온다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선지자는 고향에서 배척받는다는 예수의 말대로 유대인들은 예수를 구세주로 믿지 않고 팔레스타인 역시 기독교를 거부하며, 팔레스타인에 대한 유대인들의 핍박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또한 십자군전쟁 때부터 이어져 온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갈등은 테러와 이라크 침공 등으로 폭발했다. 세계 곳곳에서 사랑과 평화를 기원하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지만, 정작 사랑의 말씀이 탄생한 이 땅의 사람들은 눈물 흘리며 한숨짓고 있다.

여행작가(blog.naver.com/roadjisang)

>>여행 에피소드

이스라엘에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용하는 버스터미널이 따로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용하는 버스는 깨끗하고 조용하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이용하는 버스는 낡고 시끄럽지만, 차장이 동네 사람들에게는 차비도 안 받는 분위기여서 더 마음이 편하고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긴다.

나는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까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용하는 버스를 탔는데, 베들레헴에서 내리자 옆자리에 앉았다가 같이 내렸던 사내가 일부러 따라와 ‘탄생교회’ 가는 방향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온 것을 알고는 “웰컴 투…”하는데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입장에서 “웰컴 투 이스라엘”이라고 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달리 붙일 말도 없던 것이다. 한때 나라를 잃었던 우리 민족의 설움을 잘 아는 나로서는 이 같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참 안되고 딱해 보였다.

>>여행 정보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당일치기로 갔다 올 수 있다. 예루살렘의 다마스쿠스 게이트 앞에 있는 아랍 버스터미널에서 22번 버스를 타면 베들레헴으로 간다. 다마스쿠스 문 앞에서 합승 택시를 타도 된다. 베들레헴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는 마지막 버스를 잘 확인해야 한다. 워낙 반유대 정서가 강하고 이스라엘 군인들의 통제가 심하므로 버스를 놓쳤을 경우 매우 난감하다.

by 100명 2007. 4. 13. 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