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기행]<86> 중국 태산
[세계일보 2007-01-05 11:24]

산둥성(山東省)에 있는 태산은 시경에서부터 칭송하는 시가 나오는 중국 최고의 명산이다. 최초로 태산에 올라가 봉선의식을 거행한 이는 진시황이었다. 그후 역대 72명의 황제들이 올랐던 태산은 중국인들은 물론 바다 건너 한국인들의 입에도 오르내렸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만은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도다.

학창시절부터 이런 시조를 외우고 자란 우리는 태산을 매우 높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태산은 해발 1545m로 지리산이나 백두산보다 낮다. 오르기도 어렵지 않다.

태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우선 산둥성의 타이안(泰安)으로 가야 한다. 태산 기슭까지 주택가와 상점이 들어선 풍경은 한국의 북한산이나 도봉산과 비슷하다. 태산 등반은 간단하다. 일천문(一天門)에서부터 정상까지 난 7412개의 계단을 부지런히 오르면 된다.

◇남천문에서 내려다본 계단.

◇하늘의 거리, 천가(天街)의 입구.

단조로운 이 길을 흥미롭게 해주는 것은 도교의 유적과 중국 역사의 발자취다. 도교 사원인 두모궁(斗母宮), 서왕모(西王母)를 모시는 만선루(萬仙樓) 등이 있다. 주나라 목왕이 천산산맥에 있는 천지(天池)에서 보았다는 전설이 서린 서왕모는 처음에는 죽음을 관장하는 여신으로 반인반수의 흉칙한 모습이었으나 후일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하고, 불사의 약을 지닌 선녀가 됐다. 계속 한 두시간을 걸어 올라가면 태산 중턱의 중천문(中天門)이 나오는데 여기서 정상 부근의 남천문(南天門)까지는 케이블카가 있다. 그러나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만은’이라는 시조를 생각하며 많은 사람들은 걷기를 계속한다.

매점들과 사진 찍어 주는 사람들을 지나치다 보면 오대부송(五大夫松)이 나온다. 진시황이 태산에 오르다 비를 피했다 하여 오대부란 관직을 부여받은 소나무이며, 이곳을 지나면서부터 가파른 계단이 시작된다. 숨이 차지만, 중간에 18개의 널찍한 판이 있어 잠시 쉴 수 있다. 여름 성수기 때는 가마꾼들이 돈을 받고 사람을 실어나르기도 한다.

◇정상에 있는 옥황정 가는 길.

◇정상 부근의 태산 풍경.

이 가파른 계단의 끝에 남천문이 있다. 하늘에 거의 다다른 듯한 분위기에서 주변을 돌아보면 동남쪽 절벽 끝에 첨노대(瞻魯臺)가 보인다. 멀리 노(魯)나라를 바라볼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불치의 병에 걸린 부모님의 치유를 기원하며 몸을 던지는 이가 있어 명나라 때 울타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여길 지나면 ‘하늘의 거리’인 천가(天街)가 시작된다. 현재 하늘의 거리에는 숙소와 기념품 판매소,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는데 천가에서부터 정상까지 오르는 길은 넓은 들판과도 같다. 종종 구름이 끼면 마치 하늘의 세계를 거니는 것만 같다.

정상 부근에는 태산의 주신을 받드는 도교 사원인 벽하사(碧霞祠)와 거대한 돌에 글씨를 새겨 놓은 대관봉(大觀峰)이 있으며, 정상인 천주봉(天柱峰)에는 옥황정(玉皇頂)이 보인다. 그 부근의 무자비(無字碑)란 비석은 원래 글자가 없는 비석으로, 한무제가 2100년 전에 세웠다. 태산의 위대한 풍광에 겸손한 마음으로 아무 것도 적지 못했다는 얘기도 있고, 후세인들이 평가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글자를 새기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다. 무자비를 지나면 바로 옥황상제를 모셨다는 옥황정인데, 여기서 역대 황제들이 봉선의식을 거행했다. 멋진 자연과 함께 이처럼 수많은 신화와 전설, 그리고 역사가 깃든 문화 유적지에서도 태산의 매력을 찾을 수 있다.

◇태산의 저녁노을 풍경.

◇첨노대

태산은 중국 5대 명산인 오악 중에서 동쪽에 있다 하여 동악(東岳)이라고도 불리며, 그 중에서도 으뜸이라 하여 오악독존(五岳獨尊)이라 일컬어졌다. 동쪽은 모든 만물이 생성되는 방향이기에 태산은 가장 신성한 산으로 여겨져 왔다.

현재 중국 5위안(元) 지폐의 앞면에는 마오쩌둥의 그림이 있고, 뒷면에는 태산과 오악독존이라 쓰여진 비석의 그림이 있다. 뒷면의 이 그림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이데올로기와 권력 못지않게 민심과 하늘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다가온다. 어마어마한 권력을 휘두른 황제들조차 자신을 낮추고 하늘을 두려워한 것을 보면, 세상사에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기운이 작용하는 것 같다. 그 기운은 예나 지금이나 민심을 통해서 나타나지 않을까.

여행작가(blog.naver.com/roadji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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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산둥성을 여행하다 보니 호텔 종업원들이나 택시기사들이나 모두 ‘한궈런(한국인)’이라고 하면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왜 그럴까. 중국을 여러 차례 여행했지만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었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 인터넷을 보니, 내가 여행하기 일주일 전쯤인 2006년 11월22일, 한국인 이군익씨가 특수 제작한 지게에 92세의 아버지를 지고 태산을 올랐는데, 이 사실이 산둥성 TV에 크게 보도되었다고 한다. 공자와 맹자의 고향이 있으며, 태산이 자리 잡은 산둥성의 사람들이 그의 효심에 크게 감동받았던 것 같다. 덕택에 한국인인 나도 대접을 잘 받은 것 같아 흐뭇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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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서 산둥성의 성도 지난(濟南)까지 대한항공 직항편이 있다. 지난에서 타이안까지는 버스로 1시간30분. 태산을 일천문에서 걸어 올라가면 4∼6시간 소요된다. 빠르게 오르려면 기차역에서 3로(路) 버스를 타고 일단 천외촌(天外村) 종점까지 간다. 10분 정도 소요된다. 거기서 태산의 중턱인 중천문까지는 버스로 약 30분. 요금은 122위안.(태산입장료 100위안+차비 22위안) 중천문에서 남천문까지 가는 케이블카는 50위안. 걸어 올라가면 1시간30분∼2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정상을 돌아보는 데는 약 2시간 정도 소요되고, 정상에서 중천문까지 내려오는 케이블카는 오후 5시까지 운행한다. 중천문에서 천외촌까지 내려오는 버스는 오후 6시가 막차. 정상에서 일출을 보려면 태산 정상의 숙소에 묵으면 된다. 중급 숙소는 한국돈으로 2만∼5만원. 고급 호텔은 10만원 정도. 타이안 시내에는 역대 황제들이 태산에 오르기 전에 제를 올렸던 대묘(垈廟)와 조선 사람인 만공(滿空) 스님이 세운 보조사(普照寺)라는 절도 있다.

by 100명 2007. 4. 13. 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