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에서 서쪽으로 약 130㎞ 떨어진 솔즈베리 평원을 달리다 보면 스톤헨지가 나온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 거대한 고대 유적지는 5000∼4000년 전에 건설되었으며 큰 돌기둥의 높이는 8m, 가장 무거운 돌은 50t이나 된다.
인적 없는 푸른 초원 한가운데 우뚝 선 거석들의 모습은 꽤 낭만적이지만, 이 거대한 유적들을 누가, 왜 만들었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기원전 2400년쯤부터 영국으로 들어온 켈트족이 만든 것으로 추정되지만, 기록이 없어 확실치는 않다. 거석 기념물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기원전 4000년쯤에 등장한 서남아시아의 거석문화가 지중해와 스페인, 포르투갈을 거쳐 북프랑스와 영국까지 전해졌다는 학설도 있다.
스톤헨지를 공중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넓은 벌판에 거대한 원형 도랑이 파여 있다. 이 원을 따라 안쪽에 둥글게 82개의 입석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없어지고 흔적만 남아 있다. 이 안의 거대한 선돌들은 둥근 모양으로 이어진 환상열석(環狀列石)이다. 그리고 그 곁에는 두 개의 선돌 위에 가로로 돌이 놓인 삼석탑(三石塔, Trilithon)들이 있고, 중앙의 제단석에서 동북쪽으로 약 80m 떨어진 곳에는 힐스톤이라는 돌이 있다.
스톤헨지는 한 번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서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기원전 3100년쯤 지름 110m 정도의 원형 도랑을 판 후 거기에 사슴 뼈나 황소 뼈를 묻었다고 한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다시 안쪽에 지름 1m의 구덩이 56개를 팠는데 여기에는 인간을 화장하고 난 후의 뼈를 묻었다. 목조 건축물의 버팀목이 세워진 구덩이들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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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헨지 주변의 거석(왼쪽), 솔즈베리 평원의 풍경 |
둘째 단계에서는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다가 셋째 단계인 기원전 2600년쯤부터 목재 대신 돌이 사용되기 시작한다. 선돌 82개가 세워졌고, 그 중 43개는 250㎞ 떨어진 프레셀리 언덕(Preseli Hills) 언덕에서 가져온 블루스톤이라는 청회색 사암으로 만들어졌다. 이 시기에 힐스톤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40㎞ 정도 떨어진 말버러 고원(Marlborough Downs)에서 가져온 30개 정도의 거대한 사슨석(sarsen)으로 원형 석조물을 세우고, 그 안쪽에 5개의 삼석탑을 말발굽형으로 만들었다. 그 후 약간씩 변하다가 기원전 1600년경에 현재의 모습이 된다.
그런데 이 무거운 돌들을 어떻게 운반했을까? 40㎞ 떨어진 말버러 고원에서 운반한 사슨석 중에는 무게가 50t이나 되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굴림대나 밧줄을 이용해 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평균 무게가 4t 정도 되는 블루스톤을 250㎞나 떨어진 웨일스 서남부의 프레셀리 언덕에서 운반한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다. 이 무거운 돌들을 뗏목에 실어 풍랑이 매우 심한 브리스톨 해협을 어떻게 건넜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거석 기념물을 만든 목적을 놓고는 여러 가설들이 나오고 있다. 우선 돌 자체에 초자연적인 힘이 내재한다는 믿음, 혹은 돌에 조상의 영혼이나 신령 등 영적인 존재가 강림한다는 생각에서 만들었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데 최근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태양이 하지에 스톤헨지 동북쪽의 힐스톤 위로 떠올라서 중앙 제단을 비췄던 시기를 천문학적으로 계산해 보니 기원전 2123년에서 기원전 1573년 사이일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삼석탑과 중앙제단, 그리고 힐스톤의 건조 연대와 비슷하다. 이 점에 착안해 스톤헨지가 천체관측소였다는 주장이 있다. 태양을 숭배하는 고대 신앙으로 스톤헨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농경을 위해 수백년에 걸쳐 만들며 하늘을 관측했다는 주장도 있다.
반대로 하지가 아니라 동짓날 태양이 지는 방향에 관심이 있어 스톤헨지에서 어떤 의식을 치렀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으며, 장례식을 치르는 장소였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또 농경사회에서 인구가 증가해 사회를 조직화할 필요성이 대두되자, 지배계급에서 이 같은 거대 구조물을 통해 사회를 결속시켰다는 설도 있다.
그런가 하면 프레셀리 지방에 병을 고치게 하는 샘들이 있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며 고대의 성지 참배자들이 방문하는 순례지였을 것이란 얘기도 있다. 또 근래에는 스톤헨지가 여성의 성기 모양으로, 생명을 창조하는 ‘대지의 어머니’를 숭배하기 위한 상징물이라고 주장하는 산부인과 의사도 있었다. 고대 문명은 이같이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수많은 가설이 난무하기 때문에 더욱 흥미를 끄는지도 모른다.
여행작가(blog.naver.com/roadjisang)
# 여행 에피소드
바스에서 스톤헨지까지 가는 길은 매우 아름다웠다. 잔디 깔린 구릉에 목조 가옥들이 점점이 들어선 영국 전원 풍경에 빠져 들었는데, 한 가지 흠이라면 비가 왔다는 점이다. 솔즈베리 평원의 스톤헨지 유적지에 도착했을 때 비가 억수로 쏟아졌고, 스톤헨지를 구경하며 걷다 보니 금방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비가 그치자 안내자는 버스를 벌판에 세우고 승객들에게 잠시 전원 풍경을 둘러볼 시간을 주었다. 내려서 사진을 한참 찍다 보니 버스가 떠나고 있는 게 아닌가. 달려가서 문을 두드려 겨우 탔는데 만약 거기서 버스를 놓쳤다면 어두워지는 벌판에 그냥 혼자 남을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여행정보
스톤헨지는 일단 바스까지 가서 도시 구경을 마친 후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투어버스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안내원이 자세한 설명도 곁들여 준다. 요금은 10.5파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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