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북쪽 스코틀랜드로 가는 길은 꽤 낭만적이다. 전원풍의 예쁜 집들과 양떼가 노니는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그러나 올라갈수록 문화와 언어는 생소해진다. 비틀스의 고향 리버풀에서도 억센 악센트가 어색하게 들리고, 스코틀랜드 수도 에든버러에 도착하면 알아듣기조차 힘들어진다.
잘 알려진 대로 영국은 잉글랜드, 웨일스,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가 합쳐진 연합왕국(United Kingdom)이다. 그 중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현재의 잉글랜드 사람들과 종족이 다르고, 과거에 길고 긴 투쟁도 했기에 사이도 좋지 않다.
그들의 대표적인 독립투쟁 현장은 스털링(Sterling)이다. 에든버러에서 기차를 타고 약 30분 걸려 도착하는 스털링은 현재는 인구 4만명도 안 되는 중소도시지만, 13세기 말부터 14세기 중반까지 계속된 스코틀랜드 독립투쟁에서 잉글랜드에 대항하는 전략적 요충이었고 그 중심은 스털링 성이다.
스털링 시내에서 위가 트인 투어 버스를 타고 푸른 초원과 구릉 그리고 파란 하늘이 어우러진 그림 같은 전원 풍경 속으로 푹 빠져들다 보면 갑자기 멀리 바위산 위에 우뚝 솟은 스털링 성이 보인다. 천천히 발길을 옮기다 보면 성 근처에 감옥도 보이는데, 현재는 관광지가 되었다. 밀랍인형으로 예전의 죄수들이 형벌을 받는 모습을 재현해 놓았고, 가이드는 마치 간수처럼 연극을 하며 관광객들을 놀라게 하면서도 즐겁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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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민속춤 공연 |
성은 거대한 바위산 위에 있다. 돌길을 따라 언덕길을 오르면 튼튼한 외곽 방어벽이 보이고, 그 앞에는 스코틀랜드 독립전쟁의 영웅인 로버트 브루스의 동상이 서 있다. 성 안으로 들어가 몇 개의 방어벽을 통과하면 안쪽에 왕궁이 보이고 예배당과 연회실, 부엌 등의 건물이 나타난다.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성벽에서 바라보는 아래 세상은 평화롭지만, 수백년 전 이곳은 잉글랜드군과 스코틀랜드군이 격전을 벌였던 전쟁터였다.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 역사적으로 오랜 앙숙이었다. 기원전 325년경 그리스의 탐험가 피테아스가 현재 잉글랜드 지방에 ‘프레타니카이(Pretanikai, 몸에 그림을 그린 사람들)’들이 살고 있다고 얘기했는데, 이 말이 브리타니아(Bretania)로 변해 현재의 브리튼(Britain)이란 이름이 됐다. 여기 살던 사람들은 인도유럽인에 속하는 켈트족으로 유럽 대륙에서 기원전 400년경부터 영국으로 이주한 것으로 보이는데, 로마가 기원전 55년 잉글랜드 지방을 점령하면서 북쪽 산악지대인 스코틀랜드로 쫓겨났다.
반면 잉글랜드 지방에 남은 켈트족들은 로마에 의해 문명화되었고, 후일 로마군이 철수하자 그 힘의 공백을 뚫고 잉글랜드 지방을 점령한 사람들이 독일과 덴마크 지방에 살던 앵글로족과 색슨족이었다. 그 후 이들의 피가 서로 섞인 앵글로색슨족은 프랑스의 노르망디 지방에서 건너온 노르만족에게 지배당하고, 1066년에는 노르망디공 윌리엄이 영국 왕(윌리엄 1세)이 된다. 그 후 윌리엄 1세의 손자 헨리 2세는 영토를 넓히며 스코틀랜드 지방을 침공했고, 에드워드 1세 때는 스털링 성을 중심으로 거대한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1297년 스코틀랜드의 영웅 윌리엄 월리스는 스털링 다리 전투에서 영국군에게 큰 승리를 거둔다. 그러나 그는 결국 1305년 체포돼 런던에서 잔혹하게 처형당했다. 월리스는 사지가 묶인 채 배에서 창자가 꺼내지고, 찢긴 사지는 거리에 내걸렸다. 그의 죽음은 스코틀랜드인들을 더욱 공고히 단결시켰고, 귀족 출신인 로버트 브루스는 1314년 배녹번 전투(Bannockburn)에서 잉글랜드군에 대승을 거둬 스코틀랜드를 독립시킨다.
그후 왕실 혈연관계로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국왕까지 겸하게 됨으로써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는 한 나라가 되었지만, 17세기 중반에 종교 문제로 다시 갈라선다. 그러다 경제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18세기 초에 하나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스코틀랜드인들은 지금도 이 같은 투쟁의 역사를 자랑스러워하며 강한 자존심을 갖고 있고, 스털링 성은 자존심을 되새기는 역사의 현장이 되었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은 멜 깁슨 주연의 ‘브레이브 하트(Brave Heart)’라는 영화로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결합된 이 영화 속에서 처형당하는 멜 깁슨이 “프리덤” 하고 외치는 장면은 지금까지도 스코틀랜드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으며, 영화를 본 수많은 관객이 관광객이 되어 스털링 성을 찾고 있다.
성도 장엄하고 주변 풍광도 아름답지만, 그 성에 올라가 수많은 관광객 사이를 거니노라면 영화 한 편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여행작가(blog.naver.com/roadjisang)
>>여행 에피소드
잉글랜드인에 대한 스코틀랜드인의 반감과 자존심은 대단했다. 에든버러의 한 호텔에서 스코틀랜드 전통 음악과 춤 공연을 즐겼는데, 공연 시작 전 사회자가 관중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는가를 물어보았다. 독일, 덴마크, 프랑스, 스페인 등 세계 각국의 이름이 나왔고, 나도 손을 들어 “코리아”라고 외쳤다. 이에 사회자는 그렇게 먼 데서 왔느냐는 표정을 지으며 반가운 몸짓을 했다. 그런데 내 옆에 앉아 있던 어느 여자가 “잉글랜드!”라고 외치자, 사회자와 무대 위 연주자 대여섯이 모두 벌떡 일어나 과장된 몸짓과 짐짓 성난 표정으로 “잉글랜드!!”를 외쳐 온 관중이 웃고 말았다. 그 여인은 공연 내내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같이 과장스러운 스코틀랜드인들의 반응에는 분명 진심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에서도 나왔지만, 참혹한 고문과 처형 과정에서도 윌리엄 월리스가 “프리덤”이라고 외치는 장면을 기억하는 스코틀랜드인에게는 어쩔 수 없는 민족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정보
스털링은 에든버러에서 기차를 타면 약 30분 정도 걸리므로 당일치기로 갔다 올 수 있다. 스털링을 돌아보는 데는 위가 트인 이층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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