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영광은 콜로세움부터 시작된다. 약 2000년 전 로마의 독재자 네로 황제가 몰락한 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인공 호수가 있던 자리에 원형경기장 콜로세움을 세웠다. 높이 50m, 둘레 527m인 타원형의 거대한 경기장은 약 5만명을 수용하는데, 서기 72년에 히브리에서 데려온 노예 1만2000명을 투입하여 8년에 걸쳐 건설되었다.
비가 올 때는 거대한 천막을 쳤고, 5만 관중이 정해진 출구로 빠져 나가는 데 5분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물을 가득 채운 후 모의해전까지 즐겼다고 한다.
가장 많이 벌어졌던 행사는 목숨을 건 검투사 경기였다. 그러나 지금 콜로세움에 들어서면 바닥이 다 파헤쳐지고 지하공간 대부분이 드러나 앙상한 해골 같은 느낌을 준다. 지하공간은 검투사 대기실, 맹수 우리, 도구 보관 창고로 사용됐다.
로마 공회장을 뜻하는 ‘포로 로마노’는 콜로세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늑대 젖을 먹고 자랐다는 로마의 창건자 로물루스는 근처에 살던 사비니 왕국의 여인들을 강탈한 후 추격해 온 군사들과 대치한다. 캄피돌리오 언덕과 팔라티노 언덕 사이의 습한 저지대였는데, 로물루스는 사비니군과 화해한 후 이 저지대를 백성들의 모임 장소로 사용했다. 사람들은 이때부터 이곳에서 물물교환을 하고 정치집회를 가졌으며 수많은 신전과 기념물을 세웠다.
로마 공회장은 훗날 이민족의 침략으로 철저히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신전과 감옥, 로마 최고의 정치기관 원로원 건물, 키케로 등의 웅변가가 연설했다는 연단, 그리고 카이사르(시저)가 암살된 후 화장된 곳에 세워진 카이사르 신전 등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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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나 광장의 분수대(왼쪽), 스페인 계단 |
로마의 유적지는 거대하다. 중부 유럽의 아기자기한 유적지에 익숙해진 관광객들은 로마에 오는 순간 거대한 규모에 가슴이 탁 트이는 듯한 충격을 받는다. 서기 217년, 카라칼라 황제는 한번에 16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동 목욕탕을 만들었다. 목욕탕 바닥의 화려한 모자이크, 현란한 조각들은 그 당시 로마 사람들이 얼마나 사치했는가를 보여준다. 로마 시민들은 일과를 끝낸 후 이 카라칼라 욕탕에 와서 무료 목욕을 즐겼다고 한다. 로마 멸망 원인 중의 하나가 목욕 문화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들은 목욕을 좋아했다.
로마에는 거대한 유적지뿐 아니라 거리 곳곳에 숨어 있는 아기자기한 광장, 분수대, 조각들 그리고 넘쳐 흐르는 낭만들이 있다. 나보나 광장에는 밤이 되면 레스토랑과 카페의 불빛이 밝혀지고,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쇼를 보여주는 사람 등이 나타난다. 16세기 중엽 바로크 예술의 대가인 베르니니가 만든 분수대에는 체격이 우람한 네 개의 인물상이 있는데, 이는 인도의 갠지스강과 아프리카의 나일강, 남미의 플라타 강, 유럽의 다뉴브 강들을 각각 의인화한 것이다.
나보나 광장만큼 낭만이 넘쳐 흐르는 곳은 스페인 계단이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던 장소로, 지금도 수많은 여행자들은 오드리 헵번처럼 스페인 계단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근처에는 18세기의 아름다운 조각들로 둘러싸인 트레비 분수가 있다. 돌아서서 동전을 오른손으로 쥐고 왼쪽 어깨 넘어로 던져 분수에 넣으면 다시 로마를 찾아오게 된다는 전설 때문에 수많은 여행자들이 트레비 분수에 동전을 던지고 있다. 또 산타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 입구에는 ‘진실의 입’이라고 알려진 얼굴 조각이 있다. 거짓말하는 사람이 이 조각의 입에 손을 넣으면 손이 잘린다는 전설 때문에, 손을 넣고 흥분하며 사진을 찍는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로마 외곽의 지하 묘지인 카타콤베에는 탄압받던 기독교도들의 신앙심이 서려 있고, 바티칸 시티의 거대한 산 피에트로 광장, 산 피에트로 성당, 바티칸 박물관에서는 활짝 피어났던 로마의 기독교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로마의 매력이 눈에 보이는 거대한 건축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웅장한 유적지와 아름다운 예술품에 감탄하다가 문득 그 너머에 서린 역사와 신화, 전설에 눈을 돌리면 우리의 시야는 수천년 전까지 확장되며 작은 희열이 온 몸을 덮쳐 온다.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존재보다도 그 존재에 어린 흔적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곳이 로마다.
여행작가(blog.naver.com/roadjisang)
>>여행 에피소드
로마에서 지하 무덤인 카타콤베에 들른 적이 있다. 이곳엔 혼자 들어갈 수 없어 할 수 없이 일본인 단체 관광객들을 따라 들어갔다. 지하 무덤은 으스스했고 미로처럼 펼쳐져 있었다. 일본인 가이드의 설명을 알아들을 수 없었던 나는 저만치 홀로 떨어져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돌아보니 몇 분 사이에 사람들이 감쪽같이 다 사라져 버렸다.
불이 밝혀져 있어 ‘금방 찾겠지’ 하고 황급히 그 장소로 돌아갔으나 이리저리 펼쳐진 동굴에서 그들의 자취는 찾을 수 없었고 말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3년 전 단체관광을 왔던 일본인 커플이 정전이 되는 바람에 일행과 헤어지고 입구를 찾지 못해 며칠 후에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던 나로서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다행히 잠시 헤매다 입구를 발견하고 나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예전에 로마 병사들이 이 안에서 예배를 올리던 기독교 신자들을 쫓아 들어왔다 길을 잃어 죽기도 했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여행 정보
로마까지 직항이 있다. 로마는 유적지 하나를 보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일정을 넉넉하게 잡는 것이 좋다. 특히 로마에서는 도둑이나 들치기를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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