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기행](95) 터키 코니아
[세계일보 2007-03-09 09:42]

한 손엔 코란, 다른 한 손에는 칼 또는 폭탄을 안고 돌진하는 테러범. 우리가 이슬람교인(무슬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상일지 모른다.

하지만 무슬림으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테러범 이미지는 서방 세계에서 만들어 낸 편견이며, 중세 십자군전쟁 때 이교도들에게 행한 만행이 기독교의 전부가 아니듯이 무슬림도 마찬가지라고 항변한다. 유일신을 섬기지만 인류는 모두 형제란 게 자신들의 종교철학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종교적인 대립과 정치적인 이유에서 발생하는 테러 사건들로 서방 세계의 편견은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그러나 메블라나 루미(Mevlana Rumi)의 회전무를 보고 나면, 이슬람교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된다. 메블라나 루미는 ‘우리의 스승’이란 뜻이다. 13세기 초 터키의 코니아에서 활동한 철학자이자 시인이며, 수피(이슬람 신비주의자)인 루미의 주장은 이렇다.

“사랑이야말로 정신적인 구원을 위한 가장 위대하고 신비한 길이다. 삶은 곧 사랑이다.”

그는 철학자였으나 철학을 거부했다. 사상은 사랑의 희열을 느끼게 해주지 못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또한 시인이면서 말과 글을 거부했다. 말과 글은 포도밭에 둘린 울타리일 뿐, 포도 즉 사랑 그 자체는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사상과 말을 버리고 신과 합일하는 수행 방법으로 창안해낸 것이 바로 회전무였다. 빙글빙글 도는 춤이라 하여 서양 사람들은 ‘수피 훨링(Sufi whirling)’이라고도 한다.

◇터키 여학생들(왼쪽), 코니아의 초등학교 학생들

중앙아시아 유목민이었던 터키인들은 원래 이슬람교인이 아니었다. 그들이 이슬람 수니파를 받아들인 것은 8, 9세기쯤 아나톨리아 반도에 이주하면서부터다. 그 후 이단으로 취급받는 신비주의 수피즘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수피들은 기도와 춤과 노래 등을 통해 절대자와의 합일을 꿈꾸었다.

활달한 유목민이었던 터키인들은 딱딱한 교리보다 이같이 역동적인 종교의식(세마·Sema)을 좋아했다. 회전무는 14세기부터 이란, 파키스탄, 인도, 아프가니스탄으로 전해졌고, 19세기 중반 독일 학자에 의해 유럽에 소개된 후 전 세계로 널리 퍼지게 된다.

현재 이런 춤은 이스탄불 등의 관광지에서 공연처럼 행해지지만, 코니아에 가면 더 장엄한 의식으로 진행된다. 메블라나 루미가 세상을 뜬 1273년 12월17일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12월10일부터 17일까지 그의 고향인 터키 중부 코니아에서 그를 기리는 축제가 열린다.

12세기쯤 셀주크터키 제국의 수도였던 코니아는 아직도 검은 차도르를 두르고 다니는 중년 여인들을 흔히 볼 수 있는 중세풍의 보수적인 도시다. 아름다운 모스크, 중세풍의 건물과 메블라나 루미의 무덤, 박물관 등이 있어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축제가 열릴 때쯤이면 엄청난 관광객들로 북적거리게 된다. 이 축제는 체육관에서 하루에 두 번씩 열리는데, 유럽에 널리 소개되어 유럽 관광객들 특히 독일인들이 많이 찾는다.

축제의 1부는 합창으로 시작된다. 남자 합창단원들이 부르는 조용하고 경건한 종교적 노래가 힘차게 이어지다가 “라 일라하 일랄라(알라 외에는 신이 없도다)”를 외치며 절정에 달한다. 2부는 회전무다. 남자 데르비슈(수피 수행자들) 십여 명이 머리에 둥근 모자를 쓰고 나와 원을 그리며 천천히 돌다가 여러 차례 인사한다. 첫 번째 인사는 진리를 향한 인간의 탄생을 의미하며, 두 번째 인사는 전지전능한 신의 위대함을 찬미한다는 뜻이다. 세 번째 인사는 신에 대한 인식이 사랑 속에서 녹아버리는 것을, 네 번째 인사는 자아가 소멸하고 신과 하나가 된 후 창조를 향한 의무감에 충만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인사를 마친 그들은 감미로운 음악에 맞춰 왼발을 축으로 회전하며 무대 전체를 둥글게 돌기 시작한다. 이 광경에 관객들은 모두 탄성을 지른다. 하얀 가운 밑바닥을 넓게 벌리며 회전하는 무용수들은 마치 거꾸로 피어난 백장미들처럼 보인다. 무아지경에 빠져 수백 번을 돌다 잠시 멈추고 주변 사람들과 두셋씩 모여 어깨를 부딪친 채 한참을 쉰다. 잠시 후 다시 반대 방향으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는데 수백 번의 회전 속에서 무용수들은 신의 감미로운 입맞춤에 도취한 것처럼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처음에 이 춤을 추는 사람은 환희에 차 기쁨의 눈물을 흘릴 정도라고 한다.

각 종교에는 나름대로 여러 수행 방법이 있지만 이 회전무만큼 황홀한 방법은 없을 것 같다. 한국에서도 공연했지만 마침 2000년 6월 중순,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시기여서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지 못했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여행 작가

(blog.naver.com/roadji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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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니아에는 관광객이 많다 보니 이들을 상대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장삿속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카펫 가게 호객꾼이 많아 좀 귀찮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단히 순박했다. 길을 가다가 어느 허름한 찻집에 들어갔는데 주인은 먼 나라에서 온 손님이라고 찻값을 받지 않을 정도였다.

또 우연히 초등학교에 들렀을 때는 학교 선생님들이 반갑게 맞이하며 차를 대접하고 말을 건넸다. 얘기를 마치고 나오다 운동장에서 체육 수업을 하는 아이들을 보고 사진을 찍었는데 이게 실수였다. 아이들이 수업하다 말고 모두 나에게 달려오는 바람에 수업이 엉망진창이 된 것이다. 결국, 체육 선생님도 수업을 포기하고 다 같이 사진을 찍었다. “비르(하나), 이키(둘), 위치(셋)” 하며 내가 사진을 찍자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러댔다. 교문까지 따라와 나에게 두 손 모아 합장하고 무릎을 약간 굽히며 공손하게 인사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샛길이나 길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같이 정이 넘쳐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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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니아까지 가는 방법은 많다. 모두 버스를 이용하는데 앙카라에서는 3시간, 이스탄불에서는 10시간 정도 걸린다. 3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유명 관광지 카파도키아와 연계해서 돌아봐도 좋다.

by 100명 2007. 4. 13. 1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