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福岡)는 우리와 매우 가깝다. 후쿠오카 사람들이 “여기는 기후나 기질이 도쿄보다도 부산과 더 비슷해요”라고 말할 정도다. 부산에서 고속여객선인 비틀호나 코비호를 타면 2시간5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한국인들이 워낙 많이 찾아 곳곳에 한글 안내판도 보인다.
후쿠오카에서는 하카타역 혹은 하카타 우동 등 하카타(博多)라는 말도 많이 쓰인다. 원래 후쿠오카와 하카타는 다른 도시였다.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는 나카가와강 동쪽의 하카타에는 상인들이 많이 살았고, 강 서쪽인 후쿠오카에는 무사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두 도시가 1889년 후쿠오카라는 이름으로 합쳐지면서 규슈에서 가장 큰 도시가 됐다.
후쿠오카 근처에는 우리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곳이 있다. 전철을 타고 50분 정도 남쪽으로 가다 보면 전원 풍경과 주택지가 어우러져 편안한 느낌을 주는 다자이후(大宰府)란 도시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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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만구 신사 입구 |
서기 660년쯤 이곳은 엄청난 긴장에 쌓여 있었다. 백제가 나당 연합군에 멸망하면서 많은 유민들이 규슈 북부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당시 일본을 다스리던 사이메(齊明) 여왕은 백제를 구원하려고 긴키(近畿) 지방에 있던 수도 아스카(飛鳥)에서 친히 군사를 이끌고 규슈로 진군한다. 그러나 사이메 여왕은 661년 병으로 죽고, 아들 나카노오에(中大兄) 태자가 유언을 받들어 하카타에 도착한 후 백제에 구원군을 보낸다. 663년에 2만7000여명의 병력이 백제 부흥군과 연합해 백촌강(白村江, 금강 하구)에서 대전투를 벌였으나 패배하고 만다.
왜 그들은 이렇게까지 백제를 부흥하기 위해 노력했을까?
“이제 백제가 망해서 조상들에게 절할 곳이 없어졌다”며 일본 귀족들이 울부짖었다는 기록 등 수많은 역사적 자료를 통해 일왕과 지배계급이 백제에서 건너왔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학자들이 많다. 또한 백제가 멸망한 후에 일본(日本)이란 국호가 등장했는데, 이때부터 일본은 한반도와 결별하고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해가 뜨는 곳, 즉 ‘해의 근본’은 일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인식이 아니다. 일본은 한반도에서 바라보았을 때 해가 뜨는 곳이 되므로, ‘해의 근본’이라는 인식의 주체는 한반도에서 넘어간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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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을 기원하는 부적을 사는 이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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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적은 팻말들 |
백제가 멸망하자 일본은 나당 연합군이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여 성을 쌓았는데, 그 터가 다자이후에 남아 있다. 백제 유민들과 일본인들은 평지에 수성(水城)을 쌓았다. 백제식 토성으로 성 밑에 수로(水路)를 설치했기에 수성이란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현재 서울 송파구 풍납동에 있는 풍납토성처럼 주택가와 도로변에 흔적이 남아 있다. 다자이후로 가는 길 양쪽에 있는 험한 산은 천연 방어막이었기에 일본인과 백제 유민들은 적군이 침입할 수 있는 산 사이의 활짝 트인 평야에 약 1.2㎞의 토성을 쌓았는데, 현재 성터는 남아 있지 않고 나무가 무성한 수림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수성은 1차 방어선이었고, 이것이 무너졌을 때를 대비한 성이 대야성(大野城)이었다. 다자이후역에서 규슈 산책로를 따라 가파른 등산로를 약 한 시간 정도 오르락내리락하다 보면 후쿠오카 시내가 잘 내려다보이는 확 트인 고원이 나온다. 둥글게 휜 절벽 밑으로는 성터의 흔적이 남아 있고, 근처에는 창고 터도 보인다.
일본식 성은 평지에 세워지고 주변은 해자라는 연못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산성은 거의 없다. 그래서 여기에 남아 있는 대야성 같은 성을 일본인들은 조선식 산성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일본이 그토록 두려워한 나당 연합군의 침공은 없었다. 그후 이곳에 사왕사(四王寺)가 들어서면서 대야산은 사왕사산으로 불렸으며, 다자이후는 나라나 교토처럼 바둑판같이 계획된 도시로 발전했다. 그 흔적이 이곳을 다스리던 다자이후 정청의 초석이다.
이보다도 더 인기를 끄는 것은 다자이후 덴만구(大帝府天滿宮)로 스가와라 미치자네라는 인물을 ‘학문의 신’으로 모시는 신사다. 130종 6000그루의 매화 등 계절마다 피어나는 꽃들로 매우 아름다운 곳인데, 입시철인 2월이면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찾아 학문의 신에게 기도하며 합격을 기원한다. 근처에는 규슈 역사자료관도 있어서 다자이후는 후쿠오카에 왔다면 꼭 한 번 들러 역사와 자연을 즐겨 볼 만한 곳이다.
여행 작가(blog.naver.com/roadjisang)
#여행 정보
후쿠오카의 덴진(天紳)에 있는 니시테쓰(西鐵) 덴진역에서 갈 수 있는데,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다자이후까지 한 번에 가는 완행열차를 타는 방법으로 50분 정도 걸린다. 더 빨리 가려면 오무타까지 가는 급행열차를 타고 후쓰카이치시(二日市)에서 내려 바로 대기하고 있는 다자이후행 열차를 타면 23분 정도에 갈 수 있다. 요금은 편도 390엔. 다자이후에는 유스호스텔이 있지만, 후쿠오카에서 당일치기로 찾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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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모노를 입고 나들이 나온 어린이 |
대야성 산성터는 예전에 차를 타고 간 적이 있었으나, 올 2월 중순에 갔을 때는 규슈 자연보도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다자이후역에서 다자이후 유스호스텔 방향으로 가는 길은 언덕길이었다.
한적한 주택가였고 어딜 가나 깔끔했으며, 아무리 작은 집이라도 다른 차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주차해 놓아 보기에도 좋았다. 계속 언덕길을 오르다 산으로 접어들었는데 갑자기 가팔라지며 등산로처럼 변했다. 생각 외로 힘든 길이었다.
가면서 제대로 가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종종 중간에 만나는 등산객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서툰 일본어로 ‘대야성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지만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고, 다만 ‘미기(오른쪽), 히다리(왼쪽)’ 등의 말만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힘들었지만 서툰 대화 속에서 사람들의 친절과 미소를 만날 수 있는 즐거운 길이었다. 대야성 구경을 마치고 차도를 따라 내려와 덴만구로 가니 마침 입시철이라 인산인해였다. 주변 상가에서는 떡이나 오뎅(어묵)을 파는데 오뎅에 ‘합격(合格)’이라는 도장을 찍어 팔고 있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입시 열기는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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