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기행](97) 일본 아스카
[세계일보 2007-03-23 10:09]

아스카(飛鳥)는 일본인들에게 마음의 고향이다. 거대한 유적지는 많지 않지만, 곳곳에 일본 고대 국가 형성기의 자취가 남아 있어 한국의 부여와 비슷한 분위기다. 아스카는 교토나 나라에서 전철을 타면 약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시골이다. 전철역에 내리는 순간 한적한 분위기가 정겹게 다가오는데, 주변이 산들로 둘러싸인 동서 약 6㎞, 남북 약 8㎞의 분지에 크고 작은 언덕이 많다.

이곳은 794년 교토로 천도하기까지 야마토(大和) 정권의 요람이었다. 야마토 정권의 시작은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였다. 이때는 한반도에서 백제 문명이 융성했던 시기로, 정치·종교·문화적으로 백제 영향을 많이 받았다. 우선 언어에서 그 기원을 찾는 학자들이 있다. 일본에서는 비조(飛鳥)라는 말을 그들 식대로 ‘도부도리’라 읽지 않고 ‘아스카’라고 읽는다. 일본의 고문헌에는 아스카라는 지역이 비조뿐 아니라 명일향(明日香), 안숙(安宿) 등으로도 표기되어 있는데, 아스카란 말은 안숙에서 나왔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말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많은 학자들은 ‘비상한 새가 여기까지 날아 와서 비로소 안심하고 쉴 수 있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본다. 그 주체는 바로 풍랑을 헤치고 바다를 건너와 이곳에 정착한 백제인들이 아니었을까? 비조란 지명은 이 근방에 많이 나타나는데, 백제 사람들이 오사카 지방에 상륙한 후 흩어지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 지방의 고분에서 그 당시 일본에는 없었던 말과 관련된 장비들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의 유물로 추정하고 있다.

◇귀신에 관한 전설이 얽힌 돌(왼쪽), 다카마쓰즈카 고분

아스카에는 유적지들이 널리 퍼져 있다. 좁은 길은 차를 타고 다닐 수가 없고 걷기에도 멀어, 많은 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하이킹을 즐기듯이 돌아본다. 이곳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아스카데라(飛鳥寺)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절로 종교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곳이다. 이 절은 596년에 세워졌다. 이 시기에 야마토 정권은 종교적인 문제로 엄청난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었다. 6세기 중엽 백제 성왕은 일본에 불상과 경론을 보냈는데, 이걸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를 놓고 국론이 분열된 것이다. 숭불파는 소가(蘇我)씨였고 배불파는 모노노베(物部)씨였는데 숭불파가 승리한 후 이 절을 만들었다. 그후 일본에서는 불교가 크게 흥하게 되니 이 절은 일본인들에게 매우 각별한 곳이다. 안에는 건장한 청년같이 힘이 넘치는 불상이 있는데, 이곳 주지 스님이 매우 성실하게 불상에 대해 설명해 준다. 이 불상은 특이하게도 한쪽에서 보면 고구려 불상처럼 씩씩한 기상이 엿보이고, 다른 한쪽에서 보면 백제 불상처럼 온화한 기운이 넘쳐 흐른다.

이 아스카사 부근에는 수총(首塚)이란 곳이 있다. 소가 이루카의 머리가 묻혔다는 자리에 세운 석탑으로, 이곳에 얽힌 역사는 비참하다. 불교를 받아들일 때 주도적인 역할을 한 소가 우마코는 그후 외척으로서 엄청난 권력을 행사한다. 소가 집안은 일본 고대사에서 매우 흥미를 끄는 세력으로, 백제계로 추정된다. 그들은 권력이 집중될수록 점점 횡포를 부렸고 그 자손인 소가 이루카 때 와서 극치를 이뤘다. 이에 나카노오에 (中大兄) 왕자는 궁중 쿠데타를 일으켜 소가 이루카의 목을 쳤다. 그 이루카의 목이 날아온 곳이 바로 수총 자리였다는 전설이 서려 있다.

◇자전거를 타고 즐기는 여행자들

나카노오에 왕자가 후일 왕이 될 무렵 한반도에서는 백제가 멸망했고, 일본에서 보낸 구원군도 패배했다. 그 후 야마토 정권은 교토로 천도하면서 한반도와 밀접했던 아스카 시대를 끝내고 일본이란 국호를 내세우며 새로운 나라로 출발을 하게 된다.

아스카에는 수수께끼 돌들이 많다. 거북과 비슷한 돌, 지나가는 사람을 잡아 귀신이 도마에서 요리를 했다는 전설이 서린 귀신의 칼도마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석무대(石舞臺)라는 거대한 돌에는 얽힌 이야기가 많다. 길이 12.5m, 폭 17.9m로 일본에서 가장 큰 바위 무덤이다. 축조 시기를 알 수 없고 부장품이 도굴되어 주인공은 분명치 않다. 권력자였던 소가 우마코의 무덤으로 보이는데, 석무대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여우가 밤마다 이곳에서 춤을 추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다카마쓰즈카(高松塚) 고분이 있다. 1970년 죽순을 캐던 농부가 처음으로 발견한 이 석실 안 부장품은 다 도굴돼 무덤 주인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고분 벽화가 한반도에서 발굴된 것과 비슷해서 백제계나 고구려계 귀족일 것이라는 설도 있고 일본의 왕족이라는 설도 있다.

아스카는 이런 역사와 문화뿐만 아니라 한적하고 아름다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이며, 한국인의 눈에도 왠지 모르게 푸근하게 느껴진다. 약 1300년 전 먼 바닷길을 헤치고 이곳에 도착한 백제인들의 눈에도 틀림없이 그렇게 느껴졌을 것만 같다.

여행작가(blog.naver.com/roadji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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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카에는 여러 번 가보았는데 걸어다닌 적도 있고 차를 타고 다닌 적도 있다. 그 중에서 자전거를 타고 돌 때가 가장 좋았다. 역사 앞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유적지를 돌아보다 가끔 자판기에서 음료를 뽑아 마시고, 또 가을이면 아무도 없는 무인 판매대에서 빨간 홍시를 사먹는 게 즐거웠다.

그런데 한번은 큰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저녁나절 자전거를 타고 비탈길을 내려가다 앞으로 고꾸라진 것이다. 아찔한 순간이었다. 안경이 벗겨지고 턱은 아스팔트에 부딪쳤는데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손바닥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마침 지나가던 할아버지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와 도움을 주었다. 불행 중 다행이었지만 자칫하면 얼굴이나 머리가 크게 다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아스카의 비탈길을 달릴 때는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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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카는 오사카, 교토, 나라 등에서 갈 수 있다. 중간에 가시하라 진구마에역에서 내려 아스카역까지 가는 전철을 갈아탄다. 대략 1시간에서 1시간30분 정도 걸린다. 아스카 유적지를 걸어서 보려면 대략 10㎞ 정도를 걸어야 된다. 아스카역사 앞에서 자전거를 빌려 준다. 오사카, 교토, 나라 등지에 숙소를 정해 놓고 당일치기로 돌아보면 좋다.

by 100명 2007. 4. 13. 1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