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기행]<98> 중국 상하이
[세계일보 2007-03-30 10:06]

상하이의 매력은 다양하다. 경제에 관심이 있다면 동양에 세워진 미래의 뉴욕을 연상할 수 있고, 역사에 관심 있다면 아편전쟁과 서구열강에 의해서 조각난 조계지를 떠올릴 것이며, 사람들의 질펀한 삶에 눈길이 간다면 주성치의 영화 ‘쿵푸 허슬’에 나오는 1930년대풍의 목조건물과 뒷골목 그리고 거리에 넘쳐 흐르는 음식점을 먼저 연상할 것 같다. 이처럼 상하이에는 대단한 유적지가 있는 것도 아닌데 쉽게 싫증 나지 않는 다양한 매력이 있다.

상하이는 원래 조그만 어촌에 불과했다. 양쯔강 이남에서 생산된 쌀을 북쪽에 운반하는 기지였고 17, 18세기에는 비단의 집산지이기도 했다. 그러다 1842년 청나라가 아편전쟁에 패한 후 영국과 난징조약을 맺으면서 외국에 개방되었고 그때부터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게 된다. 그후 영국, 미국, 프랑스, 일본 등이 치외법권 지역인 조계지를 설치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상하이는 중국 땅이면서도 중국 땅이 아닌 곳이 되어 버렸다.

◇아침에 와이탄에서 태극권 하는 사람들(왼쪽), 아침에 와이탄에서 묘기를 펼치는 노인.

상하이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감상할 수 있는 곳은 와이탄(外灘)이다. 와이탄은 황푸강변을 따라 약 1.5㎞ 정도 이어진 해안길을 말하는데, 여기에 있는 황푸공원은 ‘개와 중국인은 들어오지 말라’는 팻말이 붙어 있던 치욕스러운 현장이다. 그러나 현재는 수많은 중국인들과 관광객들이 이곳에서 건너편 푸둥지구에 높이 치솟은 동방명주 TV 수신탑과 주변의 고층빌딩을 보며 감탄하고, 중국 정부는 의도적으로 외국 요인들을 이 과거의 치욕스런 현장에 데리고 와 건너편에 솟아오른 중국의 현재와 미래를 보게 한다.

이곳에서 역사를 회상하면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현재 이 공원에서는 아침이면 수많은 시민이 나와 단체로 태극권을 연마하고, 롤러 스케이트를 타며 묘기를 연마하는 할아버지도 볼 수 있다. 조계지 시절, 국민당과 공산당의 전쟁, 문화대혁명을 거친 나이 든 사람들은 이제 평화스럽고 번영하는 상하이의 풍경을 보며 깊은 감회에 젖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왼쪽), 예원.

와이탄공원에서 고개를 돌려 중산둥로(中山東路)와 난징둥로(南京東路) 쪽을 보면 고풍스러운 유럽풍 건물들이 즐비하다. 이곳은 영국 조계지였던 곳으로 아직까지 그 분위기가 남아 있는데, 이 거리를 걷다 보면 진짜 중국에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실감한다. 가도가도 밀려드는 사람들의 행렬은 그야말로 사람 산, 사람 바다인 인산인해다. 마치 파도가 밀려오는 것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사람 행렬이 끊이질 않는다. 이 거리에는 온갖 쇼핑센터와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는데 하루 유동인구가 1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 혼잡스러운 거리가 흥겨운 분위기로 느껴지는 것은 보행자 거리이기 때문이다. 길이 너무 길다 보니 관광객이나 쇼핑객을 위해 거리 한복판에 장난감 열차 같은 것을 설치했는데 꽤 낭만적인 분위기다.

눈길을 더하는 곳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로, 임시정부 27년의 역사 중 13년 동안 이곳을 청사로 사용했다. 한때 프랑스 조계지였던 이 지역 주변에는 프랑스풍의 건물과 카페가 들어서 있어 화려한 분위기인데, 골목길로 들어서면 허름한 목조건물들 사이에 임시정부 청사가 있다. 청사라는 말에서 풍기는 이미지와는 달리 낡은 목조건물은 개인집처럼 조그맣다. 1층에는 회의실과 주방, 2층에는 김구 선생을 비롯한 요인들이 사용하던 집무실, 3층에는 침실이 있으며 임시정부와 관련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현장에서 한때 나라를 잃었던 유민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우리가 일으킨 나라의 소중함을 절로 느끼게 된다.

상하이에 온 여행자들이 빠트리지 않는 곳이 예원이다. 예원은 상하이에 하나밖에 없는 정원으로, 명나라 때인 16세기 중엽 상하이 출신 고위 관리가 아버지의 노후를 위해 만든 저택이었다. 개인 저택으로는 너무도 큰 이곳에는 40개의 정자와 누각, 연못 등이 있다. 그리고 바로 앞에는 1000여개의 상점이 밀집된 상하이의 대표적인 시장인 예원상장이 있다. 수많은 가게를 들러보는 재미도 있지만 명·청대의 고풍스러운 건물들로 분위기가 더 인상적이다.

그외에도 루쉰공원과 쑨원고거, 위포사(玉佛寺), 룽화사(龍華寺) 등의 볼거리가 있는데 나이트 라이프도 빼놓을 수 없다. 그 중에서 1930년대의 분위기를 맛보고 싶은 사람은 난징둥로의 화평빈관(和平賓館)에 있는 올드 재즈 바로 가 그 시절 유행했던 스윙 재즈를 즐긴다. 이곳은 음악만 오래된 것이 아니라 연주자도 70대 이상의 노인들이어서 흘러간 과거에 푹 젖게 된다. 상하이는 공간 여행 못지않게 시간 여행을 즐기기에 매우 좋은 매력적인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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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에피소드

상하이는 날로 발전하고 있다. 물론 그 이면에 서린 거품을 말하며 위험성을 얘기하는 이들도 있지만 겉보기로는 분명히 급속한 발전을 이루고 있다. 시민들의 의식도 변하고 있으며, 특히 택시기사들의 친절과 정직성에 감탄하는 이들이 많다. 베이징에서 뺑뺑이를 돌리는 택시기사를 만났던 나는 상하이에서도 그럴까 걱정했는데 몇번 타봐도 그런 기사들은 없었다.

그런데 이런 발전 가운데도 예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중국인들이 잠옷 바람으로 거리를 활보한다는 소리를 예전부터 들은 적이 있는데 실제로 목격한 것이다. 오전에 황푸공원에 갔을 때 웬 노인이 잠옷 바람으로 그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을 유유자적 걷고 있는데 노인이니까 그런가 보다 했지만, 임시정부 청사에 찾아가던 늦은 아침에 잠옷 바람으로 거리의 가게에서 뭔가를 산 후 손잡고 활보하는 청춘남녀를 보면서 약간 충격을 받았다. 글쎄 이걸 보고 우리 기준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남의 시선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중국인들의 단면을 엿볼 수가 있어 흥미로웠다.

>>여행 정보

임시정부청사를 가려면 택시부터 버스까지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지만, 지하철 1호선을 타고 황피난로(黃陂南路)에서 3번 출구로 나온 후 오른쪽으로 꺾어져 약 500m 정도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by 100명 2007. 4. 13. 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