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상의 세계문화기행]<99> 중국 쑤저우
"하늘엔 천당 땅에는 쑤저우가…”
◇쑤저우의 운하(왼쪽), 운하 옆의 집들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항저우(杭州)와 쑤저우(蘇州)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쑤저우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특히 쑤저우는 운하와 아름다운 정원, 미인들로 유명해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서도 대단한 도시로 묘사되어 있다.

“쑤저우는 매우 크고 훌륭한 도시다. 주민들은 우상숭배자이고 지폐를 사용한다. 사람들은 교역과 수공업으로 살아가며, 비단이 대단히 많이 생산돼 옷을 지어 입는다. 도시가 얼마나 큰지 둘레가 40마일에 이르며, 이 도시에는 돌로 만든 다리가 6000개나 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 여행은 1260년에 시작해 1295년에 끝났으니, 이 이야기는 13세기 후반의 일이다.

당시 기록에 따른 이미지를 떠올리며 잔뜩 기대감을 갖고 쑤저우에 들어서는 순간 실망하게 된다. 돌로 만든 다리 6000개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번화한 ‘동양의 베네치아’는 좁고 낡은 운하와 초라한 건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급한 마음으로 휘돌아보는 관광객의 눈에 쑤저우는 마치 초췌한 노인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잠시 여유를 갖고 퇴락한 도시의 고즈넉한 정원과 뒷골목을 천천히 거닐고 그 정취 속에서 과거를 회상한다면 쑤저우는 푸근한 고도로 다가오기도 한다.

쑤저우는 춘추시대 오나라 수도로 오왕 합려의 무덤이 근교에 있다. 오나라와 월나라는 원수 간이었는데, 합려는 이곳에서 월왕 구천에게 죽는다. 합려의 장례를 지낸 지 사흘째 되던 날 백호가 나타나 무덤 위에 꿇어앉았다는 전설에서 유래하여 이곳은 호구(虎丘)라 불린다. 합려가 칼로 잘랐다는 바위 시검석도 근처에 있다. 합려가 귀중하게 여겼던 검 3000자루를 묻은 후 호수가 된 검지(劍池)도 있고, 고대에 쑤저우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호구탑(虎丘塔)도 볼 수 있다.

오왕 합려의 아들 부차는 가시나무에서 잠을 자며 복수의 칼을 간 끝에 월나라와 전쟁을 벌여 승리한다. 오왕 부차는 마땅히 부친의 원수인 구천을 죽여야 했으나, 미녀를 상납받은 후 그의 목숨을 살려준다. 이에 구천은 쓰디쓴 쓸개를 핥아 가며 힘을 길러 오나라에 복수하게 되니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고사성어가 여기서 나오게 된다.

쑤저우에는 남북조시대인 6세기에 세워진 한산사란 절이 있다. 7세기에 당나라 시인이자 승려인 한산(寒山)이 머물러 이 같은 이름을 얻게 되었고, 당나라 시인 장계가 ‘풍교야박(楓橋夜泊)’이란 시에서 이 절을 언급함으로써 더 유명해졌다고 한다.

쑤저우는 마르코 폴로가 얘기했던 대로 예로부터 비단의 집산지여서 지금도 시내 비단박물관에 가면 시대별로 구분해 놓은 비단과 누에를 기르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뭐니 뭐니 해도 쑤저우의 명성을 유지하는 것은 정원들이다. 쑤저우 정원들의 특징은 다른 도시에서처럼 왕의 것이 아니라 부호들의 개인 정원이라는 점이다.

◇창랑정의 대나무숲(왼쪽), 유원의 정자

도심지에는 네 개의 정원이 잘 보존되어 있는데, 가장 오래된 정원은 창랑정이다. 원래 오월 광릉왕의 정원이었으나, 북송 때 시인 소순흠이 정원 내에 누각을 세운 뒤 그 이름을 따 창랑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유난히 대나무숲이 많은 이 정원은 다른 정원에 비해 규모는 작은 편이나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사자림은 원나라 때 사찰로 지어졌다가 훗날 정원으로 바뀌었는데, 사자 모양의 돌을 많이 써서 그 같은 이름이 붙었다.

졸정원은 명나라 때인 15세기 초 어사 왕헌신이 지은 정원으로 연못이 매우 많다.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유원은 아름다운 누각들과 그 누각 사이에 길게 뻗은 회랑들이 아름답다.

쑤저우에서는 도시 한가운데를 흐르는 운하도 빠트릴 수 없다. 카메라 뷰파인더에 찍히는 주변 집들과 어우러진 운하와 다리의 풍경은 탁하고 초라하다. 그러나 마르코 폴로가 약 700년 전에 묘사했던 방금 지은 화려한 집들과 투명한 운하 물 그리고 맑은 공기와 풍요로운 물자들을 상상하면 그 시절에는 정말로 아름다웠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쑤저우에 과거의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번화가에는 온갖 음식점과 상점, 유럽풍 바, 헤어숍 등이 보이고 한류의 물결을 타고 한국 식당들도 등장했다. 저녁이면 뱀, 개구리, 생선 등을 요리하는 간이 포장마차가 들어선다.

쑤저우는 이제 예전의 명성을 뒤로하고 변하고 있으며, 현대화 물결에 발맞춰 도시 전체가 공사 중이다. 낡은 풍경들이 해체되고 새로운 건물들이 치솟는 쑤저우가 과연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지 매우 궁금하다.

여행작가(blog.naver.com/roadji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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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열풍은 쑤저우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몇 년 전 상하이에서 버스를 타고 쑤저우로 가는데 라디오방송에서 한국말이 들려왔다. HOT 멤버들이 얘기하고 옆에서 중국어 통역이 돕고 있었다. 이제 한류가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지만, 중국을 처음 여행했던 1991년도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있다.

이같이 양국은 문화 교류 속에서 많이 닮아가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잘 이해되지 않는 풍경도 목격됐다. 쑤저우에서 운하를 따라 걷다가 다리 부근에서 웬 젊은 남녀가 꼭 끌어안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대로변이어서 많은 차들이 지나다녔고, 뒤편에는 공사 중 무너진 건물 잔해가 널려 있었다. 행인들도 간간이 보였지만 두 젊은 남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특히 남자가 자신의 엉덩이를 여자의 몸에 쿵쿵 부딪치는 동작을 계속하고 있어서 보기가 영 민망스러웠다. 남의 사생활이고 지나가는 여행자였기에 그저 구경하는 기분으로 바라만 보았지만, 중국이 한국보다 더 개방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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쑤저우 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상하이에서 기차를 타면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버스도 꽤 자주 가므로 상하이에서 당일치기로 갔다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 더 여유 있게 보려면 1박을 하는 것이 낫다.

by 100명 2007. 4. 13. 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