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북서부 펀자브(Punjab)주에는 암리차르(Amritsar)란 도시가 있다.
머리에 터번을 두른 시크교도들이 주로 사는 곳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이상하게도 시크교도들의 골격은 엄청나게 크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코는 주먹만하고 주먹은 아이 머리만하며 어깨는 철판 같고 다리는 무쇠처럼 보인다.
인도에는 약 1800만명의 시크교도들이 있는데, 그 근거지가 바로 펀자브주이며 암리차르는 그들의 성지다. 구루(빛을 주는 스승) 나낙이 16세기 초에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초월하고 통합하고자 시크교를 만들었는데, 그는 현재 파키스탄에 속해 있는 라호르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후계자들에 의해 암리차르가 성지가 된다.
시크교도는 하나의 신을 믿으며 우상숭배에 반대한다. 그들은 관용과 사랑을 실천하고 그들을 찾아온 이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시크교는 한때 순조롭게 성장했으나 이슬람교를 믿던 무굴제국에 의해 탄압을 받게 되자 항쟁을 하면서 강건한 조직과 독특한 계율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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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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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사원 내의 무료식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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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식당의 음식 |
이들에게는 케쉬(자르지 않는 머리·깊은 신앙심을 의미), 캉가(나무 혹은 상아로 만든 빗·청결을 의미), 쿠차(반바지·경계를 의미), 카라(쇠로 만든 팔찌·결단을 의미), 키르판(칼·방어를 의미) 등 케이(K)로 시작되는 5가지의 계율이 있다.
현재 잘 지켜지고 있는 것은 케쉬로, 이들은 한 번도 자르지 않은 머리를 터번으로 감추고 있다. 이 때문에 흔히 시크교도를 생각하면 터번을 연상하는데, 시크교도들은 기계를 잘 다루고 용감무쌍해서 군인, 운전사, 경비원들이 많다.
시크교도의 성지인 황금사원의 입구로 들어가면, 대리석으로 만든 인공호수가 있고 그 중앙에 사원이 보인다. 시크교도들은 들어오자마자 호숫가에서 황금사원을 향해 절과 기도를 하고 명상을 하기도 한다. 일반 여행자들도 들어갈 수 있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긴 다리를 건너 황금사원으로 향한다. 1802년에 사원의 지붕이 약 400㎏의 황금으로 뒤덮인 이후부터 황금사원이라 부르는데, 이 사원을 더욱 신성하게 만드는 것은 시크교도들의 믿음과 시크교 경전 낭독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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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가보더의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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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가보더 국기하강식의 군인 |
지금은 평화로운 곳이지만, 이곳은 한때 유혈이 낭자한 현장이었다. 인도로부터 분리독립을 원하며 1980년대 초부터 무장투쟁을 벌인 시크교도 강경파들은 황금사원을 장악한 후 항거했다. 이에 1984년 그 당시 여자 총리였던 인디라 간디는 군대를 동원해 시크교도를 제압했고, 그 보복으로 인디라 간디 총리의 시크교도 경호원들이 간디 총리를 암살하고 만다. 그 후 엎치락뒤치락하는 가운데 암리차르는 한때 여행하기 힘든 곳이었지만 지금은 매우 평화롭다.
황금사원 근처에는 1919년 평화적인 집회를 위해 모인 군중에 영국군이 발포를 해서 약 400명이 희생당한 잘리안왈라 공원이 있다. 이곳에는 아직도 총탄 자국이 나 있는 벽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그날의 참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도시에는 다른 비극의 역사도 서려 있다. 영국으로부터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독립하게 되자 파키스탄 쪽에 살던 힌두교도와 시크교도들은 인도로 오고, 인도에 살던 이슬람교도들은 파키스탄으로 가며 약 100만명이 이동을 했다. 그 과정에서 약 25만명의 사람들이 죽는 엄청난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국경도시인 암리차르도 그 사태를 비켜갈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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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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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가보더의 짐꾼 |
시크교도들은 빈민구제사업을 많이 벌이고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베푸는 보시를 많이 하는데, 황금사원의 경내에는 구루 카 랑카라는 매우 큰 식당이 있다. 하루에 5만여명 정도가 이용한다는데 순례자들뿐만 아니라 여행자들도 들어가 밥을 먹을 수 있다. 식판 하나를 갖고 앉아 있으면 사원에서 일하는 이들이 음식을 나눠 준다.
밀개떡인 ‘차파티’와 콩수프인 ‘달’ 그리고 망고 장아찌 등 간단한 음식인데, 얼마든지 달라는 대로 준다. 음식을 받을 때는 모두 두 손으로 받고 경건한 표정을 짓는다.
시크교도 중에는 성공한 비즈니스맨들이 많은데, 그들이 고향에 투자를 많이 한 덕분에 암리차르는 다른 도시에 비해 발전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도록 황금사원에 헌금도 두둑이 내고 있다.
시크교의 창시자 구루 나낙은 평생 헐벗은 채로 탁발 수행을 하며 얻어먹었기에 배고픔이 어떤 것임을 잘 알았다. 얻어먹고 또 보시하는 경험 속에서 베풂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기 위해 이 같은 시설을 만들어 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여행자에게는 황금사원의 황금 못지않게 이런 무료식당이 가슴에 더 와 닿는다.
여행작가(blog.naver.com/roadjisang)
>> 여행 에피소드
암리차르에서 차를 타고 파키스탄과의 국경으로 가면 ‘와가보더’가 나온다. 바로 국경선이 지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국기하강식이 진행되는 오후 5시쯤부터 진풍경이 벌어진다.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 군인들은 상대편보다 더 멋진 국기하강식을 연출하기 위해 경쟁하고, 구경 온 양국 사람들은 고함을 지르며 사기를 북돋운다. 국경선의 긴장감이 감도는 곳이라 양측 군인들은 군기가 바짝 들어 있었다. 화려한 복장을 한 군인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행진하고 절도 있는 동작으로 의식을 벌이며 혼신의 힘을 다했다.
하지만 외국인 여행자들로서는 양국 국민들이 흥분해서 응원하는 모습에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그들이 ‘즐거운 놀이’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자꾸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문득 한국의 판문점을 떠올리며, 우리와 상관없는 외국인들이 그곳에 와서 느끼는 감정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다. 경계를 벗어나 들여다보면 아무리 심각한 상황도 가끔은 즐거운 유희처럼 보이게 된다.
>> 여행 정보
암리차르는 뉴델리에서 기차로 8시간 정도, 바라나시에서는 약 24시간 정도 걸린다. 암리차르에서 와가보더를 넘어서 파키스탄으로 갈 수도 있다. 와가보더의 국기하강식을 보려면 차를 대절하는게 좋다. 숙소에서 차를 대절할 경우 차 한 대에 600루피(1만8000원 정도)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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