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재협상’ 요구는 한·미 FTA 깨자는 말

웬디 커틀러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미국 측 협상대표는 11일 “미 의회와 행정부가 한·미 FTA와 관련해 노동과 다른 몇 가지 조항에 대해 광범위한 논의를 하고 있는데 이게 끝나면 한국 측과 향후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커틀러 대표는 ‘노동과 다른 몇 가지 조항’이 정확히 무얼 말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발언이 이미 타결된 FTA 합의사항 중 일부를 뒤집겠다는 얘기인지, 아니면 미처 짚지 못한 부분을 추가로 협상하자는 얘긴지 분명하지 않다.

미국은 최근 미성년자 착취와 수출을 위한 환경 파괴 등을 금지하는 내용의 노동·환경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미 의회는 미국뿐 아니라 미국과 FTA를 체결하는 나라도 이 조항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커틀러 대표의 발언이 이 문제를 가리킨 것이라면 그건 ‘재협상’이라기보다 기존 합의 틀 밖에서 이뤄지는 ‘추가 협상’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심각하게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찰스 랭글 歲出세출위원장을 비롯한 미 의회 관계자들은 자동차·쇠고기 같은 분야를 거론하며 여러 차례 한·미 FTA의 재협상과 수정 가능성을 말했었다. 이건 한·미 FTA 합의사항을 없던 걸로 하고 다시 협상을 하자는 얘기다. 실제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미 의회는 마음만 먹으면 공화당 행정부에 그런 압력을 넣을 가능성이 있다. 커틀러 대표의 발언이 이걸 말하는 것이라면 사태는 크게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는 지난 10개월 동안 ‘졸속 협상’이라는 국내 비판을 무릅쓰고 쫓기듯 협상에 임해 왔다. 미 의회가 행정부에 위임한 ‘무역촉진권한’(TPA) 時限시한 때문이었다. 무역촉진권한은 자유무역을 촉진한다는 뜻에서 미 의회가 행정부의 對外대외 통상 협상 결과에 대해 찬성 또는 반대만 하지 세부사항은 修正수정하지 못하도록 한 제도다. 미 정부는 그걸 내세워 마지막 순간까지 한국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양보를 얻어냈었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협상 다시 하자’고 나선다면 그것은 FTA를 깨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국가 간 협상의 ‘ABC’조차 내팽개친 利己的이기적이고 오만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재협상 요구는 그러지 않아도 분출구를 찾고 있는 국내 FTA 반대 여론에도 기름을 부을 게 뻔하다. 그러면 한국 국회에서의 비준 동의도 더 험난해질 것이다. 미국도 이런 결과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by 100명 2007. 4. 13. 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