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너무 싸게 봐서 문제!
[필름 2.0 2007-04-09 19:30]

극장들이 자체적으로 행하는 관람료 할인 이벤트가 최근 부쩍 늘고 있다. 관객들은 좋겠지만 영화계는 은근히 출혈이 크다. 관람료 수익 배분에서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는 무분별한 극장 자체 할인제, 어떻게 된 일일까?

대학생 김 모 씨는 A극장 단골 회원이다. A극장 멤버십 카드를 소지한 그는 주중 ‘멤버십데이’를 이용해 4,000원에 영화를 본다. ‘클럽데이’가 있는 금요일에는 12,000원이면 상영하는 모든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김 모 씨가 극장을 자주 찾게 된 가장 큰 이유도 이런 할인 이벤트 때문이다. 2,000원에 DVD를 빌려볼 수도 있겠지만 적은 관람료로 개봉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은 큰 매력이 아닐 수 없다. 현재 극장들은 김 모 씨와 같은 고정관객 확보를 위해 경쟁적으로 자체 할인 이벤트를 실시하고 있다. 이는 늘어나는 멀티플렉스 극장들 간에 관객 확보를 위한 출혈 경쟁인 동시에 멀티플렉스에 맞서 수익 모델을 마련하기 위해 소규모 극장들이 내놓은 자구책의 하나다. 문제는 극장에서 자체 운영하는 멤버십 할인제도와 저렴한 가격으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는 각종 이벤트 행사들이 무분별하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최근 극장 자체 할인제도가 입장료 수익에 의존하는 영화계에 의외로 상당한 수익률 저하를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극장의 관객 수 집계를 정확히 체크하고 극장의 암표 발권을 감시하는 입회사 청년진보영화사가 지난해 호남지역을 표본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평균 관람료 단가가 2006년 7월 6,014원에서 지난 2월 5,008원으로 떨어졌다. 극장 자체 할인 이벤트가 증가함에 따라 관람료 단가가 큰 폭으로 낮아진 것이다. 지난 5년간 전국의 극장에서 입회인으로 활동해온 청년진보영화사 이동수 대표는 “극장들이 홍보를 위해 무료 초대권을 뿌리거나 ‘1+1 이벤트'를 통해 2명이 갔을 때 1명은 무료, 다른 1명은 4,000원에 영화를 볼 수 있게 하는 등 초대권을 남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평균 관람료 하락의 이유를 설명했다. "초기에는 호남지역의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프리머스 등 멀티플렉스에서 주로 행해졌지만 최근에는 서울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 이로 인해 “초대권을 소지한 관객의 경우 통합전산망 관객 수 집계에서 누락된다. 할인 관람료가 4,000원이라면 정상 관람료 7,000원이 아닌 4,000원 기준으로 극장과 투자배급사 간의 극장부율이 적용되기 때문에 영화계 수익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극장수익과 관련해 한국영화의 경우 현행 극장부율은 극장 대 투자배급사가 5대 5로 책정돼 있다. 스튜디오2.0의 이선영 마케팅 팀장 은 "투자배급사의 동의 없이 행해지는 극장 자체 할인 이벤트로 인한 수익률 저하가 심하다"며 "4:6의 부율이 적용되는 외화보다 5:5의 부율이 적용되고 있는 한국영화의 수익률 저하가 더 심하다"고 밝혔다. 영화사와 배급사 쪽에서 극장의 출혈 경쟁으로 인한 부담을 떠안게 된 셈이다.

물론 CJ엔터테인먼트(이하 ‘CJ’),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이하 ‘쇼박스’),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이하 ‘롯데’) 등 메이저 투자배급사들이 멀티플렉스 체인을 소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 메이저 투자배급사들은 자사 극장들의 할인 이벤트에 특별한 제재 조치를 취하진 않았다. 이에 대해 쇼박스 마케팅팀 박진위 과장은 "초기엔 할인 이벤트를 관객 유치를 위한 마케팅의 일환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 볼 수만은 없다는 의견도 있다. 청년진보영화사 이동수 대표는 "현행 국내 박스오피스 집계는 극장에서 해당 영화가 일주일 동안 벌어들인 총 금액이 아니라 관객 수로 집계된다. 배급사들이 작품 홍보를 목적으로 박스오피스에서 자사 투자배급 작품이 높은 순위에 오르도록 관객 수 증가에 효과적인 극장 자체 할인 이벤트를 묵인해왔다"고 지적한다.

영화진흥위원회 정책연구팀 류형진 연구원은 극장들의 이 같은 할인제도 범람이 "최근 한국영화시장의 위기, 관객 수 감소가 멀티플렉스들을 고민하게 한 결과"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어찌됐든 현재로선 시장의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도에서 시작된 관람료 할인제도들이 오히려 극장 간 과열 경쟁을 빚어내고 투자배급사와 영화사의 수익률을 저하하는 등 유통질서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악재로 작용하게 된 셈이다. 그런데 할인 이벤트로 인해 관람료 수입이 줄어들면 극장도 손해를 보진 않을까? 할인 이벤트를 통해 관람객이 늘어난 극장의 경우 매점 운영, 스크린 광고 등 부가수익이 늘어나 손해분을 메울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출혈은 출혈이다. 서울시 극장협회 최승백 상무는 "대기업에서 진행하는 이벤트 할인이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열악한 중소 극장의 경우 피해가 크다"며 "할인 이벤트를 안 할 수 없게 된 중소 극장들의 경우 관객 규모면에서 멀티플렉스와 현격히 차이가 난다. 할인 이벤트로 관객 동원을 한다 해도 부가수익이 그리 클 수가 없다. 그런데 관람료 수입까지 줄어들면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할인 이벤트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할인 이벤트라는 이유로 발권되는 티켓은 때때로 부적절한 방식으로 발권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할인 이벤트 티켓이 정산과정에서 금액이 0원으로 찍히기도 하고 단체할인의 경우 개별 티켓이 모두 발권되는 대신 몇 장의 티켓만 발권하는 방식이다 보니 이 티켓으로 영화를 본 관객들은 통합전산망 관객 수 집계에서 누락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통합전산망을 교묘하게 피해가는 방법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단 얘기다. 또한 할인제도로 인해 영화 관람료가 대폭 낮아지다 보니 관객들은 DVD나 비디오를 대여하는 것보다 이왕지사 '비슷한 값'에 극장에서의 영화 관람을 선호하게 되고, 결국 안 그래도 열악한 DVD, 비디오 등 2차 판권시장의 수익이 줄어드는 문제도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관람료를 정상가로 정착시키거나 제살 깎아먹기가 아닌 '적당한' 할인정책으로 영화계 수익구조와 유통구조의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극장에서 과도한 할인 이벤트를 통해 부적절한 발권을 하는지 감시하는 입회인들의 전문성과 최소 가격제 실시, 무분별한 할인 이벤트 축소 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류형진 연구원은 "할인 요금의 하한선을 두고, 관람료 책정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같은 문제들을 극장들이 모르거나 모른 체하고 있는 건 아니다. 최근 각 배급사와 극장들은 과다한 관람료 할인 이벤트 경쟁에서 벗어나 공생,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 중이다. 쇼박스 박진위 과장은 "극장 자체 할인제도의 폐해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게 됐다"며 "현재 모든 극장에 조조, 심야, 청소년 할인 등 정상적인 할인 이외의 모든 할인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공문을 보냈다. 쇼박스는 <뷰티풀 선데이>부터 이 내용을 수용하는 극장에 한해 배급계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CJ, 롯데도 할인제도와 관련한 경고 공문을 극장들에게 보낸 상태. 프라임엔터테인먼트 배급팀도 "할인제도 문제에 관한 대책을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는 단계다. 최대한 효율적인 방법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극장협회 최상백 상무는 "극장에서도 무분별한 자체 할인 이벤트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이런 결정이 소규모 극장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나친 할인 이벤트 금지를 강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시장 경제하에서 극장의 자율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갑작스럽게 할인 이벤트와 자체 멤버십 할인제도가 줄어들 경우 관객 수 하락의 가능성도 간과할 수 없다. 낮은 관람료로 혜택을 보던 관객들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바른 관람수익 배분과 시장유통질서의 균형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그 손해는 영화계의 부담, 나아가 한국영화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by 100명 2007. 4. 9. 2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