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디지털 치매’?
컴퓨터·휴대전화 없으면 하루종일 멍 ~
음성원기자 eumryosu@munhwa.com
컴퓨터와 휴대전화 등 디지털 기기에 너무 의존한 나머지 기억력이 떨어지고 무기력해지는 이른바 ‘디지털 치매’ 현상이 늘면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실제 디지털 문명에 중독돼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등의 도움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무기력증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는 병이 아니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캐나다의 유명한 문화비평가 마셜 맥루한(1911~1980)은 그의 저서 ‘미디어의 이해: 인간의 확장’에서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의 능력은 얼마든지 확장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는 다리의 확장, 컴퓨터는 두뇌의 확장’이라고 생각하고 창조적 업무에 매진하라는 것이다.

◆ 디지털 치매는 병이 아니다 = 대기업 과장인 김모(39)씨는 최근 대학병원의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최근 아내의 전화번호가 가물가물할 때도 있고, 심지어 친구와의 10분 전 대화내용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해졌기 때문이다. 불과 10년전 대학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친구의 전화번호는 물론 주소와 생일까지 기억하고 대중가요 20여곡의 가사 정도는 거뜬히 외우는 등 발군의 기억력을 자랑하던 그였다. 김씨는 “혹시 머리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했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아 다행이다”고 말했다. 김표한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최근 김씨와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며 찾아오는 직장인이나 자영업자들이 하루에 1~2명 있다”며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고 너무 많은 양의 정보를 접하다 보니 오히려 집중력이 떨어지는 일시적인 증상일 뿐”이라고 말했다.

김승현 고려대 의대 정신과 교수는 “서양 사람들이 슈퍼마켓에서 잔돈을 계산할 때 계산기가 없으면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이 같은 변화가 자연스럽게 나타나고 있는 것일 뿐”이라며 “병리적 현상인 ‘치매’와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김원 서울백병원 정신과 교수도 “기억력을 사용할 필요가 없어 생기는 디지털 치매는 치료가 반드시 필요한 ‘병’과는 다르다”며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치매가 뇌의 하드웨어 자체가 망가지는 병이라면 디지털 치매는 집중력과 관심의 문제일 뿐”이라고 말했다.

◆ 인간 능력의 확장 = 전문가들은 디지털 치매로 인한 기억력 감퇴 등은 문제될 게 없으며 창조적 업무로 눈을 돌리라고 조언했다. 김성태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는 “과거 인간이 걸어다니거나 말을 타고 다닐 때는 다리가 발달했고, 인쇄술이 발달했을 때에는 논리성을 반영하는 좌뇌의 활동이 활발했으며, 최근에는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감성과 감각, 시각적인 요소의 활용이 높아졌다”며 “이처럼 장단점이 상존하고 새로운 기술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만큼 부정적인 부분은 재차 지적해 극복하고 우리 삶의 양식을 바꿔나가면 된다”고 말했다.

김용학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디지털 치매와 같은 디지털 시대의 부작용을 그저 부작용으로만 볼 게 아니라 우리 생각이나 삶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로 만들 필요가 있다”며 “이른바 지식정보와 같이 단순 암기를 강조하는 교육에서 벗어나 보다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지적 활동으로 인간의 교육이나 지식연구, 활동의 패러다임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준기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도 “우리가 직접 해야만 했던 단순한 작업은 이제 기계가 대신해주고 있으니 창조적인 일에 매진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고 말했다.
by 100명 2007. 4. 8. 2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