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 할 영화제 많아 ‘잔인한’ 4월

여기저기 꽃망울이 터져 나오는 탄성들로 4월은 분주하다.

T.S.엘리엇과의 의도와는 별개로 4월은 ‘잔인한 달’이다. 겨우내 꽁꽁 언 땅과 칼날 바람을 이겨낸 씩씩하고 어여쁜 꽃들과 새싹들에게 일일이 눈 마주치며 안부 인사를 건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4월이 잔인한 까닭이 있으니, 이 땅이 낸 그리 많지 않은 영화제들의 일정이 겹치기 때문이다.

이달에 열린 혹은 열리는 국내영화제로는 인디다큐페스티벌, 서울여성영화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애니충격전, 전주국제영화제 등이 있다. 이 중에서도 사회적 요구에 의해 꾸려지고 있는 특수 영화제들의 안녕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해마다 자기 색깔을 더하면서 ‘야무진’ 꽃을 피워 올리는 이 영화제들이 마련한 축제 현장에 발걸음해 보는 건 어떨까.

◆인디다큐페스티발(3.30~4.3)

독립영화인들과 독립영화를 사랑하는 관객들의 한바탕 축제가 열렸다. 다큐멘터리 전문 영화제를 표방하는 ‘인디다큐페스티발2007’이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3일까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관객들을 찾은 것. 가을에서 봄으로 개최시기도 옮겼다


올해로 7돌을 맞는 이번 페스티발에서는 할 말 많은 지난 6년으로의 시간여행을 감행했다. 개막작 ‘송환’(감독 김동원)을 비롯해 국내외 다큐멘터리 21편을 상영했다.

지난해 행사에서 불과 5개월 만에 다시 열리는 것이라 영화편수는예년보다 적었다.대신 역대 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은 ‘안녕, 사요나라’(김태일.가토 구미코), ‘영매: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박기복) 등 12편을 골라 ‘인디다큐 시간여행이란 제목으로 프로그램을 짰다.

외국 다큐멘터리 중에는 ‘쿠바, 천국의 가치’'(자나라 구아자사민, 벨기에.에콰도르)와 ‘글래스톤베리’(줄리언 템플, 영국)가 인기리에 상영됐다. 특히 ‘글래스톤베리’와 연계된 인디밴드의 공연을 함께 즐기는 ‘다큐, 음악이랑 정분나다’란 행사도 열려 이목을 집중시켰다.(02-362-3163)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4.5~4.7)

장애인에게 눈높이를 맞춘 보기 귀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가 지난 5일~7일 사흘간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에서 관객들을 찾았다. 장애인 인권과 차별의 문제를 영화로 조명한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이 영화제가 첫 발걸음을 내딛은 지 5년만이다. 이번 영화제에는 국내작품 18편과 해외작품 2편 그리고 영상수료작 8편 등 총 28편을 무료 상영됐다.

개막작으로는 장애인 엄마와 아들·딸이 만들어가는 일상 속에서 표현되는 모습들을 장애인이 직접 연출하고 출연한 ‘날 닮아 기분이 좋은 우리 아이들’(연출 김선영)이 선보였다.

이와 함께 똑같은 돈을 내지만 한국영화의 경우 수화통역사를 의존하느라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 청각장애인의 정보접근권에 대해 다룬 ‘그림의 떡’(제작 데프미디어), 중증여성장애인 최옥란 열사의 투쟁 모습과 투쟁 이유 그리고 그녀의 죽음에 대해 다룬 ‘선택(고 최옥란 열사를 기억하며)’, 일본 뇌성마비(CP) 장애인 단체 ‘푸른잔디회’ 사람들의 생활과 사상을 담은 ‘사요나라 CP’(연출 하라 이치오)도 관객들을 만났다. (02-929-9890)


◆서울여성영화제(4.5~4.12)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는 캐치프레이즈를 내 건 ‘서울여성영화제’는 올해로 9돌을 맞았다.

해마다 성숙해진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는 이 사랑스런 영화제는 지난 5일부터 서울 신촌 아트레온 극장 1, 2, 4관에서 막을 올려 오는 12일까지 한창 진행형이다. 출품작 규모면에서도 올해 총 15개국의 251편의 작품이 출품돼 보란 듯 역대 최다 출품을 기록하는 기쁨도 누렸다.

이번 영화제의 주제는 ‘여성, 소수자의 목소리로 말하다’로서 여성 중에서도 소수자의 이야기에 눈길을 준다. 이주여성, 성소수자, 청소녀, 아시아 여성들의 이야기가 ‘이주 여성 특별전 : 우리는 이곳에 살고 있다!’, ‘청소녀 특별전 : 걸즈 온 필름’ 섹션 등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특히 올해 처음 신설된 ‘퀴어 레인보우’ 섹션은 12개국 총 16편의 상영작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까지 관객들을 맞았던 ‘퀴어영화제’가 문을 닫게 된 독립영화계의 사정상, 여성영화제에서 퀴어부문을 올해 독립 섹션으로 마련한 것이다.

이와 함께 이 영화제의 유일한 경쟁부문인 ‘아시아 단편경선’은 아시아 여성감독 발굴의 인큐베이터가 돼 왔다.‘질투는 나의 힘’의 박찬옥 감독, ‘고양이를 부탁해’의 정재은 감독, ‘고추말리기’의 장희선 감독, ‘여고괴담 세 번째 이야기-여우계단’의 윤재연 감독 등의 여성감독들이 이 영화제 출신이다. (02-583-3598)


◆서울애니충격전(4.9~4.13/ 4.23~4.27)

‘세계 10대 애니메이션 영화제 초청전’이 한국땅을 밟는다. 북미와 유럽, 아시아, 남미, 오세아니아 등 전 세계 애니메이션 100여편을 상영하는 이번 초청전은 9일부터 13일, 23일부터 27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서울 명동 중앙시네마 5관에서 열린다.

프랑스 안시, 캐나다 오타와, 일본 히로시마,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등 세계 4대 영화제의 그늘에 가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국가들의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를 소개하고 작품들을 선보이는 자리도 마련한다.

브래드포드(영국), 슈투트가르트(독일), 홀란드(네덜란드), 캘러마주(미국), 멜버른(호주), 트레본(체코), 아니마문디(브라질), 시나니마(포르투갈), 타이완(타이완), 테헤란(이란) 애니메이션 영화제 작품들이다. 아이들의 손을 맞잡고 가 볼 유쾌한 만화초청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02-773-4308~9)


◆전주국제영화제(4.26~5.4)

‘비빔밥’의 도시 전북 전주시 일원에서 오는 26일부터 5월 4일까지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린다. 올해로 8돌을 맞이한 이번 영화제는 37개국 185편의 영화가 초청됐다.

한국의 독립영화에 주목해 온 영화제답게 개막작 역시 제작비 3억5000만원의 저예산 영화인 ‘오프로드’가 선정됐다. 신인 한승룡 감독의 작품으로 전직 은행원인 택시 운전사와 은행 강도가 펼치는 로드무비다. 폐막작은 홍콩 출신 두기봉 감독의 누아르 ‘익사일(Exiled)’이다.

이 영화제의 국제경쟁섹션인 ‘인디비전’은 새로운 영화미학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전 세계 신인 감독들의 영화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특히 대표 섹션인 ‘디지털 삼인삼색’은 올해부터 아시아뿐 아니라 유럽까지 영역을 넓혀 포르투갈의 페드로 코스타, 독일의 하룬 파로키, 미국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유진 그린 감독이 참여한다.

이와 함께 ‘한국영화’ 섹션에서는 경쟁 부문인 ‘한국영화의 흐름’을 비롯해 우수한 상업영화를 보여 주는 ‘한국영화 쇼케이스’ 등에서 총 26편의 한국영화를 만날 수 있다. 개·폐막작은 오는 12일, 일반 예매는 13일부터 홈페이지(www.jiff.or.kr)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by 100명 2007. 4. 8. 2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