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영화관 동시개봉 기회 조차 잃다
궁지 몰린 중소영화관(상)수혈 안되는 필름 '고사 직전"
1962년부터 자리와 이름을 지켜오고 있는 진해 화천동 중앙극장. 1970년대 진해 중앙극장은 약 1㎞정도 떨어진 해양극장과 즐거운 경쟁을 했다. 배급사가 각각 달라 중앙극장은 외화위주로 해양극장은 방화위주로 상영하며 진해 군인들과 지역민들의 약속장소이자 문화공간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2000년 들어 창원 마산에 유명 멀티플렉스가 들어오고 자가용 이용 인구가 계속 늘면서 관객 수는 급격히 줄었다. 3년 전 해양극장과 중앙극장이 동시에 내부수리에 들어갔다. 1개관에서 2개관으로 늘리고 휴식공간도 아담하게 다듬어 관객을 맞았지만 갈수록 관객은 줄어들었다.

진해 중앙극장과 해양극장 외에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도내 중소 영화관은 밀양시네마와 마산시네마다. 최근까지 버티던 통영 포트 극장은 오는 5월에 멀티플렉스가 들어선다는 계획이 확정되자 곧 문을 닫았고, 김해 금소리시네마는 지난해 멀티플렉스 극장인 프리머스로 변경됐다.

대형 멀티플렉스만큼 시설을 갖추고 있는 마산시네마를 제외한 세 영화관은 '멀티플렉스의 시설공세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하지만 최근 얼마 남지 않은 도내 중소 영화관 관계자들은 이제 남은 영화관도 폐관 수순을 밟아야 할 때가 오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다. 영화를 동시에 개봉할 수도 없게 되면서 영화로 공평하게 승부할 수 있는 기회조차 잃어가기 때문이다.

지난 4일 오후 진해 중앙극장에 필름이 택배로 도착했다. 지난달 14일 대형멀티플렉스에서 동시 개봉했던 영화 <쏜다>다. 2주가 훨씬 넘은 영화가 왜 이제야 도착한 것일까. 90년대 후반 중앙극장을 인수한 배기효(54) 씨가 막막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 영화사들이 제작비 다이어트에 들어가면서 필름 수도 대폭 줄이고 있습니다. 자연히 제작사-배급사와 연계돼 있는 극장이 먼저 받겠죠. 영화는 뒤늦게 상영하지, 카드 할인이 안되니 관람료는 더 비싸지,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조건이 안되죠."

밀양시네마도 똑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밀양시네마 관계자는 "필름 값을 댈 수 있을 정도로 관객이 들지 않는 영화관은 필름을 받을 수가 없는 구조로 되고 있다"고 한탄했다.

중소 영화사가 이토록 죽음을 각오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어디서 온 것일까.

90년대 영화관의 풍경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진해중앙극장.평일에는 한명도 찾지 않는 때가 많아벚꽃축제로 사람들이 붐비는 진해 거리와 사뭇 비교된다.
지난해 100여 편이 제작될 만큼 영화제작 붐이 일었다. 하지만 관객 1000만 명을 넘기는 작품은 두 편에 그쳤고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는 작품들이 속출하면서 투자는 위축되고 영화사들은 제작비 다이어트에 대거 들어가면서 영화필름 수도 줄이고 있다.

서울에서 직접 배급을 받는 대형 멀티플렉스 극장들과 달리 지역 중소 영화관은 부산경남의 배급을 대신 맡고 있는 대양영화사, 삼남영화사로부터 필름을 받고 있다.

영화 제작이 대폭 감소하고 제작사-배급사-극장 연계는 점점 강화되면서 지역 중소 영화관의 필름 통로인 대양영화사와 삼남영화사는 갈수록 어려움에 처하고 있다.

진해 중앙극장 배기효 씨는 이 두 영화사가 망하면 더 이상 기댈 버팀목도 없다고 말한다. "이 영화사들이 있어 우리가 한국영화를 받을 수 있었는데, 이마저 사라지면 서울 배급사에서 직접 받아야되는 거죠. 필름 수도 줄어들어 연계 극장도 허덕이는 판에 중소 영화관에 먼저 주겠습니까. 자연히 떨어져나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러면 그나마 조성돼 있던 이 주변의 문화공간도 사라지는 것이죠."

지금 중앙극장은 화가들의 손놀림은 사라졌지만 90년대에 느낄 수 있었던 소박한 풍경은 아직 남아 있다. 자필자국이 선명한 녹색 영화표, 빨간 사인펜으로 쓱쓱 지웠다 다음날 다시 쓰는 시간표 등은 자칫하면 영원히 볼 수 없게 될 한국 영화사의 한 단면이다.
by 100명 2007. 4. 7. 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