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정부 후속대책
‘돈’으로 피해 틀어막고, ‘규모화’로 경쟁력 높인다?
‘한미FTA 고용안정대책단’ 설치…3일 정부 보완대책 의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되면서 정부의 후속대책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농업부문에서부터, 대량 실직 전망이 나오는 제조업에 이르기까지 감안해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장 한미FTA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실직할 노동자의 규모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는 3일 권오규 경제부총리 주재로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열고 ‘한미FTA 체결에 따른 국내 보완대책’ 안건을 심의·의결했다. 정부는 늦어도 한미FTA 협정문 서명이 예상되는 6월말 이전까지는 세부 보완대책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이날 취임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사전에 배포한 취임사에서 “자유무역협정 체결로 인해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판단되는 농업 등 취약분야에 대해 철저하고도 종합적인 보완대책을 마련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렇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의 보완대책은 ‘자금지원’에 치우쳐 있다. “돈으로 틀어막는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 오는 6월 무역조정지원대책 발표= 한미FTA로 인해 구조조정을 겪는 제조업체와 실직 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해 제정돼 이달 말 시행예정인 ‘제조업 등 무역조정지원법’이 개정된다. 제조업체뿐만 아니라 서비스업체까지 지원대상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기업에게는 단기 경영자금과 설비투자를 위한 자금을 주고, 고용유지지원금과 전직지원장려금 지급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또한 전직지원제도를 비롯한 직업훈련이 강화된다. 한미FTA로 인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제조업·서비스업의 중소기업에는 사업전환자금을 지원한다. 노동부는 이달 중으로 노동부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한미FTA 고용안정대책단’을 설치해 오는 6월까지 ‘무역조정종합대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지역 고용지원센터에는 ‘FTA 신속지원팀’이 만들어진다.

정부는 국내 업체의 대외진출 지원방안도 제시했다. 예컨대, 국내 자동차 제조업체가 미국의 픽업트럭시장에 진출할 경우 현지업체와 전략적 기술제휴를 추진할 수 있도록 행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특히 한미FTA 협정문에 따라 구성될 ‘무역구제협력위원회’를 적극 활용키로 했다. 통상마찰을 사전에 예방하고, 통관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한 지원시스템도 구축하기 위해서다. 서비스업과 관련, 정부는 비자쿼터 확보를 추진하고, 국내 기업의 미국 조달시장 진출을 돕기 위해 정보제공, 컨설팅 등을 뒷받침해줄 계획이다.


◇ 농가에 폐업지원금 지급= 가장 큰 피해가 우려되는 농업부문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역시 ‘돈’으로 귀결된다. 보완대책에 따르면 한미FTA에 따른 경쟁력 상실로 폐업을 희망하는 농민에게는 ‘폐업지원금’을 준다. 키위와 시설포도 농가의 소득보전분으로 지급하는 직불금의 대상품목을 쇠고기와 감귤, 콩 등으로 늘릴 방침이다. 대상 품목의 수입량 증가로 가격이 기준가격보다 떨어질 경우 하락폭의 80% 수준까지 보전해준다.

수산업부문에서도 농업부문과 유사한 지원대책이 마련됐다. 명태, 민어, 고등어가 소득보전 직불금에 추가되고, 폐업을 원하는 어민들에게 품목별로 폐업지원금이 지급된다. 정부는 폐업지원금과 직불금 지급과 관련, 농·어민단체와 협의를 거쳐 세부기준을 마련키로 했다.

현금 피해보상과 함께 정부는 업종별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규모화, 현대화, 브랜드화를 추진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급증으로 가격폭락이 예상되는 축산업종의 경우 축사시설 현대화, 전문컨설팅을 통한 우수 축산브랜드 육성을 유도하기로 했다.

식용콩도 토종 브랜드화가 추진되며, 원예부문에서는 전문 생산단지가 만들어진다. 이밖에 설비 현대화, 공동 마케팅, 유통시스템 개선, 친환경 양식시설 보급 등의 방안이 마련돼 있다.

그렇지만 농업과 수산업에 대한 정부대책은 이미 수차례 발표해왔던 내용이다. 새롭고 신선한 정책이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폐업지원금’이 이농현상을 부추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 자동차세 감소, 주행세 세율인상= 스크린쿼터를 현행 유지키로 한 가운데 정부가 마련한 문화산업부문 대책은 ‘기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부는 향후 5년간 영화발전기금에서 500억원을 출자해 총 30개의 중대형 영상투자조합을 만들기로 했다. 또한 예술·독립영화의 경우 5년간 200억원을 들여 제작을 지원한다. 예술영화전용관도 향후 5년간 70곳으로 늘리기로 했다.

더불어 한국영화의 해외진출을 위해 영화진흥위원회 산하에 ‘해외진출 전략센터’가 설립된다. 2011년까지 총 120억원이 투입된다. 저작권부문에서는 국내 창작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기로 했지만, 구체적인 대책을 발표하지는 않았다. 정부는 ‘투자자-국가소송제’(ISD)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을 구축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키로 했으며, 국가별 소송사례도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한미FTA 자동차부문을 보면, 세수가 1천억원 정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동차 보유세 부과기준이 현행 5단계에서 3단계로 간소화되기 때문이다. 자동차세는 지방자치단체가 걷는 지방세다. 정부는 이에 따라 지방세법 시행령과 교통세법 시행령을 개정키로 했다. 교통세에 포함돼 있는 주행세의 세율을 인상해 부족분을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보완대책은 ‘돈’으로 피해를 틀어막은 후 기업경쟁력 향상을 위해 ‘규모화·현대화·브랜드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얼마나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3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분야별 피해가 얼마나 되는지 구체적인 수치를 갖고 보완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노 대통령과 한 총리의 말처럼 구체적 수치를 가지고 ‘철저하고도 종합적인 보완대책’을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by 100명 2007. 4. 6. 07: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