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도닉(hedonic)'이란 생소한 영어 단어가 요즘 디지털 제품 트렌드를 상징하고 있다.
쾌락을 의미하는 이 형용사는 IT 기기도 소비자 오감(촉각 미각 시각 청각 후각)에 호소해야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는 진리를 깨우쳐주고 있다.
특히 최근엔 촉감을 자극하는 제품들이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이현정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촉감은 오감 중에서 쾌락과 가장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며 "터치패드를 이용한 휴대폰이 대표적인 촉감 마케팅 사례"라고 말했다.
촉감 마케팅 열풍은 사회적 변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소비자 구매력이 커지면서 가격은 좀 비싸더라도 오감을 만족시키는 제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 자연 친화적인 제품을 선호하는 웰빙 트렌드도 이미 대세로 자리를 잡았다. 덕분에 원목을 제품 케이스에 적용한 노트북PC까지 나왔다. 이 연구원은 "소비자 오감을 만족시키는 것은 제품에 대한 강한 로열티를 확보하는 방법이 된다"며 "촉감을 넘어 후각과 미각에서도 감성을 충족시키는 쪽으로 진화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 휴대폰도 '百見不如一行' =
'백 번 그냥 보는 것보다 한 번 만져보는 게 낫다?'
최근 IT업계에서도 촉감을 살린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보기만 좋은 것이 아니라 손에 쥐었을 때 느끼는 기분까지 생각한 '업그레이드 제품'인 셈이다.
이들 제품은 손으로 쥐었을 때 편안함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손끝에 느껴지는 감촉도 탁월하다.
대표적인 예가 휴대폰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단순히 제품 디자인이나 색깔에만 초점이 맞춰졌으나 최근엔 오감을 충족시키는 쪽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제품 외형부터 곡선미를 강조하는 한편 키패드 입력 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나타났다.
모토롤라가 올봄 출시한 '레이저 스퀘어드(RAZR2)'는 외부 화면에 터치 센서를 적용해 사용자가 메뉴를 건드릴 때마다 가벼운 진동이 느껴진다.
휴대폰 뒷면에는 '소프트필' 재질을 사용해 차가운 금속 느낌 대신 부드러운 촉감을 느끼게 했다.
황성걸 모토로라코리아 이사는 "휴대용 디지털 디바이스 디자인은 세련미뿐 아니라 장시간 사용해도 편안함을 주는 인체공학적 요소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LG전자 대표 휴대폰 중 하나인 샤인폰도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에 머릿결 모양의 '헤어라인' 공법을 적용해 금속 특유의 질감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플라스틱이 주지 못하는 또 다른 '손맛'을 주기 때문에 금속 재질을 선호하는 마니아층도 생겨났다. 휴대폰 전면에 부착돼 있는 스크롤키를 돌려가며 메뉴를 선택하는 방식도 독특하다.
이 밖에 LG전자는 최근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을 시청하다 화면에서 폭탄이 터지거나 골이 들어가면 휴대폰이 스스로 진동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자동차 추격 장면에선 속도가 빨라질수록 진동도 세진다.
나이트클럽 장면에선 휴대폰 조명이 깜빡거려 보다 실감나게 모바일 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
그동안 휴대폰 화면이 작은 데다 음향 효과에도 한계가 있었지만 이 같은 기술이 일반화하면 휴대폰으로 TV를 보는 재미가 커질 전망이다.
LG전자는 조만간 이 같은 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삼성전자 울트라에디션 시리즈도 손 안에 쏙 들어오는 촉감이 뛰어난 제품이다.
삼성전자는 휴대폰 두께를 0.59㎝까지 줄여 세계에서 가장 얇은 휴대폰(울트라에디션5.9)을 만들어냈다. 키패드를 누르면 진동이 느껴지는 재미도 있다.
◆ 디카ㆍMP3플레이어도 촉감 마케팅 =
디지털카메라도 여성 사용자가 증가하면서 더 작고 가볍게 진화하고 있다.
제품 소재도 감각적인 여성 취향에 맞춰 스테인리스나 플라스틱에서 과감히 탈피해 우레탄 등 고무에 이어 최근에는 나무까지 활용되고 있다.
산요 무비카메라(Xacti VPC-HD2)는 가로형 디자인이 대부분인 일반 디지털 카메라와는 달리 세로형이다.
한손으로 잡고 장시간 촬영해도 불편함이 덜하도록 '그립감'을 향상시켰다.
'올림푸스 뮤 760'도 그립 부분에서부터 반대쪽으로 갈수록 점점 얇아지는 유선형 보디라인을 갖췄다. 사용자 리뷰에 보면 '촉감이 좋아 만지면 사고 싶다'는 고객 평가도 올라와 있다.
올림푸스는 또 지난해 9월 일본에서 '삼차원 목재 압축성형 가공기술'을 적용해 나무로 만든 디지털카메라를 선보였다.
나무 색깔, 윤기, 무늬가 그대로 살아 있어 금속과 차별된 손맛을 선사한다.
MP3플레이어도 귀만 즐겁게 하는 게 아니다.
레인콤 MP4플레이어 '클릭스'는 비누를 모티브로 한 유선형 디자인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모서리가 둥근 데다 중앙 부분은 볼록렌즈 같은 형태로 만들어져 손에 쥘 때 느낌이 좋다.
플래시메모리 업체로 잘 알려진 샌디스크 '산사 쉐이커'는 어린이용 MP3플레이어다. 어린이들이 손에 쥐기 편하도록 허리 부분이 잘록한 플라스틱 컵을 닮았다. 다른 곡을 듣고 싶으면 버튼을 누르는 대신 손으로 흔들면 된다.
엠피오 MP3플레이어 'FL500'은 알루미늄 재질에 머리카락처럼 얇은 홈을 내는 가공 처리를 해 금속 특유의 질감을 살리면서도 손바닥에서 미끄러지거나 땀이 고이지 않게 배려했다.
전자기타에서 모티브를 따온 삼각형 모양 본체는 손에 쥐었을 때 밀착감을 높여준다.
휴대용 모바일PC(UMPC)도 촉감을 살리는 게 대세다.
라온디지털 '에버런'은 제품 양쪽을 곡선으로 처리해 자칫 제품을 땅에 떨어뜨릴 확률을 줄였다.
한국후지쯔 UMPC인 '라이프북 U1010'도 키보드와 모니터 일체형인 다른 UMPC와 달리 일반 노트북PC처럼 모니터를 위로 열 수 있는 방식을 채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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