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틱러브에 "싸이의 결혼식도 제끼고" 참가한 음악인 남궁연 씨가 드럼을 연주하며 흥을 돋구고 있다. 사진 PIFF 제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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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가 되자 무대 가장 높은 자리에 드러머 남궁연이 앉았다. 아무 말 없이 20분가량 드럼을 두들겼다. 베이스기타 선율도 합세했다. 환호하는 젊은이들. 이들은 손에 맥주나 생수병을 들고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한참 동안 연주가 끝난 뒤 "여러분들을 만나기 위해 오늘 싸이 결혼식도 빼먹고 왔습니다"라는 남궁연의 인사에 스튜디오 분위기가 한껏 달아 올랐다. '올 스탠딩' 파티다. 이들은 무려 7시간을 서서 춤추고 노래할 것이다. 그리고 새벽을 맞을 것이다.
15일 새벽 부산 해운대구 부산영상위원회 영화촬영스튜디오 B에서 열린 시네마틱 러브 행사에서 젊은이들이 흥겹게 춤을 추고 있다. | |
1회 때부터 11년째 피프를 찾았다는 전동범(37·서울 동작구) 씨. 지난 13일 휴가를 내고 부산으로 와 이틀째 '미드나잇 패션'에 출석했다. "꼭 보고 싶은 영화가 있는데 며칠 밤 새는 것쯤이야 아무렇지도 않다"는 그는 "4박 5일 동안 최소 25편의 영화를 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담요를 목에까지 올리고 앉은 채로 잠든 김소희(여·27·광주시 북구) 씨에게도 말을 붙였다. 주말을 이용해 친구 2명과 PIFF를 찾은 김 씨는 "직장 때문에 내일 일찍 광주로 가야 하기 때문에 한 편이라도 더 보려고 '미드나잇 패션'에 왔다"며 "24시간 상영하는 섹션이 있었다면 그걸 보러 갔을 것"이라고 웃었다.
꼿꼿한 자세로 영화를 기다리는 '아줌마'도 있었다. 전남 목포에서 이날 새벽 홀로 부산행 열차를 탄 박향란(여·56) 씨. 박 씨는 "영화가 다 매진됐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운 좋게 3편이나 봤다"며 기뻐했다. '여름 궁전'을 특히 재미있게 관람했다는 그는 "'미드나잇 패션'이 끝나면 내일 오후 2시 '꿈의 동지들'을 보고 집으로 갈 생각"이라고 자랑했다. "지난해 광주영화제에서도 2박3일을 꼬박 새우며 13편의 영화를 봤어요." " 피곤하지 않겠느냐"는 기자의 걱정스러운 질문에 돌아 온 박 씨의 대답이다.
▲ 필름은 돌고 = 드디어 0시30분, 관객 입장이 시작됐다. 다시 말똥말똥해지는 관객들의 눈. 메가박스 5관 320여 좌석이 모두 반갑게 주인을 맞았다. '설마 밤새 영화를 보는 관객이 많을까' 생각하면 오산이다. 기자도 그런 생각을 하다가 표를 구하지 못했다. 뒤늦게 입석표라도 받지 못했다면 취재는 물 건너갔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자리가 없다. 서서 밤을 새워야 하나. 그때 맨 꼭대기에 빈 자리 하나가 보였다. 'N열 21번' 좌석. 관객들의 모습을 한눈에 지켜 볼 수 있으니 취재에는 딱이다.
첫 번째 애니메이션 영화 '지미를 찾아서'. 노르웨이 출신 크리스토퍼 닐센 감독이 무대인사까지 나왔다. 그의 말이 "노르웨이에서 만든 가장 비싼 영화" 란다. 새벽 2시15분에야 영화가 끝났다. 10분간 휴식. 관객들 절반가량은 다시 잠을 청했다. 바로 앞에 앉은 한 남자가 여자친구에게 "그런데 아까 그 사람들이 '지미(코끼리)'를 왜 찾아다닌 거야"라고 묻는다. 심하게 졸았나 보다.
두 번째 영화 '배드 블러드'. 처음 접하는 포루투갈 영화라 낯설다. 3시를 넘어서면서 서서히 졸음이 몰려 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통로에 자리를 깔고 누운 관객들도 눈에 띄었다.
마지막 영화가 새벽 4시20분부터 상영됐다. 제목은 '숏버스'. 첫 장면부터 잠이 확 깼다. 어둠 속 곳곳에서 '잠 깨는 소리(?)'가 들렸다. 동성애와 소위 '정상적이지 않은 성관계'를 담은 화면이 모자이크 처리 없이 펼쳐졌다.
▲ 바다로 가다 = 오전 6시10분. 3편의 영화 상영이 모두 끝났다. 관객들의 얼굴에 저마다 피곤과 만족감이 동시에 묻어 있다. 관객들이 상영관을 빠져나간 뒤, 자원봉사자 강수진(여·26·부산 남구) 씨를 만났다. 강 씨는 휴가를 내고 13~15일 3일간 '미드나잇 패션'에서 일하기로 했단다. 나머지 PIFF기간에는 퇴근 후 밤 늦게까지 자원봉사를 계속한다. 강 씨는 "PIFF 자원봉사가 처음인데, 밤샘 관객들의 열정을 보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꼭 봐야 할 영화 때문에, 숙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 다양한 사연으로 이곳을 찾는 관객들이 많다"고 전했다.
6시30분. 영화관을 나와 바다로 향했다. 이미 해운대 바닷가 파빌리온에는 손님맞이가 시작됐다. 또 백사장에는 영화와 하룻밤을 보낸 'PIFF 폐인'들이 일출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 사이를 소리없이 걸었다. 그때 들려오는 이런저런 얘기들. "1시에 메가박스 다시 왔다가 대영시네마(중구 남포동)로 옮겨가야 된다" "아까 '배드 블러드'에서 막내 아들이 죽었어, 안 죽었어" "우리 일출 보고 3시간 뒤에 영화관에서 또 모이는 거 알지." 영화의 힘, PIFF의 힘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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