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영화계엔 제목조차 낯선 영화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지난해부터 불어닥친 투자 위축과 수익성 저하로 한때 제작비 20~30억 원대 영화들이 합리적인 대안으로 나왔지만 시장에서 가능성을 입증하지 못하자 최근에는 10억 원대 작은 영화들이 다시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저예산’으로 지칭되는 작은 영화들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그 면면은 사뭇 달라 보인다. 충무로에 불어닥친 불황을 돌파하기 위한 대안으로, 더 많은 관객들에게 어필하려는 상업적 기획의 일환으로, 실험과 모색을 하고 있는 작은 영화의 면면은 다양하다. ‘저예산 상업영화’를 지향하며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는 최근의 작은 영화들의 경향과 주목해야 할 작품들을 함께 소개한다.<허밍>(3월 13일 개봉) <동거, 동락>(3월 27일 개봉) <경축! 우리사랑>(4월 10일 개봉). 모두 제작비 10억 원 내외의 작품으로 3, 4월 개봉하는 한국영화들이다. 시기상 비수기인 탓도 있지만, 이들 외에도 예산 규모를 확 줄인 ‘작은 영화’들이 곳곳에서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다. 작은 영화 제작 붐은 사상 최악의 춘궁기를 맞은 한국영화 환경 탓이기도 하지만 갑작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비근한 예로, 2007년 하반기만 하더라도 <색화동>(3억 원) <은하해방전선>(1억 원)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3천5백만 원) 등 저예산 독립영화들이 집중적으로 개봉하기도 했다.
최근 불어닥친 작은 영화들 역시 다양성 측면에서 그런 연장선상에 놓인다. 다만 ‘저예산’ 하면 예술영화, 독립영화를 떠올리던 과거의 통념을 벗어난다는 점, 소규모 개봉만 고집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흥행에 대한 적극적인 의지와 전략을 세운다는 점 등에서 차별화를 보인다.
불과 1~2년 사이에 충무로에 불어닥친 신규 투자의 급격한 감소는 지난해부터 제작비 20~30억 원대 영화들의 출현을 대거 불러왔다. 이런 제작비 슬림화 현상은 축소된 영화시장에 적합한 합리적인 영화 제작에 대한 기대를 모았던 것이 사실. 허나 천편일률적인 소재와 단순 예산 감소에 따른 영화의 질적 하락은 한국영화의 추락을 막지 못했다. <경축! 우리사랑>을 제작한 (주)아이비 픽쳐스의 이형승 대표는 “최근 들어 한국영화 시장이 주춤해지고 20~30억 원대 영화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한국영화의 손익분기점에 대해 냉정하게 판단하게 됐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제작비 규모가 20억 원 미만으로 내려가면서 10억 원 정도의 영화가 관심을 받는 추세고 독특한 소재와 주제의 영화들이 경쟁력을 시험받고 있다.”
최근 10억 원 규모의 ‘더 작은’ 영화들이 몰려오고 있는 상황은 주목할 만하다. 단순히 한국영화 불황에 대한 타개뿐 아니라 새로운 소재, 과감한 아이디어, 이야기 규모에 걸맞은 합리적인 예산 책정으로 위험요소를 최소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속을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시험대에 오른 작은 영화19편의 영화가 개봉하고,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추격자>와 같은 대박영화가 등장한 1, 2월과 달리 3, 4월 개봉이 확정된 영화는 9편에 불과하다. (단편 <나도 모르게> 제외) 그 중 <마이 뉴 파트너> <숙명> <도레미파솔라시도> <비스티보이즈>를 제외한 다섯 편의 영화 <허밍> <동거, 동락> <경축! 우리사랑> <작별> <어느 날 그 길에서>는 모두 10억 원 미만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성수기를 노린 대작영화들의 빈자리를 중급 혹은 그 이하 영화들이 메우는 비수기임을 감안하고, 큰 제작비가 들지 않는 다큐멘터리 <작별>과 <어느 날 그 길에서>는 논외로 치더라도 <허밍> <동거, 동락> <경축! 우리사랑>까지, 세편의 저예산 장편영화가 1~2주 터울로 개봉하는 것이다.
<허밍>은 <연풍연가> <하면 된다>의 박대영 감독 신작으로, 사고로 오래된 연인을 떠나보낸 후 단 한 번 그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남자가 사랑을 깨닫는다는 내용의 멜로드라마다. 2006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HD영화 제작지원 프로젝트로 선정된 이 영화는 순제작비가 7억 원에 불과하다. 제작사 더드림픽쳐스의 김영심 이사는 “당시 개발 중이던 <허밍>의 시나리오가 HD영화로 제작하기에 적합한 아이템이라 고민하던 차 영진에 응모하게 됐다. 5억 원을 지원받았는데 부족한 감이 있어서 2억 원을 더 투자받았다”고 설명했다.
<동거, 동락>은 딸이 홀로 된 엄마에게 딜도를 선물할 정도로 은밀한 사생활 얘기에 거리낌 없는 친구 같은 모녀의 연애를 다룬 작품. 이 영화는 4억 원 내외의 예산에서 영화를 제작할 계획으로 2006년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가 주최한 신인감독 발굴 프로젝트 ‘감독의 꿈’ 당선작이다. 최종적으로 7억 원의 제작비가 쓰인 것으로 알려진 <동거, 동락>의 김태희 감독은 “시나리오를 쓸 당시 소위 ‘쎈’ 이야기라 충무로 자본으로 찍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시나리오 초고대로라면 7억 원의 예산으로도 불가능했지만 이미 정해진 예산이 있었던 공모전을 통했기 때문에 예산에 맞춰 시나리오를 수정했다”고 말한다.
<단풍잎> <비가 내린다> <생산적 활동> 등으로 독립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오점균 감독의 <경축! 우리사랑>은 딸의 남자를 탐한(?) 아줌마의 로맨스다. 21살 연하남과의 로맨스를 통해 정체성을 깨닫는 아줌마의 늦사랑을 코믹하게 다룬 것. <허밍>과 함께 2006년 영진위 HD영화 제작지원 프로젝트로 선정된 <경축! 우리사랑>은 지원비 5억 원과 KTB 네트워크의 한국영화 다양성 펀드에서 조성한 자금 5억 원 중 2억 원을 충당, 순제작비 7억 원으로 완성했다.
이들처럼 개봉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개봉 대기 중이거나 제작 중인 작품은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주목할 것은 독립영화 전문 제작사나 소규모 신생 영화사뿐 아니라 굴지의 메이저 영화사들도 ‘작은 영화 제작’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죽어도 해피엔딩> <용의주도 미스신> 등 20억 원대 영화를 만들었지만 연달아 고배를 마신 싸이더스FNH의 경우, 제작비를 5억 원대로 책정한 저예산 영화 일곱 편 정도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친절한 금자씨>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제작사 모호필름은 안면홍조에 걸린 여자를 다룬 이경미 감독의 <홍당무>를 10억 원 예산으로 제작 중에 있으며 <기담>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도로시는 소년, 소녀들의 순정시대를 다룬 <소녀시대>(가제)를 저예산으로 준비 중이다. 쇼이스트 역시 전수일 감독의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가제)을 동녘필름과 공동 제작으로 10억 원에 제작 중에 있다.
작은 영화의 상업적인 가능성을 이미 확인한 영화사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후회하지 않아>의 청년필름은 이송희일 감독의 차기작 <탈주>와 <나, 계희>를 10억 원 내외로, <아내에게 애인이 있다>의 필름라인은 김태식 감독의 신작 <빌어먹을 바캉스>와 권영철 감독의 <나쁜 놈이 더 잘 잔다>를 각각 15억 원과 10억 원 정도의 예산으로 준비 중에 있다. 스폰지도 김기덕 감독의 <비몽>을 10억 원, 장률 감독의 <중경>과 <이리> 두 편을 합쳐 순제작비 7억 원에 제작 중에 있다. 이 정도면 영화사의 규모를 가릴 것 없이 작은 영화가 현 시장 상황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시험 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작은 영화, 재미를 발굴하라한국영화 불황에 따른 돌파구,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실례로만 분석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없지 않다. 하나같이 저예산 예술영화가 아닌 흥행을 노리고 상품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허밍>은 기존의 멜로영화와는 다른 특이한 이야기다. 다만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고 감동적이라는 점에서 상업영화와 다름없다”(김영심 이사) “<동거, 동락>은 신인감독을 공모해 장편 상업영화를 연출할 기회를 제공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RG 엔터웍스 박용수 대표) “<경축! 우리사랑>은 전체적인 드라마의 완결성이나 코믹하게 소재를 다루는 연출 특성상 상업적으로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을 했다”(배급을 맡은 스폰지 조성규 대표)
상업적 메리트를 점칠 수 있는 근거는 장르성 때문이다. 저예산이라고 하면 흔히 복잡한 인물의 내면을 파고드는 관념적인 이야기, 짙은 사회성 영화를 생각하기 일쑤지만 최근 작은 영화들은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장르적인 재미를 최우선으로 둔다. 판타지적 색채를 띤 <허밍>이 멜로영화의 틀을 벗어나지 않고, <동거, 동락>이 여성 관객에게 어필하기 쉬운 모녀의 이야기를 다루며, <경축! 우리사랑>이 아줌마와 21살 연하남의 파격적인 로맨스를 코믹하게 다루는 게 좋은 예다.
애초에 장르를 표방하고 제작 중인 작품도 있다. MBC프로덕션에서 15억 원의 예산으로 준비 중인 고수경 감독의 <죽이는 여자들>은 코믹 스릴러로,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는 세 모녀의 이야기다. MBC프로덕션의 김화진 프로듀서는 “저예산에 맞는 장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장르가 저예산으로 가능하다. 특히 컴퓨터그래픽 사용도가 높지 않은 로맨스와 스릴러, 그리고 코미디는 저예산에 특히 어울리는 장르”라고 말한다.
싸이더스FNH가 신인감독을 기용해 5억 원 정도를 들여 ‘작가주의’나 ‘영화제용’ 영화가 아닌 장르영화를 제작키로 한 건 장르와 작은 영화 간의 상관관계를 잘 드러내는 예다. 장르에 집착하지 않더라도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소재로 무장한 작품들도 상당수다. “작은 영화의 매력은 저예산의 부족함을 돌파하기 위한 과감한 소재와 아이디어 충만한 이야기에 있다”는 <경축! 우리사랑> 오점균 감독의 말처럼 한창 제작 중인 작은 영화들은 기존에 보지 못했던 신선한 소재, 이야기의 재미, 장르의 쾌감을 무기로 삼으려 한다. 신인 김형주 감독의 <초감각 커플>(제작 크로스필름, 순제 1억 원)은 초능력자에 관한 이야기이고, <다섯은 너무 많아> <나의 노래는>의 안슬기 감독의 신작 <지구에서 사는 법>(제작 인디스토리, 씨알필름, 순제 1억2천만 원)은 외계인과 지구인 부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독특한 설정이 눈길을 끈다.
저예산 특유의 무거운 내용이나 형식 실험보다 이야기의 재미에 더 큰 공력을 들이는 경향은 관객의 흥미를 끌기 위해 드라마를 강화한 결과다. “색다른 소재와 파격적인 설정에 드라마를 끼워 맞춰서는 시장에서 어필하기 힘들다. 드라마를 우선 강화하고 그 속에서 색다른 시도를 해야 저예산 영화도 흥행할 수 있다”는 김영심 이사의 견해는 이를 뒷받침한다. <용서받지 못한 자> <후회하지 않아>처럼 재미있는 작은 영화들의 의미 있는 성공에 따라 다양한 영화에 대한 판단과 수요가 생긴 결과다. 습관적으로 기획되는 메이저 영화들이 관객의 외면을 받는 동안 신선한 소재의 작은 영화들의 입지가 다져지기 시작했다는 것.
“이야기를 가장 흥미 있는 방법으로 전달하는 할리우드 장르 문법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야 한다. 단지 할리우드 것이라고 틀에 박힌 이야기, 전형적인 구성이라고 깎아내릴 건 아니다. 저예산 영화들도 필요하다면 할리우드 장르를 적극 받아들여 많은 관객에게 어필해야 한다”는 오점균 감독의 말은, 그런 점에서 곱씹어볼 만하다.
시장합리화의 증거 이런 작은 영화의 변화에 스타급 배우들의 출연도 잦아지고 있다. <비몽>의 오다기리 죠와 이나영,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의 최민식, <이리>의 윤진서와 엄태웅, <초감각 커플>의 진구, <홍당무>의 공효진, 이종혁 등이 그 예다. <나쁜 놈이 더 잘 잔다>의 경우,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젊은 배우가 구두계약을 맺은 상태로 알려졌다.
불과 1~2년 전만 하더라도 상업영화와 저예산영화 사이의 배우 교류는 조연급 이하에서만 빈번했던 게 사실. 주연급 배우들의 자진 출연이 갑작스러운 현상처럼 비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좋은 작품이면 개런티에 상관없이 출연할 수 있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작은 영화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던 몇몇 스타 배우들을 상기해본다면 그만큼 경쟁력을 갖췄다는 증거다. “마음에 와 닿는 시나리오로 차기작을 선택했다”고 밝힌 최민식, “독특한 소재의 시나리오가 흥미로워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다”는 이나영의 말은 상업영화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소재와 영화의 질적 향상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적은 예산상 충분한 마케팅 비용을 책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스타들의 출연은 막강한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는 요소다. <허밍>을 제작한 더드림픽쳐스 마케팅팀 관계자에 따르면, “촬영 뒤 두 배우가 출연한 드라마가 큰 인기를 모으면서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건 물론 이들이 무대 인사를 다니는 시사회의 반응도 폭발적”이라고 스타 캐스팅의 위력을 설명한다.
메이저 영화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스탭들의 작은 영화 참여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경축! 우리사랑>의 방준석 음악감독, <히말라야: 바람이 머무는 곳>의 김형석 음악감독, <홍당무>의 조상경 의상감독 등이 바로 그들. 대부분은 원래 받는 개런티에서 대폭 삭감해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이형승 대표는 “기존 상업영화의 트렌드와 습관적인 제작 방식에 지친 이들이 새로움에 대한 갈증을 작은 영화에서 해갈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스타와 고액 개런티 스탭들의 작은 영화 출연을 꽁꽁 얼어붙은 제작 환경에서 찾는 견해도 있다. 한 한국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제작 영화 편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배우들이 연기할 수 있는 장과 스탭들이 참여할 수 있는 현장이 줄어들었다. 기존 개런티의 대폭 삭감을 감수하면서 시장의 변화에 맞춰 적응하고 있는 것”이라고 현 상황을 분석했다.
스폰지 조성규 대표는 그렇게 삐딱한 시선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일본은 100억 원 이상의 대작과 10억~15억 원 규모의 영화로 양분돼 있다. 한국도 20~30억 원의 영화가 한계를 드러내면서 일본의 영화시장과 비슷한 형태로 가고 있는데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제작 형태에 맞춰 배우 출연료도 융통성을 갖게 됐다. 예전에는 출연료가 결정되면 상한선에서 요지부동이었다. 지금은 7억 원 예산의 영화에서 배우는 5천만 원 이상 받기 힘들어졌다”고 덧붙였다. 이형승 대표는 또한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저예산영화와 같은 비상업영화를 나눠서 생각하는 경향이 강했다. 지금은 그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시장이 합리화되고 있다”고 달라진 환경에 대해 설명한다.
저예산이라 놀리지 말아요제작비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됨에 따라 작은 영화, 즉 ‘저예산 상업영화’들도 개봉 규모를 확대하는 시대가 되었다. 스폰지는 <경축! 우리사랑>의 배급 규모를 50개 스크린 수준으로 잡고 있으며 김기덕 감독의 <비몽> 또한 와이드 릴리즈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섯 개 관 수준에서 장기 상영 전략을 택했던 이전 관례와 다른 결정이지만 상업적인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판단에서 이뤄진 것. <허밍>은 무려 174개 스크린에서 개봉한다. 3대 배급사 중 한 곳인 롯데엔터테인먼트가 배급을 맡았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순제작비 7억 원 영화치고는 이례적인 일. 프린트 비용만도 2억 원을 훌쩍 넘는다고 하니 제작비 대비 배급 규모로서는 모험적인 시도인 셈이다.
하여 이들은 ‘저예산’이라는 꼬리표에 부담을 느낀다. 처음부터 이야기 규모에 맞게 합리적인 제작비를 책정하고 손익분기점에 맞게 배급 규모를 결정한 것인데 자칫 돈이 없어 예산만 줄인 영화로 대중에게 선입견을 심어줄까 봐서다. 10억 원 규모의 영화를 10억 원에 찍는 게 지극히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20~30억 원 예산으로는 처음부터 한계가 있었던 메이저 영화들이 대거 관객의 외면을 받으면서 그 여파가 미치지는 않을까 경계하는 것이다.
관객의 호응을 얻는다고 해도 문제는 또 있다. 작은 영화 관계자들은 우스갯소리로 “잘 되도 걱정, 안 되도 걱정”이라는 표현을 종종 쓰곤 하는데 여기에는 경직된 투자시장에 대한 근심 어린 시선이 담겨 있다. 작은 영화가 잘 될 경우, 10억 원짜리 영화에만 투자가 몰리는 왜곡된 환경이 조성될까 우려되는 것. 한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저예산 영화는 촬영 기간도 짧고 투자회수 기간도 빨라 투자자를 모으기 쉽다. 반면 시장 반응이 좋을 경우, 20억 원 이상 되는 중급 규모의 투자가 얼어붙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금 작은 영화가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확실해 보인다. 메이저 영화사의 적극적인 작은 영화 제작과 대형 배급사의 공모전과 같은 형태의 지원 방식도 이런 고무적인 상황을 말해준다. 합리적인 제작과 시장 사이즈에 맞는 아이템 발굴, 최소한의 안전핀 역할로 그것을 인식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저예산 상업영화’는 이 시기 한국영화의 중요한 화두다.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위험성을 최소화하거나 혹시나 터질지 모르는 흥행의 꿈을 상상하는 즐거움이 거기에 있다. (허남웅 기자)
멜로+스릴러의 탄생
<지구에서 사는 법>감독 안슬기 | 출연 박병은, 조시내, 장소연 | 제작 씨알필름, ㈜인디스토리 | 순제작비 1억2천만 원 |개봉 하반기 스토리 | 시인인 연우(박병은)는 회사원인 아내 혜린(조시내)의 수입 덕에 입에 풀칠을 하고 있다. 식물처럼 살아가던 연우는 어느 날, 기묘한 매력의 외계 소녀 세아(장소연)를 만나는데 둘의 소통은 텔레파시로 이루어진다. 세아는 목적이 있어 연우에게 접근했지만 둘은 서로의 매력에 빠지고 만다. 한편 혜린은 사실, 회사원이 아니라 비밀정부요원으로 연우를 감시하기 위해 위장결혼을 했다. 연우가 지구에서 탈출하는 법을 아는 유일한 남자이기 때문. 조직에선 혜린에게 외계 소녀 세아를 제거하라고 하지만 명령에 불복한다. 각기 다른 비밀을 간직한 세 사람 중 지구에서 살아남는 마지막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제작 노트 |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안슬기 감독은 겨울방학을 이용해 영화 촬영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세 번째 장편 <지구에서 사는 법> 역시 올해 2월 한 달간 20회 차로 촬영을 마쳤다. 때문에 기간의 제약과 1억2천만 원이라는 한정된 금액으로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구성과 스릴러를 완성해야 하는 미션이 떨어졌다. 그래서 프리 프로덕션을 넉넉하게 석 달로 잡았다. 제작비 절감을 위해 시간을 두고 품을 팔아 접근했다. 세트를 지을 수 없어 지인의 아파트나 빈집을 헌팅하는 방식으로 장소 대여비를 줄이는 방법을 연구해야 했다. 액션 스턴트와 총기 대여도 해야 했는데, 제작비가 아무리 모자라도 안전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 무술감독에게 배우들이 액션을 배우는 등 여러모로 꼼꼼하게 공력이 들어간 영화다.
잊어도 잊혀지지 않는
<이리>감독 장률 | 출연 윤진서, 엄태웅 제작 자이로픽쳐스, 스폰지| 순제작비 3~4억 원|개봉 하반기 스토리 | 1977년 11월 전라북도 이리역에서 열차 폭발 사건이 발생했다. 59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천 명이 넘는 부상자와 가옥 파괴만 1만여 동에 달했다. 그 뒤 이리는 익산으로 지명이 바뀌었다. 진서(윤진서)는 바로 그 폭발 사고의 미동으로 엄마 뱃속을 박차고 나온 아이다. 사고로 부모는 모두 사망했고, 택시 운전을 하는 오빠 태웅(엄태웅)과 함께 단둘이 익산에서 살고 있다. 중국어 교습학원에서 소일을 하는 진서는 동네 경로당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돌본다. 그런데 사고의 영향 때문인지 어딘지 모자란 듯한 진서는 수차례 강간을 당하며 잦은 낙태를 하게 된다. 이를 바라보는 태웅은 동생과 이웃들에게 점차 분노를 키워간다.
제작 노트 | 장률 감독의 신작 <이리>는 여러모로 기념비적인 영화다. 재중동포 장률 감독이 처음으로 한국에서 찍은 영화이고, 이리역 폭발 사고 30주년을 모티프로 한 연작 중 하나이기 때문. 개봉은 <이리>가 먼저 하지만, 중국의 공업도시 중경이 배경인 <중경>을 먼저 찍었다. 두 편을 합친 순제작비는 7억 원. <이리>는 영화진흥위원회 HD영화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돼 3억 원 가량을 지원받았다. 가장 컸던 건 엄태웅, 윤진서라는 청춘 배우가 평소의 십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는 개런티를 받고 선뜻 출연을 결심한 것. 스타가 캐스팅되니 투자도 수월했다. 워낙 쪼들리는 제작비라 보름 동안 쉬지 않고 15회 차로 크랭크 업 했다. 주위의 도움도 참 많이 받았다. 공간이 중요한 영화인데 윤서의 집과 붙어 있는 경로당을 거의 무상으로 한 달 동안 사용했고, 천안 미디어센터에서 거의 무상으로 디지털 색보정을 마쳤다.
멋지다! 아줌마
<경축! 우리사랑>감독 오점균 | 출연 김해숙, 김영민, 기주봉, 김혜나 | 제작 (주)아이비 픽쳐스 | 순제작비 7억 원 | 개봉 4월 10일스토리 | 하숙집 운영에, 놀기 좋아하는 남편(기주봉)대신 노래방 운영까지. 생활력 강한 아줌마(김해숙)에겐 가족의 생계밖에 없다. 딸 정윤(김혜나)도 골치다. 하숙생 구상(김영민)과 키스하다 아줌마에게 걸린 날 다짜고짜 결혼을 하겠다고 우겨댄다. 딸의 성화에 못 이겨 결혼을 허락했지만 그것도 잠시. 취직이 됐다며 결혼을 취소하고 집을 나가버린다. 홀로 세탁소를 운영하던 구상은 상처받은 마음을 술로 달랜다. 술에 취한 구상을 업고 집으로 돌아오던 아줌마는 그의 옷을 벗겨 재우려던 중 우연찮게 관계를 갖게 된다. 아들뻘 남자와 잠을 잔 것도 모자라 이번엔 임신까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헛구역질로 동네 사람은 아줌마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제작 노트 | <경축! 우리사랑>의 이야기를 완성한 오점균 감독은 아줌마의 욕망이 성공한다는 주제가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상업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투자 환경이나 제작사 마인드에 맞아 떨어지는 작품이 아니어서인지 예술영화 취급을 받았고 결국 영진위 HD영화 제작지원 프로젝트와 KTB네트워크의 다양성펀드에 힘입어 7억 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그 과정에서 작품의 규모를 이해한 스탭의 호응과 열정으로 별 탈 없이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결국은 시간싸움이었기에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이 바로 촬영 횟수. 27회를 예상했지만 스탭들의 도움으로 23회에 마칠 수 있었다.
소년들과 사냥꾼의 밤
<탈주>감독 이송희일 | 출연 미정 | 제작 청년필름 | 순제작비 8억 원 내외|개봉 하반기스토리 | 세 명의 무장 군인이 살자고 도주한다. 계급도 고향도 다른 세 남자는 각기 다른 상처로 말미암아 탈영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재훈은 말기 암 선고를 받은 어머니를 보기 위해, 동민은 자신을 괴롭히는 고참들을 응징하기 위해, 민재는 자신을 차버린 애인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주기 위해 군대를 버렸다. 군부대의 치밀한 추적을 피해 도주에 성공한 일행은 서울에 당도한다. 재훈은 고향에 내려가기 위해 직장 선배인 소영에게 도움을 청하고, 소영은 재훈이 탈영한 이유를 듣고는 그를 돕는다. 그들 생애 가장 필사적이었던 6일간의 탈주, 그리고 숨 막히는 추적자들의 기록.
제작 노트 | <후회하지 않아>로 사회적 금기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이송희일 감독이 다시 파란을 예고한다. 탈영병들의 절절한 사연과 숨 막히는 질주를 담게 될 이번 영화는 1억 원으로 완성한 <후회하지 않아>에 비하면 부쩍 규모가 커져 8억 원 가량 제작비를 예상하고 있다. 완성도를 위해 <눈부신 하루> <후회하지 않아>의 윤지운 촬영감독 등 쟁쟁한 경력을 지닌 스탭진을 꾸렸다. 로드무비 형식의 HD영화가 될 <탈주>는 프리 프로덕션 단계라 현재 제작 컨셉을 가늠하고 있는 상태. 어쨌거나 <후회하지 않아> 때 하고 싶었지만 예산의 압박 때문에 찍지 못했던 앙금을 최대한 털어내겠다는 포부다. 시골 마을이나 저수지 부근, 작은 흙길에서 액션 촬영할 부분이 많아서 정확한 콘티를 짜 약속된 플레이로 촬영을 진행하려 한다. 5월 중 크랭크 인 한다.
인생막장, 갈 때까지 가!
<나쁜놈이 더 잘 잔다>감독 권영철 | 출연 미정 | 제작 필름라인 | 순제작비 10억 원 내외| 개봉 하반기스토리 | 윤성은 돈은 없어도 사회에 큰 불만 없이 사는 평범한 남자였다. 헌데 가족들의 우울이 자신의 족쇄가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교도소에 들어앉은 아버지와 집 나가 새살림 차린 어머니, 일명 ‘조건만남’에 빠져든 여동생까지. 그래서 윤성도 비뚤어지기로 했다. 가족을 캐나다로 이민 보내겠다는 소박한 꿈이 생긴 윤성은 친구들과 시골 은행을 털기로 한다. 우여곡절 끝에 성공적으로 자금을 확보하지만 문제가 여기서 끝날 리가 있나. 여동생은 아예 언더그라운드 포르노를 찍을 판이고, 윤성의 캐나다 이주 계획 또한 사기를 당해 틀어지고 만다.
제작 노트 | 김태식 감독의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 조감독 출신인 권영철 감독의 데뷔작으로 현재 시나리오 작업 중이다. 2007년 영화진흥위원회 예술영화 제작지원작으로 선정돼 4억 원을 지원받은 영화는 혈기 방장한 젊은 기운으로 충만한 범죄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투자사 모니터링 결과 ‘시나리오가 너무 세다’며 혀를 내두르는 통에, 총 10억 원 예산으로 ‘꼴리는 대로’ 찍어보려는데 만만치 않다고. 위악적인 사회에 대한 강도 높은 발언으로 도배된 영화는 풍족하진 않지만 그래도 필름으로 찍는다. 그러니 스탭은 소수정예, 최소 회차로 갈 수밖에 없다. 회차당 진행비를 줄이는 대신 매회 스탭, 배우 중 현장 투표로 MVP를 뽑아서 소정의 상금을 주는 이벤트를 열까 한다고. 10억 원이 총예산이니 배우들 개런티는 토탈 1억을 넘길 수 없다.
판타지가 가미된 멜로드라마
<허밍>감독 박대영 | 출연 이천희, 한지혜 | 제작 (주)더드림픽쳐스 | 순제작비 7억 원 | 개봉 3월 13일스토리 | 해양연구원 준서(이천희)와 미연(한지혜)은 사귄 지 2,000일이 된 오래된 커플이다. 미연에 지친 준서는 그녀와 거리를 두기 위해 남극 연구원 활동에 자원한다. 속사정도 모르는 미연은 준서를 위해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런 미연의 모습이 참기 힘들어 지금 막 집을 뛰쳐나온 준서는 그녀가 ‘어제’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리둥절해한다. 의문도 잠시, 병석에 누워 혼수상태에 빠진 그녀를 보니 복잡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다. 어제 자신이 보았던 미연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그런 줄도 모르고 힘들게 했던 그녀에게 어떻게 미안한 감정을 전할까.
제작 노트 | <허밍>은 처음부터 기존 멜로영화와는 차별화된 이야기로 준비됐다. 병으로 앓아눕고, 종국엔 목숨을 잃어 눈물을 자아내는 뻔한 멜로를 지양하는 대신 판타지적인 요소를 가미해 색다른 드라마가 되도록 했다. 다만 독특한 시도가 너무 강해 드라마를 잡아먹지 않도록 멜로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했다. 멜로 성향이 강한 박대영 감독을 연출자로 기용한 것도 이 때문. 애초 <허밍>의 배급 규모는 40~50개 수준이었다. 허나 손익분기점인 35만 명을 동원하기 위해선 스크린 수가 더 필요했고 100개 이상 스크린을 확보하기로 했다. 언론 시사회 직후 반응이 괜찮아 174개까지 스크린 수를 늘렸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비
<퍼플레인>감독 장동현 | 출연 최학락, 최은주, 김지현, 설성민 | 제작 필름팩토리 | 순제작비 1억 원| 개봉 미정 스토리 | 충무로 입성을 꿈꾸는 3류 에로 비디오 감독 용대(최학락)와 변두리 술집 종업원인 영희(최은주)가 사랑에 빠진다. 용대는 언젠가 한국영화계에서 이름을 날릴 날을 꿈꾸고, 영희는 자신이 읽고 있는 책 <퍼플레인>처럼 화상을 입은 자신이 손이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꿈이 현실이 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용대는 돈벌이를 위해 영희를 이용하게 되고, 이를 알게 된 영희는 자신에게 희망을 키워줬던 책 <퍼플레인>을 놓아둔 채 용대의 곁을 떠난다.
제작 노트 | 신예 장동현 감독의 데뷔작 <퍼플레인>은 처음부터 영화제를 겨냥하고 만들어진 영화다. 주목할 건 디지털 장편 예술영화를 위해 상업영화에 잔뼈가 굵은 스탭들이 전부 노개런티로 의기투합한 것. 서로의 인프라를 이용해 장소 헌팅이며, 살수차 대여, 디지털 색보정 작업 등 인건비, 재료비 할 것 없이 거의 무료로 진행했다. <라이방> <각설탕>의 최학락, <조폭마누라>의 최은주, <썸머타임>의 김지현 등 배우들 역시 노개런티다. 삼류 인생들의 좌절과 사랑을 그린 시나리오에 매료돼 ‘예술영화 한 편 살리자’는 명목으로 모두들 매진한 결과라고. 현장 편집본을 본 영화사 관계자들의 호평 때문에 5월경 언론시사회를 열 작정이다.
섹스로 보는 가족 이야기
<동거, 동락>감독 김태희 | 출연 김청, 조윤희, 김동욱, 정승호 | 제작 RG 엔터웍스 | 순제작비 7억 원 | 개봉 3월 27일스토리 | 1년 전 남편과 이혼한 정임(김청)은 딸 유진(조윤희)과 은밀한 사생활에 대해서도 거리낌 없는 대화를 나눌 만큼 친구 같은 사이다. 잠든 엄마 몰래 마스터베이션을 하던 유진은 성생활이 전무한 엄마를 위해 생일선물로 딜도를 선물할 정도. “나쁜 년, 지는 남자친구랑 하고, 나는 이런 장난감이랑 하라고?” 살짝 눈을 흘기는 정임이지만 딸의 마음이 갸륵하다. 그런 정임에게 찾아온 20년 만의 첫사랑. 함께 밤을 보낸 날 유진도 남자친구 병석(김동욱)과 밤을 함께한다. 유진을 집까지 바래다주던 병석은 그만 기막힌 인연과의 조우로 이별을 결심하게 된다. 이제 정임과 유진, 병석은 사랑과 섹스와 가족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제작 노트 | <동거, 동락>은 김태희 감독이 영상원 재학시절 찍었던 단편영화의 아이템을 바탕으로 한다. 딸이 엄마에게 딜도를 선물하는 장면은 단편에서 그대로 가져왔지만 그 외의 이야기들은 살을 붙여 완성했다. 혼자된 엄마에게도 엄마 이전에 여자의 삶이 있을 것이고 사랑에 대한 욕구도 강할 텐데 같은 여자로서 엄마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하는 감독의 궁금증에서 시작됐다. 김태희 감독에 따르면 시나리오를 쓰기 전 미술원 수업 과제로 엄마와 여동생의 누드사진을 제출한 적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여자의 몸과 욕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하여 <동거, 동락>은 나눌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가족 이야기를 통해 내 가족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만든다.
욕망에도 계급장이 있다
<나의 친구, 그의 아내>감독 신동일 | 출연 박희순, 장현성, 홍소희| 제작 LJ필름 | 순제작비 11억2천만 원 | 개봉 미정 스토리 | 공항 레스토랑에서 요리사로 일하는 재문(박희순)은 미용사인 아내 지숙(홍소희)과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다. 허나 이민을 준비했던 두 사람은 이주 자금을 사기당하고 만다. 졸지에 좌절을 겪고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재문을 도와주는 건 잘나가는 외환딜러인 예준(장현성)이다. 예준은 재문의 군대 고참이자 절친한 친구이기도 하다. 지숙이 파리 미용박람회에 참석한 사이, 재문은 예준을 자신의 집에 초대해 술을 마시며 옛 추억에 잠긴다. 헌데 재문의 갓난아기를 돌보던 예준이 실수로 그만, 아기를 질식사하게 만든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두 남자의 우정은 예측을 뒤엎는 결말로 치닫는다.
제작 노트 |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신동일 감독의 전작인 <방문자>를 뛰어넘는 수작이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코-프로덕션 마켓 선정작으로, 2006년 제작된 이 영화는 부산, 카를로비바리, 시애틀국제영화제 등에서 상영돼 호평을 얻은 바 있다. 윤리적, 심리적 딜레마에 빠진 인물들을 탁월하게 잡아낸 이 영화는 제작사였던 LJ필름의 ‘감독 브랜드 메이킹’ 전략을 통해 태어났다. 김기덕의 영화나 이윤기의 <여자, 정혜>, 조창호의 <피터팬의 공식>도 그 수혜를 받았던 영화들. 협소한 한국의 예술영화 시장을 돌파하자는 의지는 충만했지만 영화의 투자 파트너를 얻는 건 하늘의 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고. 현재 프라임엔터테인먼트에서 권리를 가지고 있으나 개봉 날짜를 아직 잡지 못하고 있는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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