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농민들의 1년농사계획표
1.입춘立春: 농기구 점검
2.우수雨水: 봄보리 파종
3.경칩驚蟄: 콩, 들깨, 수수, 담배 파종
4.춘분春分: 조, 메밀, 목화 파종
5.청명淸明: 올벼 파종, 과수 접붙이기
6.곡우穀雨: 율무, 참깨 파종
7.입하立夏: 中生稻 파종, 천수답에 직파
8.소만小滿: 올벼의 모내기
9.망종芒種: 중생벼의 모내기
10.하지夏至: 보리 수확
11.소서小署: 김매기, 길쌈
12.대서大暑: 김매기, 메밀 심기
13.입추立秋: 김매기, 배추, 무씨 파종
14.처서處暑: 올벼, 참깨 수확
15.백로白露: 잠깐의 휴식기
16.추분秋分: 가을보리 파종, 중생벼 수확
17.한로寒露: 꼴풀 베기(겨울동안 소말 먹이)
18.상강霜降: 들깨 수확, 칡 밧줄 만들기, 닥나무 베기
19.입동立冬: 무레蛙?수확, 창호렉?등 집안 보수, 메주를 디딘다.
20.소설小雪: 억새로 이엉 만듬, 숯을 구음
21.대설大雪: 띠, 솔새로 밧줄과 도롱이 만듬
22.동지冬至: 멍석 짜기
23.소한小寒: 멍석과 이엉 짜기
24.대한大寒: 농기구 보수
by 100명 2005. 4. 19. 14:13
신사업 추진의 성공방안

김창현 / 주간경제 762호 2004.01.14

디지털 컨버전스가 산업간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이에 따라 신사업에 대한 지속적인 도전없이는, 기존 사업의 연속성도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선점하지 않으면 낯선 경쟁자가 기존 시장을 잠식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컨버전스 시대의 생존 요건인 신사업 추진의 성공 방안을 살펴본다.

게임기 만드는 노키아, TV 만드는 HP, 인터넷에서 음반을 파는 Dell, 영화 제작자 소니 까지... 기업들의 변신이 대단하다. 왜 이들 기업들이 이전과는 성격이 상이한 사업으로의 진입을 선언하게 된 것일까? 면면을 살펴보면, 하나 같이 기존 사업 부문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하면 기존 명성에 흠집을 낼 수도 있는 생소한 부문에 대한 사업 추진의 결정을 내린 이유는 무엇일까?


신사업 추진을 일상적 경영 활동으로

그러나, 막상 이런 결정을 내린 기업들은 결코 이러한 신사업 추진이 기존 사업 방향과 궤를 달리하는 돌연변이적 선택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HP사는 TV 시장 진출을 신사업 개시의 의미보다는 자사의 디지털 전략을 보완하기 위한 차원의 변화로 해석해 달라고 주문했다. 디지털화라는 큰 흐름에 몸을 싣기 위한 자연스러운 변화일 뿐 결코, 본업과 관계 없는 사업에 대한 욕심 때문에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노키아의 N-Gage(게임기) 사업이나 소니의 콘텐츠 사업도 무리한 신사업 추진 보다는, 휴대폰의 멀티미디어화와 방송의 양방향화라는 기술 변화를 주도하기 위한 기존 사업의 연장선상에서 해석되는 분위기다.

이들 기업들의 변화를 보면서 다각화가 좋은 것이냐 집중화가 좋은 것이냐는 문제로 논쟁을 다시 벌이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디지털 컨버전스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기존 사업과 신사업, 관련 사업과 비관련 사업의 구분 자체가 의미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더 이상 신사업 추진의 역량이 기업의 획기적 성장을 위해 추가적으로 보유해야 하는 역량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는 점이다. 신사업 추진과 이를 위한 역량 확보가 기존 사업의 유지, 더 나아가 생존을 위해 주기적으로 반복되어야 하고 기업의 DNA로 체화 되어야 하는 필수적 역량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러나, 신사업 추진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특히, 기존 시장에 안정적 지위를 구축하고 있는 대기업 일수록 신사업 추진이 더 어려울 수 있다. 기존 사업을 통해 체득된 성공 경험이 오히려 신사업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사업 추진에 있어 실수를 피할 수는 없지만, 실패의 확률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인가?


사업의 본질을 파악하라 - 사업 모델의 재검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사업의 본질을 철저히 파악하는 것이다. 기존 사업 경험이 신사업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선입견으로 작용해 신사업이 실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본 전자 업체의 게임기 사업 진출은 그 대표적 사례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마쯔시타, 산요 등 대표적인 일본 전자 기업들은 게임 산업을 미래의 성장산업으로 인식하고 게임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을 제외하면 일본 전자업체의 게임 사업은 대부분 실패로 끝이 나고 말았다. 마쯔시타와 산요의 3-DO, NEC 가전의 PC-FX 기술, 히타치의 하이-새턴은 모두 일본 전자 기업들이 게임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도전했지만 실패한 제품들이다.

결정적인 이유는 이들 전자 기업이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게임사업에 적용했다는 데에 있다. 전통적으로 전자 메이커들은 비용을 토대로 가격을 산정하고 하드웨어 판매에서 이익을 내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게임 사업의 논리는 달랐다. 비용을 토대로 하드웨어 가격을 산정하면 실패하는 것이 게임 사업의 속성이었다. 하드웨어는 무료로 주고서라도 시장을 넓히고, 그 기반위에서 소프트웨어 판매에서 이익을 내는 비즈니스 모델이 게임 사업의 본질이었던 것이다.

아직까지, 완전한 성공이라고 평가하기는 이르지만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이 달랐던 점도 여기에 있었다. 플레이스테이션을 출시한지 6달여 만에 399달러에 이르던 하드웨어 가격을 299불로 인하하는 결정을 내렸다. 6달 동안에 폭발적인 매출 성장으로 고정비를 회수 했기 때문에 가격 인하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었다. 상황은 오히려 반대였다. 400불 가까운 비용을 지불하고 하드웨어를 살 수 있는 매니아 층의 소비가 소진되고 나자 플레이 스테이션의 판매는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인기 있는 소프트웨어가 출시되었지만 그것이 판매를 촉진시킬 수는 없었다. 이때, 구타라기 겐을 비롯한 소니의 이단아들은 전격적인 가격 인하 결정을 내렸다. 문제가 발생한 곳은 소니의 본사였다. 현재 적자인 사업에서 가격을 또 인하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시뮬레이션이나 돌려보고 그런 결정을 내렸냐는 성토가 곳곳에서 쏟아져 나왔다. 판매 중인 모델을 제품 변경 없이 가격을 내리는 것은 소니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구타라기를 비롯한 신사업 추진 주체의 의지는 확고했다. 플레이 스테이션을 밑지고 파는 것은 초기 단계이기 때문이며,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주저하다 시장을 놓치면 더 비참한 꼴을 당하게 되고 사업의 미래가 송두리째 날라간다는 것이었다. 결국, 기존 모델과 성능을 달리하여 저가 모델을 내고 가격을 인하하는 데서 합의점을 찾았고 플레이 스테이션은 새로운 성장의 모멘텀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게임 산업에서 하드웨어의 가격은 이익을 확보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하는 수익 모델의 관점이 아니라, 비즈니스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를 결정하는 인프라 구축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올바른 접근방법 이었던 것이다.


차별화 - 게임룰을 바꿔라

그러나, 신사업의 본질을 철저히 파악하고 이를 따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만으로는 기존 경쟁 업체와 차별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업의 본질을 파악했다면 후발 사업자만이 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게임룰을 바꾸어야만 한다.

사실, 사업의 본질을 철저히 파악하는 것과 게임룰을 바꾸는 것은 서로 충돌하는 명제인 것처럼 느껴진다. 사업의 본질을 파악하다 보면 새로운 혁신의 가능성이 소실되고, 적응하는데 급급해 질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사업과 고객에 대한 이해 없는 성급한 차별화는 가치가 없는 차별화, 비용만을 증가시키는 차별화로 전락될 가능성이 크다. 사업과 고객에 대한 철저한 이해와 고민 속에서 변화가 시도되어야만 고객이 가치를 느끼는 차별화가 가능한 것이다.

한국 휴대폰의 성공은 게임룰을 바꾸어 경쟁 구도를 근본적으로 재편한 대표적인 예이자 한국 기업에게 훌륭한 성공 체험이다.

한국 휴대폰을 이끌어 나가고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 국내에서는 튼튼한 사업 기반을 가지고 있는 종합 가전 기업이었다. 그러나, 휴대폰 부문에서는 경험이 일천한 신참자였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국내 시장은 휴대폰 부문에서 세계 최강자 중의 하나인 모토로라가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었다. 또한, 세계 시장은 뛰어난 연구개발력과 브랜드력을 바탕으로 에릭슨, 노키아, 모토로라와 같은 정보통신 전문 업체들이 3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글로벌 브랜드로서의 위상이 약하고 원천 기술 부문에서 역량이 떨어지는 한국 기업이 선택한 카드가 바로 통신 서비스 사업자 전용 단말기였다. 노키아나 모토로라와 같은 대형 휴대폰 업체들이 자신들의 수익 극대화를 위해 개별 통신 서비스 사업자의 니즈에 일일이 대응하지 못한다는 점을 활용한 차별화 정책이었다.

이러한 전략은 B2C 마켓 성격이 강했던 휴대폰 시장의 게임룰을 대형 기업 고객에 대한 밀착 서비스와 빠른 제품 개발력이 중요한 B2B 마켓의 그것으로 바꾸는 혁신적인 카드였다. 이는 이미 반도체나 LCD와 같은 핵심 부품 사업에서 한국 전자 기업이 성공 체험을 확보했던 경쟁과 유사하게 게임룰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 결과, 정보통신 부문에서 소비자 인지도가 낮았던 한국 휴대폰 기업들이 세계적인 통신 서비스 사업자와의 공동 마케팅으로 세계 시장에서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일반 소비자에게 까지 인정 받는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문제가 된 것은 높은 로열티를 물고, 통신 사업자별로 별도의 단말기를 개발하는 비용을 부담하면서 어떻게 수익성을 확보하느냐였다. 즉, 대형 사업자들을 위한 매스 커스터마이제이션 (Mass customi-zation)의 경제성을 담보하는 수익 모델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었다. 이 부분에서 한국 기업은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진전을 보여주었다. 전통적으로 저가로 시장에 진입해 대량 생산으로 코스트 구조를 차별화해 수익을 내던 기존 방식과 확실히 다른 접근 방법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표준화와 대형화로 저 비용 구조를 만들기 보다는 한발 앞선 제품 출시로 평균 판매가격(ASP)을 높임으로써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동시에 수익성을 확보하는 전략을 취했던 것이다. 처음으로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Set 기기에서 일본 기업보다 높은 가격을 받는 제품을 탄생시킨 것이다.


Critical Mass를 확보하라 - 가능성 있는 변방을 노려라

하지만, 신사업 추진에 있어 이러한 전략을 펼치기 전에 가장 먼저 부닥치는 문제는 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고객을 어떻게 확보하느냐 하는 것이다. 사실, 고객 확보는 경쟁력 확보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경쟁력 확보의 전제가 되기도 한다. 고객이 확보되지 않으면 부품 업체나 장비 업체 누구도 확실한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선행 기술이 적용된 부품을 경쟁 업체보다 먼저 제시해 줄 가능성도 없다.

그런 상황에선, 차별화 된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더욱 요원한 일이 된다. 핵심 부품 업체나 주요 소프트웨어 업체들은 모두 자기들의 고객을 평가하는 냉정한 잣대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잣대의 핵심은 고객의 고객 구조이다. 사업의 앞날을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지만 가장 확실한 잣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고객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뒤늦게 뛰어든 후발 업체들이 어떻게 단기간에 최소 규모 이상의 고객 구조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어디서부터 고객 개척을 시작해야 할까?

몸집이 크고 단번에 업계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대형 고객을 잡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몸집이 큰 고객들에게는 이미 강력한 경쟁자들이 한발 앞선 제품과 서비스로 강한 파트너십을 형성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 상황에서, 검증되지 않은 신흥 업체가 대형 고객을 잡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차별화 된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하더라도 대형 고객이 기술과 제품을 평가하고 인증하는 기간은 통상 몇 년씩 걸려 사업 초기 임계 물량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오히려 대형 업체가 간과하고 있는 변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디지털 셋탑 박스를 판매하고 있는 휴맥스는 방송사와의 오랜 파트너십을 통해 노키아나 필립스와 같은 대형 현지 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방송사 유통 셋탑 박스 시장 대신 시장 규모가 훨씬 작은 소비자 유통 시장을 휴맥스의 브랜드로 적극 공략했다. 시장 규모가 소규모 여서 경쟁자들의 견제가 약해 초기 시장 확보가 용이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소비자 유통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러자, 예전에는 만나주지도 않았던 대형 방송사들이 찾아와서 사업 상담을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때 변방의 시장을 공략할 때 유의할 점은 규모는 작더라도 기술적으로는 앞서나가는 고객을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점이다. 변방은 본격적인 전투를 펼쳐나가기 위한 훈련 무대 이다. 변방에서의 경험을 통해 중앙에서의 전투를 치룰 수 있는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나 제품 평가 측면에서는 오히려 더 까다로운 고객을 선택해 충분한 훈련 기간을 쌓는 것이 신사업의 본질을 이해하고 업계에서 명성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초기 한국 휴대폰도 시장 규모가 소규모인 CDMA 서비스에 집중함으로써 노키아와 같은 대형 업체의 견제를 덜 받으면서 사업기반 확보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다. 동시에, CDMA 표준을 따르는 한국 이동 통신 시장의 빠른 제품 개발 주기와 첨단 기술 흡수 속도 덕분에 폴더폰 이라는 새로운 컨셉을 고안해 낼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 휴대폰 시장 전체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너지 - 전제가 아닌 결과로

신사업을 추진하면서 특히 대기업이 빠지기 쉬운 함정중의 하나가 초기부터 기존 사업과의 시너지를 전제로 사업을 전개해나가는 것이다. 기존의 유통망을 활용하거나, 기존 기술 기반 위에서 새로운 기술을 덧붙이는 형태로 사업을 전개해 나가는 방식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너지 활용방안이 자칫하면 오히려 소비자를 실망시키고 기존 사업과 신사업간의 브랜드 이미지 충돌 등으로 사업 실패로 이어지는 결정적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일례로, 중국의 대표적인 가전 기업인 하이얼과 TCL은 신사업이라 할 수 있는 휴대폰 사업 유통망 구축에 있어 다른 접근 방법을 선택했다. 하이얼은 신사업을 빨리 안정화 시키기 위해 기존 가전 유통망 위에 휴대폰을 추가하는 방식의 유통 전략을 펼쳤다. 하이얼의 브랜드 이미지를 고려할 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방안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TCL의 방향은 달랐다. 휴대폰은 패션 상품이고 첨단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한 상황에서 가전 유통망을 활용하는 것이 사업초기 이미지 구축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기존 가전망에 휴대폰을 얹을 경우 최종 판매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아직은 물량이 작은 휴대폰 판매에 주력하기 보다는 덩치가 큰 가전 제품 판매에 주력하는 결과를 초래해 오히려 신사업 안정화에 방해가 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아직까지, 중국 로컬 휴대폰 업체들의 최종 성과를 판단하기는 이른 감이 있지만 현재까지는 TCL의 판단이 옳았던 것으로 보여진다. 최종 판매원에 대한 파격적 인센티브와 소비자에 대한 적극적인 추천, 시장으로부터의 빠른 정보 입수 등에 힘입어 TCL이 로컬 업체 중에서는 1,2위의 지위를 다툴 정도로 확실히 성장했기 때문이다. 반면, 하이얼은 아직 중국 로컬 업체 중에서도 7~8위권 정도의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을 뿐이다.

일본 전자업체의 게임기 진출에서도 이와 같은 형태가 그대로 보여진다. 1994년 일본 전자 업체의 게임기가 출시될 무렵 전자 업계의 관심사는 멀티미디어 였다. 차세대 게임기는 늘 그 중심에 있었다. 게임기가 멀티미디어로 가는 관문으로 회자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일본 전자 업체는 공공연히 자신들의 제품을 ‘멀티미디어 기계’로 선전했다. 마쯔시타는 3-DO 게임기를 공공연히 멀티미디어 기계라고 소개했다. NEC도 PC/FX의 장기 마케팅 전략의 핵심이 멀티미디어 PC 라는 점을 강조했다. 분명히, 게임기는 고성능의 컴퓨터이다. 엄청난 정보 처리 능력 때문에 멀티미디어 기계로도 팔 수 있다는 유혹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들 기계들은 게임기로서 자리를 잡는데 실패했다. 문제는, 이들 업체들이 게임 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게임 매니아 들의 욕구를 잘못 파악 했다는 데에 있다. 새로운 하드웨어를 구입하고 그 위에서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시험해 보고 이를 평가하는 매니아 들이 원하는 것은 멀티미디어가 가능한 게임기가 아니라 최고의 게임기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반면, 소니의 접근 전략은 달랐다. 소니는 플레이 스테이션이 오직 게임기임을 강조하면서 소비자와 관련 업계의 신뢰를 얻으려는 전략을 펼쳤다. 결국, 게임기를 사용하는 사람은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최고의 게임기를 제공하면 팔릴 수 있다는 게 소니의 전략이었다. 소니가 게임 사업 추진 주체를 별도의 법인으로 분리하였고, 게임 부문에서 성장하지 않으면 다른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는지 모른다.

물론,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은 진화하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3에는 막강한 하드드라이브가 장착될 것이고, 영화와 음악을 저장하고 이를 시현할 수 있는 기능까지 갖추게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플레이스테이션3를 엔터테인먼트의 센터가 되게 한다는 것이 가전 왕국 소니의 복안임에는 틀림없다. 중요한 것은, 신사업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의 문제이다. 신사업을 추진하기로 한 이상 신사업 자체가 사업의 중심이며 거기서 승부를 내야 하는 것이다. 시너지는 그 다음의 문제이다. 개별 사업이 경쟁력을 확보한 상황 속에서 추가적인 고객밀착과 진입장벽의 수단은 될 수 있으나, 결코 사업 추진의 전제조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 중요하다.


‘프론티어’정신을 되찾아라

사실, 한국 기업만큼 신사업 추진에 의욕적이고 그 성공률이 높은 기업도 드물다. 늘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고 끝까지 밀어붙여서 성공시키고야 마는 한국 기업의 ‘프론티어’정신이야 말로 한국 기업이 가진 장점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빠른 기술 변화와 함께 그 파급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전에 비해 다음 세대의 주력 상품에 대한 그림이 쉽게 잡히지 않게 되고, 한국 기업도 대형화 조직화 되면서 이전 같은 도전적 신사업 추진의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또한, 자본 시장의 세계화로 섣부른 신사업 추진이 투자자들의 동의를 얻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컨버전스의 가속화로 지속적인 신사업 추진 없이 기업의 연속적인 성장을 기대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전처럼 누군가 해 놓은 것을 모방 하는 것으로 신사업을 추진하던 시대도 지나갔다.

우리 스스로의 눈으로 시장을 읽어내고 사업기회를 찾아내는 감각과 이를 행동으로 실현할 수 있는 ‘프론티어’정신을 회복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변화된 환경에 맞게 사업모델을 재구축하고, 현상을 넘어서는 혁신적 아이디어를 창출해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도전적 인재를 찾아내고 이들에게 지속적으로 기회를 제공하고 전체 차원에서 이를 관리하는 경영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는 준비가 지금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LG경제연구원]
by 100명 2005. 3. 14. 17:54

젊음

YOUTH

Youth is not a time of Life : it

is state of mind : it is not

a matter of rosy cheeks, red lips

and supple knees : it is a matter of the

will, a quality of the imagination,

a vigor of the emotion : it is the freshness

of deep spring of life.



젊음이란 인생의 어떤 기간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말한다.

장미의 용모, 붉은 입술, 나긋나긋한 손발이 아니라

씩씩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오르는 정열을 가리킨다.

청춘이란 인생의 깊은 샘의 신선함을 말한다.



Youth means temperamental predominance of

courage over timidity, of the appetite

for adventure over the love of ease.

This often exists in a man of

sixty more than a boy of twenty.

Nobody grows old merely by a number of years.

We grow old by deserting our ideals.


젊음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한 마음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20세 청년보다도

70세 노인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더해 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을 읽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



Years may wrinkle the skin,

but to give up enthusiasm wrinkles the soul.

Worry, fear, self-distrust bows the

heart and turns the spirit back to dust.



세월은 피부에 주름살을 늘려가지만

열정을 잃으면 마음이 시든다.

고뇌, 공포, 실망에 의해서

기력은 땅을 기고 정신은 먼지가 된다.



Whether sixty or sixteen, there is in every

human -being's heart the lure of wonder,

the unfailing child-like appetite of what's next,

and the joy of the game of living.

In the center of your heart and my heart there is

a wireless station : so long as it receives messages

of beauty, hope, cheer, courage and power

from men and from the infinite,

so long are you young.



70세든 16세든 인간의 가슴에는

경이로움에 이끌리는 마음,

어린애와 같은 미지에의 탐구심,

인생에 대한 흥미와 환희가 있다.

그대에게도 나에게도

마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우체국이 있다.

인간과 하느님으로부터

아름다움, 희망, 기쁨, 용기, 힘의 영광을 받는 한

그대는 젊다.



When the aerials are down,

and your spirit is covered with snows of cynicism

and the ice of pessimism,

then you are grown old, even at twenty,

but as long as your aerials are up,

to catch the waves of optimism,

there is hope you may die young at eighty.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아이러니의 눈에 덮히고

비탄의 얼음에 갇혀질 때

20세라도 인간은 늙는다.

머리를 높이 치켜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80세라도 인간은 청춘으로 남는다.
by 100명 2005. 3. 14. 15:42
성공 기업인 5가지 공통점


첫 번째 성공하는 기업인들의 첫 번째 조건은 "새벽체질"을 가졌다는 것이다.



두 번째의 성공조건은 허풍을 잘쳐야 한다는 것이다.


허풍을 치는데는 조건이 있다.

차분하게 치고 그 허풍을 이루도록 최대한 실천을 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허풍은 허황한 것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세번째 조건은 사람을 믿는다는 것이다.


성공한 기업인들을 보면 "좋다" "싫다"가 분명하다.

신규사업을 선택할 때도 그렇고 사람을 선택할 때도 그렇다.

일단 좋아하는 사람을 선택하면 그 사람을 철저하게 믿는다.

사람을 믿는 사장은 그 사람에게 일을 철저하게 맡긴다.



네 번째 조건은 "아낀다"는 것이다.


구두쇠가 아닌 사람은 일단 기업인으로서는 탈락이다.

기업이란 언제나 "밑빠진 독"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부하직원이 접대를 할 때 설렁탕 한그릇이면 충분한 식사를 고급일식으로 접대했다면 회사돈을 횡령한거나 마찬가지란 생각을 가져야 성공할 수 있다.

사원들이 제출한 영수증을 최종점검하는 습관을 가져야 승승장구할 수 있다.

60년간 중소기업인으로서 최고의 성공가도를 달려온 삼화인쇄의 유기정 회장의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수백장에 이르는 영수증과 견적서를 일일이 점검해보는 것을 보고 놀란 일이 있다.

그는 식사때 단 한톨의 밥알도 남기지 않는 습관을 가졌다.

이국노 지주 회장은 대규모 플라스틱 파이프 생산업체의 사장이지만 15년전의 양복을 아직도 입고 다닌다.




다섯째 조건은 잔돈을 꼭 갚는다는 것이다.


학교 다닐 때 친구중에 잔돈을 빌려가면 꼭 갚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곧 잊어버리는 친구가 있었을 것이다.

그때 잔돈을 잘 갚지 않던 친구와는 절대 동업을 해서는 안된다.

남의 돈을 잘 갚는다는 것은 신용 즉 크레딧이 높다는 뜻이다.

기업인으로서는 돈 거래가 분명해야 한다.

거래업체나 은행에 결제해주는 걸 차일피일 미루는 사람은 언젠가는 신용을 잃고 만다.

신용이 낮으면 신보 기술신보 등 보증기관을 활용하기가 힘들어진다.
중소기업청 및 중소기업진흥공단을 통해 정책자금을 활용하기도 어려워진다.



이 다섯가지 중에 3가지 이상 합격점을 맞으면 기업인으로 그럭저럭 꾸려나갈 수 있다.

4가지가 맞으면 성실한 기업인이 될 수 있다.

5가지를 다 맞으면 최고의 성공기업인으로 보장받을 수 있다.

5가지가 다 맞아떨어지는 사람이 아직 월급쟁이라면 당장 사표를 내고 창업을 해도 좋다.


(출처) 한국경제신문
by 100명 2005. 3. 14. 14:04
You see a gorgeous girl at a party.
당신은 파티에서 끝내주는 여자를 본다.

You go up to her and say, "I am very rich. Marry me!"
당신이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나는 돈이 많아. 나랑 결혼해줘!" 라고 말한다.

That's Direct Marketing.
그것이 직접적인 마케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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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e at a party with a bunch of friends and see a gorgeous girl.
당신이 한무리의 친구들과 파티에서 끝내주는 여자를 본다.

One of your friends goes up to her and pointing at you says,
당신의 친구중 하나가 그녀에게 다가가서 당신을 가리키며,

"He's very rich. Marry him."
"그는 돈이 많다. 그와 결혼해." 라고 말한다.

That's Advertising.
그것이 광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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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see a gorgeous girl at a party.
당신은 파티에서 끝내주는 여자를 본다.

You go up to her and get her telephone number.
당신은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전화번호를 얻는다.

The next day you call and say, "Hi,I'm very rich. Marry me."
다음날 전화해서 "나는 돈이 많아. 나랑 결혼해줘." 라고 말한다.

That's Telemarketing.
그것이 텔레마케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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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e at a party and see a gorgeous girl.
당신은 파티에서 끝내주는 여자를 보았다.

You get up and straighten your tie, you walk up to her and pour her a drink.
당신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추스리고, 그녀에게 다가가 음료를 따라준다.

You open the door for her, pick up her bag after she drops it, offer her
당신은 그녀를 위해 문을 열어주고, 그녀가 놓아둔 가방을 집어들어 그녀에게 건네준다.

aride, and then say,
그리곤, 무미 건조하게

"By the way, I'm very rich. Will you marry me?"
"그런데 말야, 나는 돈이 많아. 나랑 결혼해줄래?" 라고 말한다.

That's Public Relations.
그것이 P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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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re at a party and see a gorgeous girl.
당신은 파티에서 끝내주는 여자를 보았다.

She walks up to you and says, "You are very rich."
그녀가 당신에게 다가와 "당신은 굉장한 부자.."라고 말한다.

That's Brand Recognition.
그것은 브랜드의 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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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see a gorgeous girl at a party.
당신은 파티에서 끝내주는 여자를 본다.

You go up to her and say, "I'm rich. Marry me"
당신은 그녀에게 다가가 "나는 부자야. 나랑 결혼해." 라고 말한다.

She gives you a nice hard slap on your face.
그녀가 당신의 얼굴에 보기좋게 따귀를 때린다.

That's Customer Feedback !!!!!
그것이 고객의 피드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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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see a gorgeous girl at a party.
당신은 파티에서 끝내주는 여자를 본다.

You go up to her and say, "I am very rich. Marry me!"
당신이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나는 돈이 많아. 나랑 결혼해줘!" 라고 말한다.

but you only have a lottery.
그러나 가지고 있는건 로또 한장.

that's stock option.
그게 스탁옵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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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see a gorgeous girl at a party.
당신은 파티에서 끝내주는 여자를 본다.

You go up to her and say, "I am very rich. Marry me!"
당신이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나는 돈이 많아. 나랑 결혼해줘!" 라고 말한다.

but you only have a credit card and debt.
하지만 가지고 있는건 신용카드와 빚 뿐.

that's accounting fraud(window dressing).
그것이 바로 분식회계
by 100명 2005. 2. 23. 17:33
新사업 성공 기업 5選
새 사람들에 신사업 맡겨
젊은 COO들 ‘강력한 2등’ 전략으로 효율성 높여


오리온-과자에서 엔터테인먼트로

초코파이로 유명한 오리온은 제과업뿐 아니라 유통·미디어·영화·엔터테인먼트 등 16개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이다. 그 모태는 1956년 창업주인 고(故) 이양구 회장이 설립한 동양제과. 담철곤 회장이 진두지휘하는 이 회사는 이제 ‘먹는 즐거움에서 보는 즐거움까지’ 추구하는 토털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탈바꿈했다.

오리온은 2001년 9월 이전까지 동양그룹에 속했다가 사업 확대를 위해 분리되면서 지금의 그룹 이름으로 새출발을 했다. 90년대 초 2천억∼3천억원대에 불과하던 외형이 2002년 말 기준으로 매출 1조2천여억원에 달하는 중견그룹이 됐다.

오리온은 90년 편의점 바이더웨이를 시작하면서 유통 사업에 뛰어들었고, 94년에는 케이블TV 투니버스로 미디어 사업에 참여했다. 이후 95년에는 패밀리 레스토랑인 베니건스, 99년에는 멀티플렉스 영화관 메가박스, 2001년에는 공연사업에도 손을 댔다.

최근에는 스포츠토토까지 인수해 토털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모양새를 갖췄다. 지난해 신사업에서 일어난 매출은 2천억원이 넘는다. 본업인 동양제과의 매출 5천억원에는 못 미치지만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금은 오리온 그룹의 양대 축이 제과와 엔터테인먼트라는 사실을 누구나 인정하지만 처음 신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전통적인 과자회사가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뛰어든다는 것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오리온의 최고경영자(CEO)인 담회장이나 이화경 사장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신규사업을 위해 아예 기존 조직과는 무관한 새 사람을 썼다. 현재 신사업 부문을 맡고 있는 김성수(온미디어·41), 문영주(롸이즈온·40), 김우택(메가박스·39) 본부장 등이 바로 그들이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한 젊은 본부장들로 하여금 새 사업을 주도하게 했다. 회장이나 사장의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젊은 본부장들이 낸 아이디어가 오리온의 신사업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젊은 본부장을 중심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이들 신사업이 시작부터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90년대 중반 신규사업팀에 소속돼 새 아이템을 모색하면서 20여억원을 소비했다.

연예 매니지먼트·커피숍·레스토랑 등은 대표적으로 실패한 사업들이다. 그러나 담회장은 이를 질책하지 않고 담담하게 수용했다. 허비한 돈과 경험은 고스란히 사람에게 쌓인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 당시에는 제대로 되는 일도 없이 돈만 낭비했지만 회장님과 사장님이 크게 문제삼지 않았어요. 지나고 보니 그것들이 신사업의 자양분이 된 것 같습니다.” 롸이즈온 문영주 대표의 회상이다.

신사업이 비교적 안착한 지금까지도 오리온에서 지켜지는 규칙이 하나 있다. 제과 인력과 신사업 인력 간의 교류가 없다는 것. 관리나 지원 쪽을 제외하고는 제과 인력이 신사업부문으로 간 예가 없다. 비즈니스의 성격이 워낙 다르기 때문이다. 담회장도 “그룹의 통합 정체성보다 개별회사의 개성을 살려야 그룹이 살아난다”는 점을 늘 강조하고 있다.

외형적 1등보다는 내실 있는 ‘강력한 2등 전략’을 쓴 것도 주목할 만하다. 시청률과 광고 수주액 분야에서 케이블 TV업계 1위인 온미디어를 제외하면 메가박스나 베니건스는 규모 면에서 모두 업계 2∼3위권이다.

하지만 좋은 위치 선정과 고급스런 인테리어로 둘 다 멀티플렉스와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가지게 됐다. 오리온보다 자금력이 뛰어난 CJ나 롯데를 상대로 경쟁하기 위한 전략이다.


신사업의 주역들

김성수 본부장과 문영주 본부장은 둘 다 제일기획 출신. 1991년 신규사업 아이디어 뱅크팀에 입사하면서 오리온그룹과 인연을 맺게 됐다. 김본부장은 오리온의 첫 케이블TV 채널인 만화채널 ‘투니버스’ 설립을 시작으로 미디어 브랜드 ‘온미디어’를 발족했다.

미국 캐피탈 그룹과 타임워너로부터 대규모 외자를 유치해 온미디어가 국내 최대 프로그램 공급자가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현재 9개의 채널을 갖춘 온미디어는 케이블TV 채널 점유율 35%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문본부장은 95년부터 오리온 신규사업부 외식사업 담당 팀장을 맡아 미국 베니건스 브랜드를 도입하고, 이후 사업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총 18개 매장을 오픈했으며, 2002년에는 매출액 6백20여억원을 기록했다. 2001년에 총 1백억원을 투자한 ‘오페라의 유령’ 공연으로 매출액 2백억원을 기록하며, 한국 뮤지컬을 산업화의 단계로 끌어올리기도 했다.

오리온그룹의 영화 관련 사업을 총책임지고 있는 김우택(오른쪽) 본부장은 오리온그룹의 최연소 임원이다. 96년 종합상사 동양글로벌에서 근무하다 97년 케이블 만화채널 투니버스 부장으로 오리온 그룹과 첫 인연을 맺었다. 미디어플렉스 본부장 시절 세계 최대의 영화관 체인업체인 LCI로부터 2천만 달러의 외자를 유치, 메가박스 씨네플렉스를 설립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실패 딛고 ‘딤채’ 탄생

경영자 신뢰가 큰 힘… 김치 알려고 1만 포기 담기도

위니아만도-차량 부품에서 가전으로

위니아만도는 사람들에게 김치냉장고와 에어컨으로 잘 알려진 회사다. 특히 ‘딤채’의 경우 김치냉장고 시장 점유율 1위일 뿐만 아니라 브랜드 파워에서도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전신인 만도기계 시절에는 상용차 에어컨이나 히터·라디에이터 등을 완성차 업체에 납품하는 차량용 공조부품 전문회사였다.

알짜 회사였지만 위니아만도에도 고민거리가 있었다. 부품을 생산하는 하청회사였기 때문에 자동차 산업이 ‘기침’을 하면 ‘감기몸살’을 앓아야 했다. 또 최종 생산품(end item)을 생산하는 회사가 아니라서 브랜드를 알리거나 주가를 관리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경영진에서는 고민 끝에 업종 변경을 시도했다. 일단 신사업 ‘1번 타자’는 에어컨으로 잡았다. 공조회사의 핵심기술을 그대로 응용할 수 있었기 때문. ‘위니아’라는 브랜드로 출발한 에어컨 사업은 그런대로 순항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에어컨이 여름 상품이기 때문에 1년 중 반은 공장을 놀려야 했던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겨울용 아이템 개발에 들어갔다. 온풍기·가습기·보일러·식기세척기·자판기 기계 등 여러 아이템을 개발하고 판매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한국 문화에 맞지 않거나 기존 업체들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일곱명의 본부장 중 한사람으로 김치냉장고 사업을 맡고 있던 황한규 사장은 “실패했을 때 경영자의 신뢰가 큰 힘이 됐다”고 회상한다.

김치냉장고는 틈새 제품이라 경쟁자도 별로 없었다. 김치라면 국민적인 음식이기 때문에 소비층도 두터운 편이었다. 문제는 김치의 맛을 어떻게 살리는가였다. 이때부터 김치냉장고가 아니라 김치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1만 포기 이상 김치를 담았고, 점심 때마다 김치 반찬에 라면을 먹기도 했다.

95년 제품을 개발했지만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부품회사였던 탓에 마케팅에 대한 개념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마케팅 부서조차도 없었고, 마케팅에 드는 비용에도 인색했다. 일반 소비자를 상대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마케팅 부서를 만들고 외부에서 마케팅 인력들을 수혈했다. 컨설팅도 받았다. 부족한 역량은 과감히 외부에서 수혈한 것이 주효한 셈이다.

[인터뷰 황한규 사장]“아파트 부녀회장 통해 테스트 마케팅”

신사업으로 가전을 생산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위니아만도는 원래 부품회사였기 때문에 마케팅에 대한 개념이 희박했다. 일반 소비자들을 상대하는 제품은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파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다행히 김치냉장고는 우리가 선발주자여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

기존에 없던 제품이라 설명하기 어렵지 않았나.

“그래서 테스트 마케팅을 했다. 일단 써보고 마음에 들면 사라는 것이다. 수도권의 소비자 단체, 요리사, 정·재계 여성 인사와 서울 시내 대단지 아파트 부녀회장까지 포함시키니 3천명 정도 됐다. 이들을 대상으로 승부를 걸었다.”

실패도 했을 텐데, 회사 내에서 눈총을 받지는 않았나.

“‘딤채’를 내놓기까지 번번이 실패를 거듭했다. 조직 내에서도 나를 보는 눈이 곱지 않았다. 사장님이 내 말을 끝까지 믿어줘서 좋은 결과를 이룬 것 같다.”

‘딤채’ 는 출시하자마자 잘 팔렸나.

“그렇지 않았다. 처음에는 가정용보다 업소용으로 생각하고 대용량으로 제작했다. 하지만 주방아줌마를 두고 있는 업소에서는 그때그때 담아 먹는 것이 비용상으로도 저렴했기 때문에 굳이 김치냉장고를 살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가정용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문제 개선하니 돈 돼”


건물의 ‘숨통’ 창문 공략… 조직·법인 별도 구성

이건산업-목재에서 창호로

한국에 ‘시스템 창호’라는 새로운 개념의 창문을 선보인 곳이 바로 이건창호다. 경쟁업체들도 지금은 다들 시스템 창문을 생산하고 있다. 창호 제품을 한단계 끌어올린 이건창호는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이 처음 시작한 사업이다.

합판가공 등 건자재 사업을 하는 이건산업은 88년 창호사업에 손을 댄다. 당시 이건산업은 건축자재 중에서 가장 낙후된 것이 바로 창문이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창문은 건물의 ‘숨통’에 해당하는 중요한 기능을 하는데도 모두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던 틈새를 공략키로 한 것이다.

이한우 이건창호 부장은 “회사 내에서 신사업에 대해 고민하면서 ‘건자재 중에서 가장 문제 있는 분야를 찾아 개선하면 돈을 벌 수 있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창호를 신사업으로 설정하면서 조직과 법인도 별도로 구성했다. 중간재 산업인 이건산업의 인력으로는 트렌드에 맞는 디자인이 생명인 창호사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부장은 “그때만 해도 이건산업에는 임학과 출신들이 많았다. 하지만 창호사업은 건축이나 디자인이 꼭 필요해 아예 인력도 따로 뽑았다”고 기억했다.

이건창호 역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셈이다. 초기 시장 진입은 순탄한 편이었지만 90년이 지나 주택건설이 주춤해지면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이때 이건창호는 주택 외에 빌딩용 시스템 창호 쪽에 눈을 돌렸다.

다행히 93년 대전 엑스포를 기점으로 95년까지는 빌딩용 창호 시장이 살아났고, 그 뒤 3년 주기로 주택과 빌딩 시장이 번갈아 살아났다. 이부장은 “신사업이 성공적으로 런칭하더라도 몇번의 변곡점이 있다. 그때 어떻게 불씨를 살리느냐가 안착 여부를 좌우한다”며 지속적인 성장동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빵 매출 ‘본업’에 육박”

특급호텔의 노하우와 벤처 같은 유연함 결합

조선호텔-베이커리 사업 확대

지난해 조선호텔은 외식사업부문을 외식사업부와 베이커리사업부로 분리했다. 베이커리사업부의 외형이 커졌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에 베이커리사업부는 3백19억원의 매출 실적을 올렸다.

외형만 놓고 보면 ‘본업’인 객실부문(3백30억원)에 육박한다. 이 회사 박성호 베어커리사업부 마케팅팀장은 “베이커리사업부의 연말까지 매출 목표를 7백80억원에서 8백50억원으로 상향조정했다”고 말했다.

조선호텔이 베이커리사업에 적극 뛰어든 것은 96년 이마트 분당점에 ‘데이앤데이’를 입점하면서부터다. 객실과 외식사업이라는 호텔의 기존 비즈니스가 외형적인 한계에 봉착하면서 다양한 수익원을 발굴하기 시작한 것. 관계사인 신세계와 손잡고 이마트에는 ‘데이앤데이’를, 신세계백화점에는 ‘달로와요’를 오픈했다.

베이커리사업부의 호조에 힘입어 최근 경기도 용인 1, 2 공장에 이어 충남 천안에 제3공장 기공식을 가졌을 만큼 활발한 투자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과감한 인력 투자도 한몫 했다. 조선호텔은 국내 제빵기술사 1호인 김원복씨를 고려당에서 스카우트해 사업부장(상무)에 임명할 정도로 ‘새 식구 찾기’에 성의를 보였다. 김상무는 보란 듯이 불과 3년 만에 조선호텔 제과부문의 매출을 4배로 성장시켜 회사 측의 성의에 보답했다.

조선호텔이 ‘방’이 아닌 ‘빵’ 사업에서 이렇게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김상무는 올해 크게 히트한 찰개빵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으면서 “특급호텔의 전문적인 노하우와 벤처기업 같은 유연함이 결합됐기 때문”이라고 결론 내린다.

“미국이나 일본에서 유행하는 것을 도입해 우리 입맛에 맞는 신상품을 내놓기까지 불과 3주일밖에 걸리지 않는다. 이 정도면 대기업이지만 벤처기업 같은 유연함을 갖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고급 밀가루와 버터를 고집하는 특급호텔의 노하우를 살려 까다로운 소비자들의 입맛을 잡았다.”


‘히트 CEO’ 만나 기사회생

기존 설비 이용할 수 있는 아이템 찾다 ‘곡물음료’ 착안

웅진식품-인삼음료에서 곡물음료로

‘아침햇살’ ‘초록매실’ 등 곡물음료로 유명한 웅진식품은 1976년에 태어난 회사다. 당시의 사명은 ‘미보산업’. 섬유를 제조하는 조그만 회사를 웅진그룹에서 인수했으며, 이듬해 웅진인삼으로 사명을 바꾸게 된다. 사명에서도 알 수 있듯 당시의 주력 사업은 인삼관련 제품 판매였다. 그러나 시장규모가 미미해 인삼으로는 더 이상의 수익을 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 당시 웅진인삼의 한해 매출 규모는 60억원대에 불과했다.

“공장 설비를 변경하지 않은 채 새롭게 개발할 수 있는 아이템은 없을까.” 웅진식품의 구원투수로 투입된 당시 조운호 웅진그룹 기획실장(현 사장)의 고민이었다. 그러다가 “서양에서 병과 캔을 먼저 만들어 커피를 담아 팔았듯 우리도 병과 캔에 숭늉이나 매실차를 담아 팔면 그것이 음료 아닌가”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조사장 특유의 ‘용기론’(用器論)이다.

전통 마실거리에 대한 고민은 95년 10월 ‘가을대추’ 출시로 이어졌고, 이듬해에는 아예 회사 이름을 웅진식품으로 바꾸었다. 99년 1월 선보인 아침햇살은 제품을 출시한 지 10개월 만에 단일 브랜드로는 국내 음료사상 최단기 1억병 판매라는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

이 회사 조규철 기업문화팀장은 “현재 웅진인삼 시절 판매하던 제품은 모두 철수했고, 당시 인삼제조기술을 적용한 ‘장쾌삼’과 ‘용홍삼’ 등이 명맥을 잇는 정도”라고 말했다. ‘곡물음료’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면서 60억원대 회사를 3천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중견 음료회사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대표 브랜드의 컨셉트와 이름이 대부분 조사장의 머릿속에서 탄생했다는 것은 업계에서도 유명한 얘기다. 그는 일단 ‘판’을 벌이면 앞뒤 재지 않고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10년 안에 연 매출액 20조원을 돌파하겠다는 게 조사장의 포부다.


* 출처: Economist 706 호 2003년 09월 29일 (월)
by 100명 2005. 2. 23. 17:17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레오 톨스토이는 <세 가지 질문>에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이고
가자 중요한 사람은 지금 함께 있는 사람이고,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고 우리가 사는 이유라고 한다.
- 이종선의 「따스한 카리스마」중에서 -
by 100명 2005. 2. 22. 16:41
대학편입은 김영’ 이라는 말을 편입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정도로 김영학원은 현재 편입학원시장을 이끌어가는 선구자의 위치로까지 발돋음하였으며 ‘편입을 통해 희망을 만들고 희망이 이 사회발전의 기본이 된다’는 모토를 기본적인 사명으로 하여 편입 엑스퍼트로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김영학원의 성장비결과 다양한 전략들을 SWOT분석을 통해 살펴보자.



2. 김영학원 강점(Stength)분석



김영학원이 현재의 인기와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구체적인 비결들은 무엇일까? 김영학원만이 구사하고 있는 독특한 마케팅 전략과 강점들을 알아보자.



(1) 높은 브랜드 인지도(Brand awareness)




현재 편입학원 시장에는 김영학원을 비롯하여 대학로, 동성사, 이찬이, 강남, 박문각, 조기종, 유니넷, 동숭, 중앙, 체인지업, 탑 파이브, 21c 배형구 대학편입사 등 총 13 개 학원이 편입학원 시장에 진입해 있는 상태이며 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최근 4개 년간 그 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편입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가 될 정도로 김영편입학원은 편입학원시장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으며 이는 그동안 다른 편입학원이 구사할 수 없었던 김영만의 적극적인 Promotion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Promotion 효과는 단기적으로 머물지 아니하고 주로 Mouth to mouth 효과에 의해서 전달되는 정보들에 의존하여 구매의사를 결정하게 되는 학원가의 소비자들 특성상 좀 더 커다란 범위의 잠재고객들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까지 확대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브랜드 파워를 가능하게 한 요인은 무엇일까?



첫째, 높은 합격율이다. 편입학모집에서 매 학기 전체 합격생의 약 80%를 김영 출신의 수험생들이 차지하고 있고, 창조(김영편입학원 산하 미대편입전문학원) 역시 수도권 편입합격생 3명 중 2명꼴로 자사의 합격생들을 배출해 내고 있다. 이러한 높은 합격율은 학원선택시 소비자의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으로써 브랜드 인지도 향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장소를 가리지 않는 홍보전략이다. “ WITH KIMYOUNG ”이라는 문구를 레이 아웃(Lay - out)으로 하는 김영의 광고는 홈페이지 뿐만 아니라 학원광고로서는 보기 드물게 지하철 안, 대학내 게시판 등 다양한 장소에서 접할 수 있으며 최근에는 주요 대학(고려대, 서강대 등)들의 편입학 모집시 인터넷 원서 대리업무를 수행하여 김영편입학원은 편입학 수험생으로서 비켜갈 수 없는 과정이 되어 버렸다.



셋째, 다양하고 유익한 정보의 제공이다. 수험생 대부분이 수능 시험에 비해 편입에 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이들에게 그들의 needs에 맞춰 시시각각 변화하는 편입학 변경사항, 각 대학별 편입모집 요강안내, 편입준비요령, 출제시험 경향 분석, 최근 기출 문제 등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매우 유용한 정보들을 홈 페이지, 월간 편입뉴스 등을 통하여 많은 수험생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넷째, 언론을 통한 간접광고이다. TV나 신문 등 언론매체가 편입학 관련 기사를 다룰 경우 이에 관한 자료를 적극적으로 제공함으로써 편입학원시장에서의 자사에 대한 신뢰감을 극대화 시킬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요소들이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여 높은 브랜드 인지도 형성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by 100명 2005. 2. 22. 15:58
대표적인 지식 거래 사이트는 무엇이 있나?



해피캠퍼스(http://www.happycampus.com)




카이스트 테크노경영대학원에서 경영정보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 2000년 3월 오픈한 해피캠퍼스는 대학 논문 및 레포트의 거래를 전문적으로 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대표적인 지식거래 사이트이다.



처음에는 포인트 제도를 도입한 무료 서비스로 시작한 해피캠퍼스는 2001년 초부터는 포인트를 현금환산 단위인 원으로 현금화하여 누적 포인트를 현금으로 거래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주요 고객이 대학생인 점을 감안해 신용카드 거래 이외에도 다날, 인포허브 등의 휴대전화 및 ARS 결제 시스템을 도입했다.



해피캠퍼스는 유료화를 단행하는 데 가장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학술 지식 콘텐츠의 수집 및 거래량, 가입 회원수는 다른 경쟁 사이트를 압도했고 콘텐츠가 무료로 제공되기는 했지만 유료 거래와 비슷한 포인트 거래 방식을 취함으로써 소비자들의 심리적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특히 유료화에 돛을 단 결정적 조건은 대학생들의 구매 동기였다. 돈으로 사서라도 괜찮은 리포트를 만들어야 한다는 고객의 욕구가 있었던 것이다.



자료에 대한 가격은 처음에는 올리는 사람이 책정하지만 이후에는 거래량에 따라 자동으로 가격이 책정되는 시스템으로 자료의 가격은 건당 몇 백원에서 만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저작권, 자료의 정확성 및 전문성 등 자료와 관련해서 제기될 수 있는 여러 문제점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해 놓았다.



우선 새로운 자료가 올라오면 10여명의 자료 검색원들이 철저한 검증 과정을 거쳐 해당 자료가 저작권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에만 등록할 수 있게 해준다. 각종 연구소와 포털등에 비슷한 자료가 올라와 있으면 등록할 수 없으며 한 사람이 너무 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자료를 올리는 것도 제한하고 있다. 한 명이 1백건 이상 자료를 올릴 경우에도 등록을 일단 보류한다. 한 개인이 생산할 수 있는 지식의 분량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어느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지식은 사전에 차단하고자 하는 의도이다.



해피캠퍼스의 진입 초기 마케팅 수단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검색 포털에서 해당 키워드를 치면 상위에 등록될 수 있도록 콘텐츠를 좀 더 풍부하게 가공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대학 캠퍼스를 중심으로 포스터를 곳곳에 붙이거나 전단지를 돌리는 일이었다. 타깃을 명확히 한 뒤, 돈 안 드는 게릴라 홍보를 전개한 것이다.



해피캠퍼스는 운도 좋았다. 2001년 에는 지식 경영이 기업을 중심으로 붐을 일으키던 때였고, 휴대전화 결제가 매우 흥미로운 거래 방식으로 인식되고 있었던 때였다. 게다가 학술 지식 콘텐츠를 인터넷으로 판매한다는 것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결국 해피캠퍼스는 이상의 모든 것을 바탕으로 하여2002년 12억원의 매출을 올린 데 이어2003년에 30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2004년에도 4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해피캠퍼스의 현재 취약점인 전문적인 자료를 강화하기 위해 삼성경제 연구소와 국립중앙 도서관, 대법원, 한국노동 연구원 등 전문기관 등과 제휴를 맺었으며, 향후 계속적인 제휴기관과 업체들을 확대해 갈 방침이다.







또한 해외시장 공략에도 적극적이다. 이미 중국과 일본에도 진출하여 중국 사이트는 회원수가 30만명으로 유사 사이트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3개월 전부터는 유료화를 진행하여 수익 창출을 모색하고 있다. 앞으로는 사이트를 개편해 사진, 영상, 디자인 등 디지털로 표현되는 모든 정보를 거래할 수 있는 지식거래의 파워 시장을 형성할 계획이며 한·중·일 3개국의 지식교류가 가능한 ‘동북 아시아 지식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by 100명 2005. 2. 22. 15:56
왜 아이러브스쿨은 잊혀졌는가?


시대의 흐름을 놓치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인터넷 인적 커뮤니티의 변화는 동창 찾기라는 사회 트렌드가 점차 시들해져 가고 경쟁업체들이 개인 블로그를 경쟁적으로 개발하고 도입하는 시대로 가고 있었다. 기술과 아이디어는 지속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고 어느 정도의 붐이 일어나면 반드시 식어버리고 대체 상품이 등장하는 사회 문화적 추세를 고려했을 때 아이러브스쿨의 경우는 큰 결단을 내렸어야 했다.




그러한 추세에 발빠르게 대응하여 아이러브스쿨의 컨텐츠를 대대적으로 개인 사용자 중심으로 전환시킬 필요가 있었다. 아이러브스쿨만이 가진 동창에 대한 컨텐츠를 충분히 독창적으로 활용하였다면 현재의 싸이월드의 미니홈피와 같은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고 보여진다. 물론 아이러브스쿨도 뒤늦게나마 블로그를 도입하여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따라가기에 급급한 전략이어서 이미 타 업체에 시장을 선점 당해 버렸기에 그 의미는 그리 크지 않다.



그리고 그것이 아니라면 네티즌들이 프리첼이나 싸이월드의 커뮤니티와 미니홈피 등으로 이동할 수 없게끔 만드는 독창적인 리뉴얼이 반드시 필요했다.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사이트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하고 네티즌들의 새로운 관심을 끌 수 있는 동창 관련 컨텐츠에 집중하였다면 2000년만큼은 아닐지라도 동창 사이트로서의 확실한 명맥을 유지해 올 수 있었다고 판단된다. 만날 사람은 다 만났고, 찾고 싶은 사람을 찾고 나니 또 다른 욕구가 생겼는데 서비스가 그것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회사측 자체 결론 역시 이를 뒷받침 한다.



하지만 아이러브스쿨은 이미 확보한 거대한 고객수를 바탕으로 단기적인 수익사업에만 집착하는 등 일종의 따라하기 전략을 구사했으며, 결과적으로 사이트가 발전할 수 있는 큰 기회를 놓쳤던 것이다.



정체성을 잃은 사이트 운영


아이러브스쿨은 회원수가 증가율이 둔화되고 인기가 식어가자 초반의 동창 사이트라는 정체성을 유지하지 못한 채, 마구잡이식 컨텐츠를 개설하기에 이른다. 종합 포털 사이트로서의 전반적인 리뉴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정쩡하게 포털 사이트들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아이템을 뒤쫓아가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아이러브스쿨과 관련이 있을 법한 컨텐츠를 나름대로 내 놓았으나 그 역시 핵심적인 사이트의 정체성을 훼손시키는 결과만 가져왔다.




대표적으로 예로 임신/육아와 관련된 컨텐츠를 신설하고 심지어는 결혼 미팅 sector까지 추가했던 경우를 들 수 있다. 결과적으로 동창회 사이트인지, 종합 결혼/부인생활 정보 사이트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일관성 없는 컨텐츠의 다양화와 확장을 시도하면서 유저들에게 외면당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회원자녀를 위한 교육서비스 실패를 들 수 있다. 이는 아이러브스쿨의 회원들의 사이트에 대한 충성도가 그들의 자녀들에게 승계될 것이라는 안이한 판단에서 나온 것으로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 밖에 취업정보라던가, 대입상담, 게임과 운세 등 조금만 인기가 있는 컨텐츠다 싶으면 바로바로 뛰어들었지만 후발 주자로서 수익성을 얻은 것보다는 아이러브스쿨의 브랜드 정체성을 악화시켰고, 좋은 일을 한다는 취지로 추진한 ‘미아찾기 캠페인’ 등 공익사업 역시 회사가 지향하는 가치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단발적으로 추진한 전략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상의 모든 것들이 아이러브스쿨의 초창기 모습에서 훨씬 벗어나 있으며 동창 사이트도 아닌, 그렇다고 종합 포털 사이트도 아닌 어정쩡한 포지셔닝을 만드는 데 일조하였던 것이다.

by 100명 2005. 2. 22. 1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