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맛은 극장에 따라 다르다. 단순한 서비스 개선을 넘어 최적의 관람 환경을 만들기 위해 극장표준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연초부터 치열한 스크린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극장 문화를 주도해온 주요 멀티플렉스 체인들이 계속적인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CJ CGV, 메가박스, 롯데시네마 등은 물론이고 군소 체인과 지역 극장들도 이에 질세라 대응을 서두르고 있다. 내년 정도 강남역 상권에 위치한 주공공이 극장을 인수, 재개관할 예정인 CJ CGV는 이미 지난 달 17일 CGV 목포점을 개설한 데 이어 전남 순천, 경기도 안산 등 지방을 중심으로 계속 스크린을 늘릴 계획이다. 이로써 CGV는 올해 말까지 경쟁 체인들 중 최다인 250여 개 스크린을 갖추게 된다. 최근 국가고객만족지수(NCSI)에서 리츠칼튼호텔과 삼성서울병원, JW 메리어트호텔에 이어 4위를 차지한 메가박스도 지난 달 전주점과 울산점을 개관하며 본격적인 경쟁에 나섰다. 2007년까지 200여 개의 스크린을 갖추는 것이 목표다. 게다가 추억 속의 피카디리극장도 최근 8개관의 멀티플렉스로 문을 열었고, 단성사도 올 2월 7개관의 멀티플렉스로 태어나게 된다. 이처럼 국내 멀티플렉스 체인들의 무한 경쟁은 2005년 한 해 관객들에게 더 나은 관람 환경을 제공하는 동력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최적의 관람 시스템을 제공하기 위한 극장 표준화는 과연 어디쯤 와 있을까? 2005년의 극장 문화를 미리 가늠해 본다.
극장에도 KS 마크를?
결국 문제는 극장이다. 영화는 관람 행위의 편차에 따라 감동의 크기나 감상의 만족도가 다를 수 있는 예술이다. 앞사람의 머리 때문에 화면이 가려도, 2.35:1 비율의 영화를 좌우로 잘려져 감상해도 그것은 단 한 번의 ‘관람’으로 끝난다. 최근 멀티플렉스들의 서비스 경쟁으로 인해 이상과 같은 고질적으로 불합리한(?) 관람 문화는 많이 해소됐으나 해결해야 할 문제는 여전히 많다. 정부는 이런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영화 제작과 상영 시설에도 KS(한국산업규격) 마크를 부여하는 제도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산업자원부 산하 기술표준원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와 함께 지난 2003년 3월 영화 기술의 규격화 사업에 본격적으로 착수, 영화 제작 기술과 관련된 106개의 ISO(국제표준화기구) 규격 가운데 39개 항목에 대한 KS 규격을 발표했다. 여기엔 ‘맨 앞 열 관객의 눈 위치에서 스크린에 영사된 영상의 최상단까지의 각도가 35도 이내’ 등이 명시돼 있다. 이러한 규정들은 관객에게 보다 나은 품질의 영화 관람을 위해 극장이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권장 규격이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아직까지 극장 입구에서 KS 마크를 볼 수 없는 걸까? 기술에 관한 한 국제 표준이 있고 각 국가마다 자국의 산업 부분 특성에 따라 따로 국내 표준이 존재한다. 국제 표준이 ISO라면 국내 표준은 KS다.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극장 표준화 사업은 영화 제작 기기보다는 영사 시설의 표준화에 역점을 두고 있다. 아마도 전국 영화관이 KS 기준에 맞는 시설을 갖춘다면 모든 관객이 최적의 조건에서 영화를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 극장 환경이 천차만별이라 적합한 규격과 모델은 여전히 궁리 중이다. 더구나 그 표준은 완전 제정된다 해도 강제적인 의무 조항이 아니라 권장 사항이다. 영진위 영상기획팀 박창인 팀장은 “최근 극장 환경이 디지털적으로 바뀌다 보니까 표준을 정하는 데 있어 좀 더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 그래서 연구하고 적용해야 할 일거리가 더 많아지고 있다. 현재 기술표준원이 관장하고 있고 영진위와 함께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는데, 올해 어떤 사업을 해나갈 것인지 계속적인 협의 과정에 있다. 규칙을 정해서 그 규격에 맞으면 KS 마크를 붙이는 등 사업을 해나가다 보면 극장 측도 적극적으로 따라줄 것”이라고 말한다. 이미 여러 멀티플렉스 체인을 중심으로 극장 수준에 관한 일정 정도의 평준화와 표준화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극장들이 ‘좀 더 나은 제품’을 찾는 소비자의 심리를 외면할 수는 없을 거란 얘기다.
대한민국 레퍼런스 극장
극장 기술 표준화에 관해 공적인 움직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영화 관람에 있어 별다른 문제가 없다 할지라도 더 나은 서비스와 기술 수준을 위해 한층 더 까다로운 감식안을 발휘하는 관객 집단이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 내의 커뮤니티 ‘대한민국 레퍼런스 극장(http://cafe.naver.com/cinex.cafe)'은 '대한민국 극장에 대한 모든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 모인 곳이다. 국내 최고의 스크린 크기를 가리고 각 극장들의 상영 조건을 제공하는 전문적인 정보에서부터, 극장을 이용하며 보고 느낀 소감, 그리고 아깝게 사라진 레퍼런스 극장 ‘씨넥스’에 대한 추억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내 극장들을 그 너른 감시망에 두고 있다. 화제작의 개봉 시기가 되면 같은 영화라도 어떤 극장에서 최고의 상태로 관람할 수 있는지 유용한 정보들이 속속 올라온다. 이들은 영화관의 친절뿐만 아니라 영사와 음향 설비 수준까지 따져 묻는다. 특히 디지털 시네마나 스펙터클한 블록버스터 영화의 경우 ‘제대로 갖춘’ 극장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말 그대로 이들은 자체적으로 극장 표준화를 진행하고 있는 프런티어들이다.
관객들의 이러한 관심사를 살펴봐도, 앞서 말했듯 극장표준화에 대한 관심은 영사 기술에 모아진다. ‘제대로 된 넓은 화면에 쾅쾅거리는 사운드’야말로 관객들이 극장에서 원하는 모든 것에 가깝다. 현재 CGV는 자체적으로 ‘관리’ 쪽에 초점을 맞춰 영사 기사 연수 교육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메가박스와 프리머스시네마는 아직 그런 프로그램이 없지만, 한국영사예술인협회(www.cinedriver.or.kr)가 주도적으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진행하다가 내부 문제로 인해 잠정적으로 중단된 상태다. 메가박스 장영욱 영사실장은 “음향의 고저 조율, 화면 크기의 손실을 막는 방법 등 한국영사예술인협회가 영진위와 함께 극장 표준화에 적합한 영사 기사 연수 교육 프로그램을 재가동할 예정이다. 올해 4월까지는 꼭 다시 가동되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때쯤이면 향후 계획 등 모든 것이 판가름날 거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레퍼런스 극장’이라든지 ‘DVD 프라임’처럼 영화관의 품질을 향상시키고 조언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컸다. 그들의 정보와 지적이 실제로 극장 시설과 기술을 개선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고 말한다. 이렇듯 국내 극장들은 단순한 시설 개선을 넘어 ‘최적의 영화 관람’을 위한 본질적인 체질 개선에 직면해 있고, 여러 움직임 앞에 그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한글 자막과 통합 전산망, 그 이후
극장 표준화와 관련해 여전히 진행 중인 두 가지 사안이 있다. 바로 한글 자막 의무화 규정과 통합 전산망 문제다. 지난해 9월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고흥길 위원이 청각 장애인을 위해 외화뿐 아니라 일부 한국영화에도 한글 자막 처리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영화진흥법 개정안’을 마련해 정기 국회에 제출했다. 이 개정안은 일정 비율의 한국영화에 대해 한글 자막 처리를 의무화하고, 소요 경비는 영화진흥금고에서 지원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의원 입법으로 발의된 이 법안은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서 여전히 계류 중인 상태다. 현재 외국영화와 달리 한국영화에는 한글 자막이 표기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35만여 명에 달하는 청각 장애인들은 한국영화 관람을 전혀 못하고 있는 실정이나 다름없다. 김철환 한국농아인협회 기획팀장은 “한국영화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지만 청각 장애인들의 한국영화 관람은 여전히 불가능하다. 한국영화의 비디오 시청도 마찬가지”라며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은 상황을 우려한다. 하지만 ‘청각 장애인의 한국영화 관람’이라는 대원칙을 만족시키기 위한 길은 멀고도 험하다. 영진위 김혜준 사무국장에 따르면 “그 원칙 자체는 모두가 긍정적으로 동의하지만 비용 문제와 더불어 제작사와 극장과 영진위 사이의 협의가 쉽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2004년 1월 1일 시작된 영화관 입장권 통합 전산망 사업은 지난해 한 해 의미 있는 성공을 거뒀다. 이는 전국영화관의 입장권 발권 정보를 온라인 실시간으로 집계 및 처리하는 시스템으로, 투명하고 정확한 한국 영화 산업의 통계 자료를 확보하고 한국영화 시장의 유통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진행되고 있는 사업이다. 올해 1월 현재 전국 1,251 스크린 중에서 841개 스크린이 전산망에 연동 신청을 해 지난해 12월 7일 50%를 돌파한 후 1월 현재 68% 정도의 가입률을 보이고 있다. 영진위는 올 연말쯤이면 완전한 가동과 집계가 가능하지 않을까 내다보고 있다. 이미 지난해 6월 서울시극장협회와 영진위가 주간 단위 전송 방식에 대해 총체적으로 합의한 이후, 주간 단위 전송 방식에 대한 세부 사항 조율까지 완료한 상태다. 통합 전산망 홈페이지(www.kobis.or.kr)에서는 실시간 박스오피스와 더불어 지역별 흥행, 통합 전산망 가입률 등이 제공된다.
이렇듯 극장 표준화 작업과 더불어 한국영화 자막 도입과 통합 전산망 사업의 성과는 올해 우리가 지켜보아야 할 중요한 과제들이다. 2005년 한 해는 여러 제반 조건들의 안정화와 더불어 보다 더 ‘관객 지향적’인 극장 문화가 자리 잡을 중요한 해다.
사진 김선태 기자
윈-윈 환경을 만든다 김혜준 영화진흥위원회 사무국장
극장 표준화 규격의 강제력은 없다. 어떻게 진행할 수 있을까?
ISO든 KS든 상영 표준, 녹음 표준 등 여러 가지 인증을 해주는 거다. 녹음 표준의 경우 빠른 시일 안에 정착될 가능성이 있지만 상영관 표준은 차원이 좀 다르다. ‘개선’이라는 측면에서 동의한다 하더라도 극장주나 영사 기사 입장에서는 감시당하는 기분이 들 테니까. 하지만 상영 환경을 최적화하고 관객들에게 최고의 스크리닝과 서비스를 제공해준다는 측면에서 굳이 마다할 이유도 없다. 순차적으로 공론화하고 이해를 유도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결국 그 일에도 영진위 등의 기관뿐 아니라 공동으로 참여할 사람이 필요하다. 가령 촬영감독이 자신이 찍은 영화가 영화관에서 제대로 상영되고 있나, 자신의 의도대로 최적의 상태로 재현되고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제작진 모두 애써서 만든 영화의 퀄리티가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서 위원회는 표준화 작업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면서 현장 사람들과의 협의 시스템 역시 중요하게 보고 있다.
극장 표준화의 관건은 무엇인가?
ISO나 KS나 같은 맥락이라 보면 된다. 두 단계가 있다고 본다. 궁극적으로 기준에 맞는지 인증해 주면 되는 건데, 공적 기관에서의 인증 작업과 더불어 DTS나 THX 시스템처럼 해당 업체가 현장에 가서 최적화 됐나 보고 인증해 주는 등 일종의 ‘매체’ 역할도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 것들이 부분적으로 동시에 진행될 필요가 있다. 분야의 전문가들과 매체의 노력 등 나름대로 여론을 형성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관철이 될 것이다. 그래서 기술 전문가나 언론이 협력해서 일종의 등급을 매기고 인증해 주는 그런 작업이 이루어지면 사업에 탄력이 붙지 않을까 한다.
입장권 통합 전산망 사업은 만족스러운 수준인가?
이미 서울은 가입 영화관이 80%를 훨씬 넘겼고 대체로 정상화됐다고 보여진다. ‘50% 돌파’라는 보도가 나간 뒤로 그 가입 속도가 지난해 말에 굉장히 좋았다. 가입 영화관에 대한 지원책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노력을 하는데도 뚜렷하게 성사되고 있는 건 없다. 통합 전산망 자체가 인센티브가 없더라도, 영화관으로서는 불편한 일이 아니라 그냥 공개 여부니까 일단 그런 개념으로 봤으면 좋겠다. 부가세 감면 등의 문제는 세금과 관련된 문제라 결정이 쉽지 않다.
한국영화 한글 자막 의무화 규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애초에 한나라당 고흥길 의원이 발의한 법안 자체가 ‘모든 영화관, 모든 스크린에 의무화하겠다’는 얘기였다. 그런데 모든 제도라는 것이 필요 이상으로 넘치면 안 된다. 시쳇말로 ‘오버’를 하면 안 된다. 애초의 원칙과 정신에는 동의하지만 모든 극장이 그렇게 자막 상영을 해야 한다는 건 지나친 요구였다. 장애인 인구가 전국적으로 얼마나 분포하는지 살피고, 그 비율보다는 조금 더 높게 한글 자막을 단 영화를 상영할 수 있게 지정하면 되지 않겠나 하는 게 위원회의 입장이다. 일종의 보조금을 주는 방식으로 의무화하고, 자막을 넣는 제작사에 대해서는 적어도 몇 벌의 프린트는 영화사 부담으로 가지 않게 공적 지원이 돼야 한다. 지금 그런 식으로 조정하는 걸 생각하고 있다. 장애인의 권리라는 측면에서 그건 법 이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모든 스크린, 모든 영화, 모든 프린트 벌수에 넣는 게 아니라면 영화사와 위원회의 노력, 극장의 동의에 의해 자체적으로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올해 적극적으로 추진해볼 만한 일이다.
멀티플렉스들의 경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영화계의 극장 환경을 둘러싼 과포화 논쟁이 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건 결국 극장의 수익성 문제인데 스스로 조절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다른 데서 왈가왈부할 건 아닌 것 같다. 그게 아마 올해 큰 이슈가 될 텐데 메이저 체인들은 각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부율 조정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할 것이다. 어쨌거나 필요한 문제 제기라고 보고 조정 의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CGV나 메가박스처럼 다양한 수익 발생 모델을 갖고 있는 쪽은 일시적인 충격이라도 적을 텐데, 영화관만 운영하는 쪽은 채산성 문제 때문에 당장의 어려遲?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한국영화가 잘돼서 점유율을 지금처럼 일정하게 유지하는 상태에서는 서로 윈-윈하는 쪽으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 본다.
올해 중요한 사업 계획이 있다면 뭔가?
디지털 시네마를 축으로 하는 사업 혹은 방송과 영화의 기술 융합을 활용한 다양성 증진 방안, 제작 편수 확대 방안, 구체적으로는 방송 영화 제작 지원 사업을 어떻게 안착시킬 것인가, 하는 게 위원회의 고민이다. 지난해에는 5편을 지원했는데 올해는 최소한 10편 이상 지원하겠다는 목표가 있다. KBS와 함께 하게 될 텐데 MBC와 SBS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서 지원한 성과가 올해에 나와서, 적어도 20~30편의 최소한 HD급의 영화가 나와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저예산 영화 지원책이 굉장히 중요한 정책 방향이 될 거다. 다양성 문제를 해결하는 측면에서 효과적인 비주류 영화 마케팅 지원에 대한 고민으로 아트플러스 네트워크를 확충하는 방법, 시장에 맞게 혹은 시장에서 틈새를 만들어가면서 비주류 마케팅을 해나가는 방법 등도 중요한 고민이다. 또 하나는 거시적인 측면에서 아시아 지역에서의 한국의 역할론을 적극적으로 사업에 반영할 생각이다.
사진 서지형 기자
주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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