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닷컴ㅣ김지혜기자]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했다. 하지만 대한민국 가요계에 살고 있는 '모방'이라는 어머니는 결코 '창조'를 낳지 못하고 있다. 무한한 복제를 통해 '아류'만 생산할 뿐이다. 요즘 가요계에 불고 있는 다수의 표절논란이 그 예다.
대한민국 가요계는 한마디로 '표절 해저드'다. 표절에 관한 한 도덕적 해이, 즉 모럴 해저드에 가까운 수준이다. 최근 앨범을 출시한 대표적인 섹시가수, 이효리와 서인영만 봐도 그렇다. 창작에 대한 '고민'의 흔적보다 모방에 대한 '고집'의 흔적이 눈에 띈다.
음원 뿐 아니라 뮤직비디오, 앨범재킷, 무대의상, 무대세트, 스타일 등 가수활동 전반에 걸친 표절시비를 분석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가요계 주장과 '지나친 자기 합리화로 얼렁뚱땅 넘어가려 한다'는 평론가들의 지적도 함께 다뤘다.
◆ "귀 익은 음원인데…"
올 상반기 가요 트렌드를 주도했던 히트곡들은 약속이나 한듯 표절 의혹에 휩싸였다. 심각한 것은 원곡으로 제기된 음악들이 미국과 유럽 등 팝시장 등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메가톤급 히트곡이라는 것.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다'는 비판이 대두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선 원더걸스의 '소 핫(so hot)'은 유리스믹스의 '스위트 드림스(sweet dreams)'를, 쥬얼리의 '모두다 쉿'은 오프스프링의 '오리지날 프랭크스터(original prankster)'와 비슷하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태양의 '기도'는 투피스톨즈의 '쉬 갓 잇(she got it)'을, 에픽하이 '원' 은 카마야 페인터스의 '엔드리스 웨이브(endless wave)'를, SG워너비 '라라라'는 로드 스튜워드의 '세일링(sailing)'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낳았다.
게다가 최근 새 앨범을 낸 이효리의 경우 3집 앨범 수록곡 13곡 중 4곡이나 표절시비로 얼룩진 상태다. '레슨(lesson)'은 다프트펑크의 '테크노로직'을, '이발소 집 딸'은 아샨티의 '드림스(dreams)'를, '천하무적' 브리트니 스피어스 '오오 베이비(oh oh baby)를 닮았다는 것. 실제로 전주와 후렴구를 비교한 영상들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가수 측 답변은 언제나 한결같다. 창작과정에서 우연히 코드나 멜로디가 일치했다는 것. 물론 표절에 대한 법적기준이 모호해 스스로 인정하기 전까지 표절이라 단정지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 일부 팬은 "새로운 것을 추구했다 해놓고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전주나 후렴부분을 교묘히 바꾼 게 많다. 속았다는 느낌 뿐이다"고 비난했다.
◆ "눈 익은 재킷인데…"
끊이지 않는 표절시비는 '음원' 부분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앨범 재킷과 화보, 뮤직 비디오 등 앨범 구성의 부수적인 요소에서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문제다. 청각적 모방 뿐 아니라 시각적 카피까지 서스럼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 일부에서 말하는 스타일 표절이 단적인 예다.
우선 이효리는 노래만큼 잦은 스타일 표절로 여러차례 구설수에 올랐다. 1집 앨범의 재킷은 아무로 나미에 스타일, 2집 앨범은 브리트니 스피어스 스타일을 따라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 가수 보아가 지난해 발매한 싱글 앨범 재킷 역시 케이트 모스가 모델로 나섰던 유명 패션지 '보그'의 커버를 베꼈다는 의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뮤직비디오 역시 표절 논란이 끊이지 않는 분야다. 특정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는 팝가수의 뮤비를 보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똑같은 장면을 삽입해 표절 의혹을 가열시켰다. 이효리의 '유고걸(U-go-girl)'은 크리스티나 아길레나의 '캔디맨(candyman)'을 태양의 '기도'는 오마리온의 '아이스박스(ICE BOX)'를 베꼈다는 의혹을 받았다.
가요계 관계자는 "앨범 재킷이나 뮤비의 경우 컨셉을 제시하고 나머지는 감독에게 대체로 맡긴다. 때문에 세트나 이미지 등 특정 장면이 똑같은 것에 대해서는 우리로서도 할말이 없다. 일일이 이 장면이 표절이 저 장면이 도용인지를 미리 판단하기도 어렵다"고 변명했다.
◆ "본 듯한 무대인데…"
2007년 마지막 날. MBC-TV '가요대제전' 오프닝 무대가 표절논란에 빠졌다. '무한도전' 6명의 멤버가 밀림 속 아기로 등장해 사자의 추격을 피해 도망다니다 어른으로 변해 공연장 안으로 뛰어드는 모습이 일본그룹 '스마프'(SMAP)의 2006년 콘서트 도입부와 비슷하다는 지적이었다. 실제로 두 무대를 비교해보면 아이를 쫓는 주체가 공룡과 사자라는 차이점 밖에 없다.
올해 초 포문을 연 무대표절 시비는 끊이지 않고 반복되고 있다. 최근에는 서인영이 그 바통을 이어 받았다. 지난 24일 '엠!카운트다운'을 통해 가진 컴백무대가 일본가수 아무로 나미에의 뮤직비디오 '뉴룩'(new look)과 거의 흡사하다는 것. 무대 세트부터 의상, 소품은 물론 백댄서와의 퍼포먼스까지 우연의 일치라 보기엔 너무도 똑같았다.
게다가 서인영은 26일 MBC-TV '쇼! 음악중심'에서도 무의식적으로 무대 베끼기(?)에 나섰다. 미국 음악채널 'MTV'에서 그웬 스테파니가 선보인 무대를 그대로 재연한 것. 서인영 측은 무대 표절논란과 관련해 "방송사와 상의한 결과다. 서인영의 신상녀 이미지와 아무로 나미에의 쇼핑뮤비가 맞아 떨어진다 생각해 재연했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방송 전문가들은 습관적인 모방이라고 비난한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제대로 된 무대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 특히 컴백무대라면 더더욱 신경써야 한다"면서 "그러나 가수나 방송사 모두 바쁘다는 핑계로 쉽게 가려는 경향이 있다. 유명 가수의 무대를 도용하는 사례 역시 창조에 대한 노력보다 모방에 대한 안일함이 부른 결과다"고 꾸짖었다.
◆ "가요, 문화가 아닌 상품으로 전락"
표절. 가요계 발전을 위한 성장통일까. 대다수 가요 전문가들은 "그건 아니다"고 고개를 흔든다. 가요계 자체가 상품화됐기 때문이라는 분석. 한 가요계 관계자는 "요즘 가요를 음악적으로 접근하는 가수는 없다. 안팔려서다. 가요 역시 한 나라의 문화임에도 불구 모두가 상품으로 접근하다 보니 노래가 이벤트화되고 있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표절이 난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표절에 관한 관련법이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보니 외국곡에 대한 도용이 무한대로 이뤄지고 있다. 국내 관련법은 원작자의 이의제기가 선행되야 처벌이 가능한 신고제. 오직 창작자의 양심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표절을 부채질하고 있다.
음악 평론가 임진모씨는 "오랜 불황으로 인해 쉽고 단순한 것, 즉 감각적인 것만 추구하는 형태로 음악시장이 변질됐다"며 "이로 인해 창작자들은 창의적인 멜로디보다는 좋은 걸 차용하고 베끼는 방향으로 나야간 것 같다"고 표절 원인을 분석했다.
결국 표절을 근절할 수 있는 대책은 창작자의 '양심'과 대중의 '관심'이다. 눈앞의 이득을 위해 쉬운 길만 쫓다보면 '약'은 곧 '독'이 될 것. 임진모씨는 "대중의 기호를 충족시키는데 급급해 창작인지 표절인지도 불분명한 노래를 만들 것이 아니라 보다 새롭고 창의적인 것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가요계가 근본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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