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코퍼레이션의 루퍼트 머독 회장은 월스트리트 저널의 모회사 다우존스를 인수하는 거래에서 소유주 밴크로프트 가문과 잠정 합의했다. 머독이 권위지 월스트리트 저널을 인수하는 문제는 그동안 미국 언론계에서 많은 논란을 빚어 왔다. | | | | ▲ 루퍼트 머독 | | | 머독이 그동안 언론계에서 보여준 행태로 볼 때 월스트리트 저널은 황색 저널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던 반면, 타블로이드 같은 대중지는 재미를 위주로 하지만 머독이 인수하는 권위지는 그동안 진지한 편집 태도를 보였다는 점에서 그 같은 우려가 기우라는 주장도 있었다. 미국 유력 주간지 타임(Time)의 에릭 풀리(Eric Pooley) 기자가 머독을 독점 인터뷰해 타임 2007년 6월 28일자에 게재했다. WSJ 인수의 긴박한 순간 “50억 달러를 받아가면서 경영권은 계속 자기들이 갖겠다고?” 머독은 전화기에 대고 말하고 있었다. “그것도 재정적으로 위기인 기업을 말이야. 경영권을 계속 갖겠다면 회사를 팔 수가 없는 것이다. 말이 안 된다. 미안하다.” 6월 22일 금요일 오후 5시가 조금 못된 시각, 자산 가치 680억 달러의 세계 세 번째 미디어 그룹이면서 1인 지배하의 흔치 않은 공룡기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은 맨해튼 한가운데에 위치한 본부 사무실 8층 책상 앞에서 10년 동안 간직해 온 꿈을 이루게 해줄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이 사무실에는 머독 이외에 벽에 설치된 6개의 평판 모니터가 소리를 죽인 채 11개의 채널에 맞춰져 있다. 5개의 모니터는 분할 화면으로 10개의 방송을 보여주고, 머독이 사랑하는 폭스 뉴스(Fox News)는 전용으로 1개의 모니터를 사용했다. 그러나 머독은 모니터를 쳐다보는 적이 없었다. 그는 전화기 저 편에 있는 투자증권업자에게 부드럽게, 하지만 연속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머독이 상의와 넥타이를 벗으면서 갈색으로 염색된 가는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논란이 많았던 다우존스와 그 핵심인 월스트리트 저널을 인수하기 위한 50억 달러의 거래가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머독은 포커 게임을 하고 있었다. 거래를 계속 진행시키던지, 아니면 자신은 빠지겠다고 위협을 해야 했는데, 머독은 진심이었다. | | | | ▲ 루퍼트 머독이 운영하는 미디어 기업 뉴스코퍼레이션 (News Corporation) | | | 두 달 전인 3월 29일, 뉴스코퍼레이션에서 가진 비밀 조찬에서 머독은 주당 60달러에 다우존스를 인수하겠다는 제안을 이 회사 CEO 리처드 자니노에게 했는데, 이 가격은 당시 다우존스의 시장거래가가 주당 36달러임을 감안하면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나 다우존스를 100년 이상 경영해 온 밴크로프트 가문은 황색 언론인 머독의 타블로이드 스타일에 진저리를 치고, 월스트리트 저널의 독립성을 유린한다는 이유로 처음에는 제안을 거절했다. 밴크로프트 가문은 월스트리트 저널의 편집국을 머독으로부터 분리하는 방안에 대해 2주 동안 논쟁을 벌였다. 그리고 인터뷰가 이루어지고 있는 지금보다 몇 시간 전에 자니노는 머독에게 전화를 걸어 밴크로프트 가문의 제안이 최종 작성에 들어갔다고 알렸고, 머독은 기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았다. 머독은 밴크로프트 가문의 제안을 증오했다. 자신이 인수한 후에도 밴크로프트 가문은 월스트리트 저널에 대한 지배권을 전보다 더 강화한다는 것이 제안의 내용이었다. 머독은 팔소매를 걷어 올린 후 전화기에 대고 이야기했다. 거래의 주요 당사자들에게 자신의 기분을 알려 거래를 취소하겠다는 압력을 넣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면 다우존스의 주가는 다시 곤두박질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50억 달러의 힘 “데이브, 50억 달러를 그냥 버릴 수는 없네”라고 머독은 뉴스코퍼레이션의 재무담당 최고책임자(CFO) 데이브 드보(Dave DeVoe)에게 말했다. 그는 제안 철회 여부를 3명의 자문위원과 상담했다. 그룹의 대표법률고문 론 제이콥스(Lon Jacobs), 사무실에 함께 있던 법인담당 대표 개리 긴스버그(Gary Ginsberg), 그리고 뉴스코퍼레이션의 유럽위성TV 대표이며 상속자인 제임스 머독(James Murdoch)으로 스페인의 발렌시아(Valencia) 근처 요트에서 통화를 하고 있었다. 머독은 밴크로프트 가문을 위협해서 현실적인 제안으로 돌아가던가, 아니면 거래를 끝내더라도 자신이 직접 끝내기를 원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협상을 끌고 가면 밴크로프트 가문은 제안을 거절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거절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 전화벨이 다시 울렸고 자니노가 받았다. “자니노, 제안을 읽어 봤는데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네.” 머독은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대충 설명했다. “그래. 이 제안을 거절하네.” 나중에 밝혀졌지만 머독은 자신의 제안을 철회할 필요가 없었다. 철회하겠다는 위협만으로 밴크로프트 가문의 양보를 받아내기에 충분했다. 며칠 후 머독과 다우존스 이사회는 독립편집감시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밴크로프트 가문을 위한 지분도 충분히 인정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순간에서도 거래는 물거품이 될 수 있었고, 특히 이 거래는 휘발성이 강했다. 그러나 1주당 여러 개의 의결권을 가진 슈퍼보팅 클래스(Class)B 주식으로 다우존스의 경영권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밴크로프트 가문이라도, 이제는 더 이상 소중한 신문과 회사를 파는 거래에서 물러나는 것이 어렵게 됐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100종 이상을 거느린 ‘신문왕’ 거래가 기대대로 진행된다면 호주 애들레이드(Adelaide)에서 1953년 신문 한 종으로 출발한 궁극적 문외한이며, 잉크 묻은 침입자인 머독은 미디어 제국에 자본주의의 일간지를 하나 추가하게 된다. 머독의 제국은 폭스 무비 스튜디오와 TV 네트워크, 유럽과 아시아의 위성TV, 100종 이상의 신문, 인기가 치솟는 사교 네트워크인 마이스페이스(MySpace)를 포함해 급성장하는 인터넷 사업부 등을 거느리고 있다. 2년 전 머독의 주요 라이벌인 바이아컴(Viacom)의 섬너 레드스톤(Sumner Redstone)은 마이스페이스를 사들일 생각을 했으나 뉴스코퍼레이션이 달려들어 감히 생각하지 못했고, 뉴스코퍼레이션은 레드스톤보다 3,000만 달러나 더 지불한 5억 8,000만 달러로 이를 채갔다. 이 사이트는 회원이 2,000만 명에서 2억 명으로 늘었고, 구글(Google)이 광고권을 확보하기 위해 9억 달러를 지불하자 갑자기 머독의 인수 비용이 헐값으로 여겨졌다. 머독은 인터넷 몽상가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불리기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그는 “그러나 사실은 민첩했고 운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머독은 미디어 시장에서 아마도 가장 재능 있는 기회주의자로서 큰 재산을 모았다. 다우존스를 인수하고, 마이스페이스를 야후에 넘기고, 폴란드에 TV 방송국을 개설하는 등 각종 기업 거래를 찾아다니며 킁킁거리는 그의 코 때문에 그는 진정한 미디어의 황제는 결코 될 수가 없을 것이다. 머독 일가가 의결권을 갖고 있는 뉴스코퍼레이션의 주식 비중이 31%에서 지난해에는 18%나 급상승했다. 머독의 주식은 90억 달러 상당이다. 무엇보다 의문이 간다. 지칠 줄 모르는 70대 노인은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경제 정보를 팔 수 있는 황금의 기회를 다 놓치고 이제 허약해진 다우존스 같은 미디어를 인수해서 어디에 쓰려는 것인가? 몇몇은 다우존스가 재정적으로는 어렵지만 회원전용 웹사이트를 성공시킨 우수하고 세계적인 인쇄 매체라는 점을 강조한다. 머독은 곧 개국하는 폭스 비즈니스 채널(Fox Business Channel)을 운영하고, 유럽의 24시간 채널인 스카이 뉴스(Sky News)를 강화하며, 여전히 불안정한 일련의 온라인 금융 서비스를 자극하기 위한 엔진으로 다우존스를 생각하는 것이다. “판을 크게 짜야 한다”고 머독은 말한다. “경제 뉴스와 정보를 인쇄 매체뿐만 아니라 케이블TV에도 팔고, 온라인에서도 팔 것이다.” 경제적 조건으로 보면 다우존스의 거래는 단순하다. 머독이 지불하는 50억 달러는 다우존스가 지난 해 253억 달러의 매출에 23억 달러의 순이익을 냈고 빚이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방 회수 가능하다.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단순하지만 나머지 모든 부분은 복잡한 거래다. “다우존스의 주당 가격은 60달러에 업계의 ‘비방’을 더한 값”이라고 머독은 말한다. 고급지를 대중지로 머독은 1976년 가족 소유로 망해가는 자유주의 신문인 뉴욕 포스트(New York Post)를 인수하면서 “현재의 정책과 전통을 유지할 것”이라고 맹세했다. 그러나 곧 우파로 급선회해 고급지보다는 대중지를 표방했다. 이때 당한 타블로이드의 테러 때문에 오늘날 미국 언론계의 많은 단체들이 머독의 월스트리트 저널 인수를 맹렬히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반대 가운데는 원칙이 있는 반대도 있지만 진지한 체 하거나 이념적, 상업적 동기로 얽힌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머독은 자신의 매체를 동원, 연일 자신을 위한 탐사보도 기사를 쏟아내고 있으며 친구에게는 상을 주고 적에게는 벌을 내린다. 이 모든 기사가 암시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월스트리트 저널 뉴스면을 자신의 것으로 이용해 월스트리트 저널의 명성을 파괴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사설은 머독보다 더 보수적으로 변했다. 그러한 징후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다. 1984년 워너 커뮤니케이션스(Warner Communications)를 인수할 당시 머독은 3명의 뉴욕 포스트 기자에게 워너 사장인 스티브 로스(Steve Ross)를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그것은 신문 기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로스를 물러나게 하려는 머독의 변호사의 의도였다. 이에 대해 머독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면 우리가 잘못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1998년 자신의 출판사인 하퍼콜린스에 홍콩의 마지막 영국 총독인 크리스 패튼(Chris Patten)의 회고록 출간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패튼이 중국 정부와 불편한 관계에 있었던 것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 점에 대해서도 내가 틀렸을 것”이라고 머독은 말한다. “오랜 경험을 쌓으면서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실수를 했다.” 머독을 잘 아는 사람들은 주요 언론이 그를 희화화했다고 얘기한다. “머독은 너무 악마로 그려졌는데, 그것은 마치 그의 신문이 객관성이 없다고 비난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객관성이 없는 것”이라고 영국의 미디어 비평가 로이 그린슬레이드(Roy Greenslade)는 말한다. 그는 영국의 좌파 신문인 가디언(Guardian)에 글을 쓰면서 런던의 시티 유니버시티(City University)에서 언론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종말을 말하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은 머독이 선정적인 타블로이드와 진지한 신문을 구별할 줄 안다는 사실”이라고 그린슬레이드는 말한다. 그는 머독 소유의 선정적인 타블로이드 선(Sun)과 진지한 신문인 대판형의 선데이 타임스(Sunday Times) 모두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타블로이드에서 머독의 말은 신의 말이다. 하지만 진지한 신문에서는 많은 토론의 여지가 주어진다.” “나의 양면을 이해해 달라” 우리는 6월 어느 날 오후 맨해튼의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이런 저런 실수를 한다. 그러나 뉴욕 포스트가 잘못하는 것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뉴욕 타임스에 앞서 뉴욕 포스트를 읽기 원한다. 대중지와 고급 엘리트 신문 사이에는 그런 관계가 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 우리는 두 가지 모두 가지고 있다. 폭스의 ‘아메리칸 아이돌(American Idol)’과 ‘24’도 있지만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National Geographic Channel)’도 가지고 있다. 외부 사람이 그러한 것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머독은 화려하지 않고 실용적이다. 그는 강한 정치인을 좋아한다. 최근에는 토니 블레어와 힐러리 클린턴 같은 중도 노선을 지지한다. 하지만 머독은 고집스런 대중주의자이고, 그러한 출구를 폭스 뉴스에서 찾았다. 폭스 뉴스는 불만에 찬 백인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채널이다. “CNN은 매우 오랫동안 왼쪽으로 기울었다. 기사를 선택하는 것을 보면 객관적이 아니라 심하게 강조한다. 그리고 우리 뉴스를 보면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기울었다는 생각이 드는가? 나도 모르겠다.” 머독이 그렇게 얘기할 줄 알았다. 월스트리트 저널을 인수한다면 편집을 바꿀 계획이 전혀 없다고 머독은 맹세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의 경제기사 취재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하지만 취재 대상은 넓힐 것임을 암시한다. 머독은 국가의 의제 설정에 있어서 뉴욕 타임스와 경쟁하고 싶어 한다. “뉴욕 타임스에 대한 나의 우려는 전국종합 엘리트 신문이라는 자세를 일관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TV 방송국들도 뉴욕 타임스에서 뉴스의 방향을 잡고, 지역 신문들도 그렇게 한다. 막대한 영향력이다. 우리는 그것에 도전해 보고 싶다.” 머독의 인수 여부를 떠나 월스트리트 저널에는 변화의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른 신문과 마찬가지로 변화하고 적응해야 한다. 그동안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던 점은 머독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 지난 3년 동안 월스트리트 저널은 몸집을 줄여 원가를 절감하고 더 많은 광고주를 유치하기 위해 토요판을 신설했다. 15년 동안 월스트리트 저널의 특파원을 지낸 새로운 편집국장 마커스 브로클리(Marcus Brauchli)는 자신이 조직한 편집 에디터들을 임명했다. 머독은 브로클리를 ‘변화의 기수’라 부르며 유임을 약속했다. 머독은 사용자로서 뿐만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을 경험한 기업인으로서도 인터넷의 파워를 실감했다. 2004년 말 그는 “인쇄 매체의 광고가 잠식당하고 있으며 심지어 TV로 빠져 나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 점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머독은 로스앤젤레스에 폭스 인터랙티브 미디어(Fox Interactive Media)를 설립하고 인수할 기업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게임 회사인 IGN, 스포츠 사이트인 스카우트(Scout), 마이스페이스 등을 사들였다. 마이스페이스는 주요 라이벌인 레드스톤으로부터 뺏다시피 한 것이었는데 그 결과는 정말 달콤했다. 다음에 일어난 일들은 머독을 놀라게 했다. “그것은 나에게 교육이었고, 인터넷 항해를 위한 첫 출발이었다. 과거에는 진지한 젊은 사이트였지만 지금은 평균 연령이 올라가고 있다.” 누가 뭐래도 나는 ‘황제’ 마이스페이스보다 훨씬 규모가 작지만 주요 라이벌인 페이스북(Facebook)이 뜨고 있다. 대학 사이트로 시작해 규모를 넓히고 모든 사람에게 개방하면서 사람들이 소규모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까지 제공했다. 그러나 마이스페이스가 붐비려는 조짐이 보이자 머독은 야후의 주식 25% 이상을 받고 마이스페이스를 야후에 파는 협상을 시작했다. 그러나 현재 야후의 대표가 바뀌어 공동창업자인 제리 양(Jerry Yang)이 대표직을 맡으면서 협상은 중단된 채 관망하고 있는 상태다. 머독은 모든 미디어 전선에서 싸우고 있다. “미디어 회사는 기본적으로 뉴스, 아이디어, 엔터테인먼트, 광고 등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도 소통하게 하는 매개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나 인터넷은 매일매일 공짜로 모든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이다. 따라서 인터넷은 광고가 지원돼야 한다.” 머독은 언론을 사랑했으며 언론을 이용해 돈을 벌고, 정치와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한 헨리 루스(Henry Luce),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 윌리엄 팰리(William Paley) 등과 같이 최근에 성공한 마지막 미디어 황제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항상 곁눈질을 할 수 있었다. 그를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머독은 새로운 미디어 황제로 21세기를 맞았다. 그가 월스트리트 저널을 좋아하는 만큼, 그는 현재의 복잡한 미디어 환경에서 그가 처한 모든 상황을 걱정하는 것이 그의 비즈니스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밴크로프트 가문은 월스트리트 저널 독립의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기꺼이 해냈다. 그러나 당면한 비즈니스에 대해 많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머독이 돈을 생각하기에는 너무 부자이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녹슬게 하기에는 너무 언론에 깊게 개입해 있다. 그러나 머독은 머독이다. 머독은 잉크를 배럴로 사서 신문을 찍어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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