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PMP 등 휴대용 전자기기의 배터리 발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그런데도 업체들은 무책임한 반응으로 일관해 소비자를 두번 울리고 있다.
서울 봉천동에 사는 홍모(40·회사원)씨는 얼마전 당한 사고 때문에 밤마다 악몽에 시달린다. 홍씨는 지난 2월 퇴근길 지하철에서 ㈜퓨전소프트의 오드아이 PMP(휴대형 멀티미디어 플레이어)를 사용하다 배터리에 불이나 손에 전치 2주의 화상을 입었다. 그날 지하철 승객들이 대피하는 큰 소동이 빚어졌고 지하철 운행이 20분간 지연됐다.
그런가하면 윤정수(30·회사원)씨는 지난 1월 도시바 노트북을 사용하다 배터리가 갑자기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는 무서운 경험을 했다. 하지만 서비스센터는 무상수리기간이 지나 책임이 없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게다가 센터측은 문제의 배터리를 회수해 증거인멸 의혹까지 일고 있다.
화상 등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배터리 발화사고. 그 자세한 사연과 안이하기만 한 업체측 대응을 짚어봤다.
◇오드아이 PMP 배터리 발화로 운행중이던 지하철까지 멈춰
지난 2월 29일 오후 9시께 인천 직장에서 퇴근해 2호선 지하철을 타고 서울 봉천동 집으로 향하던 홍씨는 어학공부를 위해 ㈜퓨전소프트의 ‘오드아이 P480 NAVI’모델의 PMP를 시청하고 있었다. 그런데 홍씨가 PMP를 시청한지 30여분쯤 됐을때 갑자기 전원이 꺼졌고 타는듯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불안해진 홍씨가 배터리 부분을 확인하려던 순간 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배터리가 녹아내렸다. 뒤이어 유독성의 연기가 객차안을 뒤덮자 놀란 승객들은 “지하철에 화재가 발생했다”고 소리를 지르며 우왕좌왕했다. 마침 지하철은 신대방역에 도착했고 승객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면서 일대가 혼란에 휩싸였다.
다행히 홍씨가 곧바로 배터리를 역 바깥으로 옮겨 화재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자칫 지하철 화재의 악몽이 재현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당시 이 사고로 인해 지하철이 20여분간 지연돼 퇴근길 많은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사고가 발생한 PMP는 홍씨가 지난 1월 14일 인터넷 쇼핑몰에서 55만8000원에 구입한 제품으로 리튬폴리머배터리를 사용하고 있었다.
홍씨는 이번 사고로 손에 전치 2주의 화상을 입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전자제품들이 폭발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는 등 정신적으로도 큰 충격을 받았다. 홍씨는 “배터리 관련 사고에 대해 많이 들었지만 막상 당하고 보니 너무나 무서웠다”고 말했다.
◇업체측 배터리 불량 사실 알고도 쉬쉬
홍씨가 사고 직후 퓨전소프트에 항의하자 업체측은 “발화 원인에 대해 확인하겠다”며 배터리를 수거해갔다. 3월14일 이 업체는 홈페이지를 통해 “2주후 까지 배터리 발화사고에 대해 원인파악을 하고 사태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이어 3월21일 홍씨는 업체로부터 “배터리 불량이 원인”이라는 짤막한 설명만 전해들었다. 그뒤 한달이 넘은 현재까지도 “2주후 원인을 발표하겠다”는 업체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홍씨의 배터리 발화사건에 대해 업체측에 확인하자 “이미 배터리 불량임이 밝혀졌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홍보실 관계자는 “배터리 케이스의 불량으로 내부 부품을 압박하면서 고온을 발생시켜 사고가 일어나게 됐다”고 말했다. 원인이 밝혀졌는데 왜 후속 조치가 없었느냐고 묻자 “배터리 불량 제품에 대해 전량 리콜할 계획인데 아직 배터리 수량이 확보되지 않았으며 불량 사실이 알려질 경우 소비자들이 불안해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배터리 불량인 PMP를 소비자들이 사용하다가 또다른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이미 대다수 고객들이 배터리 불량에 대해 알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해 기자를 황당하게 했다.
◇도시바 노트북 배터리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윤정수씨는 지난 1월 10일 퇴근후 서울 쌍문동 집에서 노트북을 사용하다 아내의 부탁에 잠시 집 앞 마트를 다녀왔다. 다시 방에 들어선 윤씨는 감짝 놀랐다. 사용하기 위해 켜놓은 노트북 배터리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던 것. 노트북을 켠지 2시간쯤 지난 뒤였다.
놀란 윤씨는 배터리가 폭발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노트북을 현관밖에 내놓았다. 다음날 아침 윤씨가 확인했을 때 배터리는 여전히 부풀어 있었다. 윤씨는 “부풀어 오른 배터리를 보면서 폭발로 가족이 다칠까 무척 놀랐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고가 발생한 노트북은 ‘포테제 R100’모델로 현재는 단종돼 생산되지 않고 있으며 역시 리튬폴리머배터리를 사용한다.
곧바로 도시바 본사 서비스센터를 찾은 윤씨는 도시바측의 무책임한 자세에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꼈다. 센터측은 “배터리는 무상서비스 기간이 지나 도시바측과 상관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윤씨가 배터리가 부풀어오른 이유에 대해 계속해서 설명을 요구하자 센터측은 그제서야 “공기중의 이물질이 배터리에 들어가거나 외부의 강한 충격이 전해졌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센터측은 “배터리가 혹시 폭발할지 모르니 두고 가라. 안전하게 폐기하겠다”며 배터리를 두고 갈 것을 유도했다. 가족의 안전을 걱정한 윤씨는 센터측에 배터리를 넘겨주었고 센터측은 이후 이 배터리를 폐기했다고 주장했다.
윤씨는 “놀란 고객에게 위로나 해명 한마디없는 대기업 도시바의 무책임한 태도에 몹시 화가 난다”면서 “그날 도시바측은 배터리 관련 사고를 감추기에 급급한 인상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업체측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이라며 발뺌
윤씨 사고에 대해 도시바 홍보실 관계자는 “도시바가 책임이 없다고 답변했다는 고객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윤씨 사고는 내부에 가스가 차 배터리가 부풀어 오르는 ‘스웰링 현상’으로 리튬폴리머배터리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이다. 전부터 확인된 사항이어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고를 감추기 위해 배터리를 놓고 가게 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고객이 쓰레기통에 본인의 의사로 버린 것이며 그후에 안전하게 폐기했다”며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해명을 했다. 또 배터리 불량여부에 대해서는 “고객의 정확한 원인파악 요청이 없어 알아보지 못했다”는 무책임한 답변만이 돌아왔다.
배터리 발화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지만 관련 업체들의 안전불감증은 심각한 수준이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안전을 그저 운에 맡긴채 이런 제품들을 사용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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