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6년 한국의 텔레비전 드라마가 중국에 수출되고, 가요시장도 활성화되면서 중국현지에서 한국 대중문화 열풍이 일었다. 2000년 2월, 중국은 중국에서 일어나는 뜨거운 한국대중문화의 열기를 표현하기 위해 ‘한류(韓流)’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후 드라마, 가요, 영화 등 대중문화뿐 아니라 김치, 고추장, 라면, 가전제품 등 한국 관련 제품의 이상적인 선호현상까지 나타나 포괄적인 한류열풍이 시작됐다.
이러한 한류에 힘입어 한국은 국가 인지도 상승을 비롯, 수출상품의 이미지 제고, 관광산업의 활성화 등 유·무형의 경제적 이익을 누려왔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한류열기가 수그러들면서 ‘한류위기론’이 불거지고 있다. 이에 <일요시사>는 지령600호를 맞아 한류의 길을 되짚고, 향후 발전가능성과 더불어 한류의 새로운 미래는 무엇인지 집중 조명한다.
한류의 봄날은 갔다? "NO, 새로운 시작!"
한 설문조사에서 87%의 사람들이 ‘한류가 국가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고, 특히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을 바꿔놓았다’고 답했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한류 전망’에 대해 50%가 넘는 사람들이 ‘얼마간은 지속되겠지만 약화될 것’이라 답했고, 그 이유는 더욱 놀라웠다.
바로 “한류의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이라 답했기 때문이다. 몇몇 전문가가 2006년 초기부터 지적해왔던 것처럼 대부분의 국민들 역시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
국제교류학생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학생 김모(25)씨는 “‘겨울연가’등 몇몇 드라마의 선전 이후에 자국민에게도 인기가 없었던 드라마나 영화들이 스타의 인기를 등에 업고 비싼 값에 수출되는 것을 보며 부끄럽기도 하고, 걱정도 됐다”고 말했다. 몇몇 인기있는 한류스타의 데뷔초기작 등이 무분별하게 해외에 소개되면서 이런 콘텐츠가 ‘한류’에 누를 끼칠까 걱정됐다는 것이 김씨의 말.
사실 ‘한류드라마·영화’하면 무조건 재밌고, 잘 짜여진 스토리로 흥미진진한 전개를 이끌어 간다고 생각하는 외국인이 많다. 중국인 빙 한(32)씨는 “처음에 중국 TV에 나온 드라마는 놀랄 만큼 신선하면서도 잘 짜여진 이야기 구조였다”며 “그러나 이제는 너무 부실한 작품들이 많다. 무분별한 수입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즉, 초기 중국이나 일본 등지에 수출된 작품들은 한국에서도 검증된 흥행작들로 대표작이라 할 만한 콘텐츠가 선보여졌지만 그 후 한류열풍이 불면서 한류스타들이 출연한 모든 작품들을 한류에 힘입어 수출하려는 급박한 움직임 탓에 오히려 반감이 조성됐다는 것.
실제로 많은 한류전문가들이 “‘스타’는 여전히 한류열풍 한가운데 있지만 ‘콘텐츠’는 죽었다는 것이다”고 평했다.
1년 세금만 1백억원 가량 낸 ‘욘사마’ 배용준 역시 그 시초는 <겨울연가>라는 콘텐츠가 일본에서 인기를 모으며 탄생한 한류스타였다. <겨울연가>의 ‘준상’이가 배용준이었던 것이지, 배용준이 <겨울연가>를 아시아의 드라마로 만든 것은 아니라는 것.
그러나 미처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휘몰아치는 한류열풍에 국내 기획사 및 방송사 등은 기존의 콘텐츠를 팔기에만 급급했다. 한류스타들의 작품이 연이어 일본, 중국 등에 소개되면서 더 큰 인기를 얻기도 했지만 스타에 비해 완성도가 크게 떨어지는 작품은 여지없이 외면당했다.
특히 일본은 한류스타 권상우가 출연한 영화 <야수>, <청춘만화>, 이병헌의 <그 해 여름> 등을 고가에 수입했으나 결과가 좋지 못했다. 스타의 이름값에 비해 영화 흥행이 따라주지 못했던 것. 결국 한류스타들의 영화촬영이 끝나기도 전에 입도선매되곤 하던 일본시장은 찬바람만 쌩쌩 불고 있다.
일본과 주로 계약을 맺어왔던 한 배급사 관계자는 “자국에서도 개봉성적이 좋지 못한 영화들이 일본에서도 성공할 확률은 희박하다. 이 때문에 ‘일단 먼저 사고보자’는 수입관행은 사라졌다”며, “이제는 스타를 앞세우기보다 작품의 내용과 질로 승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빨리 끓은 물은 그만큼 빨리 식는다고 했던가.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05년 한국 드라마 수출액은 1억1백62만달러, 2006년의 수출액은 1년 전에 비해 크게 줄어든 8천5백89만달러에 그쳤다.
이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남아 지역이 한류열풍에 대해 제동을 걸었기 때문. 지난해 중국은 중국의 모든 언론매체를 총괄하는 국가 광전총국은 “한국 드라마의 방송량을 최대 50%까지 줄이겠다”고 했다.
수출한 만큼 수입하겠다는 기본방침 때문이었다. 태국 역시 한류 붐을 주도했던 태국 유일의 민영방송 iTV가 군사 쿠데타의 후폭풍을 맞은 것. 태국법원은 탁신 전 총리가 iTV대주주라는 이유로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의 방영비율을 낮추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런 상황에서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역시 명성에 못 미치는 결과로 막을 내렸다.
<겨울연가>로 한류의 특수를 톡톡히 본 남이섬 관광 상품 여행사 역시 “지난해에 비해 50%이상 관광객이 감소했다”며, “<겨울연가>효과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 한류 전문가는 “아직 스타들의 인기는 건재하다. 그러나 더 이상 한류가 힘을 잃지 않고 재도약하려면 근본적으로 양질의 콘텐츠가 뒷받침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양질의 콘텐츠만이 제2, 제3의 <겨울연가>를 만들고, 관광산업 등 경제효과도 부르게 되는 것”이라 말했다. 또한 “중단기적으론 해외홍보 강화, 수출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런 우려에 영향을 받아서일까. 국내 각 분야에서 한류열풍으로 인한 자만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며, 자정하려는 노력도 일고 있다.
자꾸만 방영이 연기돼 많은 이들로부터 불만을 사고 있는 대표한류드라마 <태왕사신기>의 김종학 PD는 “더 나은 드라마를 제작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밝히며 “주인공인 배용준씨나 나 모두 <태왕사신기>가 꺼져가는 한류의 마지막이 될까 중압감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김 PD는 “배용준씨가 한류 산업을 다시 살릴 수 있는 계기를 같이 한 번 찾아가보자는 데 감동을 받았다”며 “(드라마 연기에 대해)중압감보다는 만드는 사람이 재미있지 않고 만드는 사람이 초심을 잃는다면 결과는 어떨까 자문자답해본다고 덧붙였다.
김 PD의 표현에 의하면 ‘꺼져가는 한류의 불꽃’을 다시 살리기 위해 심사숙고한 더욱 질 높은 작품을 내보이겠다는 것.
한류열풍의 명맥을 이어가려는 분야는 비단 엔터테인먼트만이 아니다. 지난 5일, 한중 수교 15주년을 맞아 중국 초청으로 베이징에서 한중 미용축제가 열린 것.
미용 산업은 대 중국 공략업종으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어 이세기 한중친선협회장은 “중국이 한국의 뷰티문화기술을 높게 평가하고 있어서 이 분야에서 한류를 일으키는 것은 대단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IT분야도 마찬가지다. 지난 5일 <디지털커뮤니케이션 2007 콘퍼런스&전시회>에서는 기존 전화의 기능을 넘어 보고 즐기는 영상전화 및 다양한 부가서비스 등 양질의 기술로 한류에 적극 참여할 것임을 밝혔다.
한류 초기, 한류를 이끌고 있는 엔터테인먼트계는 ‘세계로 뻗어나가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해외진출을 시도했다. 그러나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드라마, 영화 등의 콘텐츠가 상상 이상의 효과를 일으키자 거기에 휩쓸리고 말았다. 열풍이라기보단 폭풍의 기세에 초심을 잃고, 콘텐츠의 질보다 스타를 내세운 한시적 전략을 쓴 것이 지금 한류가 주춤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류는 비단 엔테테인먼트적 문화상품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말 그래도 한국의 물결로써 세계로 뻗어나가는 길이다. 그러나 문화산업의 시대를 맞아 경제적 효과를 본다면 엔터테인먼트 쪽의 활성화가 급선무다.
한 한류전문가는 “한류열풍으로 갑자기 얻은 관심과 인기에 자만해 수익을 올리기에 급급해서도, 스타에 의지해서도 안된다”며, “더 나은 콘텐츠, 뛰어난 재능의 새로운 스타를 키워 ‘세계로 뻗어나가려 노력했던 초심으로 재도약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류, 죽지 않았다
"우리가 새로운 한류주역"
몽골에서는 <야인시대>가, 태국에서는 <풀하우스>, <대장금>, <다모>등의 드라마가 히트를 치며 ‘한류 팬’을 만들어냈다. 중국, 일본에서 불거진 한류열풍은 이제 내리막길만 남았다는 우려도 돌고 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입을 모아 “이제 시작이다”고 말한다. 새로운 한류스타가 속속들이 탄생하고 있을 뿐 아니라 광고까지 한류에 합류, 이끌어가고 있기 때문.
광고계에서 한류열풍을 이끌고 있는 건 삼성전자의 애니콜 광고. 삼성전자는 휴대전화의 해외진출 당시만 하더라도 외국현지배우를 기용하거나 이미지적 광고전략을 써왔다. 그러나 아시아 전역에서 한국스타가 인기를 얻자 대만, 홍콩에 이어 러시아, 중동까지 국내 광고를 그대로 쓰고 있는 것.
대만에는 문근영의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던 블루투스폰 CF가, 중국·홍콩·대만 등 중화권 전역에는 첩보영화형식을 빌렸던 권상우의 슬림폰CF가 TV와 인쇄광고를 뒤덮었다. 에릭의 애니콜 비트박스편은 아랍에미레이트 극장에서 각각 소비자와 만난 것. 이외에도 여러 한국기업의 광고가 세계 전역에서 보여지고 있다.
배용준, 권상우, 이병헌, 송승헌 등 1대 한류스타에 이어 2대 한류스타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가수 세븐, 그룹 파란, 김정훈, 손호영, 장근석, 강지환 등이 그 주역이다.
지난 3일 일본의 아사히신문은 세븐과의 인터뷰에서 “세븐의 신곡은 강렬한 댄스곡임에도 일본어 랩 가사를 완벽히 소화하고 있다”며 극찬했고, 그룹 파란은 이미 태국과 중국에서 미국 팝스타들을 제치고 해외음악차트 1위를 석권한 여세를 몰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로 활동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다.
배우 김정훈 역시 최근 태국 송크란 축제의 홍보대사로 위촉되면서 한류스타로 입지를 굳혔으며, 강지환은 지난 1일 일본 도쿄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에서 1천2백여명의 일본팬들과 첫 팬미팅을 가져 일본의 새로운 한류스타로 떠올랐다.
한편 원조 한류스타 중 한명인 권상우는 오는 8월, 세계 최초로 국내 스타의 이름을 딴 호텔 ‘권상우 캐슬’이 오픈함에 따라 인도네시아 발리를 방문할 예정이다.
한 연예기획사는 “전체적으로는 한류열풍이 일었던 초기에 비해 주춤한 상태지만 여전히 활발한 해외시장으로의 진출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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